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그 불완전한 나이.
28
복잡한 머리를 애써 뒤로하고는 다시 라켓을 집어 들었다. 다른 라켓을 집어 권순영에게 건네려 하는데, 얘가 또 벤치에 가서 앉더니 핸드폰을 시작하는 게 아니던가. 쟤 진짜 저 정도면 핸드폰 중독 아니냐. 나는 그의 옆으로 다가가 핸드폰을 빼앗아들었다. 뭐 하는 짓이냐며 발끈하는 권순영을 무시하고 대체 뭘 그렇게 열심히 보나 싶어 핸드폰을 들여다보는데, 거기에는 웬 사람들이 춤을 추는 영상이 틀어져 있었다.
"와. 너 이런 데 관심 있어?"
"빨리 안 내놔?"
"그래도 좀 적당히 보라고, 인마. 이런 건 집 가서 보고…."
"씨발, 야."
한껏 정색을 하고 욕을 하는 권순영에 살짝 놀라 그를 쳐다보니, 권순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손에 들린 핸드폰을 낚아채고는 말했다.
"너나 좀 적당히 해. 아까 니 비위 다 맞춰줬으면 된 거 아냐?"
"비위?"
"그래. 네가 하자는 대로 충분히 다 했으니까 이제 그만 좀 꺼지라고."
"싫은데."
"뭐?"
"난 너랑 계속 같이 있고 싶은데?"
내 대답에 권순영은 어이가 없는 지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거 완전 미친놈 아니야?
"너 아까부터 되게 주제넘는 거 알지."
"그런가?"
"…하. 난 더 이상 너랑 엮일 생각 없으니까 제발 좀 가라."
"싫다니까."
"아오! 너 뭔데, 너 누군데 갑자기 나한테 이러는 건데!!!!"
"그러고 보니까 통성명도 안 했네. 내 이름은 김민규."
"씨발, 지금 니 이름 물어본 게 아니잖아!!!!"
"그러면, 넌 아까처럼 계속 그렇게 살 거야?"
…뭐? 권순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아까 그 여자애한테 왜 쩔쩔맸는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너를 안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확실히 장담할 수 있을 거 같아. 넌 잘못한 게 없어. 그런데 소문이 거지같이 나서 네가 지금 이렇게 지낼 수밖에 없는 거지."
"……."
"사실 너도 같이 놀고 싶잖아, 애들이랑 얘기하고 싶잖아. 그런데 그러기엔 무서워서 네가 먼저… 애들한테 벽을 치고 있는 거잖아."
"닥쳐."
"그러면 왜 맨날 라켓은 가지고 있었던 건데? 어차피 핸드폰만 할 거면서 라켓은 왜 들고 있었던 거냐고."
항상 궁금했었다. 맨날 학교도 늦게 오고, 핸드폰만 주구장창하는 애가 라켓은 왜 매일 가지고 있었던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를 할 수가 없었는데, 나는 오늘에서야 알 것 같았다. 누군가 다가오는 게 무서워 벽을 치고 있던 권순영은 사실…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라고, 모순적이게도 누군가 다가오기를 바라고 있었던 거라고. 그래서 말도 못하고 한심하게 계속, 혼자 있었던 거라고. 단지 내 추측인 것 같다고?
아니. 권순영의 얼굴은 내 말이 추측이 아닌, 사실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정곡에 찔린 듯, 갈 곳을 잃어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는 시선이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너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뭐야."
"……."
"내가 물었지. 너 나 알아? 난 너 몰라."
"……."
"솔직히 처음 보는 애가 나를 다 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도 뭣 같고, 지금 나한테 하는 행동도 다 뭣 같아."
"……."
"대체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뭔데."
…너한테 이러는 이유가 뭐냐고?
'너 쟤 소문 몰라? 하긴. 애가 워낙 반듯한 이미지라 대부분은 잘 모르더라.'
'그냥 친하게 지내지 마. 뭐 하러 괜히 엮여서 피곤해지려고 해?'
'쟤한테 당한 애들이 한 둘이 아니야. 너도, 이석민도 조심해라.'
'나랑 얘기 좀 해.'
'…….'
'……내 말 좀 들어주면 안 돼?'
'…….'
'제발 내 말 좀 들어줘… 민규야.'
"……너를 보고 있으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
"……?"
"너를 볼 때마다 그 애가 떠올라서, 나는 너를 모른 척할 수가 없어."
"그게 누군데."
"…나중에 말해줄게. 기분이 나빴다면 미안해. 그런데, 나는 오늘처럼 너에게 계속 다가갈 거야."
