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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빈이 좋은 섹스파트너였냐. 그건 아니었다. 잘생긴 얼굴에 한 번, 듣기 좋은 목소리에 두 번 혹해 몇년째 섹스파트너로 자리잡고 있긴 하지만 정말 말그대로 섹스에 관해서만 우리는 파트너였지, 그 외의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잘지내려 해야 도저히 잘 지낼 수가 없었다. 개같은 성격하며 하다못해 왼쪽 길로 갈지 오른쪽 길로 갈지 하는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취향이 달랐다.
그런데, 씨발,
"…이홍빈?"
"차학연?"
왜 하필 같이 촬영한다는 새끼가 이새끼야.
* * *
"조용히 가요 우리. 조용히. 아무 일 없이."
그건 내가 할 말이다 이 개새끼야. 바빠서 현장에 와서야 확인한 잡지 촬영 파트너가 이홍빈이라니. 계약만 아니었으면 진짜 스튜디오 뛰쳐 나갔을텐데.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고선 어쩔 수 없이 의상을 갈아입고, 메이크업을 받기 시작했다. 오늘 촬영 컨셉이 뭐더라. 동성애였나. 아 씨발. 동성애? 저새끼랑? 저새끼는 아이돌이면서 이런걸 왜찍어. 지네 그룹 이미지는 신경도 안쓰냐. 하여튼 답이 없는 새끼다.
"자 그럼 촬영 들어갈게요."
촬영 준비를 다 마친 스튜디오는 분주했다. 모두가 각자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고, 나 또한 마찬가지로 스튜디오로 들어섰고, 이홍빈도 따라서 내 옆에 섰다. 코디를 보며 헤실헤실 웃던 이홍빈의 얼굴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순식간에 굳었다. 개새끼가. 나는 자기랑 이렇게 얼굴 맞대고 있는게 좋은 줄 아나. 넌 진짜 섹스만 못했어도 나랑 만날 일 없었어. 서로 마주보고 서라는 포토그래퍼님의 지시에 우리는 억지로 서로를 바라보고 섰다.
"학연이가 홍빈이 뒷목 좀 감싸볼래? 응 그렇지. 그렇게. 홍빈이는 오른손으로 학연이 허리 좀 감싸고. 어. 어. 그렇지. 거기다가 학연이가 홍빈이 어깨에 고개 좀 파묻어봐."
모델,배우 합해 6년을 일해오면서 이렇게 좆같았던 적은 처음이었다. 이홍빈도 만만치않게 싫었는지 잠시간 얼굴을 찌푸리는게 보였다. 얼굴 안펴냐. 나라고 기분 좋은 줄 알아? 입은 움직이지 않고 이홍빈에게 들릴 정도로 소리만 내어 말하니 이홍빈이 허리를 감싼 손에 더욱 힘을 준다. 저 씨발 새끼가. 저랑 섹스를 한 지 얼마 안됐다는걸 잊었나보다. 아님 그걸 노렸나. 일부러 뒷목을 더욱 힘주어 잡으며 소곤소곤, 이홍빈에게만 들릴 정도로 말했다.
"너는 아이돌이라는 새끼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요. 게이라고 소문날라."
"그러는 형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요. 배우라는 분이."
"나 모델 출신인거 모르냐."
"저 이번에 뮤지컬 하시는거 모르세요?"
그러고보니 그런 얘기를 들은 적도 있는 것 같다. 동성애 관련된 뮤지컬에 주인공 배역으로 캐스팅 됐다고. 우연찮게 내가 화보 촬영한 잡지에 이홍빈의 인터뷰가 실려있어서 봤었던 것도 같다. 뭐라 그러더라. 자기가 게이는 아니지만 게이가 인정받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그랬다고 했었나. 어쨌든 그 인터뷰를 보고 이홍빈을 엄청 비웃었던 게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미친놈. 지랄도 병이라던데.
"니 팬들이 지랄 안하냐?"
