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모어찬스 - 널 생각해
Written By. 미나리
05. 좋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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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가 의기양양하게 내 손을 이끌고 간 곳은 회사 근처에 있는 작은 파스타집이었다. 회사 근처에 이런 곳이 있었던가. 이런 곳을 선배가 알고 있는 게 새삼 신기하다. 이런 곳을 남자들끼리도 오기도 하나.. 작지만 빈티지한 느낌이 있는 인테리어가 돋보여 두리번 거리며 내부를 둘러보는데, 선배는 어느새 자연스럽게 레스토랑 매니저로 보이는 남자분과 너스레를 떨고 있다.
"서있지 말고 이쪽으로 와서 앉아요!"
제법 친해보이는 모습에 난 그저 멍하니 그 자리에 서있는데,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던 남자가 내게 먼저 말을 건넸다. '매니저 안재효'. 단정하게 입은 옷에 달려 있는 명찰엔 그렇게 쓰여 있었다. 흘깃 본 얼굴이 굉장히 미남이다. 웃으며 말을 건네는 모습에 잠시 미소가 참 선한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선배의 손이 내 팔을 이끌었다.
"네?"
"블루 도베르뉴..크림 파스타?"
"재효형~ 봉골레 하나랑 오늘의 메뉴요. 아, 갈릭 피자도 형"
"선배는 여기 자주 왔어요?"
"응- 저 형 생긴 거랑 다르게 요리 잘해"
"푸흡, 생긴 거랑 다르게는 뭐에요"
"잘생겼잖아"
크으.. 작게 소리내며 엄지를 척 드는 선배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었다. 본인 자랑하듯 뿌듯하게 말하는데, 본인 잘생긴 건 모르나봐요. 선배- 그리고 저 표정은 또 왜저리 귀여운지 아, 심장 아파..
"파스타 나왔어요-"
"우와"
"맛있게 드세요, 지훈이 너도 맛있게 먹어"
"진짜 잘먹을게요! 너무 맛있게 생겼어요.."
"거봐- 이 형 요리 잘한다니까"
"(웃음) 입에 맞으면 좋겠어요. 얘 여자 데려온 건 처음이라 더 신경 쓴 건 비밀이고"
처음. 여자 데려온 건 처음이라는 매니저 분의 말에 놀란 눈으로 선배를 바라보자 인상을 찌푸린 선배가 "아 형- 그런 걸 왜 말해"하며 칭얼거린다. 그렇게 말하는 선배의 귀가 조금 붉어져 있는 것 같아 괜시리 내 얼굴까지 달아오르는 느낌이다. 기분 좋다. 처음이라는 거. '처음'이라는 그 단어 하나로 순식간에 내 마음이 들떠 버린다.
"그럼 식사 맛있게 해요"
재효씨가 자리를 벗어나고 이상하게 무거운 공기가 선배와 나 사이에 맴돌았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하는데 괜히 민망해서 말을 못 꺼내겠다. 슬쩍 선배의 눈치를 보자 선배도 민망한지 머리만 긁적인다. 당연히 이런 곳이라면 여자랑 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주 오는 것 같아 보였는데 매번 남자 동기들과 왔던 모양이다. 시커먼 남자들끼리 이런 작은 파스타집에 와서 파스타를 먹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그 모습이 또 재밌다.
"왜 웃어??"
아차, 나도 모르게 상상하느라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나보다.. 민망해라. 입을 삐죽이며 내게 묻는 선배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이걸 뭐라 말해..
"어.. 아, 맛있게 먹어요 선배! 맛있겠다-"
급하게 말을 돌리는 내 모습에 선배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날 의심스럽게 바라봤지만, 애써 선배의 눈빛을 피하며 급하게 파스타면을 집어올렸다. 포크로 돌돌 말은 파스타를 입 안에 넣자 기분 좋은 맛이 입 안에 가득 찬다. 와, 진짜 맛있어. 눈이 저절로 커지는 그런 맛에 속으로 감탄하는데 선배가 그런 내 눈을 읽은건지 뿌듯하게 웃는다.
"맛있지?"
"네 진짜 엄청!"
"많이 먹어 오늘은 내가 쏘는거니까! 늦었지만 축하해 입사 1주년, 앞으로도 아자!"
생색 가득한 표정으로 자랑스럽게 말하는 그 모습에 작게 웃음 지었다. 맞다, 그러고보니 입사 1주년이었지 얼마 전에. 시간 참 빠르다. 선배와도 처음 만났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1년이 지났구나. 참 신기하다. 처음엔 말 한마디 나누는게 어려울 정도로 어색했는데 이렇게 둘이 밥도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사이가 됐다는 게.
"시간 참 빠르다- 그치?"
"네 진짜루요.."
선배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나보다. 파스타를 우물거리며 선배 말에 대답하자 그런 날 바라보며 선배가 웃는다. 설레는 기분이다. 맛있는 음식, 좋은 분위기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있는. 정말 행복함의 이상적인 상황이다.
"고마워요 선배, 진심으로요"
문득 이런 상황을 만들어준 선배에게 정말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 용기내 선배와 눈을 맞추며 말하는데, "내가 더 고마워". 선배는 또 날 갸웃거리게 만든다.
"네?"
"그냥 다 고마워 꿀벌아"
그냥 고맙다니. 고마워할 건 정작 난데, 오늘따라 이해할 수 없는 말들만 뱉는 선배에 머릿 속이 혼란스럽다. 선배도 나한테 마음이 있는걸까. 마음 속에서 약간의 기대감이 피어오른다. 마주보고 앉아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기분을 주체할 수 없는데 자꾸만 의미심장한 느낌을 주는 선배가 마음을 어지럽힌다. 확신을 가지고 싶다. 그 마음에 대한 확신을.
"꿀벌아"
"..."
"그날 있잖아. 솔직히 미안한 것보다 고마운 마음이 더 컸어. 고맙다고 생각해"
"선배-"
"이기적이게 들릴 수도 있는데, 꿀벌이 네가 와줘서 기뻤어"
선배의 말 하나하나가 내 마음 속을 잔뜩 어지럽힌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네가 너무 어색해 하는 것 같아서"
"..."
"솔직히 지금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겁나는데"
"좋아했어. 꽤 오래"
# 예쁜 독자분들 #
커피우유 / 왱왱 / 구름위에호빵맨 / 백수꿀벌 / 알티스트 / 벗 / 두부 / 요랑이 / 블넹
백설공주 / 회사원
이번에도 혹시나 암호닉 누락된 거 있으면 말씀해시구
댓글 달아주시는 예쁜 독자님들 항상 고맙구 힘이 납니다!
암호닉은 언제나 열려있으니 신청해주세요-
항상 새벽에 글을 쓰고 가는거 같네요 @_@.. 졸립.. 재밌게 보셨길 바래요!!
감사합니다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