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다니엘/옹성우]
LOVE CIRCLE
W.LIGHTER
"왜, 여기에 저 사람이 있는거지?"
나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처음 학교 근처에 자취할 때부터 지금까지 이 집 안에는 그 누구도 들어오지 않았다. 신성한 공간이라도 되는 것마냥 보통 자취를 하면 친구들과 같이 술도 마시고 잠도 자고 한다는데 그것들은 나에게 있어 먼 얘기와도 같았다. 과 생활도, 동아리 활동도 어디에서도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혼자서 잘만 지내왔던 공간에서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옹성우는 러그 하나만 깔아놓은 곳에서 몸을 웅크린 채로 잠들어있었다. 어제 강다니엘과 선배랑 같이 술을 마신 이후로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길래 저 선배는 여기서 저런 불쌍한 모양새로 잠을 자고 있는거지. 숙취로 인한 갈증으로 주섬주섬 일어나 주방에서 물을 마시는 와중에도 간신히 외투로 제 몸을 덮고 있는 선배의 모습은 안타까워 보였다. 내 공간에 침입한 사람은 다름아닌 남자였는데 일어난 내 모양새가 너무나 멀쩡해서 그런가 정오가 지나 오후가 되가는 시간에 만난 선배는 위협적이도, 그렇다고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왜 저렇게 자는 거야."
옷장만 열면 밑에 깔만한 이불들이 잔뜩이었는데 잘거면 좀 편하게 자지 선배의 모습은 웬만한 노숙자들도 저리가라 할 정도였다. 이불을 꺼내 외투 대신 덮어주고 머리 밑으로 베개를 천천히 넣어주자 옹성우의 미간에는 제 잠을 방해한 게 맘에 들지 않았는지 인상을 쓰고 있었다. 자꾸 인상쓰면 주름생겨요. 이전 카페에서 내 미간을 눌러오며 말하던 선배가 생각나 그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자 갑작스럽게 내 손을 잡아오는 선배가 보였다. 뭐야, 일어났으면 깨우지. 잠에서 덜 헤어나왔는지 중저음의 목소리였던 선배는 푹 잠겨있는 목을 여러번 가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일어나서 부시시한 머리를 한 꼴도 나와 똑같았거늘 잘생긴 사람은 뭘 해도 잘생겼는지 잔뜩 까치집을 세우고 있는 머리를 해도 여전히 선배는 잘생겼다. 와씨, 괜히 설레게.
"좀 더 자도 돼요. 어제 저 때문에 고생하신 것 같은데."
"알기는 아네. 너 어디가서 함부로 술마시고 그러지 마라."
"왜요, 그렇게나 진상이였나. 꼴보기 싫었어요?"
나를 욕해도 뭐라 할 말이 없을 것만 같아 뒷머리만 긁적이고 있자 별안간 내 뒷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이 느껴졌다. 아니, 내가 설레서 그래. 잠이 덜 깬 눈으로 애처럼 웃어오는 옹성우를 보자 아무리 아침이 아닌 점심 때가 다 된 시간이었지만 일어나자마자 좀 심각하게 심장이 뛰어대기 시작했다. 차라리 나를 놀리던가 욕이라도 하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답을 꺼내는 그의 모습에 아직 술이 덜 깬건지 뜨거워지는 내 볼은 몸뚱이의 주인이 나조차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저 씻, 씻고 올게요! 요란스럽게 움직이는 바람에 침대 모서리에 찍힌 무릎의 고통도 내 수치스러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절뚝거리면서 욕실의 문을 황급히 닫고 거울을 바라보자 긴 머리가 이렇게나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다행히 머리카락으로 가렸기에 망정이지 아침 댓바람부터 술주정뱅이라도 된듯이 불그죽죽한 이 얼굴을 보였다면 상상만 해도 아찔해지는 기분이었다. 찬물로 세수를 하고 그도 부족해서 샤워까지 하면서도 아까 전의 옹성우 얼굴만 생각하면 어딘가에 숨고 싶어졌다. 화장실이 이리도 편한 곳이라니, 나가면 어떤 얼굴로 마주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혹시 칫솔 있어?"
