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국은 나를 싫어한다. 왜냐하면 (전정국의 표현을 빌려서) 나와 우리 엄마는 전정국네 집에 빌붙는 빈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전정국이 내게 말을 걸 때는 아주 드물지만 보통 내게 하는 말들은 이런 것들이다.
"눈 깔아."
"쳐다보지 마, 기분 더러우니까."
"아는 척하지 말라고."
물론 나는 전정국의 폭언에 기죽지 않는다. 내가 전정국에게 주로 하는 말들은 이런 것들이다.
"네가 깔아."
"너 본 거 아니니까 착각하지 마."
"아는 척 못해서 안달난 것처럼 굴지 말라고. 싼티 나니까."
할 말이 없어진 전정국은 나를 후려칠 것처럼 손을 올리다가 이내 문을 닫고 나가버린다. 나는 전정국이 내 손끝 하나도 못 건드린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승리감에 도취된 채로 웃는다. 전정국과 나는, 이복남매다.
사실 뻔한 이야기다. 엄마는 예쁘고 착했지만 능력 없는 남편을 만나 밑바닥을 기는 인생을 살았고 밑바닥에서 태어난 나는 쓰레기만도 못한 삶을 살았다. 엄마의 첫 번째 남편이자 나를 낳게 만든 사람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술을 마시며 술 때문에 죽었다. 남편이 불운을 몰고 다니는 존재였는지 장례식이 끝난 뒤 엄마의 삶은 급속도로 좋아지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다니던 공장의 사장님과 고급 레스토랑에서 같이 식사할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섰다. 마침 아내와 사별하고 외로웠던 사장님은 예쁘고 성실한 엄마에게 관심을 보였고 그러다 눈이 맞았고 결혼을 했다. 이게 내 신분 상승 스토리의 전부다.
"정국아, 아줌마가 밥 차렸어. 먹고 가."
"싫은데요, 씨발."
제 아비와 다르게 전정국은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는 사실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우리 가족은 새아버지, 엄마, 나, 새아버지의 공식적 아들과 비공식적 아들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전정국은 공식적 아들과 성도 다르고 엄마도 다른 비공식적 아들이다. 언론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나는 사랑받고 싶어하는 전정국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안다. 전정국은 가난해 보이고 싶지 않은 나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안다. 서로를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았다. 그게 악연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부모 앞에서 사이 좋은 남매를 연기하지만 뒤에서는 서로를 물어뜯기 바쁘다.
우리는 서로를 평생 미워하며 살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나는 오늘도 전정국을 싫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