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가 반존대를 써요 시즌2 w. 채셔
02.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게
"지민 씨!"
"으응, 자기. 왜요?"
제 조그만 작업실에 들어가 -지민이 우리 집에 들어온 이후부터 옷방을 개조해 지민의 작업실로 만들었더랬다.- 한참을 나오지 않는 지민에게 우편물들과 조그만 편지 하나를 전해주었다. 마지막 편지는, 분명 여자의 글씨였다. 신경을 쓰지 않는 척 했지만, 괜히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는 걸 보니 나도 여자이긴 한 모양이다. 아니, 사실 편지를 신경 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팬 레터도 아니고, 왠지… 영화에서나 볼 법한 첫사랑의 편지 같았기 때문이다.
"편지."
으응, 하고 트랙을 멈추고, 편지를 받아든 지민은 편지에 쓰여 있는 이름을 확인하곤, 잔뜩 굳은 얼굴로 편지를 구겨 쓰레기통으로 버려버린다. ……저게 도대체 무슨 편지길래. 이내 우편물을 하나씩 확인하던 지민이 다시 고개를 들어 나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기분이 좋지 않은 모양이라, 이야기는 나중에 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한 번 웃어보이고 작업실 문을 닫아주었다. …나중에 들을 수 있겠지. 나는 적적해진 거실로 나와 TV를 켰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 봐도 다 똑같은 얘기에, 다 봤던 에피소드들이라 나는 TV를 꺼버렸다.
"잠이나 자야겠다."
지민이 작업실로 들어가면 한동안 나오지 않아서, 그때마다 항상 굉장히 심심해진다. 방문을 노려보았다가, 아침에 읽던 소설로 손을 옮겼다. 그렇게 흡입력이 있는 소설은 아니었다. 몇 장을 뒤적거리다 덮어버렸다. 지민이 작업을 하기 위해 방에 들어가면, 꼼짝을 하지 않고 못 해도 벌스 하나는 완성해서 나오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그 멜로디를 곡에다 쓴다는 보장은 없다. 그냥 뭐라도 만들어서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 지민은 강제적으로 제 머리를 짜내곤 했다. 비트 하나씩은 뚝딱 만들어버리는 윤기 선배와는 다르게 속도가 조금 더딘 지민이라 -그렇다고 실력이 뒤떨어진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항상 힘을 주어 제 자식들을 낳고 있는 거였다.
그래서 지민은 언제 저 동굴에서 나올까. 동굴에서 나오면 마늘이라도 줘야 하나. 저 안에 들어간 지민은 정말 곰이나 다름이 없다. 밥도 안 챙겨 먹고, 집에 있는 아이스티만 잔뜩 타 먹고, 좀 쉬면서 하라고 해도 앉은 자리에서 잘 나오려고 하지도 않고. 저기서 나오면 밥도 잘 챙겨먹고, 예쁘게 웃어주고, 또 더 활발해져서 좀 사람 같은데. 지민이 없으니까 굉장히 심심하다. 이제 곧 여름이라 선풍기를 켜지 않으면 소파에 살이 달라붙기 시작한다. 선풍기를 틀어 놓고, 담요를 끌어 올렸다. 잠이 내게 다가온다, 조금씩. 가만히 천장 어딘가를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지민이 없을 때에는 도무지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자기."
"…으음……."
"안 일어날 거예요?"
"………응…."
"얼른. 뽀뽀."
몇 시간이 지난지도 모른 채로 잠에 빠져 있는데, 지민이 내 볼을 손가락으로 간질였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지민이 웃는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청량감 있는 웃음 소리가 꼭 여름에 맞닿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지민과 함께 맞는 여름이라면, 나는 그 여름을 기꺼이 받아들일 자신이 있다. 눈을 힘겹게 뜨고, 입술을 길게 내밀고 있는 지민의 입에다 뽀뽀를 해주었다.
"오늘은 영 멜로디가 안 떠올라요."