크게 심호흡을 내쉬며 문을 열자 나를 기다렸는지 바로 코 앞에 선배가 서있었다. 고작 저 말을 하려고 여기서 이러고 서있었나. 어이없게도 옹성우에 대한 생각으로 고민 아닌 고민을 하느라 아직 말리지 못한 머리카락에서 떨어지는 물기가 발 끝에 닿는 것이 느껴졌을 때 나는 너무나도 편한 자세로 우리 집에서 칫솔이나 찾고 있는 그를 보고 웃을 수가 있었다. 수치스러움 다음에 실없는 웃음이라니.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하기만 내 행동도 이상했건만 그런 나를 보며 똑같이 따라 웃는 옹성우 또한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인지라 한참 늦어버린 수업 시간이 걱정도 안될만큼 웃었던 것 같다. 욕실 서랍 안에 여분 칫솔 있을 거예요.
"근데, 우리 꼭 이러니까 신혼 부부 같다."
그치? 화장실 문을 열어젖히며 큰 소리로 말하는 선배 덕분에 머리를 말리기 위해서 들었던 드라이기를 그대로 바닥으로 내던질 뻔했다는 게 좀 문제였지만. 들어가서 얼른 씻고나 나오세요. 저 선배는 나이를 헛으로 먹은게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옹성우의 등을 밀면서 억지로 화장실로 들여보내는 내 모습이 우리 엄마의 모습을 판박으로 닮지는 않을테니까.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화장까지 꼼꼼하게 챙겨 바르는 내가 한없이 어색했어도 우리 집에 느닷없이 잠을 자고 있는 옹성우를 보았을 때는 솔직히 조금 안심했었던 것도 없지 않았다. 어떻게 따라가버린 셋의 술자리, 팀플이 끝나자마자 들려왔던 소문, 그리고 나를 보던 강다니엘의 시선.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는 어제였지만 멍하니 앉아있으면 분명 그에 대한 생각이 어김없이 나를 괴롭혔을 건 뻔한 레파토리였고 그것도 생각나지 않게끔 해주는 선배의 특유의 분위기는 편했다.
"선배, 우리 이따 수업 가기 전에 밥 먹고 들어가요."
그러니까, 나 답지 않게 큰 소리로 외친 내 말은 나름의 용기이자 그에 대한 보상이였다.
* * *
"왜 둘이서 같이 와?"
아침 겸 점심으로 무리해서 먹은 덕에 수업 시간에 졸지나 않을까 고민을 하고 있었을까 언제 우리 강의동에 왔는지 강다니엘은 떡하니 문 앞에, 내 앞에 서있었다. 오늘 수업 없어? 강다니엘을 마주하고 나서 처음 하는 말이 수업 없냐, 라니 참 나도 나다. 강의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앞에 서있는 다니엘을 보며 서있는 내 뒤로 느껴지는 선배의 자취로 인해 굳이 보지 않아도 다니엘의 말투는 곱게 나가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마가 끼인 것도 아니고 내가 가는 길에는 꼭 두 사람이 존재했고 그 둘은 사이가 매우 엄청 나빠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서로 말을 이어나가는 것이 알게 모르게 사이가 좋나, 라고 의심까지 들게 했지만서도.
"어제부터 계속 같이 있었던 거야?"
"그걸 네가 왜 신경 써."
아니, 또 왜 그렇게 말을 하냐고. 두 사람 사이에서 서있는 나는 이번 학기에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영문학과에서 우리 학번까지 영향을 끼칠만큼 얼굴로 유명한 옹성우와 같은 이유로 건축학과 뿐만이 아니라 학교 내에서 다 알고 있을 강다니엘 사이에 있는 사람이 나였으니까 당연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수업이 시작하기 전이라서 가뜩이나 많은 학생들이 있는 곳에서 이런 상황은 좀 너무 클리셰 돋는 거 아닌가. 되도 않는 삼각관계는 차라리 내가 남자라도 많이 만나보았으면 이렇게 바보같지는 않을것을 속 사정은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싸하게 만들어댔다. 내가 어제 너무 취해서 그런거야. 아무 일도 없었어. 내가 왜 지금 강다니엘에게 해명을 하고 있는 건지, 또 내 말이 뭐라고 저렇게나 죽을 듯이 옹성우를 쳐다보는 강다니엘도 그 이유를 알기에는 너무나 멀리 와버리는 것만 같았다.
