[현성야동] 메시아(Messiah)
w. 봉봉&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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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성야동]메시아(Messiah) w.봉봉&천월 - 21 (BGM : 이수 - 레퀴엠 ) - "그러니까...네 말은...반란을 일으킨다는거야?" "대충 그런 셈이지. 소에족을 궁지로 몰아넣고, 죄없는 국민들을 핍박한 정부를 부수는거야." 시꺼먼 재가 흩날리는 푹푹 찌는 공기 사이를 걸어가며 호원과 동우가 조용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부대를 불태우고 탈출했을때 둘의 몸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몸 이곳저곳에 멍이 들고 칼에 베인 한쪽 다리는 제대로 치료도 못한채 절뚝거리는 동우는 물론이었고, 얻어맞은 뒤통수가 아직도 얼얼한 호원까지. 가지고 나온게 아무것도 없어 간신히 물에 상처를 씻어내기만 한 둘은 사흘째 길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상처도 채 소독하지 못한 상태로 제대로 된 음식마저 먹지 못해 하늘은 노랗고 땅은 핑핑 돌았지만 서로의 손을 부여잡고 의지해가며 서울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말은 쉽지. 그게 우리 둘이 마음먹었다고 가능해?" "동우야, 이 세상에 우리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 정부에게 괴롭힘당하고 복수의 칼날을 남몰래 갈았지만 그 칼 한번 휘두를 기회가 없는 사람들. 지금 우리가 그 사람들 마음에 불지르러 가는 거잖아." "...그래. 그나저나 너, 내가 멋도모르고 한 소리를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계획까지 세울줄은 몰랐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한 생각이잖아." "......" "그만큼 내 생각이기도 한거야." "하지만...위험하잖아.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싸우다 죽는것도 한순간이고." "안되더라도 끝까지 노력해봐야지. 그리고 너랑 난, 더 잃을게 없잖아." 순간 호원의 얼굴을 스쳐간 쓸쓸한 기운에 동우가 부산에 남겨진 그의 가족들을 떠올렸다. "아마 우리 아버지는, 내가 엄마를 지키는 것보다는 정부에 맞서 싸우는걸 더 흡족하게 여기실지도 몰라." "......" "우리 아버지는 그런 분이셨거든." "......" "동우야, 니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내 얘기는 제대로 못해준 것 같다. 들어줄래?" "...응." "우리 아버지는 되게 씩씩하고 굳센 분이었어. 엄마를 만나기 전에는 직업군인이셨을 만큼. 물론 그 땐 전쟁나기 한참 전이었지만 말이야. 꽤 높은 계급이셨다고 들었는데 결혼하고 은퇴하셔서 부산에 내려왔대." "......" "우리가 열다섯살이었을때 전쟁이 터졌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다행인 일이었지." "그러네." "근데 군인으로 남아계셨으면 더 오래 사셨을거야." "응?" "내가 일곱살때였을거야. 그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거든. 전쟁나기 8년 전, 지금으로부터는 12년 전이네." "......" "한순간이었어. 새벽에 아빠가 양식장 나가시고 엄마랑 형이랑 뒤늦게 일어나 아침먹고 있을때였어. 갑자기 누군가 문을 부술듯이 두들기는거야. 세상에, 그 나이에 얼마나 놀랐으면 아직도 희미하지만 기억이 나냐." 어려운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가슴속은 그렇지 못하겠지만- 얘기하는 호원의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동우가 걸음을 늦췄다. "엄마가 밖을 내다보니 웬 낯선 사람이 서있더래. 당연히 문은 안 열어줬지. 그냥 셋이서 조용히 있었는데. 그 낯선 사람 오기가 참 대단하더라. 문이 안 열리니까 큰 돌덩이로 창문을 부쉈어." "......"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쳐들어온 그 사람한테서 우리를 보호하려고, 엄마는 형이랑 날 끌어안고 소리를 질러댔거든. 근데 그 사람이 칼을 꺼내들더니 우리 엄마 다리를 찔렀어. 깊게. 치료가 좀 늦었어. 그래서 엄마 다리가 불편한거야." 아프고 끔찍한 얘기를 들으며 동우가 작게 몸을 떨자 오히려 이야기를 이어가던 호원이 그런 동우를 감싸안았다. "형이랑 나는 겁에 질려서 아무것도 못하고, 엄마는 아픈 다리로도 끙끙대며 그 사람을 막으려 하는 와중에 아빠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어. 그리고 그 사람과 맞서 싸우다 돌아가셨지." "......" "엉엉 우는 우리 형제와 쓰러진 엄마를 두고 그 살인마는 도망갔어. 그리고 도망가면서 말했지. 똑똑히 기억해, 난 소에족이다- 라고." 