"……."
"너랑 꼭 친해지고 싶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권순영의 눈을 나는 피하지 않았다. 내 말에는 한 치의 거짓말도 없었고, 모두가 진심이었으니까. 그런 나를 알아차린 걸까. 나를 쳐다보던 권순영의 시선이 이내 바닥으로 떨어졌다. 조금은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생각에 잠긴 듯 입을 꾸욱 다물고 있는 그를 아무 말없이 기다리고 있는데,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에야 권순영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꺼져. 나는 너랑 친해지고 싶은 생각 없어."
그 말을 끝으로 권순영은 걷기 시작했다. 최대한 나에게서 멀리, 더 멀리 떨어진 곳으로.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왜 그의 뒷모습에서 전원우, 네 모습이 겹쳐 보이는 걸까….
차라리 내가 권순영을 몰랐으면 더 나았을까. 그러면 이렇게까지 저 아이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됐을 텐데. 작년의 너를 지독히도 닮아있는 이 아이를 나는 포기할 수가 없었다, 놓칠 수가 없었다. 그때 네 손을 잡지 못 했던, 너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권순영에게 지금 이러는 걸지도 모르지만 이제 두 번 다시 그런 실수는 하기 싫다. 잡을 수 있는 손은… 절대 놓치고 싶지 않다.
나는 괜히 두 손을 꽈악 쥐어보았다.
*
수업이 끝나고, 김여주 반으로 가는 길에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일이 있어서 나왔는데 조금 걸릴 것 같으니 민희 점심을 좀 챙겨달라는 전화였다. 당연하죠, 엄마. 우리 민희 밥 굶기면 안 되지. 나는 알겠다며, 걱정하지 말라는 대답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으음… 기왕 이렇게 된 거 김여주도 데려가서 같이 밥 먹고, 바로 독서실로 가면 되겠다.
-여보세요?
"어. 민희야. 뭐하고 있었어?
-그냥 티비 보고 있었어.
"엄마 늦게 오실지도 모른대. 그래서 오늘 오빠가 너 점심 챙겨주고 가려고."
-으응. 그렇구나.
"좀 이따가 여주 언니랑 같이 집에 갈 거야."
-여주 언니?!!!!
아싸. 오빠 빨리 와! 그 말을 끝으로 전화는 뚝, 끊겨버렸다. 왜 이렇게 기분이 이상하지…? 분명 친오빠는 난데 뭔가 바뀐 듯한 그런 기분이랄까…. 조금 씁쓸했지만 뭐, 둘이 잘 지내면 좋은 거니까. 열심히 계단을 올라가 힘차게 앞문으로 들어가는데, 김여주는 가방도 안 메고 멍하니 뒷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응? 뭘 보고 있는 거지?
"뭐 하냐."
"어, 어?"
내가 온 것도 몰랐던 건지 내 목소리에 움찔 놀라던 김여주는 이내 아니야, 하며 그쪽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었다. 뭐야, 궁금하게. 다시 한번 김여주가 보고 있던 쪽을 바라보지만 그곳은 정말 여느 때와 다름없는, 시끌벅적한 복도일 뿐이었다. 별 거 없는데…. 나는 김여주가 메려던 가방을 뺏어들어 가자, 하고 교실을 나섰다. 그런 나를 보고 너도 픽 웃으며 곧 따라 나왔다.
"야, 몬난아."
"뭐."
"잠깐만 우리 집에 들렀다 가자."
"왜?"
"오늘 집에 민희가 혼자 있어서. 민희랑 점심 같이 먹어야 할 것 같아."
오오. 민희? '민희' 라는 이름에 김여주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부모님은 해외에 계시고, 하나밖에 없는 오빠는 바빠서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아서 거의 외동이나 다름없던 김여주였기에 김여주는 민희를 끔찍이도 예뻐했다.
"그러고 보니까 민희 못 본지 좀 됐네…. 요새 맨날 독서실 다니고 해서."
"그래서 아까 너랑 같이 집에 간다니까 좋아하더라."
너무 좋아해서 마음이 아플 지경이었지만.
"너네 집 가는 것도 되게 오랜만이다. 옛날에는 툭 하면 너네 집 가서 놀고 그랬는데. 맨날 티비 보고, 먹고."
