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XX/정택운차학연] 벚꽃 길 위에서 만난 우리의 시간은. 3
한상혁이 아르바이트 하는 곳은 작은 라면집이다. 살찐다며 먹기를 거부했던 학연은 맘 편히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한상혁의 목소리가 편안히 울렸다. 고개를 들어 학연과 눈을 맞추니 여기는 무슨 일이냐며 물었다. 라면 먹고 싶어서. 형 못 먹잖아요. 이젠 먹을 수 있어. 한상혁은 손님 없는 가게에 학연과 마주 보고 앉았다. 형이 이상하다. 살찐다며, 몸이 둔해진다며 밀가루 음식은 손도 대지 않던 사람이 제 발로 찾아왔다니. 분명히 무슨 일이 있다. 설마 팀에서 퇴출이라도 당했나. 표정은 말도 못 걸 정도로 심각한데.
"라면, 안 줘? 배고픈데."
"아, 기다려요 형."
한상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매니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나 저 한 시간만 빼주시면 안돼요? 매니저는 한상혁의 표정을 보고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도 없고, 몰릴 시간도 아니니까 상관없어. 한상혁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작은 냄비 안에 물을 넣었다. 일단 먹이고 무슨 일인지 차근차근 들어야 할 것 같다. 부디 제가 생각하는 나쁜 일만 아니였으면 좋겠다고, 한상혁은 생각했다. 학연은 젓가락을 예쁘게 잡고 미리 나온 김치 한 조각을 먹었다. 맵다. 혀를 내밀고 물을 가득 마셨다. 문자가 왔다.
[답 안 해 줘도 계속 할 겁니다.]
생긴 건 까칠하고 도도하게 생겼는데 하는 짓은 영 딴판이다. 학연은 핸드폰을 덮었다. 라면을 들고 오는 한상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렇게 굳어져 버리면 말을 못하겠는데. 학연은 젓가락을 든 손이 무거워져 손을 크게 오므리다 펴고 다시 고쳐 잡았다. 잘 먹겠습니다. 작은 빈 그릇에 조금 덜어 호호 불었다. 뿌연 연기라 푸스스 나오다 이내 사라진다. 후루룩 한 입 가득 담고 오물오물 씹었다. 몇 년 만에 먹는 라면이던가, 고작 라면 하나에 우울해진다. 생각하던 학연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울어요?"
"아니 조금 맵네."
이내 코를 훌쩍이며 라면을 묵묵히 다 먹었다. 한상혁은 학연의 먹는 모습을 턱을 괴며 지켜보았다. 오늘따라 둘은 말이 없다. 평소 자신을 친동생처럼 끔찍이도 생각하는 학연의 모습이 당연했는데 오늘은 자신이 어깨를 감싸줘야 할 것 같아 일단 기다렸다. 학연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일단 가만히 있었다. 학연은 물을 가득 마셨다. 맵고, 맛있네. 학연은 자연스레 두 손을 모아 가지런히 두었다. 고개를 한 번 숙이고 한상혁의 눈을 보았다. 이년 뒤면 상혁이가 몇 살이지?
"이년 뒤면 이십대 중반이 되겠네요."
"그렇구나."
한상혁은 불안했다. 왜 그렇게 불안하게 자신을 처다 보는지. 학연은 물 컵을 이리저리 흔들다 말했다. 상혁아 나 내 후년에 죽을지도 모른데. 뭔 소리에요.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 학연은 담담하게 뒷말을 전했다. 글쎄 몸이 이상해서 병원에 갔더니 암이래. 이미 퍼져있다고. 운이 더럽게 없으면 반년이고, 운이 좋으면 이년까지 살 수 있다네. 나는 운이 좋으니까 이년 넘게 살 거야, 그치? 우리 상혁이 대학졸업하고 취직 할 때 까지는 있어야 할 텐데. 내가 빨리 가면 너 외롭잖아. 말을 하는 동안 학연은 한상혁의 눈을 바라 볼 수가 없었다. 죄책감도 아닌, 미안함도 아닌 어떠한 감정으로 정의 할 수 없는 감정이 자꾸만 학연을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아니, 형, 잠깐만요."
