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속 쓰려 죽겠다. "
나에게는 아주 어릴 적부터 함께 지내온 남사친이 존재한다. 그러니까, 속된 말로 엄마 친구 아들이라는 엄친아가 바로 제 남사친이다, 이 말씀. 같은 동네에서 지내 같은 초, 중, 고를 나온 후에도 운 좋게 같은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비록 과는 달랐지만, 건물도 쌍둥이처럼 바로 옆에 붙어있어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는 그런 사이라는 말이다. 어렸을 적부터 지내온 탓에 볼 꼴, 못 볼 꼴 다 보고 지낸 우리였지만 제게 꽤나 늦게 찾아온 고1 사춘기 덕에 나는 지금, 엄친아이자 남사친인 박우진을 3년째 짝사랑 중이었다.
그리고 지금, 옆에서 숙취해소제를 손에 쥐어 주는 이 놈이 바로 그 놈 되시겠다.
" 그러게 누가 술을 그렇게 퍼마시랬냐. "
" 선배들이 멕이는 걸 안 먹냐, 그럼... "
잔소리, 잔소리. 이렇게 간혹 과음을 한 저를 보며 잔소리를 뱉어대는 놈의 모습이 싫지 않았다. 그러니까, 표현하자면... 좋은 편에 속한다, 이거지. 그렇게 제 옆에서 숙취에 좋다 소문이 난 것들을 잔뜩 제게 쥐어 주는 놈과 함께 하는 등교는 언제나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다. 캠퍼스에 들어서면서도 잔소리를 멈추지 않던 그를 뒤로 한 채 바삐 걸음을 옮겼다.
" 야, 오늘 꼭 해장 되는 걸로 밥 먹어. "
" 알았다구, 빨리 수업 가라? "
" 이따 검사한다. "
어어, 알겠어. 잘 가! 여즉 제게 붙은 의심의 눈초리를 떼어내지 않는 놈을 밉지 않게 흘기다 곧장 뒤로 돌아 제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뒤에서 아직 절 보고 있을 놈을 향해 손을 두어 번 흔들어 주는 행동도 잊지 않고.
그대로 들어선 강의실에는 평소와 다르게 삼삼오오 모여 들뜬 듯 목소리를 높이는 동기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 사이로 다가가자 그제야 저를 발견한 듯 왔냐며 손을 흔들어 주는 동기들을 여럿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흥미롭게 떠들어댔던 대화 주제는.
ㅡ 야, ㅇㅇ야. 우리 실음과랑 과팅하기로 했는데 너도 나갈래?
아, 실음과면 박우진 있는 과잖아. 그제야 제 의문을 풀고는 절 향해 묻는 동기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나 과팅에 관심 없는 거 알잖아.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두어 번 저으니 제게 묻던 동기도 이내 흥미를 잃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 그때 제가 박우진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는 동기 하나가 저 들으란 듯이 하는 말이.
ㅡ 박우진 과팅 나온다던데, ㅇㅇㅇ 너 알고 있었냐?
...뭐? 누가 어딜 나간다고? 제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 ㅡ 그 놈 시점
" 야, 박우진. "
나에게는 아주 어릴 적부터 함께 지내온 여사친이 존재한다. 그러니까, 속된 말로 엄마 친구 딸이라는 엄친딸이 바로 제 여사친이다, 이 말씀. 같은 동네에서 지내 같은 초, 중, 고를 나온 후에도 운 좋게 같은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비록 과는 달랐지만, 건물도 쌍둥이처럼 바로 옆에 붙어있어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는 그런 사이라는 말이다. 어렸을 적부터 지내온 탓에 볼 꼴, 못 볼 꼴 다 보고 지낸 우리였지만 그 모습들도 제 눈에는 예뻤던 덕에 나는 지금, 엄친딸이자 여사친인 ㅇㅇㅇ를 5년째 짝사랑 중이었다.
" 어, 너 근데 해장했냐? "
"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
그럼 뭐, 뭐가 더 중요한데. 지금 제게 중요한 것이라곤 네가 밥을 처먹었나, 안 처먹었나. 받고 메뉴가 해장이 될 만한 메뉴인가, 아닌가.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어? 이런 제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또 저는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제 나름대로 미간을 구기며 절 얄밉게 흘기는 너였다.