결국 동우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푹 숙였다. 소에족이라는 세 글자만으로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모든게 자신의 죄 같았다. "저, 호원아...미..." "넌 아무 죄도 없어, 동우야. 그건 절대 네 잘못이 아니야." "어...?" "내가 소에족에 대해 아무리 안 좋은 기억을 갖고 있다고 해도 말이야- 넌 그냥 내가 사랑하는 존재야. 나에게 있어서 넌 무결한 존재라는거야." "......" "솔직히 아직 소에족에게 화가 나는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지만 모든 소에족이 나쁘진 않잖아. 아니, 정말 극소수만 그렇지 않을까." "......" "널 보고 깨달은거야. 그 동안 소에족을 미워했던게 미안해질만큼 널 좋아해." "...호원아..." "내가 소에족을 위해 맞서싸우려는 것도 어느 정도는 그런 이유에서 비롯된걸지도 모르겠다. 음... 정부, 그 중에서도 윗대가리 국회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쁘잖아." "......" "소에족은 그렇지 않으니까." 조심스럽게 끌어안아주는 호원의 말 하나하나가 감격스럽고 고마웠다. 지금이 무슨 상황이고 위험하고 그런건 이 순간에는 아무것도 상관없었다. 날 이렇게 사랑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는데 말이야. - 한참을 걷다보니 전쟁의 최전선에 다가온듯 했다. 다급한 병사들의 외침과 쏟아지는 총알 소리, 그리고 폭탄 소리가 가까워졌다. "돌아가자." "글쎄...내가 알기론 서울 들어가는 길목이 아마 여기일꺼야. 서울에 중요 건물들이 거의 밀집해있어서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대부분의 길목을 다 차단했거든." "딴데는 없어?" "서울가는 길은 언제나 최전선이야. 뚫고 들어가려는 소에족이랑 막으려는 정부군이 항상 대치중이거든. 그래도 조금이나마 돌아갈 수 없을까..." 1km쯤 떨어진 곳까지 퍼져오는 피비린내에 동우가 가까이 가길 주저했지만 왼쪽으로 돌아가면 소에족의 진지,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정부군의 진지. 그리고 직진하면 치열한 전투 한가운데였다. 다른 길을 찾기엔 너무 지쳐버린데다 몸 상태도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소에족 하나와 군인 하나가 함께이기 때문에 소에족 진지로 가도, 정부군 진지로 가도 위험한건 매한가지였다. 그렇다고 둘이 갈라져 혼자 다니는건 더더욱 위험한 상태였으니, 결론은 하나였다. "최대한 전투의 위험이 적은 곳으로 몰래 통과해야해." "서울이 아니면 안 돼? 수도엔 정부 사람들이 우글우글한데 우릴 도와줄 사람이 있을까?" "내가 생각해둔 곳이 있어. 너 M센터라고 알아?" "들어본적은 있어. 거긴 왜? M이면...정부쪽 아닌가?" "내가 훈련소 생활때 M센터 보초 대신에 하루 경비 서본적이 있거든. 거기서 나랑 같이 후문 지켰던 센터 사람이 얘기해준게 있어." "응?" 호원은 어렴풋한 기억을 잡아올렸다. 막 처음 입대한 호원이 커다랗고 삐까뻔쩍한 센터 건물을 신기하게 훑어보자 하얀 가운에 이질적이게 총을 들고 서있던 젊은 연구원이 해준 이야기. 「자네는 외부 사람이니까 이런 말을 해도 되겠지. M센터가 겉모양은 이렇게 멋지고 화려하지? 물론 내부도 첨단시설로 가득 차 있어. 근데 사람들의 마음은 행복하지 못해. 사실 M센터는 정부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다네. M들은 끊임없이 실험당하고, 방 안에 틀어박혀 아기를 낳고, 그 아기들은 모두 뺏기지. 정부는 M들한테 기억상실약까지 주사한다고. 사실 연구원들은 그런 M이 너무 안쓰럽고 도와주고 싶지만 정부는 잔인해. 그런 행동 자체를 용서하지 않거든. 게다가 자꾸 예산까지 줄인다네. 일하는게 너무 힘들어. 정부만 아니었어도... 늘 M들한테 미안한 감정 뿐이야.」 신세한탄처럼 두서없이 뱉은 자신의 말에 고개를 휘휘 젓고 다시 경비서는데 열중하던 그의 씁쓸한 표정까지. "M센터 연구원들은 정부에 큰 반감을 가지고 있는듯해. 거기 가본다면 도움이 될거야. 다른 정부청사만큼 경비가 삼엄하지도 않았고. 우리가 찾는 사람들이 거기 있을 것 같아." "난 잘 모르니까 너만 믿을께. 가는 길은 알아?" "대강 기억나. 서울 외곽에 있어서 저 전쟁터만 통과하면 금방 도착할거야." 얼마 다가가지 않았는데도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장면이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졌다. 호원과 동우의 발 앞에까지 총알이 몇개 튀었다. 호원이 군복을 입고 있긴 했지만 동우는 민간인의 모습이었고, 어찌됐든 둘은 이곳에선 낯선 이방인이었다. 서로 싸운다고 정신이 없겠지만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 건물들 사이 골목으로 조심히 가기로 했다. 빠른 걸음으로 뛰다시피 달려가 근처 큰 건물 벽에 딱 붙어 움직였다. 