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처음부터 너와 나 (inst.) - 볼빨간사춘기
짝사랑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14
(完)
" 어쩌긴 뭘 어째? 그냥 가면 되는거 아니야? "
휘핑크림이 듬뿍 올라간 허니브래드 한 조각을 우물거리며 승완이가 말했다. 전혀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을 해보인 채로 아이스 아메리카노까지 마시고선.
" ... "
" 뭐가 걱정인데? "
" ... "
" 설마... 안 간다고 하진 않았지? "
승완이가 우물거리다 말고 나를 쳐다보며 미간을 좁혔다. 야. 설마, 너...? 내가 승완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두 손을 저으며 고개까지 흔들자 승완이가 흘러내린 옆머리를 정리하며 팔짱을 꼈다.
" 하긴 우리 여주가 으른 연애는 또 첨이라. 그지? 황민현 만난 시간보다 옹성우 좋아했던 시간이 더 길었는데. "
" 아. 그 소리는 왜 하냐? 아 뜨뜨! "
" 으이구... "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식히지도 않은 채 먹은 나를 보고 승완이가 혀를 차며 눈 앞의 티슈를 건넸다. 한 마디를 덧붙이면서.
" 그리고 남자친구랑 여행가면 무슨 큰 일이 꼭 나라는 법 있냐? 어휴, 이것 봐. 또 눈 똥그래져가지고. "
승완이가 아무렇지 않게 포크로 허니브래드를 찝어 자, 이거 좀 먹고. 시켜 놓고 하나도 안 먹냐. 하고선 내게 건넸다. 지금 내가 뭐때문에 이렇게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승완이 앞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냐고? 조금 전에도 승완이 입으로 말했지만...
" 응...? 민현아, 뭐라고? "
" 여행가자. "
민현이가 해맑은 표정으로 내게 한 말이었다. 여행가자, 여주야. 천진난만한 아이같은 얼굴로 내 손을 꼭 잡고 반대편에서 내게 여행을 가자고 말한 민현이었다. 근데 그 순간 딱 드는 생각이 왜 하필이면,
' 엄~청 근사한 호텔 잡아서 놀았잖아. 둘이. '
' 우와. 짱 재밌었겠다. 침대도 엄청 푹신푹신해서 밖에서 놀다 들어오면 기분 좋았을 것 같아. '
2학기 종강을 이주일 앞둔, 그러니까 기말고사를 이주일 앞둔 어느 날 강의를 같이 듣는 동기가 그랬다. 기말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남친과 기념일이라 주말에 바다로 여행을 갔다 왔다고. 엄청 근사한 호텔을 예약해서 재밌게 놀았다고 했는데,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나랑 민현이가...
...그래본 적이 없으니까.
' 어른 연애에서 제일 재밌었는게 뭔지 아니, 친구야? '
동기와 승완이, 내가 나란히 가는데 승완이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물었다.
' 응? '
여행을 갔다왔다는 동기가 승완이와 눈을 맞추더니 나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 너처럼 밖에서 뽈뽈뽈 돌아다니고 와서 푹신한 침대에 바로 누워서 잔게 아니고 '
' ...아. '
' ...김여주 얼굴 왜 빨개지냐? '
' 야, 손승완. 나도 알건 알거든? '
동기와 승완이가 나를 보고는 그래, 우리 여주도 스물셋인데 알건 다 알지.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왜 모르겠냐고. 그럴수있지 충분히.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왜 하필 이 대화를 나누고, 민현이를 만났는데 민현이가...!
" 난 너랑 여행 가보고 싶은 곳 엄청 많아서. "
내 손을 쓰다듬으면서 저런 애기같은 얼굴로 그런 말을 하냐고!!!!!!!!!!
" 어... 어, 여행 좋지. 내 동기도 남자친구랑 갔다왔는데 엄청 좋았다더라. 하하...하하하... "
저 말은 왜 했는지 모르겠는데, 민현이는 그 애기 같은 얼굴에서 눈을 크게 뜨더니 진짜? 어디 갔다왔는데? 하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맑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리고 승완이한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거지. 민현이가 여행 가자고 그랬다고.
