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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연애 중인 엑소 디오와 탑시드 홈마 너징 썰 06
BGM : EXO-K - 너의 세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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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춰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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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사 오타가 있거나, 수정을 원하시는 분, 제가 실수로 빼먹고 넣지 못한 분들은 밑에 댓글 남겨주세요! 암호닉 신청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내용을 여기에 입력하세요. |
#14-2
드디어 기말고사가 끝났다. 가채점을 해보았을 때에도 꽤 만족스러운 점수에, 기분이 더더욱 날아올랐다.
학교에 오자마자 자기 시작한 박찬열이 일어나서 시험 끝이라며, 시험이라고 공부한 것도 아닐텐데 오히려 시험공부를 한 아이들보다 더 크게 소리질렀다.
수정이도 나처럼, 시험을 꽤 잘 봤는지 얼굴이 확 피어있었다.
… 그럼 경수는?
경수는 얼굴에서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늘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 애.
슬쩍 다가가 시험 잘봤냐 묻자, 웃으며 그럭저럭 괜찮게 봤다고 한다. 잘봤단 말이겠지.
사실 수정이와 찬열이가 시험보다 더 공들여 만든 계획으로, 우리는 지금 놀이공원을 가기로 했다.
다른 학교보다 유난히 빨리 본 탓에, 아마 사람들이 별로 없지 않을까.
열한시 반에 지하철 역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수정이는 찬열이와 경수가 눈에서 보이지 않자, 바로 내 손을 잡고 뛰었다.
나는 순간 왜 뛰냐고 물으려다가, 찬열이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말을 꾹 삼키고 미소를 뱉었다.
집에 도착하자, 수정이는 어제 내 방에 와서 30분동안 고른 옷을 쫙 빼입었다.
예쁜 검은색 겨울 스커트에, 하얀 블라우스. 거기다가 두꺼운 코트를 걸치니까 여성스러운 수정이의 외모가 살았다.
고데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웨이브도 넣고, 촌스럽지 않게 화장도 했다. 안그래도 예쁜 수정이인데, 꾸미니까 너무 인형같고 예뻤다.
나는 그냥 늘 입던 맨투맨에 바지를 입으려고 옷장을 열었다. 그러자 수정이가 옆에서 기겁을 하며,
「야. 너 설마 오늘 같은 날까지 그 티셔츠랑 바지 입을 거 아니지?」
「…맞는데?」
「야. 넌 어떻게… 됐다. 내가 주는 대로 입어.」
수정이는 내 옷장에서 한 번도 펼쳐본 적 없는 하얀 니트와, 자기의 방에서 치마 레깅스를 가져다 주었다.
내가 추울 것 같은데… 하며 중얼거리자, 수정인 원래 이런 날엔 이렇게 입는 거라며, 얼른 입어보라고 했다.
익숙하지 않은 옷은 영 거슬렸다. 딱 달라붙어 라인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레깅스에, 하얗고 보송보송한 니트.
수정이는 내게 눈을 감아보라고 하고 옅게 화장까지 해 주었다. 그 뿐 아니라, 단발인 내 머리에도 웨이브를 넣어 주었다.
아침에 했던 빨간 목도리를 매고, 어정쩡하게 백팩을 멘 뒤에,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왔다.
수정이는 부츠까지 챙겨 신고, 내게 가자며 신이 나서 또각 또각 걸어갔다.
-
「…정수정?」
「왜. 너무 예뻐서 눈부시냐?」
「엉. 짱 이쁨. 근데 좀 추워보임.」
「응. 춥다.」
「일루와. 이 오빠 품에 안겨.」
「누가 오빤데?!」
「나. 자- 안겨!」
「됐어. 누가 오빠야. 징그러우니까 절로 가.」
예상대로 수정이를 보자마자 예쁘다며 난리를 치는 찬열이.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왜 저렇게 대놓고 나 너 좋아해! 하고 티를 내는데 모르지? 둘 다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는 것 같다.
내가 살짝 눈을 접어 웃을 때, 경수가 나한테 와서 모자를 씌워주었다.
회색 털송이가 달린 예쁜 털모자.
위로 고개를 조금 들자, 경수가 웃으면서, 추워보인다. 라며 내게 팔짱을 꼈다.
투닥대는 수정이와 찬열이, 그리고 경수의 모자를 쓰고 팔짱을 낀 나와 경수.