동우는 몇년이나 혼자 돌아다녔지만 그때마다 이렇게 치열한 전쟁터를 만나면 피했고, 호원도 한번도 이런 격한 전투에는 참가한 적이 없었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불과 몇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총탄이 빗발쳤다. 이곳저곳에서 초단위간격으로 터져대는 폭탄 또한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건물을 빙 돌아 어두컴컴한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히...히익!" 근처에서 터진 폭탄 때문에 하늘에서 까만 재가 쏟아져내렸다. 그러나 동우와 호원을 놀라게 한건 그게 아니었다. 소형 자동차 하나가 간신히 지나갈만한 폭의 골목에는 싸우다 목숨을 잃은 군인들의 시체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정부군, 소에족 할 것 없이 쌓여있는 시체들, 그리고 썩은내가 코를 찔렀다. 고개를 푹 숙이고 손까지 꽉 잡은채 조심히 골목골목을 지나갔지만 자칫하다 밟게 되는게 널부러진 시체들인 까닭으로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살면서 시체를 한번도 본 적 없는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던 동우와 군인이었던 호원은 이런 장면을 많이 본 편이었다. 그렇지만 익숙해질 수 없는 광경인건 확실했다. "...어?" 복잡하게 꼬인 골목을 힘겹게 지나왔는데 끝은 막다른 벽이었다. 벽을 넘어갈 수도 없었고 그 벽 너머에 뭐가 있는지 확실치도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뒤로 돌아 나와야했다. 결국 골목을 벗어나 전투중인 큰길로 나오게 된 둘은 길을 건너야만 다른 골목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얀 옷을 시뻘건 피로 물들여가며 땅바닥에 누운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의료진이 이쪽 편 골목 입구를 꽉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료진의 허리춤에도 권총이 걸려있었다. 그러나 길을 건너는건 너무 위험했다. 도로의 폭이 족히 70m는 되어보였다. 건물 옥상에서 예고없이 쏘아대는 기관총때문에 줄지어 이동하던 한무더기의 병사가 잿더미 위로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동우는 잔뜩 겁에 질렸다. 도로는 위험천만한 것들로 가득 차 있었지만 그래도 지나가야했다. 다행히 양측은 서로를 죽이느라 조용히 움직이는 호원과 동우를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누가 정부고 누가 소에족이고 신경쓰지않고 눈에 보이는대로 저격하고 폭탄을 터뜨리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방심하면 죽는건 한순간이었다. 호원과 동우는 최대한 정부군의 바리케이드에 가까운 쪽으로 움직였다. 호원의 옷이 정부군 군복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위험하지 않을거라는 판단이었다. 둘한테는 아무 무기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 때 눈앞을 빠르게 스쳐가는 정부군 한 무리에 호원이 주춤한 사이 동우가 미친듯이 호원을 끌어당겨 바닥에 엎드렸다. "왜...!" 당황한 호원이 몸을 일으키려 하자 동우가 다시 바닥으로 그를 끌어당겼다. 곧바로 허공에서 불타는 화살 한 무더기가 엎드린 호원과 동우의 위로 날아왔다. 물체를 원하는 곳으로 순간이동시키는 능력자가 불타는 화살들을 정부군 무리 앞으로 이동시킨 모양이었다. 아슬아슬하게 둘의 머리 위를 스쳐간 화살들에 정통으로 맞은 정부군이 불타오르며 고통하는 사이 동우가 서둘러 호원을 잡아끌었다. "너 어떻게..." "설명할 시간이 없어!" 동우가 또한번 호원을 한쪽으로 잡아당기자마자 아무도 없던 곳에서 갑자기 중무장한 사람 하나가 나타나 총을 연발하고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몸을 투명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 소에족인 모양이었다. 어떻게 공격을 알아챘는지 궁금해할새도 없이 재빨리 달려서 길을 건넜을때였다. 동우가 호원의 팔을 또한번 잡아당겼다. "또 왜?" "다시! 다시 길 건너가야돼! 돌아가야돼!" "기껏 건너왔는데 왜!" "머뭇거릴 시간 없어! 빨리! 호원아 빨리!" 결국 동우의 재촉에 다시 왔던 곳으로 건너가는 호원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했다. 최대한 빨리 달려 길을 반쯤 건넜을 때였다. 펑- "아아악!" 폐허가 된지 오래인 한 건물이 이유없이 폭발해 반경 10m 내에 있던 사람들이 모조리 날아갔다. 날아간 사람들은 즉사하거나 중상을 입은 상태로 신음했다. 폭발한 건물은 방금 전까지 호원과 동우가 머뭇거리며 서있던 바로 앞이었다. 폭발의 위력에 넘어진 호원이 옆에 있는 동우를 쳐다보았다. "너..." "호원아, 그냥 달려! 