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이해리 - 그때 난 사는거야
「 김종대, 첫사랑과 마지막 사랑의 갈림길 」
Baby J
八
“종대 그만 괴롭히고 저랑 만나시죠.”
‘뭐? 아 미치겠네. 그래, 지금은 일하는 것 같으니까 끝나고 다시 연락해’
의자에 앉아 한참 동안 펜을 들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제삼자들, 더이상 끼어들지만 않으면 우린 예전처럼 행복할 텐데….
스케치하던 펜을 내려놓곤 무작정 종대의 핸드폰 속 전화번호를 내 핸드폰에 옮겨 통화버튼을 눌렀다.
이미 내 번호도 알고 있었는지 전화를 받은 그 사람은 소름 끼치는 목소리로 웃으며 내 말에 대답하고 있었다.
저절로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주체할 수가 없어 주먹을 꽉 쥐곤 그렇게 통화를 마쳤다.
위험해져 봐야 얼마나 위험해지겠어, 괜찮아. 부들부들 떨리는 손과 빨라지는 심박 수로 인해 애써 나 자신을 다독이며 괜찮을 거라는 최면을 걸곤 했다.
“종대야, 나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 미안해,”
“그럼 이 얘기만 듣고 가.”
“응, 해봐.”
“나 이제 다른 사람들 신경 안 쓰고 너한테 집중하려고. 그러니ㄲ….”
띠링,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가고 드디어 퇴근 시간이 되었다.
가방을 대충 챙겨 연습실로 내려와선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 종대를 불러내 핸드폰을 건넸고, 종대의 말을 듣던 순간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며 내 시선을 빼앗아 갔다.
덕분에 종대의 말 역시 끊겨버렸고 잠시만, 하는 내 말을 듣고 종대는 웃으며 대답을 해줬다.
노닥거릴 시간 없으니까 빨리 오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아까 들었던 그 소름 끼치는 목소리였다.
한껏 비웃음을 날리며 말하는 그 사람에 의해 저절로 표정이 굳어져 종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그대로 회사를 뛰쳐나왔다.
- 찬열 번외 -
“아, 미치겠네.”
스케줄이 없어 한가롭던 날 오래간만에 외출을 했다.
야 야, 박찬열 나온다 나와! 내가 나오는 건 어떻게 알았는지 숙소 앞에서 죽치고 기다리던 사생들이 하나둘씩 일어서서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이 지긋지긋한 생활은 언제쯤 막을 내릴지, 은퇴하고 싶은 생각뿐이다. 왜냐고? 사생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오늘은 크게 한번 반항을 해볼까,
“핸드폰은 꺼두는 게 제일 좋겠지?”
“미친놈, 그래서 오늘은 반항한다고 나온 거냐?”
“안 그러면 내가 여길 왜 오겠어-”
사생들을 피해 최대한 멀리까지 도망을 왔다. 택시를 타면 사생 택시를 이용해 쫓아오고, 버스를 타도, 걸어 다녀도 미친 듯이 쫓아다니는 저 사생들. 지긋지긋하다.
꽤 멀리 도망온 것 같아 아는 형이 하는 옷가게에 들러 전혀 내 스타일이 아닌 옷들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날 타박하는 형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해방된 것만 같아 다 좋게만 느껴지는 건가, 부슬부슬 내리는 저 비도 아름답다.
“야, 찬열아 너 빨리 가. 지금 네 매니저 여기로 온데.”
“또 골치 아파지겠네. 갈게 형, 이건 다음에 계산할게-”
가게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쇼윈도에 걸려있던 옷들까지 입어보던 중,
전화를 끊은 형의 다급한 목소리에 의해 마네킹이 쓰고 있던 모자를 벗겨 내 머리 위에 올리곤 그대로 가게를 빠져나왔다.
아씨, 우산도 없는데….
“박찬열 이 새끼 어디로 간 거야,”
느긋한 걸음걸이로 골목길을 이리저리 누비고 다니던 순간, 매니저 형의 목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게 느껴졌다.