"우리 팬이 너같은 줄 알아요?"
저 씨발놈이. 촬영만 아니었음 저걸 확. 카메라에 시선을 고정해야하는 탓에 째려보지도 못하고서 뒷목을 꾹 누르는 걸로 대답을 대신하고서는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오케이. 이번엔 자세 좀 바꿔보자. 포토그래퍼님의 지시에 우린 황급히 서로의 몸에서 손을 뗐고, 포토그래퍼님이 아까와 똑같이 지시를 내리셨다.
"이번엔 홍빈이가 카메라를 보고 서고, 학연이가 카메라를 등지고 서 봐. 홍빈이가 학연이 허리에 양 손 두르고, 학연이는 홍빈이 와이셔츠 단추 푸는 포즈 취하고. 그렇지."
포토그래퍼님의 지시가 떨어지기도 전에 내 목에 고개를 파묻는 이홍빈을 보며 이게 뭐하는 짓이냐 물으니, 이게 더 자연스럽단다. 지가 뭐라고 포즈를 취하녜 마녜야. 하지만 포즈가 너무 좋다며 극찬하시는 포토그래퍼님에 의해 딱히 뭐라고 하지도 못하고서 다시 촬영에 임했다. 찰칵. 찰칵. 살짝살짝씩 포즈를 바꿔가면서 촬영하고 있는데, 이홍빈이 슬며시 한다는 말이,
"형이랑 하니까 진짜 하나도 안서네요. 그래도 게이가 컨셉이면 꼴릴 줄 알았는데."
하긴 침대에서도 그다지 꼴리진 않는데 이런 걸로 어떻게 꼴리겠어요. 기가 막혀. 안꼴린다는 새끼가 나랑 근 3년 가까이 붙어먹냐? 어차피 카메라에도 안잡히겠다, 대놓고 나는 웃으며 말했다.
"좆도 작은게. 나도 너보고는 안꼴리네요."
"어쩌라구요. 펠라도 못하면서. 맨날 내꺼 입에 담으면 꺽꺽거리잖아요. 벅차다고."
"그러면 섰는데 그정도는 돼야지. 그것보다 작으면 그게 고자고 병신아."
"아, 그럼 형은 고자에요? 형껀 입에 넣어도 아담하던데."
이새끼가 진짜 그래도. 한마디 하려는 찰나에 오케이 컷! 하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무슨 더러운 것을 떼어내듯이 이홍빈을 밀치고서 촬영된 사진을 보러 포토그래퍼님에게 다가갔다. 컴퓨터로 사진을 보고계시는 포토그래퍼님이 보였다.
"저희 사진 잘 나왔어요?"
"어, 응. 와서 봐바."
컴퓨터 화면 가득 나와 이홍빈이 보였다. 인정하긴 싫지만 제법 잘 나왔다. 아니, 제법이 아니라 정말 잘나왔다. 넋을 놓고서 촬영된 사진을 보니 포토그래퍼님이 웃으면서 '네가 봐도 잘나왔지?' 하고 물어오신다. 네. 진짜 잘나온 것 같아요. 목소리에 절로 뿌듯함이 묻어나왔다.
"둘 다 이런 컨셉 처음이고 나이대도 어린데 그림이 나오네."
"그러게요."
그래도 몇 년 동안 이홍빈과 진득하게 붙어먹었던게 뻘로 있는게 아니구나. 처음으로 이홍빈이 내 섹스파트너라는게 도움이 되는 순간이었다. 뒤에서 이홍빈의 목소리가 들렸다. 와. 잘나왔네요. 답지않은 해사한 목소리가 어색했다. 만약 나한테 저거 반만 했더라면 섹스파트너가 아니라 애인도 됐겠다. 쯧쯧, 하고 알게모르게 혀를 찼다. 그와 동시에 슬그머니 귀 뒤로 숨결이 느껴졌다. 웃음 섞인 목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이렇게 보니까 또 꼴리네. 촬영 끝나고 호텔로 와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