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선잠(inst.) - 제이레빗
짝사랑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12
' 오래 기다렸어? '
' 아니. 너 딱 맞춰서 왔잖아. 원래 나는 5분 정도 일찍 와서 기다리거든. '
민현이를 만나기로 한 시간은 1시. 그리고 나는 민현이가 세번째 만남에서 했던 말을 기억하고선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이때까지의 만남과는 아주 다른 기분으로 나서는 발걸음이었다. 준비할 때도 다른 때와는 마음가짐이 달랐다. 고데기를 더 할까 말까, 어떤 섀도우를 쓸까, 볼터치는 어느 정도로 해야할까, 옷은 치마가 좋을까 원피스가 좋을까 고민을 했으니까.
' 오늘 되게 예쁘다. '
' 아... '
' 아, 좀 말하고 나니까 쑥쓰럽긴 한데... 말해주고 싶었어. 하핫. '
귀가 빨개진 황민현이 내게 했던 말을 떠올리고 화장을 하다가, 머리를 하다가, 옷을 고르다가 몇 번이나 웃음이 새어나왔는지 모르겠다. 가슴이 콩닥콩닥거리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 좋은 설렘이었다.
결국 나는 약속시간에 15분이나 먼저 도착을 했다. 만나기로 한 지하철역 앞에서 황민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을 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나의 뒤에서 나를 지켜봐왔던, 그리고 나를 항상 기다리기만 했던 민현이를 오늘까지 그렇게 하게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나 혼자 생각하는 나만의 배려였다. 민현이가 내게 늘 해주었던 그 배려.
[ 잘하고 와 김여주 화이팅 !!!!! ] 오후 12 : 48
울리는 진동에 휴대폰을 확인하니 승완이었다. 지난 새벽, 내 얘기를 들어주던 승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야 김여주가 떠나는구나... 잘가, 김여주. 시덥잖은 소리를 하는 승완이에게 그러지말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은 고마웠다. 늘 내 편이 되어주었던 승완이. 승완이에게 답장을 하니 민현이에게서 카톡이 왔다. 나 다 와가. 네글자에 마음이 일렁거렸다. 황민현은 참 신기하다. 저번에도 고작 여섯글자로 내 맘을 흔들어 놓더니.
난 이미 도착했어 ㅋㅋ
천천히 와
답을 보내자 여느 때처럼 순식간에 1이 사라졌다. 벌써? 황민현의 반응에 나도 모르게 키득거리며 웃어버렸다. 민현이가 나를 기다릴 때 이런 마음이었을까? 기분 좋은 떨림과 설렘이 온몸에 퍼지고, 언제쯤 올까 주위를 기웃거리게 되고. 수없이 나를 기다렸을 매순간의 민현이에게 하고싶은 말이 참 많았다. 집을 나서는 내내 어떤 말을 해야할지 고민을 했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생각을 했다.
" 여주야! "
그리고 그 생각은 민현이를 보자마자 공중에 흩어지듯 사라져버렸다.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날 보면서 해맑게 웃으며 뛰어오는 민현이를 보고서 나는 그저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으니까. 반갑게 인사를 할 수 밖에 없었으니까.
" 민현아, 왜 뛰어와. "
내 앞에 멈춰서서는 여전히 밝은 미소를 띄운 채로 숨을 고르는 민현이의 앞머리에 조심스레 손을 갖다댔다. 앞머리가 흐트러져서... 내가 그렇게 말하며 앞머리를 쓸자 민현이가 조금 더 허리를 숙였다. 내가 조심조심 민현이의 앞머리를 정리하고 손을 내리자 그제서야 민현이가 몸을 일으켰다. 민현이의 귀가 빨개졌다.
" 네가 기다린다고 해서 뛰어왔지. "
" 안 뛰어와도 됐는데. 얼마 안 기다렸어. 더운데 천천히 오지. "
민현이의 그 말에 내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자 민현이가 뒷머리를 쓸었다. 그래도... 민현이가 말끝을 흐렸다. 며칠간 보지 않았던 사람치고는 참으로 이상하게 다정하고, 밝은 분위기였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는 그 누구도 웃고 있지 않았는데. 자연스레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며칠간 이렇게 달라질 수 있겠냔 말이지.