바로 내 뒤에 있으면서 아직 알아채지 못했나 보네, 괜히 뿌듯한 마음에 걸음을 더욱 빨리하기 시작했다. 이러다 어느 순간 알아채면 곤란하니까.
저기요, 혹시….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어서 한참을 직진으로 쭉 걷고 있을 때, 매니저 형이 눈치를 챘는지 날 돌려세우려 하는 게 들린다.
제발, 하나님. 불쌍한 영혼 좀 도와주세요.
겉으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하지만 속으론 절규하듯 하나님을 미친 듯이 부르기 시작했다.
“음, 맛있네. 많이 춥지 자기야? 나도 춥다. 빨리 가자, 자기가 만들어주는 밥 빨리 먹고 싶어-”
“아, 뭐야…허탕이네…. 어휴,”
역시, 하나님은 내 편이었군요? 더욱이 빨라지는 매니저 형의 발걸음 소리에 나 역시 보폭을 넓히던 순간, 골목길에서 툭, 튀어나와 빠르게 걷는 여자가 보였다.
무작정 그 여자에게 뛰어가 연인인 척 연기를 했다. 뭐, 입막음은 어떻게 해서든 하면 되니까.
“어…. 저기, 많이 놀라셨어요?”
“아니에요, 그냥 누구랑 좀 많이 닮으신 것 같아서요.”
“아……….”
“그럼 전 가볼게요. 수고하세요.”
연인인척하는 날 본 매니저 형은 발걸음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한숨을 한번 몰아쉬고 그 여자를 바라봤다. 많이 놀랐는지 고개를 푹 숙인 채 걷는 그 여자.
많이 놀랐겠구나, 그 여자를 살짝 다독이듯 말을 거니 전혀 놀라지 않은 듯 누구와 닮았다는 말을 내뱉으며 계단을 천천히 올라간다.
저기! 연락처라도…. 왜일까, 뒷모습이 너무 감싸주고 싶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 튀어나온 내 말에 어색하게 웃으니 계단을 내려와 번호를 찍어주곤 우산까지 건넨 그 여자는 그대로 계단을 올라가 버렸다.
JD? 그 여자의 스펠링인가? 그 여자에게 건네받은 우산 손잡이에 적힌 이니셜을 보고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이런 걸 첫눈에 반했다고 하는 거구나. 미친놈, 계속해서 미친듯한 행동을 하는 내가 우스워 속으로 날 여러 번 비웃었다.
첫눈에 반했다니, 박찬열 진짜 웃기네.
-
“너가 힘든 거 다 말했었으면, 나. 진짜…하…. 그냥 난 그만 만나자는 말 듣고 네가 너무 짜증 나고, 증오스럽고…. 아프고 미친 듯이 힘들었는ㄷ….”
“너가 힘들고 아픈 만큼 나도 힘들었어, 도경수한테 다 들었다면서!”
“힘들었는데…. 널 싫어하고, 증오하고, 친구한테까지 널 나쁜 놈으로 만든 게 너무 미안하잖아…. 나보다 더 힘든 건 너였을 거 아니야….”
시끄러운 연습실, 조용하지만 시끄러운 복도. 그 경계선에 서 있는 난 지금 너무 많은걸 들어버린 것 같다.
실장님과 사생팬, 많이 힘들었을 종대와 ○○씨를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이 쓰려 온다.
좀 전에 우연히 휴게실을 지나치다 들은
‘요즘 들어 좀 느슨해져서 너한테 다가가려고 했는데, 찬열이가 갑자기 나타나선 너랑 붙어먹더라.’ 하는 경수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겹쳐져 온다.
좀 행복해지려 하던 순간 내가 나타난 거구나. 연습실 문에 기대어 미어지는 가슴을 붙잡고 천장을 바라봤다.
새하얀 천장을 보거나 맑은 하늘을 보면 괜스레 복잡하고 힘들었던 게 확 풀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근데 지금은 전혀 풀어지지 않는 것 같다.
천장을 아무리 바라봐도, 바닥을 바라봐도 똑같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내가 꽤나 많이 좋아하고 사랑하긴 했나 보다.
