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전 5시47분. 식은땀이 이마에 송글송글한 여주가 퍼뜩 눈을 떴고, 곧 익숙한 천장과 침대에 옅은 한숨을 내뱉었다. 악몽이었다.
6월, 낮이 길어지기 시작할 때 즈음이라 그런지 슬슬 해가 나오기 시작했고, 그 덕에 은은한 누런 끼가 집을 맴돌았다. 제 방에서 나온 여주가 닫힌 방들을 바라보곤 2층으로 걸음을 옮겼고, 윗 층과 달리 지수의 방을 제외하고 자유분방하게 열린 한솔의 방과 순영의 방을 보곤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
2층에 놓인 소파에 소리없이 앉은 여주가 고개를 젖히곤 그 숨소리들 사이에서 눈을 깜박였다. 듣기 좋은 숨소리가 귀를 가득 채우자 여주가 살며시 눈을 감고 숨을 들이켰다.
“………..”
식은땀이 사라졌다.
똑똑-
여주) 계십니까-
원우) …왜?
여주) 그냥 심심해서. 뭐해?
원우) 우리 게임 중이었어.
아침식사 이후, 출근 할 아이들이 출근한 뒤 여주는 샤워를 하곤 금새 원우와 창균의 방문을 두드렸다. 침대에 걸터앉아 게임을 하는 창균 옆에 여주가 앉고, 그 둘 앞에 책상의자를 끌고와 앉은 원우가 자연스레 게임기로 시선을 돌렸다.
창균) 와. 진짜 못깨겠는데?
원우) 아까보단 많이 갔네.
창균) 응… 아 죽음. 여주 해볼래?
여주) 아니! 난 구경하는게 더 재밌어.
원우) 줘봐.
한창 원우와 창균이 번갈아가며 게임기를 쥘 때, 여주가 뿅뿅거리는 효과음 사이에서 입을 열었다.
여주) 밖에 나갈래?
원우) 어디?
창균) 어디 가고싶어?
여주) 응. 나가고싶네.
창균) …어디가고싶은데?
원우) ………..
여주) 뭘 또 게임을 바로 꺼버려 ㅋㅋㅋㅋㅋㅋㅋ
나가고싶다는 여주의 말에 게임기를 쥐고있던 창균이 게임을 그냥 꺼버리고, 원우는 이에 창균을 쳐다봤지만 여주에게 고정되어있는 창균의 시선에 곧 고개를 저었다. 창균이 건넨 게임기를 받은 원우는 책상에 게임기를 올려놓곤 여주를 바라보며 물었다.
원우) 어디 가고싶은데?
여주) …영화보러갈래?
원우) 요즘 재밌는ㄱ-,
창균) 그래.
가자 영화관.
‘영화 보러 갔다 오겠음 -원우 창균 여주’
지수) …………
지훈) 뭐 봐?
지수) 메모. 애들 나갔대서.
지훈) ….저 셋 조합 뭔가 신선한데 잘어울려.
지수) 그치. 외모도 죄다 여우상에… 셋 다 조용조용하고..
지수가 말을 하며 게시판에 붙여있는 것들을 휘릭 휘릭 들쳐보더니 한 곳에 손을 멈췄다. 대학교 시절 자신들이 붙여놓은 시간표였다.
지수) 종이 색 바래진 것 봐.
지훈) 칠년은 됐으니까…
지수) ㅋㅋㅋㅋ아 초반에 붙여놓은 것 좀 봐. 시끄럽다고 쪽지 붙인거 개웃기네
지훈) ㅋㅋㅋㅋㅋㅋㅋㅋ 확실히 저 때가 밝아. 어렸어서.
지수) 그치 아무래도.
지훈) …………
지수) …………
지훈) 오늘 새벽에 깼더라, 여주.
지수) …그랬어?
지훈) 응. 소리 들려서 윤정한이 깼거든. 그래서 나도 깼어.
지수) …………
자긴 잔거겠지?
지훈) …글쎄.
지수) 못잔거면 너무 피곤할텐데.
지훈) …야 점심 뭐먹을까.
지수) 오랜만에 햄버거 어때?
지훈) 괜찮다. 어디 시킬까.
지수) 난 아무데나 상관없어.