설레임 한 컵이 듬뿍 쏟아진 우리 사이가 너무 좋았다. 마냥 좋았다. 언제나 오늘 같았으면 좋겠다.
놀이공원에 도착해서 표를 구매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원체 못타는 놀이기구도 없고, 겁도 별로 없는 나인지라 뭘 타든 별 상관은 없었다.
수정이도 나와 몇 번 놀이공원을 가 보았지만, 나랑 비슷비슷하게 못타는 기구도 없고 귀신의 집도 별로 무서워하지 않았다.
문제는…
「야. 뭐 먼저 탈래? 바이킹?」
「야. 여자애가 겁도 없냐. 무슨 바이킹이야. 일단 워밍업부터 하자. 저기 회전목마….」
「너 못타지? 아 내가 다 쪽팔려. 열 일곱 먹고 회전목마래…」
「내가 뭘 못 타! 뭐, 뭐 타면 되냐? 바이킹? 후렌치레볼루션? 뭐 타면 돼! 어? 니가 아직 내가 얼마나 남자다운지 모르는구만?!」
「지랄도 풍년이네. 야. 너 무섭다고 울면 내 손에서 아작나는 줄 알아라. 안무섭다고 했지?」
「아..니 근데. 예외는 있지. 난 남자답지만 놀이 기구는 좀….」
「됐어. 따라와. 내가 닐 하루 이틀 봐? 질질 짜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내가 왜 질질 짜?! 저딴 거 다 유치원생 수준이래니까? 뭐 타면 되는데!」
똑같은 대화의 반복. 투닥대는 게 꼭 고만고만하다. 아직도 끼고 있는 경수의 팔. 베이지 색 코트자락이 흰 니트에 덧대어져 있다.
빨개진 손가락을 보면 꽤 추워 보인다. 한참 동안 손가락을 쳐다보다가, 팔짱을 풀어 내 손으로 꼭 쥐었다.
내 손도 수족냉증이 있어 따뜻한 편은 못되었지만, 그 때문에 손을 꼭 쥐고 다니는 습관이 생겨 손바닥은 비교적 따뜻했다.
차가운 경수의 손가락이 내 손바닥에 닿자, 움찔 전율이 일었다. 경수는 깜짝 놀라서 날 내려다 보았다.
경수는 맞닿은 손끝을 보다가, 이내 내 손을 꼭 잡아서 자기 코트 주머니에다가 넣었다.
깍지낀 경수의 손과, 경수의 코트 주머니는 내 손바닥보다 훨씬 따뜻했다.
수정이와 찬열이는 드디어 그 끝없는 굴레 속의 대화가 끝이 났는지, 뒤를 돌았다.
경수의 코트 주머니에 경수의 손과 함께 들어가 있는 내 손을 본 수정이는 살짝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역시 놀이공원에 오면 머리띠가 아니겠냐며, 얼른 찬열이를 데리고 피해준 수정이가 고마웠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는 수정이.
천천히 수정이와 찬열이의 뒤를 따르자, 그 아이들은 또 토끼 머리띠로 할 것인지 고양이 머리띠로 할 것인지로 싸우고 있었다.
하루에 열 두번씩 싸우는 터라 이젠 경수도 나도 완전히 익숙해졌다.
나는 원래 머리띠 같은 걸 하는 성격이 못 되었다. 그래서 수정이와 찬열이가 머리띠를 고를 때도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그런 나를 알았는지, 경수가 나를 머리띠 쪽으로 데리고 와서 잠시 머리띠를 고르더니 내게 하나를 씌워주었다.
평범한 은색 리본 머리띠. 웨이브진 단발에 끼니 꽤 귀여워 보였다. 하지만 내겐 안어울리는 것 같아 내려놓으려니, 경수가 자기도 나와 같은 머리띠를 썼다.
「놀이공원 왔으면 이런게 묘미지. 안그래?」
「한 번도 이런 걸 써 본 적이 없어서….」
「그럼 오늘 써보면 되겠네. 이거 맘에 들어? 딴 거 할까?」
경수가 내가 머리띠를 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경수도 머리띠를 썼는데 나만 안 쓴다고 하기도 뭐해서 그냥 머리띠를 하기로 했다.
경수가 잠깐 뒤를 돌아있을 동안 경수의 머리띠까지 계산을 끝마쳤다. 혹시나 자기가 산다고 할까봐.