" 너도 덥지? 빨리 들어가자. "
" 네가 더 더워보여, 민현아. "
" 나 걱정해주는거야? "
나란히 걸으며 걷는데 민현이가 내게 물었다. 전같았으면 당황해서 아니라고 고개를 내저었을 수도 있지만 오늘은 달랐다. 응.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하자 민현이가 하핫,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 기분 짱 좋은데? "
황민현은 역시 솔직했다. 그 솔직함에 내가 물든거란걸 너는 모르겠지, 민현아.
" 그... 여주야. 이런 얘기 갑자기 꺼내는거 미안한데. "
카페에서 주문을 하고 진동벨을 받으며 자리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조금 전까지는 밝은 표정이었던 민현이가 조금은 굳은 표정으로 날 보며 말했다. 자리에 앉아 응, 뭔데? 하고 민현이에게 묻자 민현이가 아랫입술을 혀로 쓸고는 내게 말했다.
" 어제... 알바 끝나고 조금 안 좋은 일 있었다며? "
민현이가 내게 조심스레 물었다. 아. 옹성우한테 들은거야? 내가 민현이에게 묻자 민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 이런 얘기 꺼낼 타이밍은 아니었는데 아까부터 말하고 싶어서. 민현이가 그렇게 말하고선 다시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내 이름을 불렀다.
" 여주야. "
" 응? "
" ...미안해. 내가 조금 더 빨리 갔었어야 했는데. "
민현이가 굳은 표정을 하고선 고개를 돌렸다. 내가 조금만 더 빨리 갔었으면 너 그런 일도 없었을텐데. 미안해. 민현이가 중얼거렸다. 그 모습에 불현듯 어젯밤 일이 떠올랐다. 내 손목을 잡고서 얘기를 하자던 선배와 우산을 버리고서 내게 뛰어온 옹성우의 모습. 그리고 그 순간에도 황민현을 찾고 있던 내가.
" 네가 미안할게 뭐 있어. 그래도 옹성우가 와서 별 일 없었어. "
내가 그렇게 말했지만 민현이의 표정은 풀릴 줄을 몰랐다. 옹성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딘가 모르게 싸늘해졌다는 그 말. 민현이는 저런 표정으로 학교를 다녔었던걸까. 자세히 보니 정말 민현이의 볼이 홀쭉해져 있었다. 싸한 표정으로 내 눈앞에 앉아있는 민현이가 안타까웠다. 민현이는 그 며칠동안 무슨 생각을 했던걸까. 내가 민현이의 표정을 읽고 있는데 진동벨이 울렸다. 내가 갔다올게.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서 카운터로 향했다. 어젯밤의 일이 다시 생각 났다. 민현이를 기다리던, 민현이를 생각하던 나와 옹성우에게 6년의 시간을 고백한 내가.
" 여기요. "
진동벨을 건네고 자몽에이드와 아메리카노를 들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민현이의 표정은 역시나 풀리지 않았고, 내가 민현이 앞으로 자몽에이드를 내밀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겹쳐보였다. 내게 담담히 자기 얘기를 하던 민현이의 모습이. 그 때도 민현이는 자몽에이드를 시켰고, 나는 아메리카노를 시켰었는데.
" 민현아, 무슨 생각해? "
" ...아니. 그냥. 난 진짜로 미안해서. "
" 안 미안해해도 돼. 진짜야. "
" ...그리고 그냥... 성우한테도 고마운데... 그냥 뭐라고 해야될까. "
민현이가 복잡한 표정으로 말을 하다가 자몽에이드를 마셨다. 민현이의 기분을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날 구해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어딘가 모르게 죄책감이 드는 것 같았다. 정말로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이제는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수도 없이 되뇌었던 말들. 민현이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내가 어제 옹성우에게 그랬던 것처럼 솔직하게 뱉어야하는 말들.
" 민현아. "
" ... "
" 나 정말로 괜찮아. 옹성우가 온 덕에 아무 일도 없었고, 옹성우가 온 덕에 나... 확실히 알았어. "
민현이가 내게 마음을 뱉었던 그 날처럼 카페에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민현이가 나를 쳐다보지 못하고 손을 만지작거렸다.
