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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짓말이죠, 그쵸? "
와, 말이 돼요? 야, 이게 말이 되냐? 임영민은 말이 없었다. 그러니까, 저와의 쇼윈도 공개연애를 함께 해야 하는 임영민은… 말이 없었다. 아니, 씨발. 사장님, 이건 아니잖아요. 그와 제 사이가 원수 아닌 원수라는 것은 소속사 내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화제였다. 그런데 그런 임영민이랑 쇼윈도 커플을 하라니…. 아아, 골이 울리는 기분에 머리를 두어 번 휘저었다. 아역배우로 데뷔해 탄탄히 입지를 다져온 지 10년 남짓,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어려울 듯한 연기는 없을 것 같았다.
" 어쩔 수 없잖냐, 어? 요새 반응 좋은 너네 연애 기사 띄우면 그게 얼마나 화제가 되겠어. "
" ……. "
" ……. "
그래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니에요? 웬일인지 굳게 입을 닫은 채 가만히 있던 그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게 할게요. 그리고 그에게서 흘러나온 대답은… 뭐? 야, 너 미쳤어? 뭘 그렇게 해? 입이 떡 벌어지는 대답에 줄곧 사장님을 향했던 시선을 그에게로 돌리니 지 팬들이 환장을 한다던 예의 퍽 다정한 웃음을 안면에 띄운 임영민이 사장님께 한 마디 덧붙였다. 저 연기 잘하는 거 아시잖아요, 사장님도.
" 야, 임영민. 너 돌았지? 미친 거 맞지? 그래, 미치고 않고서야 네가……. "
" 골 울리니까 입 다물어라. "
제 옆에서 연신 방실대던 임영민을 흡족하게 바라보던 사장님이 이내 제게도 물어왔다. ㅇㅇ야, 넌? 묘하게 뒤틀린 웃음 속에 담긴 무언의 압박에 담긴 위압감은 무어라 말할 수 없을 만큼 제 속을 울렁이게 만들었다. 예, 사장님……. 누구 발언인데 제가 감히 거절을요. 곧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제 옆에 있던 임영민과 함께 사장실을 나섰다. 나서기가 무섭게 그에게 불만 아닌 불만을 털어놓으니.
" 걸릴 생각 말고 제대로 해. "
" ……. "
" 누군 너랑 이따위 짓 하고 싶어서 하냐? "
" ……. "
" 엿같네, 진짜. "
그렇게 자신이 할 말만을 폭포수처럼 쏟아낸 임영민이 제게서 돌아섰다. 와, 저 싸가지…….
그렇게 장난이 아니라는 듯 터져나온 기사들은 연일 메스컴을 뜨겁게 달구었다. 벌써 열애설이 터진 지도 사흘, 빠르게 터져나온 소속사의 인정 기사에 연예계 화제는 모조리 저희에게로 돌려진 지 오래였다. 이쯤이면 잠잠해질 법도 한데, 어찌 된 게 저희의 열애설은 잠잠해질 틈을 보이지 않았다. 종일 실시간 검색어 1위와 2위를 나란히 차지한 제 이름과 그의 이름. 임영민, ㅇㅇㅇ, 임영민 ㅇㅇㅇ 열애. 그 세 가지 검색어는 포털사이트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고, 그만큼 저희에게 쏟아진 스포트라이트는 잠잠해질 줄을 몰랐다. 평소엔 잘만 터지는 게 남의 열애설이고, 남의 스캔들인데 왜 이번에는 안 터지냐고.
ㅡ 이번에 ㅇㅇㅇ 씨와의 열애를 당당히 밝히셨던데, 소감이 어떠세요?
아, 그게…. 무심코 틀어놓은 연예계 소식을 전해 주는 프로그램의 한 순간이었다. 언제부터 얼굴을 띄우고 있었는지 모를 임영민이 티비 화면을 통해 제 다정한 웃음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 웃음과 함께 등장한 이름이 제 이름이라는 것이 한 가지 문제라면 문제겠지. 무엇이 그리도 수줍은지 저와의 열애설에 대한 화끈한 답을 바라는 리포터의 질문에 놈은 수줍은 듯 제 입을 손으로 가리며 한참을 웃었다.
" 같은 소속사인 건 다들 아시죠? 소속사 안에서 유일한 동갑내기라 친하게 지냈는데 언젠가부터 여자로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어쩌다 보니까…. "
와, 저 새끼 연기천재 아니야? 연신 수줍은 듯 미소 짓던 그에게서 흘러나온 답변은 제게 경악을 안겨 주기 충분했다. 와, 뭐래 진짜? 저와 놈의 사이를 잘 아는 누군가라면 듣고 놀라 자빠질 발언이 아닐 수가 없었다. 뭐? 친해? 뭐? 여자로 보여? 저 새끼가 진짜. 이토록 뒤틀리는 속을 게워내고 싶은 제 마음을 알기나 할까, 티비 속 미소 짓는 그의 모습은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ㅡ 팬분들이 항상 영민 씨 다정한 눈빛에 반했다는 분들이 많은데, ㅇㅇ 씨가 정말 부럽지 않을 수가 없네요. ㅇㅇ 씨한테 한 마디 해 주시고 인터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어, ㅇㅇ야. 앞으로 무슨 일이든 함께 헤쳐나갔으면 좋겠어요. 남부럽지 않게 해 줄게. "
미친 새끼……. 생전 들어본 적 없는 퍽 다정한 목소리로 제 이름을 부르며 이내 제가 소화시키기 힘든 말들을 뱉어내는 그에게 환멸이 일어났다. 저 새끼 뭐래, 진짜? 역겹지도 않은지 꿋꿋하게 제가 할 말을 다 뱉어낸 놈은 마지막에도 예의 그 수줍은… 그러니까 가만히 보고 있기 힘들 정도의 그딴 엿같은 웃음을 카메라를 향해 뱉어냈다. 그에 그치지 않겠다는 듯 손으로 작은 하트도 만들어 보인 그의 모습에 경멸까지 일어나려는 찰나, 화면은 다음으로 돌아갔다.
" 아, 사장님…. 저 새끼 죽이고 티비에 나가는 건 어떨까요……. "
그러니까 저거 나 엿 멕이는 거 맞지? 일부러 그러는 거 맞잖아, 그치?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임영민의 태도에 그가 지나간 지 한참인 프로그램 화면을 멍하니 지켜봤다. 와, 엿을 멕여도 이렇게 가지가지로……. 어이가 없어 터져나오는 웃음에 소파에 기대 헛웃음을 터뜨리던 찰나, 울리는 핸드폰이 묘하게 기분 나빠 그 상대가 누군지 확인도 않은 채 전화를 받자마자 들리는 목소리가, 그러니까.
" 봤냐? "
" ……. "
" 잘해보자, 여자친구? "
그러니까, 나 엿 멕이는 거 맞잖아. 이 개새끼, 이 씹새끼, 이 빌어먹을 새끼.
ㅡ 그냥... 갑자기... 써보고 싶어서요... 이건 단편으로 끝내기도 뭔가 아쉽고... 다섯 편 내외로 끝낼까 생각 중인 중편 연재작입니다, 재밌게 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