[ 여주야 ]
[ 공부하고 있어? ]
나도 모르게 놀라고 말았다. 기말고사 기간 내내 머릿 속 한 구석에는 민현이의 '여행가자' 라는 말이 맴돌고 있었다. 혼자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여행가자는게 꼭 승완이 말대로 뭐 큰 일을 치룬다는 그런 뜻도 아닐거고, 또 뭐... 민현이는 진짜 순수한 마음으로 일상이 아니라 잠깐 다른 곳에 가서 새로운 기분으로...
" ...미친걸까. "
네글자에 이렇게 시험기간 내내 얽매여 있는게 말이 되냐고. 민현이가 보낸 카톡을 흘긋 보고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응. 공부하고 있지. 토독토독 카톡을 보내고 다시 펜을 잡았다. 물론, 공부는 하나도 안 되지만.
[ 도서관이지? 잠깐 나올래? ]
민현이네 학교는 우리 학교보다 일주일 일찍 시험이 끝났다. 그래서 이렇게 꼬박꼬박 우리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으면 찾아오곤 한다. 도서관 로비에 서있는 민현이가 얼마나 멋있는지 다른 여자들도 쳐다보는게 조금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민현이의 문자에 금세 휴대폰을 들고 열람실을 나왔다. 역시나 오늘도 로비에서 내가 잘 어울린다고 했던 카멜코트를 입고선 커피 캐리어를 들고 있는 민현이가 보였다.
" 민현아! "
" 여주야, 엄청 빨리 나왔네? "
" 너 기다리고 있는데 빨리 나와야지 그럼. "
" 맨날 내가 너 공부하는거 방해하는거 아니야? 그리고 막, 시험기간에 편하게 입고 그래야하는데 괜히 나 때문에 이렇게 예쁘게 입고... "
" 민현아. 이게 예쁘게 입은 차림이야? "
" 아니야? 엄청 이쁜데. "
나는 전생에 덕을 엄청나게 쌓은게 분명하다고 늘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스윗하고 멋진 남자가 내 남자친구일 리가 없지. 민현이는 언제나 날 보고 예쁘다고 했다. 전날 과제 때문에 밤을 새서 퀭한 얼굴도, 피곤해서 부은 날도.
" 민현이 네가 더 예쁜데? "
" 네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걸텐데? "
" 이 수많은 시선이 누굴 향해 있는지 안 느껴져? "
" ...흠... 다 시험기간이라 커피 드시고 싶으신가. "
민현이가 장난스레 웃고는 한 쪽 팔로 내 어깨를 감쌌다. 벌써 사귄지 반년이 다 돼가는데 민현이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솔직한 것도, 잘생긴 것도, 날 좋아해주는 마음도. 아. 그리고 민현이가 내 친구들에게는 스윗황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긴 하지만... 사실은 장난기도 엄청 많고 능글맞기도 엄청 능글 맞다. 다들 몰라서 그러지.
" 이까지 오느라 힘들었지? "
" 조금? "
" 역시... 우리 민현이, 솔직해. "
민현이가 내 볼에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대주며 다시 웃었다. 이거 다 마실 때까지만 옆에 있을게. 너 공부 방해 안하게.
" 계속 있어도 되는데. "
" 너 공부 안 할거잖아. 내 얼굴 본다고. "
" 어쩔거야, 저 팩폭. "
" 솔직한게 좋다며. 네가. "
" 아, 이럴 땐 좀 덜 솔직해도 돼. "
내가 투덜거리자 민현이가 내 머리를 쓰다듬고는 얼른 휴게실로 가자. 하며 방향을 틀었다. 얼마나 여길 자주 왔으면 이제 네가 휴게실을 다 아냐, 민현아? 내가 그렇게 묻자 그러게. 여기로 편입해도 되겠어. 하곤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민현이 손이 얼마나 따뜻하던지, 핫팩인줄 알았다. 대체 난 전생에 무슨 덕을 이렇게 쌓아서 너같은 남자친구를 만난걸까, 민현아?
짝사랑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잊고 있었다. '여 행 가 자' 라는 그 말을. 기말고사를 모두 마치고 나서 저녁을 같이 먹기로 한 민현이가 내게 아무렇지 않게 말을 꺼냈다.
" 여주야, 이제 방학도 했고 곧 있으면 크리스마스니까... "
" ...어? "
" 바다 갈까? "
민현이의 말에 순간 또 스쳐지나가는 동기와 승완이의 말들. 내가 이상할 정도로 음란마귀가 낀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말하는 민현이를 앞에 두고 괜히... 이상한 죄책감이 들었다.