“찬열, 연습 안 해?”
“형, 담배 있어요?”
“어, 왜?”
“미안한데 한대만 줄 수 있어요? 지금 너무 복잡해서….”
한참을 연습실 문에 기대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있을 때, 크리스 형이 날 불러 연습 안 하느냐며 말을 걸어온다.
유일한 흡연자인 크리스 형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담배를 건네받았다.
보기 드문 진지하고 가라앉은 내 모습에 많이 놀라기도 했을 터이다. 항상 어디를 가던 실실 웃고 다녔으니.
옥상 가면 돼. 크리스 형에게 건네받은 담뱃갑을 손에 꽉 쥐고 뒤를 돌아섰을 때, 옥상으로 가라며 일컫는 형의 말을 듣고 살짝 웃은 뒤 옥상으로 향했다.
“이제 이것도 돌려주고, 괜찮은 사람 만났다고 하면 되는 거겠지.”
“뭐냐 박찬녈?”
“….”
“기분 안 좋아 보이니까 못 본걸로 해줄게.”
옥상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불을 붙여 깊게 들이마셨다 내뱉었다.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힘들게 끊었던 담배였건만, 왜 힘들기만 하면 생각이 나는지.
옥상 난간에 기대앉아 뒷주머니 속 지갑 깊숙이 들어있던 ○○씨의 반지를 꺼내 뚫어져라 쳐다보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씨의 생각만 하면 웃음이 나는 내가 병신같아 픽, 웃으며 또다시 담배 연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내뱉었다.
뿌옇게 흩어지며 순식간에 사라지는 담배 연기는 마치 한순간 내게 흔들렸다가 마음을 굳혀버린 ○○씨와 같은 것 같다.
뭐냐? 한 개비를 다 피우고 또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무는 순간, 언제 올라왔는지 진리가 나에게로 다가오며 인상을 찌푸리는 게 보인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체념한 사람마냥 멍한 표정으로 진리를 바라보니 내 옆에 자리를 잡고선 못 본걸로 해줄게. 하며 손에 쥐고 있는 담배를 입에 물려주었다.
“진리야, 오빠 친구가 말이야. 고민이 있다고 했는데 걔가 너무 불쌍해”
“왜, 무슨 고민인데?”
“걔가 어떻게 하다가 한 여자를 만났데. 근데 되게 웃긴 게 처음 본 날 첫눈에 반한 거야, 그래서 연락처도 물어보고 계속 연락을 하면서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는데 그 친구랑 친한, 가족 같은 친구가 그 여자의 전 남자친구였데. 근데 서로 못 잊어서 힘들어하고…. 후, 근데 그 병신같은 새끼는 너무 그 여자가 좋아서 놓아버릴 것 같데.”
“그래서 물어보고 싶은 건 뭔데?”
“그 친구랑 그 여자가 잘되는걸 빌어줘야 하는 걸까, 아니면 나도 용기를 내볼까?”
“결국, 오빠 얘기였네. 선택은 오빠가 하는 거지만, 객관적으로 본다면 놓아주는 게 더 좋겠지. 오빠가 좋아서 놔주고 싶을 정도면.”
그렇겠지, 누구에게든 툭 털어 놓아버리고 싶어 친구 얘기라며 돌려 말하다 결국 진리에게 들켜버렸다.
항상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진리에게만 들켜버리는 것 같다. 놓아주는 게 더 좋겠지. 하는 진리의 말에 대답하곤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섰다.
어떻게 보면 내가 불청객일 수도 있으니 두 사람을 위해 물러서야겠다.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이니, 그러니 이번엔 내가 물러서는 게 맞는 것 같다.
암호닉 |
『 웬디 〃 짱구 〃 폭립 〃 맥심 〃 둉글둉글 |
Baby J |
어느덧 차기작인 김종대, 첫사랑과 마지막 사랑의 갈림길 역시 중후반부에 접어든 것 같네요. 1일 1편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최대한 빨리 결말을 들고 오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이 절정이라 칠수 있겠네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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