" 나 너한테 카톡 보냈을 때 엄청 고민하고 보낸거였거든. 네가 그렇게 나한테 마음을 말해줬는데... 혹시나 그 연락이 가벼워보이지는 않을까, 네가 화를 내는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
심장이 두근거렸다. 다시 커피를 마시고는 숨을 내뱉었다. 민현이는 여전히 날 보고 있지 않았다.
" 그리고 너한테 답이 왔을 때, 정말로 기뻤어. 잘 지내냐고 묻는데... 나 정말로 잘 못 지냈거든. 너한테 그런 말을 듣고 마음이 계속 안 좋았어. 어딘가 모르게 꽉 막힌 것 같고, 불안하고, 미안하고. "
민현이가 작게 숨을 뱉었다. 나 혼자만 민현이를 보고 있었다. 민현이도 언제나 날 이렇게 보고 있었겠지. 자신을 봐주지 않는 나를 묵묵히 보기만 했겠지. 민현이의 빨간 귀가 식을 줄을 몰랐다.
" 옹성우가 자꾸 생각은 나는데, 그래도 네 생각이 나고. 그냥... 그냥 나도 내 맘을 잘 몰랐어. 그런데 있지, 너한테 답장이 왔을 때 막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네가 갑자기 막 보고싶고 그러더라. 희한하지? "
내 말에 민현이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확실히 볼살이 빠져있었다. 항상 웃던 민현이의 얼굴이 어딘가 모르게 낯선건 기분 탓이겠지. 민현이가 한번이라도 날 저런 표정으로 날 본 적이 있었던가. 그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너는 왜 언제나 그렇게 밝게 나를 보고 있었던걸까.
" 네가 어디냐고 카톡을 보냈을 때도 엄청 떨렸어. 그러다가 어제 카페 마감할 때 팀플 같이 하는 선배가 온거야. 그러더니 할 말이 있다고 갑자기 내 손목을 잡고 끌고 가려는데... 그 때 옹성우가 온거였어. "
" ... "
" 옹성우가 날 달랜다고 너한테 연락하는걸 깜빡 잊고 있었어. 미안해. 너도 어제 비 많이 와서 기다렸을텐데. "
오늘도 하늘은 먹구름이 잔뜩 껴있었다. 우리 둘다 우산을 들고 왔고, 다른 자리의 사람들도 우산을 챙겨온게 눈에 띄었다. 민현이가 나를 보더니 생각에 잠긴듯 다시 내 눈을 피했다.
" 네가 미안해 할 필요 없어. 내가 약속 못 지킨거니까 내가 더 미안해해야 되는거고. "
" ... "
" 네가 그랬지. 내가 옹성우 좋아하는거 알고 있었다고. "
" ... "
" 민현아. "
민현이를 불렀다. 이 얘기는 눈을 보고 해주고 싶었다. 나에게 미안해하는 민현이에게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옹성우에게 향한 줄로만 알고 있던 내 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 언제부턴지 모르겠는데 "
이상하게 목이 메였다. 어젯밤에 옹성우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을 때는 분명 안 이랬는데. 오히려 홀가분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웠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속이 꽉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 나 너 좋아해. "
" ... "
내 눈을 맞추고 있던 민현이의 입술이 열렸다. 아. 민현이의 입에서 나온 작은 탄식이었다. 고백의 순간이었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이제는 옹성우가 아닌 너에게 향해있다고.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누가 누굴 좋아한다고 말할 때, 설레는 배경음악이 나온다거나 색감이 밝아진다거나, 서로가 서로를 보고 애틋하게 웃는다거나 그러는데 우리는 아니었다. 우리 옆에 있는 유리창 밖으로는 먹구름이 잔뜩 껴있는 하늘이 보였고, 카페의 음악은 잔잔하고 우울했다.