" 너... "
" 어, 나 뭐. "
얘가 답지 않게 답답하게 구네. 평소답지 않은 모습이 답답해 결국 가던 걸음을 세웠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돌려 널 바라보자, 자신 또한 절 따라 그대로 그 자리에 바로 서는 행동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더라. 아, 근데 웃을 때가 아니지. 그래서 왜 그러는 거냐고. 제 독촉에도 몇 번이나 더 주저하던 네가 이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말에.
" ...뭐? "
" 너, 그... 과팅 나가냐고. "
아, 씨발... 이모, 이모는 대체 얠 왜 이렇게 귀엽게 낳으신 건데...
" 아, 그게... 전 유아교육과 17학번 ㅇㅇㅇ... "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이냐, 하면. 겨우 용기란 용기는 다 끌어모아 놈에게 과팅에 나가냐 물었을 때, 무엇이 놈의 구미를 당긴 건지 입꼬리를 당기며 여유롭게 대답하는 모양이 퍽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겠지. 어, 나가는데. 더 이상의 미사여구 없이 다섯 음절로 깔끔하게 떨어진 그 대답은 제 심기를 거슬리게 만들기 충분했고, 그날 밤 저는 제게 과팅을 권유했던 동기에게 연락했다.
나 그 과팅 나가겠다, 고.
그 결과 저는 지금 제 입맛에 맞지 않는 장소와, 인물들 앞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중에서 재밌다는 듯 유한 웃음을 띈 박우진까지도, 지금 제 입맛에 들어맞는 것은 그 무엇 하나 존재하지 않았다. 아, 씨발. ㅇㅇㅇ 미쳤냐? 너 제정신이야? 대체 어쩌자고 여길 나왔는데? 자책을 하면 할수록 제 기분은 더욱 바닥으로 기어들어감을 깨달음과 동시에 저는 박우진에게 고정했던 시선도 거둔 채 제 앞에 놓인 스무디의 빨대만 씹었다. 빨대야, 미안. 네가 내 빨대인 걸 원망하렴. 그렇게 한참이나 애꿎은 빨대를 물고 빨았을까. 어느덧 무르익는 분위기에 다들 둘씩 찢어지자고 의견을 모았다.
" 야, 벌써? "
ㅡ 뭐가 벌써야, 다들 대충 짝 지어진 것 같은데.
그러니까, 그게... 안 된다고, 기지배야... 땜빵을 채운다는 핑계로 나온 동기의 친구가 노리는 게 박우진 같다, 이 말이다. 아까부터 은근슬쩍 추파 아닌 추파를 던져가며 노골적인 시선을 보내는 게... 저 시선을 눈치 빠른 놈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꽤나 미소를 띄는 놈의 표정을 봐도, 그 계집이 맘에 안 들지는 않는 것 같았다. 이 꼴을 보자고 자진해서 과팅을 나온 게 아니었는데.
ㅡ 저기, 난...
그래, 그래. 그렇게 떠나가는 거지. 마음이 급한 듯 제 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누가 봐도 박우진을 부를 듯한 여자아이가 입을 열었다. 시끌벅적하던 테이블도 조용해짐과 더불어 모두가 여자아이에게 시선을 던진 그 순간, 유일하게 제게 꽂힌 시선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제가 수년 간 질리도록 봤던 놈의 것이 분명했고. 여자아이가 말의 서두를 뗀 그 순간 치고 들어오는 목소리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 또한, 제가 수년 간 질리도록 들어왔던 놈의 것이 분명했다.
" 난 ㅇㅇㅇ, 얘도 나 맘에 든다고 지금 눈빛 장난 아니다, 야. "
연놈은 연애를 한다, 해, 하자, 무조건, 어?
ㅡ 저번 편 댓글, 추천, 스크랩 등 관심 모두모두 감사합니다. ♡
ㅡ 저 약간 글 적는 데 있어서 변태인 것 같아요... 매번 이렇게 애매하게 끝내는 게 넘 좋네요...
ㅡ 원하시는 단편 소재와 주인공이 있으시다면 언제나 댓글로 신청 바랍니다. 짧게만 적어 주셔도 스토리 생각나는 대로 적어올게요.
ㅡ 댓글 달고 포인트 다시 받아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