소에족이 반격을 시작했어!" 몸이 얼마나 다쳤건간에 그건 중요한게 아니었다. 다리를 여전히 절뚝거리는 동우의 손을 잡은채로 호원이 미친듯이 전쟁터를 달려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턱까지 찬 숨을 몰아쉬며 군인들까지 피해 근처 건물로 달려온 둘은 헥헥거리며 벽에 기댔다. 그 때였다.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던 호원의 눈에 들어온 것은 둘이 기대있는 건물에서 몇미터 떨어지지 않은 큰 콘크리트 빌딩의 왼편에 붙어 깜박거리는 빨간 불이었다. 그 불이 뭘 뜻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호원은 그대로 동우의 손을 끌어당겼다. "뛰어!" "어?" 몇미터 가지 못했는데 뒤에서 고막을 찢을 듯 큰 소리가 들려왔다. 빨간 불은 시한폭탄이었다. 건물이 폭발하는 동시에 호원이 동우를 감싸안은채로 엎드렸다.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이 땅에 떨어지면서 부서졌다. 파편들이 튀어 엎드린 호원과 동우의 위에 쏟아졌다. 몸 이곳저곳에 생채기가 생겼지만 다행히 큰 콘크리트가 둘을 덮치지 않아 살 수 있었다. "크윽..." "괜찮아?" "난 괜찮아. 너는?" "니가 나 감싸안아놓고 그게 할 소리냐?"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된 자리에서 되도록 멀리 떨어져 달아나는 도중 결국 동우가 주저앉았다. "걸핏하면 폭탄에 폭발에! 이게 뭐야... 끔찍해." "이 끔찍한 전쟁의 끝을 내려고 우리가 이렇게 가는 거잖아." 저 멀리 꼭대기만 보이는 건물을 응시하며 호원이 중얼거렸다. M센터였다. - 간신히 전쟁터를 빠져나와 센터를 향해 걸어가는 길은 멀쩡하고 깨끗했다. 아직 소에족이 서울내로 침범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이런 서울을 앞으로 부술거라는 생각에 괜히 마음이 착잡해지는 동우였다. 온 몸이 상처투성이었지만 있는 힘을 다해 발을 옮기는건 힘들었다. 간간히 지나가는 사람들이 피와 먼지에 뒤덮인 두 사람을 보고 기겁하며 도망가는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쉰 호원이 입을 열었다. "근데 너...아까...어떻게 안거야?" "어? 뭘?" "터지고 날아오고...그럴때마다 먼저 알아채고 피했잖아. 난 아무것도 모르겠던데." "음...나도 잘 모르겠는데, 그런 느낌이 와." "느낌?" "소에족끼리는 그런 통하는게 있나봐. 누군가 무슨 능력을 쓰면 어디서 그 능력이 나타날지 대충이지만 느껴지더라." 잔뜩 지친 모습이지만 애써 웃음까지 띄어가며 얘기하는 동우의 모습에 가슴이 답답해진 호원이었다. 'M센터 1km 앞' 이라는 표지판이 보일때까지 느릿느릿 걸어가던 도중 문득 호원은 동우의 능력에 대해 궁금해졌다. "있잖아, 니 능력말이야. 이번에 처음 나온거야?" "응, 그런 것 같아. 19년 살아오면서 한번도 어디 불내본 적도 없고, 하하." "어쩌다 갑자기 능력 나온거야? 보통 소에족이 다 이때쯤 능력 나와?" "글쎄... 우리 누나들은 되게 어렸을때 능력 나왔어. 큰 누나는 동물이랑 대화할 수 있었어. 작은 누나는 세계 각국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고. 엄마 말로는 둘 다 대여섯살 때 발견됐다던데, 난 왜 이제야 나왔는지 모르겠다." "너희 누나들은 부드러운 능력이네. 너랑 되게 다르다." "그러게. 우리 엄마는 물 속에서 숨쉴 수 있는거. 아빠는... 아빠가 뭐였지? 아빠는 한번도 내 앞에서 능력 쓴적이 없다. 뭔지 알려준 적도 없고." "음...능력이 어쩌다 발현되는건지 혹시 알아?" "발현이라기보다는 발견이라고 해야될 것 같아. 내가 알기론 소에족 능력은 태어날때부터 있는거래. 어떤 사건을 계기로 발견되는거지. 으음... 솔직히 나한테도 너무 어려운 소리야." "그럼 한번 발견되면 막 쓸 수 있는거네?" "그런 셈인데, 능력쓰는 에너지가 한정되있다는 얘기는 들어봤어." "한정?" "모르겠어. 막 신체 에너지에 비례한다 어쩐다 하는 그런 얘기를 예전에 들어봤긴 했는데 뭔 소린지 잘 모르겠다." 이것저것 얘기하던 사이에 벌써 M센터에 가까워졌다. 정문과 그 앞을 지키는 센터 사람 네 명이 눈에 들어왔다. 센터 사람들의 어깨엔 총이 메어져 있었다. "...어쩌지?" "후문으로 돌아가자." 호원이 센터 뒤편으로 가는 골목으로 동우를 끌고 갔다. 보초들의 눈을 피하는 걸음걸이가 조심스러웠다. "후문에는 지키는 사람 없어?" "센터 후문은 쓰레기장이랑 연결되어 있어. 사람이 있다해도 정문보단 훨씬 적을거야."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좋은 인연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동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가보자." - 평소엔 얌전했던 성규가 오늘따라 밖에 나가고 싶다고 칭얼댔다. 언제나 그렇듯 성규의 부탁을 거절할줄 모르는 우현은 "안되는데-"하고 고개를 저으면서도 명수에게 허락을 받으러 방을 나갔고 말이다. 