" 옹성우도 알아. 어제 말했어. 어제 옹성우가 나 진정시키려고 했을 때, 그 때 다 말했어. "
" ... "
" 너 좋아한다고. 내가... 황민현 너 좋아한다고. "
이상하게 자꾸만 목이 메였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민현이가 내게 어떻게 고백을 했는지 전혀 마음이 상상이 가질 않았다. 힘들었다. 민현이에게 내 마음을 뱉는게 절대 담담한 일이 아니란걸 느꼈다. 내가 그렇게 말을 하고 숨을 크게 뱉었다. 민현이가 얼굴을 쓸었다.
" 네가 저번에 그랬잖아. 내 뒤에 네가 서있다고. "
민현이의 표정을 풀리지 않았다. 조금은 심각해보였다. 그래도 말을 이었다. 민현이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 네가 나한테 사랑 받을 자격이 있다고 했을 때. "
" ... "
" 나한테 용기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줬을 때. "
" ... "
" 정말로 고마웠어. 근데 민현아, 있지. 사실은 너도 "
말을 하려다가 다시 목이 메였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민현이의 고백이 떠올랐다.
' 성우가 부럽다. 너한테 그런 사랑을 받는게 정말로 부러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한테 그런 사랑을 받아서. 그리고 이 말은 꼭 해주고 싶었어. 여주야, 너도 사랑 받을 가치가 충분히 있는 사람이야. 나말고도 많은 사람에게 충분히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어, 너. '
너도야. 너도 마찬가지야. 민현아.
그 말을 하려고 하는데 목이 메여 말을 하지 못했다. 민현이가 여주야, 하고 나를 부르고는 다시 손을 매만졌다. 민현이가 나를 부르는 따뜻한 목소리에 결국 눈물이 터지고야 말았다. 이럴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그냥 오늘 널 많이 좋아한다고, 늦게 깨달아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예쁜 모습으로, 밝은 표정으로 그 말을 하려고 했는데.
" 왜 울어... "
민현이가 그렇게 말하곤 작게 웃으며 내게 휴지를 건넸다. 울지마, 응? 여주야, 왜 울어. 나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민현이의 목소리에 결국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민현이가 입을 열었다.
" ...사실 말야. 어제 새벽에 성우한테 전화가 왔어. 너한테 그런 일이 있었다고. 그렇게 말하는데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어. 그 자리에 성우라도 먼저 가서 다행이다가도 내가 조금만 더 먼저 도착할걸, 내가 조금만 더 빨리 너한테 갈걸.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 "
민현이가 그렇게 말하고선 자몽에이드를 삼켰다. 민현이는 조금 전과 다르게 옅은 미소를 띄고 있었다.
" 근데 그런 생각이 드는 것 자체가 화가 났어. 그냥 너가 다행이면 되는건데,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 되는건데... 성우한테 괜한 질투심이나 느끼는게... "
" ... "
" 불안했어. 조금. 네가 나한테 연락이 왔을 때, 잘 지내지 못한다고 답을 들었을 때 왠지 모르게 희망이 생기는 기분이 들다가... 성우한테 그 얘기를 듣고나서는 역시 나는 아닌건가, 나는... "
민현이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 나는 그냥 네 뒤에 있는게 제일 잘 어울리는건가. 그런 마음이 들기도 하고. "
지난 밤, 아무렇지 않아하며 내일 보자던 민현이는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을까. 내 마음을, 내 진심을 추측할 수 밖에 없는 민현이는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을까.
" 욕심 안 내기로 했는데, 너한테 내 마음 전달한걸로 만족하기로 했는데... 사람 마음이 그렇게 안 되더라, 여주야. "
" ... "
" 나 네 생각보다 많이 착하지도 않고, 많이 좋은 사람도 아닐지도 몰라. "
" ... "
" 그냥 나는... 너를 좋아하니까 그럴 수 밖에 없었던거야. 너한테 따뜻한 위로를 전해주고, 네 뒤에서 묵묵히 너를 보는 것 밖에 할 수가 없었던거야. 너를 좋아하게 된 그 순간부터, 그런 마음이 생긴 그 순간부터 나는 뒤에 있을 수 밖에 없었어. "
민현이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옅게 웃었다. 민현이가 휴지를 들어 내 볼을 톡톡 두드려주었다. 그 손길에 내 심장이 두근거린걸 황민현은 모르겠지.