한상혁은 학연의 말을 잘랐다. 양 손바닥에 얼굴을 가리고 숨을 차근차근 쉰다. 머리속에서 정리 하는 중일 것이다. 한상혁의 오래 된 습관 중 하나. 이내 손을 내렸다. 한상혁의 눈도 흔들리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자신 주변에 죽은 사람이 있던가. 추석 설날에만 만나던 할머니, 죽기 직전 자신의 손을 꼭 잡아준 할아버지, 사고로 인해 죽은 사촌형. 그다지 많지도 적지도 않은 수에 다시 생각했다. 내가 생각한 사람들 사이에 자신의 첫사랑이자 멘토인 학연이 껴있다. 소름이 돋았다. 이건 아니다. 한상혁은 애써 웃어넘기는 학연을 보았다.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려. 학연은 잘 먹었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상혁도 덩달아 일어났다. 학연의 손목을 잡았다. 학연은 뒤를 돌아 상혁을 보았다.
"평소처럼 해줘. 불쌍하다거나 그런 모습, 보여주지 말아주라."
"그런 거 아니에요. 형."
그냥, 어. 그냥. 나중에 영화, 보자 구요. 조심히 가요. 바보처럼 빙판길에 넘어지지 말고. 그래, 영화보자. 갈께. 카운터에서 계산을 금방 끝내고 난 뒤 학연은 밖으로 나갔다. 한상혁은 학연이 먹던 그릇들을 치웠다. 자꾸만 삐긋거리는 손에 행주를 꽉 쥐었다. 하얀 주먹의 뼈들이 도드라지게 나왔다. 조금씩 붉어지다, 힘을 풀었다. 행주를 놓쳤다. 꿈일까. 티내지 않던 감정들이 조금씩 나왔다. 서투른 감정이 차마 곱게 나오지 못할 것 같아 학연의 말을 들었을 때처럼 양 손바닥에 얼굴을 가렸다. 정리되지 못하는 감정에 한상혁은 그저 가만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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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놀랐을 한상혁에게 미안하다. 아직 아이에게 커다란 물음표를 던진 것이 아닐까. 학연은 생각하다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꼭 해야 할 일이였다. 갑자기 사라진다는 느낌을 상혁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다. 학연은 아픈 배를 쓰다듬으며 오늘은 집에 가야 겠다 생각한다. 집으로 가는 길은 참 따듯하다. 기분 좋은 햇빛, 저번 달보다 가벼운 옷차림, 축축한 느낌의 길바닥. 이 모든 것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간다. 아픈 배를 꽉 잡았다. 집에 도착해 무작정 침대에 누웠다. 차가운 이불 안이 빨리 따듯해지길 학연은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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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택운은 매일 문자 한 통씩 차학연에게 보냈다. 밥은 먹었는지, 잠은 잘 잤는지, 꿈은 꿨는지, 어디인지, 뭐하는지. 차학연이 일주일 만에 답장을 보냈다. 안 지쳐요? 처음 받은 문자가 물음표였다. 정택운은 답을 했다. 네, 안 지치는데 심심하네요. 뭐지 이 또라이는. 학연은 곰곰히 생각하다 문자를 보냈다. 놀러 가도 되요? 소파에 길게 누워있던 정택운은 화들짝 일어났다. 청소해야지, 청소. 이홍빈 걸레 빨아와! 정택운은 침착하게 답을 했다.
[학연씨는 언제든지 놀러 와도 되요.]
받은 문자에 차학연은 발가락을 꼼지락 거렸다. 단어들이 오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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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연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약한 종소리가 들리며 닫은 문에서 여운이 느껴졌다. 정택운은 소파에 앉아 학연을 반겼고, 이홍빈은 녹차 드릴게요, 말하고 검은 커텐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 촬영이 있었는지 하얀 벽이 눈이 부셨다. 검은 장비들 덕분인지, 때문인지 스튜디오의 분위기는 단조롭고 깔끔했다. 소파에 앉은 학연은 정택운을 바라보았다. 저 사람을 보고 있자니, 솔직해지는 기분에 아마 자신이 성당에 다니고 성지순례를 한다면 이런 기분일까, 생각했다.
“얼마큼 그렸어요?”
“아, 아직.”