명수는 한참이나 안된다는둥, 무슨 일이라도 나면 어쩌냐는둥 반대했지만 애절한 우현의 부탁에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내 눈에 보이는데까지만 나갈 것. 그러니까 후문 소각장에서만 놀라는거에요." "그게 무슨-" "시끄럽고 잘 챙기기나 하세요." 쳇- 혀를 차면서도 오랜만에 바깥 바람을 쐴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우현이 부채를 챙겨 성규의 손을 잡고 후문으로 나왔다. 명수는 후문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3층 복도 창가에서 지켜본다고 했다. 감시받는 느낌이었지만 따라나온다는 것도 간신히 말린 상황이었기에 이것도 감지덕지였다. "얼마만에 받는 햇빛이야-" 예쁘게 웃는 성규의 모습에 지켜보는 명수의 존재를 순식간에 잊은 우현이 성규의 손을 잡았다. "엄마, 기분 좋지?" "응, 자주 나왔으면 좋겠다." 둘을 위에서 지켜보는 명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확실히 제대로 된 연인의 모습을 갖춘 둘의 모습은 봄날에 피어나는 꽃 마냥 화사했다. 그 때, 명수의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저건 혹시..." 표정이 굳은 명수는 곧바로 방으로 향했다. 비상시를 대비해 방에 비치해두었던 물건 두개를 꺼내 급히 계단을 뛰어내려오는 명수의 뒷목에 식은땀이 흘렀다. 오른손에 든 무전기 모양의 작은 물체에서는 귀를 찢을듯한 삐이이-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 "우와- 우현아, 이것 봐." "이런데 꽃도 다 피네." 쓰레기가 쌓인 소각장의 콘크리트 바닥을 뚫고 밝은 노란색 민들레가 활짝 피어있었다. 조그만 꽃 하나에도 좋다고 서로 마주보고 웃는건 역시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 그 때였다. 뒤에서 수상쩍은 기운이 느껴졌다. 우현이 급히 뒤로 돌아섰다. "누...누구세요?" "아, 저...저기..." 낯설고 탁한 목소리, 그리고 흙냄새. 우현의 눈 앞에는 먼지에 뒤덮인 두 남자가 서있었다. 거의 다 해졌다해도 될만한 더러운 차림새에, 한 사람은 군복. 자세히 보니 몸 이곳저곳엔 상처와 핏자국이 가득했다. 몸도 불편해보이는데다 굉장히 지쳐있는듯 했다. 그러나 이곳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기에 우현에게는 도와줘야겠다는 생각보다 경계심이 먼저 들었다. 본능적으로 성규를 뒤로 숨기며 수상한 눈으로 이방인들을 쳐다보자, 해치려는 악의는 없었던건지 낯선이들이 움찔했다. 알고 보니 군복을 입은 사내마저도 총 한자루 없이 무방비 상태로 서있었다. 그러나 산책을 나왔을뿐인 우현과 성규 역시 무기 하나 없었기 때문에 우현은 M센터 안으로 언제든지 도망갈 자세를 취했다. "여긴 무슨 일로 왔습니까? 처음 보는 얼굴인데." "저희는 그냥..." "물러서!!!" 낯선이들이 대답을 하려는 순간 명수가 뛰어나와 우현과 성규의 앞을 가로막았다. 명수의 손에는 소총 한 자루와 작은 기계 하나가 들려있었다. 날카로운 경고음을 내는 저 기계는... 우현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기계의 정체는 소에족 탐지기였다. 근처에 소에족이 있다는 신호를 뿜어내는. - 소각장으로 들어서는데 하얀 옷을 입은 두 사람이 후문에서 걸어나왔다. 호원과 동우는 재빨리 쓰레기 더미 뒤로 숨어 동태를 살폈지만 두 사람은 산책이라도 나온건지 쉴새없이 웃으며 도통 들어갈 생각을 안하는듯 했다. 두 사람의 뒤로 몰래 지나가자는 모종의 합의를 보고 조심스럽게 소각장을 가로지르는데, 인기척을 느꼈는지 두 사람 중 하나가 몸을 홱 돌렸다. "누...누구세요?" "아, 저...저기..." 당황한 호원이 우물거리는 사이 말을 건 남자가 다른 남자를 뒤로 숨겼다. 하얗고 깨끗한 모습에 호원은 뒤에 숨은 남자가 M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앞을 가로막은 남자는 가운을 입고 있는걸로 보아 센터 연구원인듯 했다. 자신들을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는 연구원이 날카롭게 물었다. "여긴 무슨 일로 왔습니까? 처음 보는 얼굴인데." "저희는 그냥..." "물러서!!!" 이런 일을 대비해놓지 않은 호원과 동우가 어물쩡거리는 사이 후문에서 또다른 남자가 나와 소리를 질렀다. 또다른 연구원인듯한 그 남자의 손엔 총 한 자루와 기계 하나가 들려있었다. 호원과 동우는 그 기계가 뭔지, 왜 소음을 내고 있는지 순식간에 깨달았다. 도망쳐야 했지만 남자의 손에 들린 총이 그것도 여의치못하게 만들었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 "저 새끼, 소에족이야!" 정확히 동우를 가리키는 명수의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렸다. 단단히 화가 난 듯 했다. "거기 당신들 둘, 뭐하러 여기 들어온거야? 거기 넌 군복까지 입은 일반인이면서 소에족은 왜 데리고 다니는건데? 몰랐나?" "김명수..." "당장 안 꺼져? 더러운 놈들 같으니라고." 성규의 부름까지 무시한 명수가 호원과 동우를 노려보며 턱끝으로 소각장 문을 가리켰다. 