" 너한테 고백한 이후로 힘들었어. 성우를 보는 것도 괴롭고, 너랑 성우랑 잘 되는걸 빌면서도 그러지 않길 비는데 괴로웠어. "
" 민현아... "
" 그런데 네가 잘 지내지 못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조금은 기분이 좋았어. 여주야. "
민현이는 내게 말하고 있었다. 네 생각보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착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나는 그런 민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아까 전 목이 메여 해주지 못했던 말.
" 민현아, 너도... 많은 사람한테 사랑 받을 자격이 있어. 내가 아니더라도 정말로... "
" 아니. 여주야. "
민현이가 내 말을 가로챘다. 민현이의 말에 눈물이 다시 흘렀다. 민현이가 조금은 단호한 표정으로 날 보고는 떨리는 손길로 다시 내 볼을 휴지로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 너한테 "
" ... "
" 너한테만 받으면 돼, 여주야. "
그 말에 고개를 푹 숙이고야 말았다. 나는 알아버렸다. 민현이가 내게 고백을 했을 때의 마음을 나는 알아버리고야 말았다. 속에서는 너를 원한다고, 너의 옆에 서고 싶다고 그렇게 외치고 있음에도 상대방이 부담스러울까봐 괜찮은 척,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는걸 제일 잘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을. 옹성우를 생각했던 내 6년의 시간처럼, 황민현이 나를 생각한 지난 시간들은 얼마나 아팠을까. 저 말을 얼마나 하고 싶었을까.
" 나도 많이 좋아해. "
" ...민현아... "
" 꼭 말하고 싶었어.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
민현이는 자기가 생각보다 착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고, 좋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나는 안다. 황민현은 정말로 아주 많이 착하고 좋은 사람이란걸. 내 마음을 배려해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았던 지난 고백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감정보다 나를 먼저 위해주는 그 따뜻한 위로를 나는 잊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너의 그 배려와 솔직함에 내가 물들어서 옹성우를 정리할 수 있었던 거니까. 옹성우를 앓아왔던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었으니까.
" 울지마, 응? "
민현이가 그렇게 말하고 내 옆으로 다가왔다. 고개를 숙인 나를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며 내 어깨를 감싸는 민현이가 정말로 고마웠다. 앞으로 나 때문에 울 일 없게 해줄게. 민현이가 작게 속삭이고는 내 어깨를 토닥였다. 이 와중에도 미치도록 떨리는 가슴을 나는 주체할 수 없었다. 말이라는 것은 무서워서, 뱉어버리면 돌이킬 수가 없어서, 내 마음을 더 크게 만들어서.. 나는 나 자신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황민현에 미치게 반응하고 있었다.
짝사랑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결국 잔뜩 낀 먹구름은 쿠르릉 소리를 내며 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일기예보에서도 앞으로 일주일 내내 비가 올거라고 말해서 우산을 챙기긴 했다만... 내가 우산을 펴자 민현이가 자연스럽게 우산을 들었다.
" 우산 안 가져왔어? "
" 들고 왔는데, 카페에 두고 온 것 같아. "
민현이가 그렇게 말하고, 귀가 빨개졌다. 그러고보니까 아까 처음 만났을 때는 손에 우산 들고 있었던 것 같은데... 다시 가서 가지고 올까? 얼마 안 왔잖아.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귀가 잔뜩 빨개진 황민현이 나를 흘긋 내려다봤다.
" 나랑 같은 우산 쓰는게 싫어서 그래? "
민현이는 솔직하다. 나는 그 사실을 잊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훅훅 들어올 때마다 당황스러워한다. 내가 눈을 꿈뻑거리며 으응? 하고 되묻자 민현이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비가 점점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 아니, 그게 아니고... 너 비 맞을까봐. 우산도 작은데. "
" 이렇게 붙어서 가면 안 젖지. "
민현이가 내 어깨 위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민현아. 너 연애 처음 아니지. 그 말을 하려다 황민현의 빨개진 귀에, 빨개진 볼에 그냥 웃고 말았다. 제 딴엔 얼마나 용기를 낸 일이었을까. 민현이가 조심스레 올린 손이 바들바들 떨리는게 느껴졌다.