그러게. 어렸을 때는 우리 집이나 너희 집, 아니면 요 앞 공원이나 놀이터 가서 막 놀고 그랬었는데…. 옛날에는 갈 데가 너무 많아 탈이었는데 이제 우리가 갈 데라고는 칙칙한 독서실밖에 없구나. 그만큼 많이 컸다는 거겠지, 그만큼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거고. 김여주랑 회상에 빠져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우리 집에 도착했다. 우리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 비밀번호를 띡띡 누르고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민희가 '언니!!!' 를 외치며 뛰쳐나와 김여주에게 풀썩 안겼다.
"우리 민희. 잘 있었어?"
"응! 언니 진짜 보고 싶었어!"
"야. 김민희. 넌 오빠가 보이지도 않냐?"
"오빠는 맨날 보잖아! 지겨워!"
헐… 지금 나 보고 지겹다고 한 거니…? 약간은 충격을 받아 '이래서 자식새끼 키워놔봐야 소용이 없다니까…' 하고 중얼거리는데 김여주는 뭐가 웃긴 건지 깔깔 웃으면서 아, 뭐래! 하고 내 등짝을 퍽 내리쳤다. 그래, 됐어. 김민희가 김여주 좋아하는 거 한두 번도 아니고 마음 넓은 내가 이해해야지. 깔깔 웃는 김여주를 따라 픽 웃으며 배고프니까 밥이나 먹자, 하고 집에 들어온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는 바로 부엌으로 향했다. 내가 또 요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지. 뭘 해줘야 좋아할까 싶어서 이리저리 훑어보는데,
"…헐."
집에는 정말 먹을 게 하나도 없었다. 라면을 제외하고는. 그러고 보니 엄마가 장 볼 때가 됐다고 얘기하는 걸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아, 오랜만에 집에 데려왔는데 기껏 대접하는 게 라면이라니….
"김여주! 먹을 게 라면밖에 없는데 괜찮아?"
"어. 당연하지."
라면은 언제 먹어도 짱이야. 그치? 김여주의 말에 민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튼. 쿵짝이 잘 맞는 둘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너무 잘 맞아서 가끔 보면 질투가 난다니까. 자, 그러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라면으로 끓여볼까?
비장한 마음으로 냄비에 물을 받고, 가스불을 켰다.
"오. 나름 생긴 게 괜찮다?"
"그럼. 누가 끓인 건데."
"잘 먹을게-."
팔이 닿지 않는 민희를 대신해 먼저 앞접시에 라면을 담아주고는, 그다음 내 접시에 라면을 건져갔다. 후루룩 소리를 내며 잘 먹는 김여주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좋아져서 계속 쳐다보고 있자, 왜 쳐다보느냐는 식으로 나를 바라보는 김여주에 나는 물었다.
"어때?"
"…뭐가?"
"라면."
"맛있네."
"아. 뭐야. 그게 끝?"
"그럼 뭘 바래."
"됐다."
여자애가 무슨 리액션도 없고. 재미없어. 나는 뭐라 해야 되지, 막 호들갑스러운 것까지는 안 바라고 그냥 '우와- 맛있다!' 이 정도만 바랬던 거라고. 입이 댓 발 나와 툴툴대며 라면을 먹고 있는데, 잘만 먹던 김여주가 갑자기 표정이 안 좋아지더니 젓가락질 하던 걸 멈추었다. 뭐야, 라면에 뭔 문제 있나?
"왜?"
"…아니야."
그 말을 끝으로 김여주는 다시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아나, 진짜…. 아까부터 뭐야. 다 아니래, 무슨! 뭔가 의심쩍긴 하다만 그래도 때가 되면 얘기를 해주겠지, 싶었다. 김여주는 항상 내게 모든 걸 다 말해줬으니까. 이번에도 기다리면 말해주겠지, 뭐.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라면을 먹고 있을 때였다.
"야. 민규야."
"왜?"
"넌 누구 좋아해 본 적 없어?"
"콜록!"
이건 갑자기 뭔 소리야…!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그만 사레에 걸려버렸다. 하필 말을 해도 라면 삼킬 때 해가지고…. 사레에 걸려서 한 손으론 콜록대는 입을 틀어막고, 다른 한 손으론 가슴을 쳐대고 있는데 옆에서 민희가 '으휴. 못 살아!' 하며 내 등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런 민희를 뒤로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에서 물을 가져와 그대로 원샷을 하니 그제야 멎는 기침에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뱉었다. 어우. 이제 좀 살겠네. 자리에 돌아와 크흠! 하고 목을 가다듬으니 김여주가 '괜찮냐?' 하며 물어왔다.
"어…. 근데 그건 왜?"