여전히 총을 겨눈 상태였다. 그냥 여기서 나갈까- 했던 호원은 정부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다 생각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말이 좀 심한거 같네." "뭐?" "소에족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러시나." 가만히 서있던 호원이 입을 열자 명수가 헛웃음을 지었다. "몰라서 묻는 거냐?" "그래, 몰라서 묻는거다." "소에족이 모든걸 망쳤어, 망쳤다고! 용서할 수 없게, 상황을 이까지 치닫게 만든게 소에족이란 말이야!" "무슨 소리야, 그건." "이건 다 소에족때문이야! 이성열이 죽은 것도! M이 핍박받은 것도! 아니, 소에족이 없었다면 M이 만들어진 구실이 된 전쟁 그 자체도 없었겠지! 이성열이 고통받을 필요가 없었을거라고!" 명수가 악에 받쳐 소리지르며 겁에 질려 서있는 동우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스쳐가는 성열의 모습이 걷잡을 수 없이 떠올랐다. 아이야, 내 아이야. "이성열! 이성열 돌려내!!! 씨발, 안 그럴거면 당장 꺼져! 내 눈앞에 보이는 즉시 총알로 심장을 꿰뚫어줄테니까. 몇번이고, 이성열의 복수로 몇번이고 죽여줄거라고!!!" 방에쇠에 걸친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리었다. 분노가 한가득 차올랐다. 그 때 명수에 버금갈 정도로 화가 나 보이는 호원이 걸어나와 동우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디 한번 쏴봐." "넌 또 뭐야!" 표정이 잔뜩 굳은 호원이 이를 악물고 중얼거렸다. 낮은 목소리였지만 충분히 위압감이 느껴지는 분위기였다. "어디 한번 장동우 쏴보라고. 내가 대신 맞아줄테니까." "이 새끼가 뭐라는거야! 안비켜? 넌 인간이잖아!" "인간이건 소에족이건 그게 무슨 상관인데? 당신이 그렇게 혐오하는 소에족을 향해 그 잘난 총으로 쏴보란 말이다! 내가 그 앞을 가로막아 몇발이고 대신 맞아줄테니까. 내 몸에 바람구멍이 수십개가 나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방패막이가 되서 장동우한테서는 피 한방울 안 나오게 할거니까!" "...미친. 인간이랑 소에족이랑 사랑이라도 하는건가." 동우의 앞을 굳건히 지킨채 어금니를 갈며 소리치는 호원에게 명수가 빈정거렸다. 그 순간은 동료들을 모으고 어쩌고 하는 그딴건 아무 상관 없었다. 니까짓게 뭔데 소에족에게, 그리고 장동우에게 그런 말을 지껄이는데? "마음에 안 들면 쏘라고 했잖아, 잘난 연구원씨." 단호한 호원의 목소리에 명수가 비소를 지었다. "그래, 그게 소원이라면." 방아쇠에 올린 명수의 검지에 힘이 실리는 순간이었다. 데자뷰- 라고 표현해야 하는건가. 생생히 기억나는 바로 그 장면이 호원의 눈 앞에서 다시 펼쳐지고 있었다. 불타오르는 총, 허공을 향해 발포된 총알, 소스라치게 놀란 사람들의 얼굴. 이번엔 센터 전체가 아닌 총 하나만 불타오르고 있다는 사실이 그 때와 다르다면 다른 것이겠지. 총의 방아쇠에서부터 솟아오른 불길에 센터 사람들은 어리둥절해보였지만 호원은 그게 누구의 짓인지 알고 있었다. 순식간에 고요해진 가운데 자신의 옷깃을 잡아오는 손길에 호원이 고개를 돌렸다. "이호원 너, 너 진짜..." "동우야..." "넌 진짜 답이 없어... 니가 뭐라고 자꾸 나 대신 죽을 맘을 먹어...? 나도 이제 내 앞가림은 할 수 있어. 대신 죽겠다는 다짐, 함부로 하는거 아니야..." "...미안해." "난 더 이상... 소중한 사람을 눈 앞에서 잃고 싶지 않아." "미안, 동우야." 금방이라도 울듯한 동우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으며 쓰게 웃는 호원의 어깨를 별안간 명수가 잡아챘다. 총에 붙었던 불은 명수가 가운을 벗어 덮어 끈지 오래였다. "꼴깝들 떨고 있는거 방해해서 미안한데," "이거 놓지 그래?" "이 불...저 소에족이 낸건가?" "그렇다면?" 호원의 비아냥 섞인 대답을 듣는 순간 명수의 머릿속에서 끔찍한 기억 하나가 폭발했다. 불... 이성열을 죽인 불... 타오르는 화염 사이에서 하얗게 웃던 아이의 모습이 명수의 불타오른 화에 부채질을 해댔다. "도대체 목적이 뭐야!! 여기 와서 이러는 목적이 뭐냐고!" "미안하지만 소에족을 경멸하는 당신같은 인간에겐 말해줄 필요를 못 느끼는데." "빨리 말하지 않으면 사람들을 부를거다." 옆에서 멍하니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는 우현과 성규를 가리키며 명수가 호원의 멱살을 잡아올렸다. "여기서 횡포를 부리는 이유를 당장 불어." "이거부터 놔." "불라고!" 둘 사이에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긴장감이 돌다 못해 소름이 돋을듯한 분위기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은 동우가 다가와 말리려는 시늉을 해보였지만 명수를 노려보는채로 호원이 손을 내저어 그런 동우를 저지했다. "멱살부터 놓으라고 했다. 말이 안 통하면 폭력부터 휘두르는게 이 센터의 규칙인가?" "그 전에 이유부터 말하시지." "......" "......" 