게시판에서 서서히 멀어지던 둘이 소파에 앉아 점심메뉴를 골랐고, 곧 지훈은 단톡방에 메뉴를 올렸다. 그러자 집에있던 명호와 준휘, 그리고 민규가 답장을 보내고 지훈은 그대로 주문을 완료했다. 휴대폰을 제 옆에 휙 던진 지훈은 지수가 틀어놓은 티비로 시선을 돌렸다.
생각보다 일찍 들어온 셋에 지수가 의아해하며 묻자, 집에만 있는 걸 즐겨하는 터라 밖에 오래는 못있겠다고 웃으며 답했다. 셋이 흩어지고, 여주는 편한 옷으로 갈아입더니 부엌에 들려 음료수 한컵을 따라 지수의 테라스로 향했다.
“…어, 뭐해?”
“…그냥 날이 좋아서. 일찍 왔네?”
“체력이 안되더라. 할 것도 없고.”
지훈이 벤치에 앉아 휴대폰을 하고있었고, 여주가 오자 휴대폰을 옆으로 내려놓으며 말했다. 웃으며 답한 여주가 그 옆에 앉더니 음료를 들어보이며 물었다.
“한 잔 가져다 줄까?”
“아니. 괜찮아. 한입만 마실래.”
“그래.”
지훈이 한입 마시곤 여주에게 다시 건네자 여주도 한입 마시더니 옆에 내려뒀다. 오후 여섯시, 해가 길어진 탓에 여전히 밝았고, 아직은 서늘한 바람이 불 시기였다.
“너 온지도 벌써 반개월이 지났네.”
“…그러게. 시간이 왜이렇게 빠른지.”
“시간이 빠른 건지, 너랑 있어서 빠른 건지.”
“………..”
“후자 같아, 우린.”
“…그래?”
“응.”
“…너 오늘 일찍 일어났었어?”
“…나? 어떻게 알았어?”
“윤정한 잠귀 밝잖아.”
“..아.”
“안잔거야?”
“아니. 잤어.”
“…………”
“….근데,”
괜히 잤나 싶을 정도로 싫은 꿈을 꿔서 그래.
여주가 실소를 터뜨리듯 웃으며 컵을 들었고, 지훈은 그 웃음에 잠시 여주를 바라보다 물었다. 무슨 꿈,
“………..”
“………..”
“내가 증오하는 사람의 피가, 내 몸에 흐른다고.”
“………..”
“너도 나랑 똑같다고.”
“………..”
“내 두 눈을 보면서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내 몸이 더러운 것 같아서.
“…그래서 아까..”
“샤워를 두시간 했나. 물을 계속 맞아도, 내 몸을 자꾸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그 더러움이.. 외출하면 좀 잊혀질까 싶어서 나갔었어.”
“…………”
“근데도 너무 더러운 것 같아서, 근데 진짜 무서운 건,”
부정을 하다가.. 그러다가 인정해버리는거야. 내가 더럽다는 거, 내 몸에 그 사람들의 피가 흐른다는 거,
“….뭘 해도 벗어날 수 없다는 거.”
“………….”
차츰 하늘의 푸른 빛이 맴돌고, 잠시 자리잡은 적막은 지훈의 목소리로 사라졌다.
“그럼 나도 더럽지.”
“………..”
“바람피는 아버지의 피가 흐르니까.”
“………..”
“민현이도 더러워. 민현이를 학대하던 아버지의 피가 흘러서.”
“…………”
“창균이도 더럽고, 정한이도 더럽겠네.”
“…………”
“어때 여주야.”
“…………”
“네 사람들이 다 더럽다고 하니까, 어때.”
“…………”
“말이 안되지.”
“…………”
“그니까,”
“…………”
“너가 더럽다는 것도 존나 말이 안돼.”
“…………”
화가 나서 흔들리는 지훈의 목소리에, 처음듣는듯한 그 목소리에 여주가 멍때리던 시선을 지훈에게 옮기고, 지훈과 여주의 시선이 맞물렸다. 지훈이 가만히 그 시선을 맞추다 여주를 제 품에 안으며 입을 열었다.
“너한테 화내는 거 아니야.”
“………..”
그 사람들한테 화가나고 답답해서 그래. 널 망친 사람들이 한없이 원망스러워서.