"아니. 나는 너한테 다 얘기하는데 너는 나한테 그런 얘기 한 적 없잖아."
얘가 갑자기 이런 건 왜 물어보는 걸까. 김여주가 나한테 이러한 질문을 하는 경우는 딱 하나뿐이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경우. 김여주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꼭 내게 먼저 묻곤 했다. 너는 좋아하는 사람 없냐고. 자기 마음을 털어놓는 게 부끄러워서 괜히 내게 한번 물어보는 거였다. 그 질문에 내가 '없어' 라고 대답을 하면, 김여주는 그제야 머뭇거리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걸 들으면서 속이 타들어 갔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지. 바보 같이 난 또 좋은 친구 코스프레한다고 조언을 해주곤 했었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 잘되진 않았었다. 김여주한테는 미안하지만.)
그런데 이번에는 느낌이 좋지 않다. 그것도 아주 많이. 네가 지금 나한테 그런 걸 물어본 이유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건데, 네가 요즘에 만났던 남자는… 걔밖에 없잖아. 그럼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건….
안돼. 전원우는 안돼. 다른 사람은 몰라도 걔는… 안돼. 물론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냥 나 혼자 넘겨 짚어서, 그래서 이렇게 불안한 건지는 몰라도 만약에, 정말 만약에 내가 생각하는 대로 전원우가 너에게 진심으로 다가간 게 아니라면…
너는 감당하지 못할 거야. 분명 상처 받고 말거야.
"그게 갑자기 왜 궁금한 건데."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 물어봤어. 왜. 물어보면 안 돼?"
"너 좋아하는 사람 생겼냐?"
"아니?!!!"
아니라고 빽 소리를 지르는 김여주를 보고 있자니 머리가 아파왔다. 내 물음에 대한 너의 반응이 정말 전원우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확인시켜 주는 것 같아서.
이제는 너한테 화가 나기 시작했다. 왜 하필 걔야, 왜 하필 전원우인거야. 걔를 안 지가 얼마나 됐다고? 너를 바라봤던 그 시간 동안 너는 나를 단 한 번도 봐주지 않았으면서, 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전원우를 너는 대체 왜… 어째서 좋아하게 된 거야.
나는 라면이나 먹으라는 말을 하고는, 그릇에 시선을 내다 꽂았다. 김여주와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지금은 네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전원우도 전원우지만, 나는 왜 이렇게 너한테 화가 나는 건지 모르겠다.
밥을 다 먹고 설거지를 하고, 같이 티비를 봐도 나와 김여주는 단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
"민희야. 오빠 갔다 올게. 엄마 오시기 전까지 있어주려고 했는데 좀 늦으시네."
"오빠는 내가 애도 아니고. 괜찮아. 혼자 있을 수 있어."
"너 애야. 인마."
으이구. 쪼그마한 게 어른스러운 척은. 나는 민희 머리를 마구 헝클이고는 오빠 갔다 온다, 하고선 먼저 집을 나섰다. 아까부터 흐르던 어색한 기류에 먼저 나오긴 했는데…. 벽에 기대 저절로 나오는 한숨을 파악 내쉬었다. 내내 생각을 해봤다. 솔직히 김여주가 뭔 잘못이 있겠어. 김여주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아까는 전원우에 대한 불안함과, 내 마음도 몰라주는 너에 대한 답답함과, 그리고 그로 인해 솟구쳐 올랐던 분노에 이성적이지 못했던 것 같은데 계속 이렇게 지낼 수는 없는 거니까… 독서실 가는 길에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면서 풀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김여주가 나왔다.
"……."
"……."
독서실 가는 길이 이리도 멀었던가. 우리 둘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묵묵히 걷기만 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과를 해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이렇게 둘이서 아무 말없이 걷기만 하고 있으니 어느 타이밍에 미안하다고 말을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괜히 어색한 이 상황에 얼굴만 더 딱딱하게 굳어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몇 십분을 걸었을까, 독서실에 거의 다 왔을 때서야 나는 입을 열었다. 입을 열었다기보다도 저절로 열렸다는 게 맞는 말일 것 같다. 이대로 계속 침묵을 유지했다가는 정말 사이가 틀어져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
"…아깐 미안했다."
내 말에 김여주는 걸음을 멈춰 서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에 나도 똑같이 걸음을 멈추곤 김여주를 바라보았다.
"그냥 당황해서 그랬어. 갑자기 그런 걸 물어볼 줄도 몰랐고… 뜬금없기도 하고. 그래서."
"……."