결국 명수가 잡고 있던 호원의 멱살을 먼저 놓았고, 뒤이어 호원도 입을 열었다. 당장이라도 이 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아까 슬핏 마주쳤던 성규의 눈빛, 어딘가 슬픔을 간직하고 있던 그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지금 당장은 마찰이 심하지만 이 사람들이 어쩌면... "잘 들어." "......" "우린 정부를 부술거다." "...뭐...?" "왜 전쟁의 원인이 소에족이라 생각하는거지? 소에족은 애초에 인간을 해치려는 생각이 없었어. 그리고 그건 인간도 마찬가지였지. 시작을 끊은건 인간들의 상류층, 바로 정부야. 인간에서 갈라져나온 한 종족일뿐인 소에족을 닥치는대로 죽이라는 명령을 내려 분노를 일으킨건 정부라고." "지금 무슨..." "왜 지구상의 같은 생명체끼리 미친듯이 싸워야 되는거지? 서로는 서로에게 잘못한게 없어. 잘못한건 정부뿐이다. 그런데도 인류는 소에족을 보고 있었고, 소에족은 인류를 보고 있었지. 진짜 봐야할 대상인 정부의 손에 놀아나면서 말이야." "......" "생각해봤나 모르겠군. M을 만든 것도 정부야. 자세한건 모르지만 아까 당신 말대로 M을 핍박한 것도 정부일테지. 결코 소에족이 아니란 말이야." 유리로 둘러싸인 실험실 안에서 강제로 고통을 겪던 성열의 모습이 떠올랐다. 잊으려했지만 잊을 수 없었던 눈물젖은 기억. 명수는 애써 담담하게 물었다. "그래서 어쩌자는거지?" "우린 이 썩어빠진 정부를 부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거야. 설령 쉽게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죽을 때까지 노력할거다." "...하지만 보아하니, 일개 쫄병 하나에, 그것도 반역자. 그리고 불가지고 장난치는 어린 소에족 하나, 단 둘뿐인듯 하군. 아니면 뒤에 든든한 빽이라도 있나?" 명수가 기분 나쁜 시선으로 호원과 동우를 훑어내렸다. 솔직히 가진 것도 없으면서 큰 소리만 쳐대는 두 사람이 같잖은건 사실이었다. "아니, 둘뿐인거 맞아." "그럼 무슨 수로 세상을 바꾸게? 정부 청사에 자살 테러라도 감행하려고?" 잔뜩 비꼬는 명수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호원이 씩 웃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거거든. 사람 모으러. 어때, 우릴 도와줄 마음이 생겼나? 물론 그 쪽도 일개 연구원 하나지만 말이야." 명수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지금 저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건지... 전부 맞는 소리이긴 했으나, 그래도... 명수는 표정을 굳혔다. "...틀린 말은 아니지." 얌전히 서있던 동우의 표정이 밝아지는듯 했지만, "그런데 너희를 어떻게 믿지?" 뒤이은 명수의 말에 밝아졌던 표정은 다시 주눅들었다. 하긴, 이런 상황에 이방인, 그것도 단 둘의 말을 믿어줄리가 없었다. 게다가 호원과 동우의 제안은 사실 절대 불가능해보였다. "그리고 그 세상을 바꾼다 어쩐다 하는거. 가능할거라 믿나?" "......" "지금껏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온 사람이 없는줄 아나? 그들이 부던히 노력해도 이룰 수 없었던 일을 당신네들이 가능케할거라 믿냐는 말이다." "우린 할 수 있다고 믿어." "믿는걸로 끝나는 문제가 아냐. 그 위험 부담은 어쩔거지? 자금은? 사람은 언제 다 모을거고? 가능할리가 없잖아." 아까보다 훨씬 싸해진 분위기에 더불어 명수의 가시돋친 일침까지. 결국 여긴 안되는건가- 마음을 접으려던 호원을 멈춰세운건 가만히 서있기만 하던 동우였다. "...두 여자가 있어요. 얼굴도, 키도, 몸매도 비슷비슷해요." "또 뭐야?" 우물 안 개구리인 센터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바깥 세상의 피땀섞인 눈물의 소금기가 가득 실린 나지막한 목소리에 명수가 또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동우는 묵묵히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중 하나는 아무 감흥없는 무뚝뚝한 표정인데다가 허름한 옷을 입고 치장 하나 안한채 서있어요. 성격도 더러워보이구요. 하지만, 나머지 한명은 깨끗하고 단정한 옷을 차려입고 예쁘게 화장까지 한 얼굴로 생글생글 웃으며 서있어요. 성격도 좋고 똑똑해보이죠. 만약 둘 중 하나를 골라야한다면 누굴 고르겠어요?" "무슨 뜬금 없는 소리를..." "세상 남자들 백만명에게 물어봐요. 하나같이 차려입은 여자를 고르겠죠, 안 그래요?" "...그래서. 어쩌라는건데?" "여기서 남자들이 고른 차려입은 여자의 이름은 거짓이에요. 허름한 여자의 이름은 진실이구요. 진실이라는거, 참 못나보이죠? 그렇지만 사실 진실의 단점은 딱 하나밖에 없어요.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거에요.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때문에 어떤 치장도 하려들지 않아요. 