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은 소심했다. 각 동네에서 삼삼오오 모여든 고등학교에 처음으로 진학했을 때, 그러니까 아이들은 서로에 대한 관심이 넘치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겠다. 남학생들은 예쁜 여학생을, 여학생들은 잘생긴 남학생을 찾아다니던 그 시기쯤. 학교에서 잘생긴 남학생을 꼽으라 하면 다섯손가락 안에는 꼭 들던 남학생이었다, 놈은. 그랬던 놈은 자연스레 여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같은 반이 아닌 제가 놈의 존재를 알게 된 데에도 다 그따위 것의 이유가 있었다, 뭐 이런 말이다.
그런 놈이 여학생들의 시야 밖으로 나서게 된 것에는 큰 이유가 없었다. 그냥 놈이 소심이 그 자체라는 것, 그 이유 하나였다. 퍽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 탓인지, 태초부터 소심한 탓인지. 놈은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제한돼 있었다. 어려서부터 알고 지내던 몇 명이 전부인 것도 같았다. 그런 놈에게 폭발적으로 다가오는 여학생들의 관심과, 눈길과, 고백은 놈이 감당하기에 벅찼을 것이다. 알게 모르게 놈은 철벽남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이내 놈의 소심한 성격 탓에 여학생들의 관심에 걸맞는 답을 주지 못하는 점이 여학생들이 만들어낸 강력한 불씨를 단숨에 끄게 만들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난 지금, 저는 그런 소심한 놈과 같은 반이 되었다.
" 용국아, 너 국사 필기했어? "
" ...어, 어? 그, 아니... 그, 미안. "
또다, 또야. 얼떨결에 놈과 짝지가 된 탓에 저는 알게 모르게 놈에게 말을 거는 일이 부쩍 많아졌는데, 그런 저의 기대를 저버리듯 항상 피하고만 마는 놈이었다. 아, 염병... 김용국이 소심하다는 얘기는 한두 번 들은 게 아니었지만 이건 심하잖아. 아니, 무슨 말을 거는 족족 미안하단 소리냐고. 급한 마음에 저 또한 자각하지 못한 채 놈에게 국사 필기를 했냐는 단순한 질문 하나를 던졌을 뿐인데 안 그래도 표정이 좋지 않던 놈은 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미안하단 한 마디와 함께 자리를 떴다. 그리고 또 한 번 제 앞자리 친구에게 던져진 똑같은 질문.
야, 쟤 나 진짜 싫어한대?
그렇게 김용국과 제 사이에는 별다른 진전 없이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꼬박 흘렀다. 그러니까, 별다른 진전이 필요한 사이는 아니라지만... 이건 씨팔, 남보다도 못한 사이잖아. 아무튼 일주일 내내 놈과 말 한 마디 섞으려 발악이란 발악은 다 해 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이 말씀. 가끔 저렇게 자신의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떠들어대는 모습을 볼 때면 영락없는 남고딩인데, 왜, 하필, 내 앞에서만. 2학년이 되어서는 그나마 가리던 낯이 허물어 여학생들과도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지내는 놈의 모습을 봤는데, 그 낯이 제 앞에만 서면 다시금 철갑을 두른다.
그리고 자신의 친구들과 수다를 떨던 놈의 무리에서 속된 말로 가장 깝치고 다닌다는 남학생 하나가 나온 그때.
ㅡ 야, 김용국 좋아하는 애 있대! 대박, 대박.
지 친구가 좋아하는 애 있다는 걸 저렇게 직접 털어대는구나. 교실은 물이라도 끼얹은 듯 정적이 흘렀다. 근데 쟤가 좋아하는 애가 있다고? 누굴까, 궁금하다.
ㅡ 이번에 질문 내 차례 맞지?
시험이 끝났다. 대개 고사 하나가 끝난 고등학교의 교실이 그렇듯, 우리 반도 별반 다를 건 없었다. 저희를 컨트롤 하기 힘드셨던 선생님은 여지껏 수도 없이 봤던 영화 한 편을 스크린에 띄워 주셨고, 그 영화가 지루했던 아이들은 삼삼오오 제 짝들을 찾아갔다. 그리고 오늘은, 그런 저들이 모여 진실게임을 하던 참이었지. 이런 자리에는 끼지 않던 놈이 오늘은 웬일인지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컴퓨터용 사인펜 하나를 돌려가며 질문을 주고받던 그 시점, 장난기가 꽤나 심한 아이가 얄궂은 미소를 띄며 말했다. 내 차례 맞지?
그리고 그가 던진 질문은 바로 놈에게 향했다.
ㅡ 야, 김용국.