" 민현아. "
" 응? "
" 떨려? "
" 어? "
또 잊지 않고 있는 사실 하나는 나는 황민현의 솔직함에 물들었다는 것이다. 내가 민현이를 올려다보며 묻자 민현이가 이번엔 나와 눈을 맞추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푸핫, 내가 웃음을 터트리자 민현이가 아... 여주야. 웃지마. 라고 말하며 내 어깨를 더 꽉 쥐었다.
" 난 떨리는데. "
내가 그렇게 말하자 이번엔 잔뜩 긴장한 민현이가 하핫, 하고 웃었다. 황민현은 알까. 자기가 웃을 때 엄청 예쁜거. 내가 민현이 옆으로 좀 더 붙자 민현이가 날 흘금 내려다봤다.
" 이런 순간이 다 오네. "
민현이가 그렇게 말하곤 비 오니까 좋다, 그지? 하고 내게 물었다. 너 비 오는거 원래 좋아해? 내가 민현이에에 묻자 민현이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난 비 오는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하고 모순된 답을 말했다.
" 아깐 좋다며. "
" 지금은 좋지. 너랑 이렇게 우산 하나 쓰고 걸어갈 수 있으니까. "
" ...민현아. 너 예전엔 어떻게 참았어? "
내가 불쑥 묻자 민현이가 크게 웃었다. 참다니, 뭘. 민현이와 내가 이렇게 한 우산을 쓰고 걸어가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이렇게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 비에 조금씩 젖어가고 있으면서도 기분 좋은 떨림을 느낄 수 있단걸 생각이나 했을까.
" 근데 너 진짜 다시 카페 안 가도 돼? 집에 갈 때 우산 어쩌려고. "
" 너네 집까지 데려다주고 내가 우산 빌리면 되지. "
" ...노린거지, 황민현. "
황민현이 다시 웃었다. 문득 민현이를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가 생각이 났다.
' 여기 아파트야. 바로 앞 동. '
' 잡 앞까지 데려다주고 싶은데... 네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으니까. '
그랬던 네가 이제 당당히 우리집까지 데려다주게 되었다니. 새삼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현이가 그 때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면, 내가 민현이의 마음에 젖을 일이 있었을까? 널 생각하면 어떤 감정인지 몰랐던 내 마음이 아직도 혼란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지 않았을까? 나의 6년을, 한 사람을 바라보는 동안 한없이 작아졌던 나를 위로해줄 수 있었을까? 민현이에게 정말로 고마웠다. 민현이를 좋아하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현이가 나를 좋아해주어서, 누군가를 보며 아팠던 나를 위로해주어서 진심으로 감사했다. 이제는 내가 민현이에게 그 마음을 보답할 차례다. 장마 속에서 튼튼한 우산이 되어줄 차례다.
" 아, 맞아. 근데 여주 너 오늘 알바지? 혹시 어제 그 사람 또 오는거 아니야? 데리러 갈까? 아니다, 데리러 갈게. "
민현아.
" 괜찮아. 어제 옹성우가 엄청 으름장 놔서 올 일 없을걸? 그리고 오면 내가 아주 그냥... "
" 아냐. 데리러 갈게. 한시에 끝나지? 30분 전에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아니, 그냥 내가 너 알바 시작할 때부터 카페에 있을까? "
고마워.
" ...진짜? "
" 응. 진짜지. 혹시 또 그 이상한 사람 찾아오면 어떡해. "
그리고 말이야.
" ...너 오면 나야 좋지. "
" 가서 너 열심히 일하는지 계속 봐야겠다. "
나도 너를 많이...