수정이와 찬열이는 딱 그 애들 다운 가장 화려한 빨간색과 금색의 토끼 머리띠를 골랐다. 결국 수정이가 이겼구나. 하긴 한 번도 찬열이가 수정이를 이긴 건 본 적이 없다.
매번 찬열이가 져 주는 게 보이는데, 이것도 정수정만 모른다. 딴 사람 일엔 귀신인 애가 본인 일만 새까맣게 모른다.
경수가 어 여기 계산.. 하며 말을 뗄 때, 나는 내가 계산했다며 나가자고 했다. 경수가 확실히 당황한 표정을 짓자, 나는 그럼 나중에 마실 거나 사주라며 웃었다.
경수도 아까보단 편한 표정을 지으며 그럼 그러겠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넷은 놀이기구를 타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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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어어… 아흐… 아… 정수정….」
「쪽팔려 새끼야. 온갖 쎈 척은 다하더니. 빨리 닥치고 일어나.」
「아니, 근데 너무 무서웠단 말이야….」
「한 마디만 더 하면 버리고 간다.」
「…….」
역시 찬열이는 바이킹을 한 번 타자마자ㅡ수정이의 등쌀에 강제로 맨 끝에 앉았다ㅡ 거의 탈진 상태가 되어 몸이 걸레짝이 되어 내려왔다.
정작 겁이 많을 것 같은 나와 경수는 무덤덤. 맨 끝에 앉았지만 소리 한 번 지르지 않고, 그저 안전바만 꼭 쥐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꼭 잡은 손이 설렜다.
멀리서 보아도 수정이는 반대편에서 창피하게 주접을 부리는 찬열이를 정신차리게 하느라 놀이기구에 집중을 못하고 있었고.
그 모든 상황에, 내려오자마자 가뿐하게 다음엔 어디갈까 찾던 경수의 움직임은 찬열이의 신음으로 정지되었다.
물도 사먹이고, 대충 수정이의 잔소리 폭격을 맞다보니 괜찮아진듯한 찬열이를 이끌고 수정이는 밖으로 나갔다.
놀이공원은 이제 시작이라는 수정이. 그리고…
「야, 나 토할 것 같아. 잠만.」
…쓰러져가는 찬열이.
죽어가는 찬열이를 위해, 보다못한 내가 수정이를 잡고 일단 밥 좀 먹자고 말렸다.
수정이는 찬열이의 의견이라고는 한 글자도 듣지 않다가, 내가 말하니 바로 싹 몸을 돌렸다.
그걸 본 찬열이가 또 뭐라뭐라 욕을 했지만, 수정이는 이미 밥?! 바압???!! 이러며 식당을 찾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속이 그다지 좋아보이진 않는 찬열이를 위해 간단한 음식으로 점심을 때웠다.
이제 찬열이는 면역이 생긴 건지 아니면 아예 몸이 돌아버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수정이가 끌고다니는 스케줄을 무난히 소화했다.
이제는 아틀란티스를 타고 내려와서 웃을 수 있는 정도? 자이로드롭을 두 번 연속으로 타도 무사한 찬열이에 수정이는 더욱 더 신났다.
낮이 되니 따뜻해진 날씨에, 춥지도 않고 놀기 딱 좋다며 이 곳 저 곳 사람도 없으렷다, 맘껏 신나게 놀아제낀 수정이.
나와 경수는 수정이의 페이스에 조금 힘이 부치긴 했지만 따라갈 순 있었다.
매 번 손을 꼭 잡고. 무서울 땐 손을 세게 쥐면서. 내가 손을 쥐는 강도가 세지면 경수는 그 와중에서도 반대쪽 손으로 내 손등을 쓰다듬어주었다.
몇 시간 동안 계속 손을 잡고 있었지만 지겹지 않고 설렜다. 이렇게 사소한 거에도 이렇게 설레는 구나. 나도 여자구나 싶어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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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이가 드디어 지쳐가고, 찬열이는 반쯤 산 송장이 되어 기어다닐 때 쯤. 여섯 시가 되었다.
아까 점심을 먹을 때 저녁은 똑바로 먹자던 수정이의 의견에 따라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내 옆에 수정이, 내 앞엔 경수가 앉아서 빵을 뜯어 먹고 있을 때, 수정이가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웨이터 분께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한 수정이가 일단 얘기는 이따 하고 카메라를 보라며 나를 재촉했다.