" ...어, 왜. "
ㅡ 너 좋아하는 사람 있다며, 그거 누구냐?
와, 수위 세다. 여즉 가벼운 농을 섞은 질문만을 던져왔던 판을 뒤엎은 질문이었다. 고로 그 파장은 전보다 훨씬 커질 수밖에 없었고. 게임에 참여하지 않은 아이들마저도 저희를 한 번 뒤돌아 볼 만큼 함성은 컸고, 그 사이에서 김용국은 제 귀를 붉게 물들인 채 가만히 저를 응시했다. 그러니까, 나를... 왜? 큰 환호성과 함께 무리 안에서 조용함을 유지하는 건 놈, 그러니까 김용국과 저 둘뿐이었다.
ㅡ 그래, 답 좀 들어보자. 누군데?
혹시나가 역시나. 아이들은 장난을 그쯤에서 멈출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니까, 질문이 끝이 아닌 답을 들어냈을 시에만 이 장난을 끝낼 생각이다, 뭐 이런 뜻이다. 제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 곧바로 놈에게로 돌아간 타겟은 더 붉어지지 않을 것만 같던 놈의 귀를 붉게 만들었다.
" 아, 그니까... "
ㅡ 야, 설마 대답 못하는 거 아니지?
야, 너 설마... 우리 고 대표 소심이로 남고 졸업할 건 아니지? 아, 김용국. 진짜 그러는 거 아니다, 어? 아이들은 낄낄댔고, 놈은 그럴 수록 더욱 위축돼가는 것 같았다. 놈과의 진득한 눈맞춤이 얼마간 이어졌을까, 이건 좀 심하다 싶어 그만 놀리라고 한 마디 하려던 찰나 놈이 입을 열었다.
" 나, 그... "
ㅡ ...
" ㅇㅇㅇ... 좋아해. "
뭐? 그 소심한 김용국이 좋아하는 게 나라고? 말을 끝마친 놈은 금방이라도 불타오를 듯 온몸을 붉게 물들여갔다.
# Epilogue ㅡ 시점의 전환
그러니까, 그녀를 처음 본 게... 언제더라. 시간을 거슬러 고등학교 입학식이었던 것 같다. 워낙 소심한 성격 탓에 새로운 학교에 진학하면서 따르는 것은 설렘보단 두려움이었다. 그나마 제가 믿고 의지하는 친구 몇이 같은 학교에 입학하는 게 다행인 걸까, 하고 안심했었지. 그리고 그렇게 떨리는 마음 반, 두려운 마음 반을 가지고 향한 입학식에서 저는.
" 야, 빨리 와라? 아, 죽는다 진짜? "
그녀에게, 그러니까... 너에게 첫눈에 반했다.
널 보기 전 첫눈에 반한다는 속설은 제게 통하지 않는 것이었고, 고로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고 굳게 믿어왔었다. 첫눈에 반했다며 제게 고백해오는 여학생들을 여럿 봤던 게 그 이유이기도 했고. 아무튼, 그렇게 믿지 않았던 첫눈에 반한다는 게 무엇인지 느낀 저는 그날 너에게 빠지고 말았다. 아, 씨팔... 예쁘다.
그렇게 일 년 간의 지고지순한 혼자만의 짝사랑은 진행 중이었다. 너와 같은 반이 되었을 때도, 너와 짝이 되었을 때도 전 기쁘다 못해 그 자리에서 무릎이라도 꿇고 신에게 감사를 올리고 싶었다. 그래, 그만큼 좋았다 이거지. 허나 제 소심한, 그러니까 네 앞에만 서면 더욱 소심해지는 제 성격 탓에 저는 너와의 진전을 전혀 만들어내지 못했다. 김용국 너 진짜 바보냐?
ㅡ 너 좋아하는 사람 있다며, 그거 누구냐?
발단이었다. 평소에도 제가 좋아하는 그 여학생을 무척이나 궁금해하던 친구 한 놈이 아이들이 모여있는 틈, 그러니까 너도 있는 그 틈에서 제게 그딴 질문을 던져왔다. 무의식적으로 네게 시선을 옮기니 저를 바라보고 있었던지 바로 마주치는 시선이었다. 그리고 어쩐지, 오늘은 피하고 싶지 않았다. 어, 그러니까... 말할까, 말까. 말할까, 말까. 길지 않은 그 시간을 저는 온전히 그 두 가지를 두고 고민하는 데 썼다. 그 고민의 끝에 결국 저는 제 답을 들은 네 반응이 궁금해 아이들이 원하는 답을 내주었고.
" ... "
그리고 날 바라보는 놀란 네 시선은... 존나게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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