"……으응."
"으유, 우리 자기 잠 투정 부리는 것 좀 봐."
베개 없이 자고 있던 내 머리를 살짝 들어올려 제 허벅지 위에다 조심스럽게 놓아준 지민은 이내 이리저리로 흘러 있던 머릿결을 정리해주었다. 지친 표정이었다. 하아, 하고 조그맣게 숨을 내쉰 지민은 소파에 제 등을 기댔다. 빨리 윤기 형한테 멜로디 넘겨줘야 되는데. 짧게 으으, 하고 제 머리를 털던 지민은 다시 그대로 고개를 숙여 내 입술에 뽀뽀를 하고 떨어졌다. 난 스트레스 받을 때 자기하고 있으면 풀리더라. 지민은 내 머릿결을 천천히 넘겨주며 다시 뽀뽀를 해주었다. 거짓말처럼 아까의 표정에서 지민의 얼굴이 점점 더 환해지기 시작한다.
"이래서 사람들이 연애를 하나 봐."
"……."
"이렇게 쉽게 스트레스가 풀릴 줄 누가 알았겠어요."
뭐, 연애하면 이렇게 같이만 있어도 조금은 괜찮아진다고 하던데. 지민은 자연스럽게 내 손에 깍지를 껴 잡으며 나른하게 말해왔다. 처음에는 그 말 안 믿었는데, 요즘은 좀 알겠어요. 뭘 말하는지. 며칠 면도를 하지 못해 날렵해진 턱선에 거뭇하게 올라온 수염을 바라보다, 지민의 얼굴을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지민이 눈을 떠 살짝 나를 바라본다. 내가 먼저 뽀뽀를 하려고 했는데, 지민이 그대로 키스를 해주었다. 아까 아이스티를 먹었는지 맞닿은 숨결이 달았다. 마치 지민처럼. 깍지를 잡은 손에 살짝 힘을 주자, 지민이 잇새로 웃음을 흘려보냈다. 반달이 됐을 눈을 머릿속으로 그리다 나도 웃어버렸다.
"이삐."
내 코를 툭툭 치는 손가락에 코를 찡긋대다 미소를 짓자, 지민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도 좀 자야겠다. 지민은 뻐근해진 제 목을 빙빙 돌리다 번쩍 나를 들어올렸다. 비명에 가깝게 소리를 지르자 지민은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윽, 내 허리, 하고 소리를 쳤고. 내가 시무룩해져 입술을 삐죽 내밀자 지민은 웃으며 내 입술에 다시 뽀뽀를 해주었다. 그러고보면 우리 커플은 꽤 뽀뽀쟁이들이다. 그러다 뽀뽀가 질리면 어떻게 하지, 하고 잠시 생각했지만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생각을 쫓아냈다. 아무렴 어때. 지민의 입술이 통통한 편이라 한 번 뽀뽀를 하면 멈출 수가 없다. 이건 중독이다.
"자기."
"으응?"
"…아니에요."
"뭐예요, 실 없게."
침대에 나를 눕히곤, 그 옆에 누워 내 허리를 끌어안는 지민을 불렀다가,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속에 눌러담고 있던 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려다 말았다. 쉽게 말을 접는 나를 못말린다는 듯이 바라보던 지민은 나를 제 품에 꼭 안아주었다. 아아, 좋다. 잠시의 여유에 젖은 지민은 누구보다 행복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연애의 나날들에 푹 빠져있는 사람인데. 의심하는 게 더 나쁜 거다. 아니, 의심할 틈도 없는걸. 때가 되면 말해줄 거다, 지민은 절대 나를 속일 사람이 아니니까. 나는 지민의 허리에 천천히 팔을 감았다.
덧붙임
오늘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과제 폭탄이네요 으..
얼른 끄적이고 저는 또 과제와 시험 공부의 늪으로...
흐엉
어김없이 오늘도 고맙습니다,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