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국과 나는 같은 학교를 다닌다. 오늘은 전정국과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학교에 가는 첫날이다. 한국에서 손꼽히는 명문고 중 하나인 D고. 전정국의 아버지가 재단 이사로 있는 학교라는 건 돈 많고 싸가지 없는 인간 말종들이 다니기에 딱 적합한 학교라는 뜻이다. 그리고 전정국은 양아치 노릇을 제대로 함으로써 제 아버지의 학교를 완벽히 빛내주고 있다. 새삼 부전자전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창문만 보고 가는 나와 달리 전정국은 아까부터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연신 기사 아저씨의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머리가 헝클어졌다며 단정하게 정리된 내 머리로 손을 뻗는다. 머리를 넘겨주는 상냥한 손길과는 다르게 귀에 꽂히는 말에 독기가 서려 있다.
"아는 척하기만 해 봐. 진짜 죽여버린다."
나는 내 머리채를 뽑을 듯이 험악하게 쓰다듬는 전정국의 손을 붙잡고 가운뎃손가락을 잡아올린다. 엿 먹어, 정국아.
"너나 못 이길 거 알면서 기어오르지 마."
전정국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진다. 짜증을 온 얼굴에 드러내며 교무실로 향하는 전정국의 너른 등을 앞에 두고 나는 느긋하게 걷는다. 당연한 수순처럼 나는 전정국과 같은 반에 배정된다. 새아버지의 언질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담임은 적당히 무심하고 예의를 차리는 정도로만 나를 소개한다.
"이름은 김탄소. 잘 챙겨주고."
담임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대답하는 아이들도 없다. 멍하니 서 있자니 민망해 여기저기 시선을 돌리다가 맨 뒷자리에 웬 예쁘장한 여자애를 끼고 있는 전정국과 눈이 마주친다. 여자애는 담임이 앞에 있건 말건 전정국의 목 언저리를 더듬기 바쁘다. 나는 배알이 꼴린다. 저 애는 전정국이 얼마나 외로움을 타는지, 얼마나 사랑받고 싶어하는지 모른다. 분명히 전정국에 대해서는 저 여자애보다 내가 우위임에도 불구하고 저 천박한 짓을 하고 있는 여자애가 부러웠다. 나는 홀린 듯 배정받은 자리를 지나 맨 뒷자리로 걸어간다. 흩어져 있던 아이들의 시선이 나와 전정국에게로 쏠린다. 정작 주인공인 전정국은 무심한 표정으로 눈썹을 까닥이지만. 나는 터지려는 웃음을 참으며 입을 연다.
"우리 오빠는 그런 거 안 좋아해."
"뭐?"
"야."
전정국이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선다. 의자와 여자애가 뒤엉켜 넘어지는 소리가 시끄럽다. 화를 참지 못한 전정국이 연신 머리를 쓸어올리며 되묻는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나랑 아는 사이야?
"당연히 아는 사이지, 오빠."
"야. 김탄소."
"우리 오늘 차도 같이 탔고, 밥도 같이 먹었고, 같은 집에서 잤잖아."
교실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온갖 추측과 소문들이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물론 바로잡고 싶은 마음은 없으므로 아마 하루가 끝나기 전에 학교 전체에 소문이 퍼질 것이다. 소문난 양아치 전정국에게 갑자기 동생이 생겼다고. 내 말 틀렸어, 오빠? 나는 쐐기를 박는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정국이 내 손목을 잡아챈다. 거칠게 닫히는 문소리만 남겨진 교실은 발칵 뒤집힐 것이다. 전정국은 낡은 음악실 피아노에 나를 내친다. 조율되지 않은 음들의 기회한 불협화음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향해 으르렁댄다.
"네가 진짜 죽고 싶어서 환장했지."
"엿 먹으라고 했잖아.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
"김탄소. 나라고 너 엿 못 먹일 줄 알아?"
너 여기 오기 전에 어떻게 빌어먹고 살았는지 내가 다 아는데. 여기 애들은 상상도 못해, 그런 바닥이 있는지. 비열한 말과 다르게 손은 다정하게 피아노에 부딪힌 허리를 감싸 일으킨다. 받는 게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지. 나는 다정하게 전정국의 와이셔츠에 묻은 먼지를 털어준다. 상황을 모르는 제 3자가 본다면 다정한 연인으로 보일 정도로 갑작스럽게 서로를 챙기면서도 입으로는 여전히 날선 말들을 주고받는다. 물론 나는 나와 달리 전정국이 하는 말들이 다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한 귀로 듣고 흘릴 수 있다.
"근데 너 안 할 거잖아, 정국아."
"내가 못할 거라고 생각해?"
"그럼. 너 나 좋아하잖아."
"탄소야."
전정국이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부른다. 나는 말없는 웃음으로 대답한다. 지랄하지 마.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피아노에 내쳐진다. 전정국은 교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문을 크게 닫고 나가지만 이번에는 나를 두고 간다. 나는 통증을 꾹 참고 다시는 연주되지 못할 피아노 위에 엉거주춤 누워 눈을 감는다. 전정국의 가장 큰 약점은 사랑받고 싶은 상대에게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전정국은 나를 좋아한다. 나는 그 사실을 이용할 것이다. 엄마처럼 멍청한 선택으로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다. 새아버지를 이용해서, 전정국을 이용해서, 필요하면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그의 다른 아들까지 이용해서라도 반드시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다. 바닥은 한 번으로 족하다. 살아남지 못하더라도 걱정하지 않는다. 전정국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내 편일 것이므로. 내 확신에 대답하듯 다시 한 번 문이 거칠게 열린다.
"야."
모두가 나를 버려도,
"왜 안 나오는데. 다쳤어? 아, 씨발. 힘조절 한다고 한 건데."
전정국은 나를 버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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