…여주야. 그래도 고마워, 잊어주려고 해서. 잊으려고 외출도 하고, 방에 누워만 있지 않고, 아니라고 부정하려고 해줘서, 고마워.
조금만 더 하면 벗어날 수 있어. 우리가 있잖아.
그러니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자.
삐이익-!
승관) 김민규 승! 야야 나와!
석민) 아이씨 이길 수 있었는데!
민규) 아싸!! 가서 설거지나 하시지요-
지훈) 근데 쟤 호루라기는 또 어디서 난거야.
명호) 부승관은 도라에몽이야? 없는게 없어.
준휘) 근데 다 쓸데없는거야 ㅋㅋㅋㅋㅋㅋㅋ
사건의 발단은 저녁식사였다. 야근하는 아이들이 한명도 없었고, 모두가 저녁식사를 하게되자 들뜬 승관이는 설거지 및 뒷처리 내기 게임을 제안했다. 그러자 베개싸움을 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결국 거실은 이불과 베개들이 잔뜩 널부러져있었다.
민규의 승으로 결국 여주 없는 팀이 뒷처리를 하게됐고, 이긴 아이들은 수고하라며 다른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몇 아이들이 터덜터덜 부엌으로 향하자 남은 아이들은 널부러진 이불에 풀썩 누웠다.
승관) 이불 치우기도 귀찮은데 다 여기서 잘까?
민규) 그럴까? 좋은데?
지훈) …상관없어. 여주야 여주는 소파에서 잘래?
여주) …그럴까?
원우) 그러면 우리가 이불을 다 깔아놓자.
원우의 말에 민규와 창균이 이불을 각 방에서 가지고 오기 시작했고, 승관은 할리갈리를 들며 사인팟을 외쳤다.
여주) 나 할래.
승관) 오 김여주 선수 오랜만에 출전이신데요- 그동안 어디가셨던겁니까?
여주) 전 늘 집에 있었습니다.
승관) 왜 게임에 참여하지 않았었나요!
여주) 할리갈리는 항상 승철오빠가 껴있어서 참여를 못했습니다. 맞으면 손등에 멍이 들어섴ㅋㅋㅋㅋ
승관) 아- 그럼 승철이형이 설거지를 하는 동안! 참여를 하시는거군요!
여주) 맞습니다.
순영) 아 게임에 내가 빠질 수 없지~
지훈) 나도 할래.
원우) 야 이불펴게 비켜봐
순영) 야 이쪽으로 나와서 하자.
지훈) 누가 보일러 틀었어? 더운데?
여주) 아까 석민이가 서늘하다고 틀었어.
지훈) 너 추워?
여주) 난 안추운데?
민규) 나도 더운데 어차피 잘 때 또 추워져- 김여주 감기걸려.
지훈) 그렇긴 하겠다.
여주) 괜찮은데….
승철) 와 또 오랜만에 다같이 자는거야~!?
지수) 야 이거 자리내기도 해야되는거 아냐?
정한) 나 가운데 싫어! 끝에서 자고싶어
석민) 야 홍삼하자!
홍삼해서 자리 정하기 하자아-!
Behind
지훈) 뭐하냐?
순영) …니가 우리방엔 무슨일이여?
승관) 그러게유 무슨일이여!
저녁을 먹기 전 승관의 방을 찾은 지훈이 자연스레 방에 들어와 순영의 침대에 앉자 아이들은 의아한 듯 물었다.
승관) 방문은 왜 닫아 무섭게..
지훈) 뭐래. 그게 아니라 오늘 좀… 다같이 잤으면 좋겠는데?
순영) …우리 다같이 자자고? 갑자기?
지훈) 거실에서 다같이 자자.
승관) …뭐야. 형 왜이래? 아파?
지훈) 오랜만에 뭐, 나쁘지 않잖아?
순영) 왜?
지훈) 아니 그냥. 여주가 어제 별로 안좋은 꿈 꿨대서 내일 또 주말이니까, 같이 놀다가 자면 좋잖아.
승관) 아 난 또 뭐라고! 형이 자고싶다고 하는 줄 알았잖아!
지훈) 야. 내가 자고싶다그러면 또 뭐 어때서.
승관) 큼! 여튼 그건 나한테 맡겨!
내가 다~ 해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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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점반의 함박눈 같은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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