얼굴에 가까이 브이를 대고 하나 둘 세엣, 하는 신호를 기다렸고, 직원분이 카메라를 돌려주셨다.
수정이는 남는건 사진 뿐이라며 이왕 온 김에 많이 좀 찍어가자고 했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많이 찍지는 않았던 나인지라 당황스러웠는데 사진은 꽤 자연스럽게 나왔던 것 같다.
경수와 난 똑같이 얼굴에 댄 브이, 찬열이와 수정이도 똑같이 꽃받침을 해서, 착각하신 직원분이 카메라를 돌려주시며 커플끼리 잘어울린다며 칭찬을 해주셨다.
사실 여기에 커플은 아무도 없는데. 수정이와 찬열이가 '커플'이란 단어를 듣고 얼어있는 동안 나와 경수는 감사하다며 인사를 했다.
나온 음식을 먹는 동안은 굉장히 조용했다. 나야 이런 분위기를 즐겼지만, 정수정이랑 박찬열은 이렇게 조용한 애들이 아닌데.
아까 커플이냐며 지나가며 한 소리에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을 하는 모습이 딱 그 애들 다웠다.
대체 하루에도 몇십 번씩 좋아한다고 티를 내는데 왜 서로만 모를까. 우리 학교 모든 사람이 다 알 정도로 좋아하는 티를 내고 다니면서.
나와 경수에게는 귀가 편하니 먹기도 편했고 그 애들한테는 지옥같고 고무를 씹는 것 같았던 식사가 끝이 났다.
계산을 할 때가 되서야 그 애들은 다시 살아났다.
수정이는 요즘 여자가 더치페이를 안하면 무개념이라며, 찬열이는 내가 내겠다니까? 라는 억지 논리를 펼치며 다시 불을 붙였다.
결국 경수와 내가 더치페이를 하기로 하고 각자의 몫을 내밀자 찬열이가 그제서야 부리던 억지를 그만뒀다.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안에서 워낙 오래있던 탓에 나오자 밖이 꽤 어두워져있었다.
놀이공원은 밤에 가장 예쁘다. 예쁘고 화려한 조명들로 빛나는 놀이공원. 성 모양의 멋진 시설들.
그리고 물 위를 가로지르는 커다란 다리. 그 다리 위에서 지나가는 분께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찍은 사진. 경수와 옆에 손을 꼭 잡고 서서 찬열이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린.
후에 그 사진을 인화해서 한 명씩 나눠 가졌다. 어색하긴 했지만 다들 예쁘게 나온 사진.
오늘 찍은 두 장의 사진을 서로 나눠 가지며, 소중하게 지갑 속에 끼우고 다니고 잃어버리지 않기로 초등학생들이나 할 법한 유치한 약속을 했다.
이제 놀이기구를 타는 것 말고 산책을 하기로 했다. 한참을 바깥 공기를 쐬며 걸어다니는게 좋았다. 걷는 걸 원래 좋아했기도 하고.
찬열이와 수정이가 앞에서 무언가 시끄럽게 대화하며 막 뛰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며 걷는 동안, 우리는 각자 생각을 하며 조용히 걸었다.
이런 분위기를 즐기며 한가롭게 손을 계속 꼭 잡고 걸으면서, 많은 생각을 정리했다.
오늘 확실히 정리해야 겠다 싶은 여러 가지 생각들. 그래서 결론은,
' 일단 첫 번째. 나는 도경수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걸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좋아한다.
두 번째. 도경수도 나를 좋아한다.
사실 처음 본 순간부터 우리는 서로에게 반한 걸 지도 모른다.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세 번째. 도경수는 나도 자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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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게 이젠 완전히 어두워져 밤하늘의 달과 몇 없는 별들만 반짝거렸다. 자정이 되어서야 겨우 지하철에서 내려서 걸을 수 있었다.
찬열이와 경수는 집이 가까웠다. 같은 방향이기도 하고. 그래서 경수와 찬열이는 내가 수정이와 함꼐 가는 것 처럼 늘 붙어 다녔다.
네 명이 나란히 걸으며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시끄러운 번화가를 지나고, 조용한 카페길을 지났다.
머리띠를 벗어 손에 들고 멍하니 걸었다. 아까의 생각이 머릿속에 계속해서 맴돌았다.
생각에 몰두해 주변엔 신경쓰지 못하고 걷다보니 벌써 아침에 만났던 공원이었다. 그 곳에서 월요일에 학교에서 보자며 서로의 집 방향으로 향했다.