"일단 네 질문에 답을 하자면."
"……."
"별로 여자한테 관심이 없어."
너 말고.
아까 네가 그랬지? 너는 나한테 다 얘기하는데 정작 나는 자기한테 그런 얘기 한 적 없다고. 왜냐하면 너를 좋아하니까, 그래서 너 말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으니까. 9년 전 그날부터 지금까지 나는 항상, 너만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걸 말하면 네가 나를 불편해할까 봐, 멀리하게 될까 봐 그래서…
"……그래서 그런 걸 너한테 말할 수 있을리가 없었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너를 보고 있자니 아까 내가 했던 행동들이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감히, 너를 안아도 될까. 지금 너를 안는다면 너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까, 아니면 그냥 위로 차원이라고 생각하고 말까. 제발 후자라고 생각하기를 빌며, 애써 떨리는 마음을 숨기며 나는 천천히 다가가 너를 꼬옥 끌어안았다.
"…미안해."
너의 등을 토닥여주면서 미안하다고 말을 하는데, 김여주는 내 사과에 대한 대답을 정강이를 걷어차는 것으로 대신했다.
"너 진짜 짜증나!! 나한테 말 걸지 마!!"
"아, 야!! 너 진짜 이것 좀 하지 마. 아프다고!!!"
"몰라!!!!!"
정강이를 문지르며 끙끙대고 있는데, 그 순간 나는 보고야 말았다. 김여주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을. 그 눈물을 보고 있자니 정신이 멍해져서 그 말을 끝으로 휙 들어가는 김여주를 잡을 생각도 못하고, 두 눈만 질끈 감았다. 아… 울렸네. 큰일 났다. 나는 미안함과 난감함에 괜히 머리를 벅벅 긁으며 방으로 들어와 가방을 내려놓고는 책상에 앉았다. 공부라도 해서 아까 일을 잊어보려 빨리 책을 펴고 시선을 문제에 고정하지만, 머릿속에는 계속해서 눈물이 고여있던 김여주 얼굴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하."
전원우를 좋아하게 된 김여주, 그리고 그걸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나. 아직 확실한 건 모르지만 전원우가 그때의 일로 내게 복수를 하는 거라면, 그때 제 손을 잡아주지 못 했던 내게 복수를 하는 거라면, 그래서 지금 김여주에게 의도적으로 접근을 한 거라면 그렇다면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그저 우연의 연속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겹치는 게 많은 우리들을, 나는 정말 모른 척하고 우연이라고 생각을 해야 되는 걸까 아니면 이제는 필연이라고 믿어야 되는 걸까.
아, 오늘 공부하기는 글렀다.
작가의 말 |
안녕하세요ㅠㅠㅠㅠㅠ 정말 오랜만입니다ㅠㅠㅠㅠㅠ 28화를 올리기까지 공지를 두번이나 올리고...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ㅠㅠㅠㅠ 헝ㅠㅠㅠㅠ 다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요즘 왜 이리 바쁜 건지 모르겠습니다... 뭐 물론 우리 독자님들도 다 바쁘시겠지만요... 우리 존재 화이팅....ㅠㅠㅠㅠㅠㅠㅠ 이번 편을 쓰는데 왜 이렇게 힘이 들었는지 모르겠어요. 글도 잘 안 써지고 몇 번을 쓰고 지우고, 또 고치고.... 이번 편을 보시고 아니 대체 김민규랑 전원우는 무슨 사이인데!!!!! 하고 분노하실 독자님도 있지 않을까 예상이 가네요 허허 민규랑 원우의 이야기는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이제 천천히 떡밥을 회수해 나가야겠죠....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ㅎㅎ...
[소원님/ 일공공사님/ 스포시님/ 원우야님/ 날씨좋은날님/ 원인님/ 콜라날다님/ 가위바위보님/ 류아님/ 듀퐁님/ 기네스님/ 밍구님/ 개미와베짱이님/ 최허그님/ 여남님/ 아봉님/ 호시기두마리치킨님/ 쭈꾸미님/ 하마님/ 원우야밥먹자님/ 자몽몽몽몽몽몽몽님/ 또렝님/ 예고생님/ 징징징님/ 으헤헿님/ 너누리님/ 소년민규님/ 꽃소녀님/ 명호엔젤님/ 천상소님/ 연정님/ 팅커벨님/ 몽글몽글님/ 선뉴님/ 천사가정한날님/ 삐뿌삐뿌님/ 2세계획님/ Savag님/럽쎄님] 항상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