이재환의 답이 늦는다. 분명 바로 해줄 것 같았는데. 이재환은 거절을 할, 그렇다고 하겠다는 언질조차 성미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 그려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의 복병이 생겼다. 왜 그리 머뭇거리는지. 벚꽃이 피기 전, 눈이 왔었다. 눈이 오기 전 비도 왔었다. 비를 맞고 눈을 맞은 벚꽃 아래의 학연을 보고 어찌 재환이 거절을 할까 생각했다. 아직 이라는 대답에 학연은 느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시작 일 것 같은 패기는 어디로 갔을까. 이홍빈이 녹차를 가지고 나왔다. 미안해요, 좀 늦었죠?
“국화차에요.”
“아, 고마워요.”
학연은 입술을 축였다. 저를 그리는 사람은 누구에요? 학연이 물었다. 정택운은 한 모금 남긴 커피를 입에 털고 말했다. 그림 전공하는 친구인데, 아직 답이 없네요. 잘 그려요. 정택운이 담담하게 말을 하니 조용했다. 분위기가 어색한 이홍빈이 말을 꺼냈다. 아마 그 형 고민하고 있을 거예요. 그 사진 시작하기 어려울 테니까. 학연씨는 느껴져요? 그 분위기? 이홍빈은 말을 주저리 이어갔다. 차마 묘한 사진의 느낌이 아마 어디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그런 사진이라며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말을 뱉었다. 문에 달린 종소리가 들렸다.
“손님 있네, 내일 올까?”
타이밍이 딱 맞았다. 이재환이 이홍빈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정택운이 이재환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대답은 안하고 왜 왔어. 까칠한 반응에 이홍빈이 어서 앉으라며 생글 웃었다. 이재환은 아무것도 모른 채 학연의 옆에 앉았다. 손님 있는데 내가 앉아도 돼? 둘에게 묻는 말에 이홍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재환이 형, 옆에 분이 그 분이야. 사진.
“아,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재환은 반갑다며 학연의 손을 잡았다. 그래서 그릴 거야, 안 그릴 거야.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정택운의 말에 이재환은 대답하러 온 것이라며 가방에서 사진을 꺼냈다. 이홍빈이 말한 것처럼 어디부터 손을 가져가야 할지 막막하다며 정택운에게 보여주었다. 형은 어때? 뭘 더 강조했으면 좋겠어? 벚꽃의 아름다움과 어울리지 않는 이 사람? 맑은 날씨에 비해 바람이 많이 부는 느낌의 흩날리는 꽃잎? 아니면 이 사람의 모든 분위기? 이거 상의하려고 왔지. 내가 누구 말인데 거절을 할까.
“가장 대조되게 그려주세요.”
정택운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고, 대답은 학연이 했다. 왜요? 재환이 물었다. 그냥, 그냥요. 그렇게 해야 예쁠 것 같아서요. 생명이 가득한 벚꽃 옆 우울하기 짝이 없는 그런 느낌으로. 사진처럼 똑같이요. 학연은 미미하게 웃었다. 이재환이 고개를 끄덕이며 정택운을 바라보았다. 정택운도 고개를 끄덕였다. 학연씨가 원한다면 그렇게 해야지. 학연은 고맙다며 말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가볼게요.”
“같이 저녁이라도 먹고 가요.”
정택운이 하려던 말을 이홍빈이 먼저 꺼냈다. 학연은 괜찮다며 가방을 고쳐 매고 인사를 했다. 종종 놀러올게요. 그림 예쁘게 그려주세요. 종소리가 울리고 학연이 나갔다. 이홍빈은 아쉬운 듯 한숨을 쉬었다. 내가 한숨 쉴 걸 왜 네가 쉬고 있냐. 잘 좀 해봐요 형, 맘에 든다며.
“나 저 사람 본 적 있어.”
이재환의 말에 정택운과 이홍빈이 고개를 돌렸다. 어디서 봤는데? 정택운이 묻자 이재환은 왜 모르냐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형 저 사람 몰라요? 유명한데. 저번에 같이 공연도 봤잖아요. 정택운의 표정이 바보처럼 맹해져있다. 이홍빈은 낄낄거리며 비웃었다. 형은 그럼 사진 찍었을 때가 처음이 아니였구나. 형은 핫초코 맞죠? 응! 빨리 줘! 정택운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제 자신이 좀 바보같다 생각했다.
아 |
막혔다. 어떡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