그렇게 놀았는데도 지쳐보이지 않는 수정이. 나는 수정이에게 잠깐 놀이터에 들렸다 가자고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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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 그네에 앉았다. 나는 초록색, 수정이는 주황색. 수정이는 놀이터에 들어가자마자 어디선가 빗자루를 찾아왔다.
웬 빗자루냐 묻자, 만약에 치한이 나타나면 이걸로 때릴거라며 휘둘러보이는 수정이다.
수정이는 늘 당당했고 밝았다. 그런 점이 부러웠다.
나는 수정이에게 직설적으로 물었다. 수정이에게 맞는 방법은 이런 방법이니까.
너, 박찬열, 좋아하지. 이 세 단어를 듣자 수정이가 굳었다. 아니, 그렇게 티를 내면서 왜 그렇게 놀라.
수정이는 빨리 제정신을 차리고 그렇게 티났냐며 조심조심 물었다. 나는 그 모습이 귀여워서 오늘 본 모든 것을 말해줬다.
너네 둘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서로 좋아하는 거 알겠다고. 왜 서로를 좋아하는 걸 서로만 모르냐고.
그러자 수정이는 박찬열도 나 좋아해? 진짜? 하며 되물었다. 수정이는 평소에 내 눈치가 빠르단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내 말을 바로 믿었다.
수정이는 내 말을 가만히 듣더니, 박수를 짝 치며 좋아했다. 이젠 짝사랑이 아니라 맞사랑이라며. 차일 일은 없겠네? 하며.
나는 수정이의 이렇게 밝고 사람을 잘 받아들이는 모습이 부러웠다.
수정이는 짝사랑의 상대가 자길 좋아한다는 걸 듣고 저렇게 좋아할 수 있는데, 왜 난 그렇게 안되는거지.
사실 첫 눈에 반했다고 말하고 싶고, 널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실제로 그렇게 말하려니 너무 힘들었다.
경수도 날 좋아한다는 걸 아는데도, 어렵고 힘들었다.
수정이는 내일이라도 당장 고백해야겠다며 좋아했다.
편지에다간 뭐라고 쓸까? 하며 묻는 수정이의 높은 목소리에 진심으로 대답해주면서도 속은 꼬여있었다.
수정이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좋아하면서도 티를 내는 법을 몰라서 기회를 다 놓쳐버리는 나 때문에..
#15.
수정이와 찬열이가 드디어 사귀게 되었다.
수정이가 당차게 야 박찬열. 나 너 좋아해. 나랑 사귀자. 해서 찬열이의 눈이 땡그래지고, 내가 고백할라고 했는데! 하는 찬열이의 외침에….
어쨌든 둘이서 잘 사귀고 있다. 지금까지 어떻게 참았나 싶을 정도로 오글거림을 만 천하에 발산하며.
수정이가 수학 성적이 조금 안나왔다고 슬퍼하자, 찬열이는 바로 달려가서 공주님 대접을 하며 챙겼다.
나와 경수는 솔직히 보면서 조금 불편하기도 했지만, 너무 행복하고 좋아보이는 두 사람 사이를 방해할 수가 없어서 가만히 냅뒀다.
수정이와 찬열이도 이어졌고, 이제 문제는 나만 남았다. 나만 이제 마음을 열면….
하지만 말처럼 그렇게 마음을 여는 게 쉬운 게 아니었다.
누군가를 이렇게 좋아해 본 것도 처음이었고, 누군가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려 하는데 내 본능이 그 문고리를 꼭 잠구는 경우도 처음이었다.
요즘따라 고민이 많아지다 보니 나도 모르게 미국에서 네 살때부터 배우다가 한국에 오게 되어서 그만 두었던 피아노를 자꾸 찾게 되었다.
사실 한국에서도 피아노를 계속 치긴 했지만, 전문적으로 배우진 못한 탓에 많이 실력이 줄어들었다.
그래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인 피아노를 치면 그나마 마음이 조금 잔잔해졌다. 요즘따라 요동치는 마음 속을 잔잔하게 만들어주는 건 피아노 뿐이었다.
시험도 끝나고 웬만한 이동수업들을 다 교실에서 하는 탓에 겨울 방학을 며칠 앞두지 않은 지금의 시점에서 음악실은 거의 아무도 찾지 않았다.
