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는 썸남이 존재한다. 그러니까... 우리 썸 타는 거 맞지? 라고 묻고 싶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줄타기라도 하듯 썸인 듯, 썸이 아닌 듯한 사이를 유지해온 둘이었다. 그 사이 제 썸이라는 놈은 교내에서 빨간 머리 걔? 하면 누구나 그 이름을 읊을 정도로 유명한 위인이 다 됐고.
" 또야? "
아, 진짜. 내가 그러게 진즉 염색하라고 했지. 등교하기가 무섭게 주임에게 귓바퀴를 잡힌 놈이 저를 향해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웃어 보였다. 실없이 터진 웃음도 오늘따라 제 눈에는 마음에 들지 않아 놈을 향해 삐딱한 태도를 보였다. 아무리 미워도 제 새끼는 제 새끼라고, 놈을 두고 먼저 갈 수는 없어 주임과 놈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를 잠깐. 2분 남짓의 훈계가 끝난 것인지 이내 크게 꾸벅이며 제게 달려오는 놈에게 한 번 더 타박을 뱉어냈다.
" 아, 그러게 염색 좀 하라니까. "
" 또 그 소리다, 또. "
그러니까, 놈의 머리는, 빨갛다 못해 새빨갛다. 저게 고등학생이 맞나, 싶을 정도로 붉게 물든 머리를 자랑스레 내놓고 다니는 놈은, 그러니까... 교복을 입고, 학교를 등교하는 것을 보면 고등학생이 맞겠지. 시선을 사로잡는 빨간 머리를 제하고는 누가 봐도 영락없는 여느 학생들과 다를 게 없는 놈이었다. 그렇다고 할 사고도 크게 친 적 없었고, 공부도 잘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예 못하는 편도 아니었으니. 사교성 좋고, 인기 많은. 딱 그만큼의, 그 시기의 다른 학생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학생이다, 이 소리다.
그 태양초 고추장 같은 머리만 빼면.
" 이 머리는, 어? 오빠의 그... 뭐냐? 시그니처? 그래, 그런 거라니까? "
예, 어련하시겠어요. 옆에서 재잘대며 자신의 빨간 머리에 대한 자부심을 늘어놓는 놈을 제쳐두고 반으로 들어섰다. 그러니까, 저는... 유독 놈의 튀고 튀는 빨간 머리가 싫었다. 첫째, 매번 불려가는 학생부. 둘째, 매 등교마다 잡히는 그의 귓바퀴. 셋째, 매 교시 들어오는 담당 과목 선생님들의 잔소리까지. 게다가 놈은 뿌리가 나오면 나오는 대로 같은 색으로 염색을 하는 것인지 항상 빨간 머리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놈은 항상 그랬다. 항상 이렇게, 능구렁이처럼, 요리저리 잘도 피해 제 말도 듣지 않은 채 이 머리를 유지했었지.
ㅡ 어? 임영민이랑 ㅇㅇㅇ 왔다. 야, 빨리 와봐.
" 왜, 뭔데. "
저희가 교실을 들어서기 무섭게 저희에게 달려드는 아이들 여럿이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신의 핸드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아이들 중 하나가 소리쳤다. 우리 지금 뭐 골라서 자기 이상형 얼굴 만들기 하는 중인데 너네도 할래? 야, 이거 존나 재밌어. 나 방금 강동원 생각하고 만들었는데 존나 비슷하게 나왔다니까? 시끌벅적한 아이들 틈을 비집고 들어서자 화면에는 친구가 했던 말처럼 강동원을 닮은 이미지가 있었다.
" 오, 대박. "
ㅡ 개닮았지, 그치.
엉, 좀? 그렇게 시작된 이상형 만들기는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아이들의 닦달에 얼떨결에 다음 순서로 자신의 이상형을 읊게 된 놈은 퍽 열심이었다. 집중이라도 한 듯 미간까지 구겨가며 자신의 이상형을 읊더라. 그렇게 임영민이 제 취향껏 만들어낸 이상형, 그리고 그제야 제 차례가 왔다는 듯이 ㅇㅇㅇ, 넌? 이상형 뭐냐? 하고 물어오는 친구에게 답했다. 나? 나는.
" 흑발의... 임영민? "
터져나오는 야유 속에서 저는 그저 농이라는 듯 그것을 웃으며 넘겼다. 근데 꼭 농담이라는 건 아니고, 진심도 어느 정도 섞인 게 맞다고 할 수 있겠다. 저는 흑발이 좋았고, 임영민이 좋았다. 그러니까... 그 둘을 합친 게 제 이상형이지 뭐야? 저희를 놀리듯 커져가는 목소리 틈으로 저와 놈은 눈을 맞췄다. 어깨를 한 번 으쓱거리자 제 치열까지 보이며 환하게 미소 짓는 놈이 퍽 마음에 들었다.
" 아, 연락 좆도 안 되네... "
그래, 마음에 들었지. 들었었지, 영민아. 아침에 주임에게 걸린 놈을 보며 속상했던 것만 빼면 나름 행복한 하루를 보냈던 것 같은데, 대체, 왜. 학교가 파하기가 무섭게 일이 있다며 빠르게 하교를 한 임영민은 그 이후로 4시간이나 제게 연락이 없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제 톡에 답이 없었다. 항상 일이 있어 저 혼자 하교를 할 때에도 30분에 한 번씩은 꼭 연락을 줬던 놈이었는데, 오늘은... 그게 없다고.
잔뜩 속상한 기분에 핸드폰을 뒤집어 엎어놓곤 침대에 그대로 엎드렸다. 아, 뭐냐고... 놈과의 연락 중 이렇게 연락이 안 된 일은 없어 더욱 불안했다. 그렇게 한참이나 우울함에 잠겨있을 쯤, 울리는 페이스북 알림에 뒤집었던 핸드폰을 다시금 손에 넣었다. 그리고 울린 알림을 누르니 뜨는 게시글 하나.
임영민 님이 프로필 사진을 바꾸었습니다.
사귀자 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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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거... 내 이상형 맞지? 엄마, 저 흑발의 임영민 드디어 영접했어요.
ㅡ 그래요, 임영민 흑발 영접에 드디어 미친 작가가 원래 올리려던 글은 임시저장함에 고이 내버려둔 채 쓰고 싶은 글을 써왔읍니다... 예쁘게 봐 주세요...
ㅡ 초록글, 댓글, 추천, 스크랩 모두모두 감사합니다. (--)(__) ~ 항상 빠짐없이 댓글 읽고 있으니 글에 관한 내용, 피드백 모두 자유롭게 남겨 주셔도 괜찮습니다. ㅎㅎ
ㅡ원하시는 단편 소재가 있으시다면 언제나 댓글로 신청 바랍니다. 소재를 주신다면 어울리는 주인공과... 아무튼 제 기력이 닿는 데까지 열심히 적어오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