전혀 웃지도 않는 그 얼굴 덕분에 불편하고 이상해보이죠. 거짓들이 자신을 예쁘게 꾸미고 아름답게 유혹하는 동안 진실은 미동도 않은채 자신에게 누군가 다가오기만을 기다려요. 세상에서 진실이 외면받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거에요." "......" "그런데요, 자신을 내보이지 않는 진실보다 더욱 교만한게 누군지 알아요? 바로 그런 진실을 알아보지 못한채 거짓의 유혹만 졸졸 뒤따라다니는 당신같은 사람들이에요." "...뭐?" "제아무리 진실을 쫓는게 힘들어보이고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진실을 찾아가는게 옳은거에요. 그래요,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 어쩐다 하는거, 다 거짓으로 보이겠죠. 하지만 그게 진실이에요! 썩어빠진 정부를 쳐야하는게 진실이라고요!" "......" "불편하고 비논리적으로 보여요? 힘들고 고통스러워보여요? 그러면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싸우는거 집어치워요! 그 대신, 그런 당신을 바꾸기 위해 싸우세요! 진정한 진실의 아름다움을 알아보지 못하는 비열하고 겁쟁이인 당신부터 바꾸란 말이에요!" 가슴 속에 깊이 담아왔던 말인듯 막히지도 않고 줄줄 내뱉는 동우의 말에 명수가 패닉에 빠졌다. "너...너...지금...뭐라고..." 길다면 긴 일장연설이었지만 명수의 머릿속엔 딱 세글자만이 맴돌았다. 겁쟁이. 겁쟁이. 박사를 죽인 겁쟁이. 이성열을 지키지 못한 겁쟁이. "...씨발, 닥쳐. 닥치라고! 내가 겁쟁이든 말든 니까짓게 무슨 상관이야! 개소리 작작 지껄이고 꺼져버려!" 불타다만 총과 새까맣게 타버린 가운을 쥔 명수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미쳤다. 이 사람들은 미쳤다. 그리고 뒤로 돌아 이를 악물고 센터 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명수의 발걸음을 잡아세운건 갑작스러운 성규의 말이었다. "난 믿겨." "...엄마?" "낯선 사람들이지만, 방금 저 친구가 한 말 가슴 속에 뭔가 불을 지핀 것 같기도 하고," 성규가 천천히 말하면서 동우를 향해 예쁘게 웃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엔 저 둘, 되게 예쁜 사랑을 하고 있거든. 사랑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허황된 약속도 하지 않고." "......" "명수야, 내가 장담하는데." "......" "저 두사람 말은 믿어도 돼." 성규의 말이 끝나자마자 명수의 표정이 극도로 혼란스러워졌다. 그 반대로 호원과 동우의 표정이 안도감으로 물드는 사이 우현도 난 엄마 말이라면- 이라고 중얼거리며 동의의 의사를 표했다. 솔직히 명수처럼 제대로 저들이 믿기지는 않았고, 세상을 바꾼다는 말이 어이없기도 했으나 그 어느때보다 따스해보이는, 동시에 씁쓸해보이는 성규의 표정과 말투에 동화된건 사실이었다. 어쨌든 우현의 눈에도 호원과 동우는 충분히 예쁜 애인으로 보이긴 했다. 결국 인상을 잔뜩 찌푸린 명수가 씩씩대다가 센터 안으로 쿵쿵거리며 들어갔다. 그 모습을 눈으로 뒤쫓던 성규가 안도감과 어리둥절함이 반반씩 섞인 얼굴의 호원과 동우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싱긋 웃었다. "걱정마요, 저렇게 들어가도 누구한테 일러바칠만한 애는 아니니까." "......" "그럼 우린, 통성명이나 할까요?" |
지금까지 메시아 중 최장편이에요...ㅋㅋㅋㅋㅋㅋㅋ20KB 넘기자! 했는데 거의 30KB 됨...읽느라 고생하셨어요;;
드디어 현성엘야동 만나씅!!!!!!!! 만나씅!!!!!!!!!!!!! 그리고 싸워씅!!!!!!!!!!!!!! 하앍
* 동우가 말한 대사 중에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거에요.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때문에 어떤 치장도 하려들지 않아요. /세상에서 진실이 외면받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거에요.
는 공지영 작가님 소설 '도가니'에서 발췌했습니다ㅎㅎ 나머지 대사는 제가 썼어요유...ㅋㅋㅋㅋ*
개그 때문에 독자분들 떨어져나간거 아닌지 걱정됨...으커하커허아허어아ㅓ헌어헝ㅇ엏엏.... 2월안에 완결내고 싶은데 컴퓨터 켜기가 여의치 않네요;; 킁킁... 힘을 주세요 뽜이아 인수분해 너 이 개갱끼! - 21편엔 여러 내용이 있어서 브금 고르는데 어려웠어요;; 아련한 호원이 과거 얘기나 명수한테 얘기한 진실 어쩌구도 있는데 전쟁 내용이 중간이 뙇 끼어있어서ㅋㅋ 격한 노래로 해야할까 아련한 노래로 해야할까......고민했는데 21편에서 독자분들이 초점을 두실 부분은 맨 뒷부분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얘기지만 이 노래 겁나 좋아해요 브금 크기를 줄이려고 노력하는데 크롬에서는 크기가 안 줄여지나...봐요?? 전 크롬 유저ㅋㅋㅋㅋ꼭 읽지 않아도 되는 사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