그 덕분에 나는 열려있는 음악실 문으로 매일 들어가 그랜드 피아노를 열고 피아노를 칠 수 있었다.
오늘도 평소처럼 생각을 하면서 피아노의 뚜껑을 열었다. 잡생각에 빠졌을 땐 피아노에 집중을 하면 된다.
처음엔 간단하게 다 장조의 음계를 치며 손가락을 풀고, 가장 좋아하는 곡인 이루마의 'When the Love Falls' 라는 곡을 치며 음을 정리했다.
워낙 어려서부터 음악을 가까이 하다보니 자연스레 생긴 절대음감에, 한 번 들은 노래는 바로 피아노로 옮겨 칠 수 있었다.
노래를 잘 하고 즐겨 부르는 경수. 경수 특유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땐 나도 모르게 최대한 집중하게 된다.
노래할 때가 제일 예쁜 경수.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를 때 멋있다.
저번에 경수가 불렀던 노래.
「너의 세상으로 여린 바람을 타고
네 곁으로 어디에서 왔냐고
해맑게 묻는 네게 비밀이라 말했어
마냥 이대로 함께 걸으면
어디든 천국일테니」
시시 시도레 파. 파파 파파파 레도 …
나도 모르게 따라치고 있었다. 한 번 멜로디를 쳤다가 다시 코드까지 맞춰서 반주를 해가며.
정말 집중해서 들었는지, 한 번 들었는데도 정확하게.
그 때, 옆에서 경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기억속의 목소리와 똑같은. 하지만, 내 피아노 반주에 맞춰 부르는.
「널 사랑하게 돼버린 난 이제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어요 날개를 거둬가셨죠
영원한 삶을 잃었대도 행복한 이유
나의 영원 이젠 그대이니까 Eternally Love」
경수의 쫀득한 목소리가 한참을 노래했다.
나는 그 소절까지 치고 피아노 건반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손이 떨렸다. 아, 이제 내 마음이 문을 연 것 같았다.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는 경수의 노래였다.
경수는 눈을 감고 노래하다가, 갑자기 끊긴 반주에 천천히 눈을 떴다.
경수는 이미 마음의 문을 열고 내게 들어갈 공간을 비워주었다.
이제 내가 경수에게 들어갈 공간을 비워주면 된다.
나는 피아노 의자를 뒤로 뺐다.
그리고 일어나서 경수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키가 큰 경수는 아니지만, 키가 작은 편인 나는 경수의 얼굴을 올려다보아야 했다.
경수는 꽉 찬 초코브라운 색 눈으로 날 내려다보았다.
그 어느 누구도 좋아한다고도, 사귀자고도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나만의 착각이 아니어서 기뻤고, 내 마음이 문을 열어주어서, 그리고 경수가 열쇠를 찾아와 문을 열어주어서 기뻤다.
그 애의 초코브라운 색 눈과 나의 짙은 흑갈색 눈이 깊게 마주치고, 마음을 나눴다.
그저 쳐다보기만 해도 마음이 통하고 진심이 통하는.
그리고 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 전부를 걸게 되는.
오랜 기다림과 지침을 견뎌낼 수 있게 되는.
눈을 꼭 감자 눈물이 흘러나왔다. 생각보다 내 몸은 내 감정변화에 더 예민하게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눈을 다시 뜨자 눈물 때문에 닦여서인지 더 선명하게 보이는 초코브라운 색 눈동자. 그리고….
.
.
.
…현재.
' 131008.
경수야. 열일곱부터 스물 둘까지 5년 동안 깊숙이 유지해온 마음이 헛되지 않게.
경수야. 나의, 우리의 빛이 되어줘. '
* * * * * * *
베브입니다. 과거 편은 여기서 끝입니다.
분위기는 다음 편부터 훨씬 가벼워질 예정입니다.
오타 지적 / 문법 오류 지적 감사히 받습니다.
암호닉 신청 계속해서 받습니다.
[베브] 이런 식으로 암호닉을 []괄호 안에 넣어서 신청해주세요.
부족하고 오그라드는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추가 13-10-08 22:54 |
감춰둘 내용을 여기에 입력
초록글 1페이지 감사합니다. 시간 기준은 10월 8일 오후 5시 30분 경이에요. 제 주제에 무슨.. 감사합니다! 그리고 전 글에 댓글 마저 못달아드려서 죄송해요. 답글의 여부나 길이가 큰 의미를 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일이 다 못달아드려서 죄송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