"우리 수업 들어야 하니까 너는 네 갈 길이나 가라."
"아 맞다, 이거 주려고 기다렸어. 수업 잘 듣고 이따가 보자."
그리고 웬만하면 저 선배랑은 떨어져서 앉아있어, 알았지? 내 손으로 숙취에 좋다는 음료수를 쥐어주던 강다니엘은 귓속말을 웃기기 그지없는 말을 속삭였다. 누가 보면 나쁜 어른한테 잡혀가는 어린 아이라도 되는 것처럼 신신당부를 하면서 떠나는 다니엘은 가는 순간까지도 선배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내가 사리 분별도 못하는 애도 아닌데 그렇게나 걱정이 되는지, 아니면 그 때의 소문과 나를 보던 그 눈빛이 진심이었는지 구분 할 수는 없었지만 이런 챙김도 나쁘지는 않았다.
'이건 꿀이 많이 들어있어서 안 쓰니까 꼭 챙겨먹어.'
음료수 앞에 붙여져 있는 포스트잇에는 삐뚤빼뚤한 글씨체로 꼬박꼬박 써놓은 글이 꼭 강다니엘을 닮아있었다. 커피를 제외하고 모든 약과 음료, 음식에서 느껴지는 떨떠름함과 쓴 맛을 싫어하는 나를 배려하는 다니엘은 여전했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강의 신청을 어떻게 했길래 나와 시시때때로 같이 듣는 옹성우는 어느 순간부터 당연하게 된 것처럼 내 옆에 앉는 것도 변함이 없었단다. 분명 아까 귓속말로 한 다니엘의 말이 작은 소리도 아니여서 다 들었을텐데 그걸 의식해서 이러는 건지 알 수는 없었어도 왠지 모르게 다니엘에게 미안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단다.
"내가 잘생긴 건 아는데 그렇게 쳐다보면 나 좀 쑥쓰러워, ㅇㅇ야."
그래, 뭐 어쩌겠어. 내가 말을 한다고 해서 자리를 옮길 선배도 아니었는데.
Episode 7, FIN
*
주의: 과도한 음주는 몸에 해롭습니다.
안녕하세요, 라이터입니다!
어째 요즘 우리 여주가 자꾸 술을 마시는 것 같아서 작가로서 매우 미안해지는 바이지만 대학생활의 반은 술인건 정말 리얼 팩트인걸요(찡긋) 독자님들은 술 마시고 나서 숙취해소 꼭꼭 챙기세요! 간은 소중합니다!
아 참, 저는 요즘 감기를 지대로 걸려서 글을 쓸 때 멋있게 맥주 한 잔 하면서 쓰고 싶었는데 요즘은 뜨거운 물이랑 커피만 달고 살고 있답니다. 아무래도 자는 동안 덥다고 선풍기를 틀어서 그런거 같기도 하고...(긁적)
삼각관계라는 것이 이렇게나 좋을 줄이야. 요즘 러브서클 쓰면서 우리 여주(독자님)들이 좀 더 이렇게 다녤과 성우 사이에서 고생했으면 싶을 정도로 망상 속에서 글을 쓰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여러분. 이 맛에 글을 쓰는 거예요. 껄껄
저번화에 완결이 머지 않았다고 했는데 제 딴에는 멀지 않은 일인 것 같기도 해서 말한 거지만 사람일은 모르는 거잖아요.
더 길어질지, 짧아질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쓰고 싶었던 거나 러브서클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은 몽땅 넣고 갈 예정이니까 즐겁게 봐주세요*^^*
견주나 러브서클이나 한 화씩 나갈수록 제 필력이 너무 후달려서 독자님들이 재미없다고 하시면 어떡하지, 텀이 짧지 않아서 너무 지치시지는 않을까 항상 고민을 하고 있어요.
그래도 꾸준히 댓글 달아주시고 재미있게 보고 계신다는 말을 해주실 때마다 오히려 현생에 지친 제가 위로를 많이 많이 받고 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P.S. 원래대로라면 성우 생일인 8월에 들고오려고 했던 작은 글이 있는데 혹시라도 들고 오게 된다면 다들 좋아해주시면 좋겠습니닿ㅎㅎㅎ
*암호닉 신청은 최신화에서 해주세요*
암호닉 정말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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