" 헐. 야, 우리 사장님도 안 그러시는데... 너 그러면 내가 우산 안 빌려준다? "
" 나 비 맞고 가는거 봐도 괜찮아? "
" ... "
" 그러면 맞고 가지, 뭐. "
" ...민현아. 너 원래 이렇게 뻔뻔한 스타일이었어? "
" 내가 뭘? "
" 내가 너 비 맞고 가는거 보면 마음이 퍽이나 편하겠다. "
" ...그치? 아, 오늘 날씨 엄청 좋다, 여주야~ "
" ...진짜, 황민현. "
" 앞으로 계속 비 온대. 그때마다 만나면 되겠다. "
민현이가 내 어깨를 더 꼭 끌어안았다. 좋았다. 습해도, 비에 젖어도 민현이와 함께 걷는 이 길이, 민현이와 나누는 이 시덥잖은 대화가 좋았다. 그리고 민현이가... 좋았다.
민현아, 나도 너를 많이...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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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요즘 현생에 치여 ㅠㅠ 늦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8ㅅ8
그리고 또 뭔가 왠지 모를 부담감도 사알짝! 아주 쪼오오오오금!! 있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성우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후련하기도 하지만 뭔가... 민현이의 이야기를 어떻게 다시 풀어가야할까 고민도 많이 하고 그러다보니 ㅠㅠ
그래서 생각보다 늦게 오게 되었습니다 죄송해요 ㅠㅠ
제목은... 일단 혹시 정주행하실 분들을 위해 [워너원/뉴이스트/황민현] 이 아닌 기존의 [워너원/뉴이스트/옹성우/황민현]으로 달겠습니다!
초록글 감사합니다!!!!! 저는 봤어요!!!! 1페이지 맨 위에 떠있는 짝용필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어어어엉 8ㅅ8
사랑해여ㅠㅠㅠㅠㅠㅠ
정말로 남자주인공은... 네, 반전 없이 민현입니다...
사실 저번 댓글 반응을 보고도 느꼈지만 다들 무의식적으로 (?) 성우가 남주 같다고 생각하신 분이 많은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
제가 혹여나 여주의 감정을 덜 풀어낸건가 싶은 생각도 들고, 민현이에게 서사가 많이 부족했나 하는 그런 반성도 했답니다 T.T
그치만 많은 분들이 남주에 상관없이 글 자체를 재밌게, 즐겁게 읽어주시는 것 같아서 그걸로 만족해요 ㅎㅎ
제가 바빠서 답글을 많이 못 달았어요... ㅠㅠㅠ 아무래도 선착순으로 답글을 달다보니 정말로 진심이 가득가득 많이많이 묻어있는 댓글에 답을 못할 때마다 속상하고 섭섭해요 ㅠㅠㅠㅠㅠ 이 마음 알아주셨으면 해요...!
수험생인 고3, n수생분들도 많이 보이고 직장에 다니시는 분들도 많으신 것 같아요..!
그외에도 대학생분들, 고등학생분들, 많게는 중학생분들까지..!!!!!!!! 모두모두 바쁜 삶을 사시는데 제 글로나마 잠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고 해주셔서...
저... 정말 감동 받았어요 ㅠㅠㅠㅠㅠ
완결까지 정말 진짜 대박 리얼 완전 헐!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ㅎ_________ㅎ
아 그리구... 답글은 그래서... 그냥 제 마음대로... 달기로 했어요...
혹시 답글 못 받으셔도 서운해하지 마셔요,,,,,,,,,,,,,,, 제 답글,,, 정말 별 거 아닌 것...★☆
요약
1. 작가가 늦게 온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죄송합니다. 흑흑
2. 초록글!!!!!!! 진짜 사랑해요 여러분 진짜요ㅠㅠㅠ
3. 성우가 남주가 아니라서 속상하신 분들 죄송해요...ㅠ.ㅠ 번외... 생각 중입니다!히히
4. 중,고등학생분들 수험생분들 대학생분들 직장 다니시는 분들 모두모두 제 글로 잠깐이라도 행복하셨다면, 제가 더 행복할 것 같습니다 사랑해요
5. 답글... 랜덤으로 달게요... 죄송해요 제 보잘 것 없는 답글이라도 받고 싶으시다면 받고 싶다고 얘기해주세요 ㅠㅠㅠㅠㅠ 죄송함니다
암호닉은 더이상 받지 않습니다
( 완결이 코 앞이에요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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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분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
신알신 해주시는 분들,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추천 눌러주시는 분들, 읽어주시는 분들 ! 늘 감사해요 !
언제나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