" 어어. 그래. 가자, 가. "
그래서 나도 모르게... 가자고 해버렸다. 뇌의 필터링을 전혀 거치지 않고 나온 말이었다. 내가 말하고도 순간 당황했으니까.
" 빨리 계획 짜야겠네. 둘이서 처음으로 가는 여행인데. "
" ...어...어 그렇지. 하...하하... "
" 너 시험 칠 때 말하긴 좀 그래서. 혼자 어디가 좋을까 생각하고 있었거든. "
민현이가 신이 난 듯 방긋방긋 웃으며 말했다. 이 와중에도 머릿 속에 자꾸만 이상한 생각이 떠오르는 내가... 너무 미웠다. 아, 손승완이랑 걔는 왜 그런 말을 해가지고 자꾸 생각나게. 음식이 나오고나서는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그냥 숟가락, 젓가락으로 음식을 떠서 어딘가에 넣은거 같다. 민현이는 신나서 혼자 이것저것 얘기하는데 귀에 들리질 않았다. 김여주... 너 왜 이러는거니.
민현이와 집으로 가는 길. 손을 잡고 동네를 걷고 있는데 민현이가 계속 들뜬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여행 가는게 그렇게 좋을까? 민현이도 설마 나같은 상상을 하고 있는건 아니겠지? 내가 억지로 머릿 속에서 그 생각을 지우곤 민현이의 손을 더 꽉 잡자 민현이가 눈을 크게 떴다.
" 오늘따라 왜 이렇게 손을 꽉 잡아? 추워? "
민현이가 자신의 코트 주머니 속으로 내 손을 넣으며 다정하게 물었다.
" 어? 어... 좀 춥네, 손이 시려워서. "
민현이가 쥐고 있지 않은 손을 일부러 입으로 호호 불자 민현이가 그 모습을 흘금 보더니 길을 멈춰 내쪽으로 몸을 틀었다.
" 뭐야, 갑자기? "
민현이가 아무 말도 않고 반대쪽 주머니에도 내 손을 넣고는 자신의 손을 빼 나를 안았다. 민현이의 주머니는 따뜻했고, 난 그 이유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 너 손 시려울까봐 주머니 핫팩으로 데워놓고 있었지. 나중에 들고가. "
" ...황민현 완전 스윗하네. "
" 스윗한게 아니라 좀... 불순하지? 처음부터 너한테 핫팩 주면 될걸. "
내가 민현이 코트 속에 든 핫팩을 주물거리며 스윗하다 말하자 민현이가 그렇게 말했다. 순간 민현이의 여행가자라는 말이 머릿 속에 맴돌았다. 잠시만... 그럼 설마 여행도...?
" 이렇게라도 안을 명분 만들었으니까 난 만족. "
" ... "
" 여주야, 근데 너 입은 안 추워? "
" 으이구. "
내가 민현이의 품에서 빠져나오자 민현이가 푸하하하, 하고 웃으며 다시 내 옆에 섰다. 아, 농담이야. 농담. 민현이가 그렇게 말하곤 자신의 주머니에서 핫팩을 꺼내 내게 건넸다.
" 얼른 주머니에 넣지? 손 시려워서 손 엄청 빨간데, 지금? "
" ...고마워. "
" 고마우면 조금 있다가 뽀뽀라도 해주든가. "
민현이가 붕어입술을 하며 웃었다. 그 모습에서 다시 여행가자 라는 말이 맴도는데... 내가 진짜 이상한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이럴거면 민현이한테 묻는게 낫지 않...아니 뭐라고 묻게, 김여주? 민현이한테 왜 여행가자고 하는지, 숨겨진 의도가 있는지 물어볼거야?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
" 어? 아...아니. 그냥. 너 그렇게 입 내밀고 있는거 보니까 붕어 같고 귀여워서. "
" ...붕어? "
" 아, 빨리 가자. 춥다, 추워. "
내가 민현이를 억지로 끌고서 다시 집으로 향했다. 민현이가 날 이상하게 보겠지? 이상한 소리나 하고... 그 여행가자, 네 글자가 뭐라고!! 연인간에 여행이 대체 뭐라고 나혼자 이렇게 긴장을 하냐고!!!
" 이제 방학이라 자주 볼건데도 헤어지기 싫네. "
" ...나도. "
민현이는 매일 나와 만나고 나면 이렇게 아파트 현관 앞까지 데려다주곤 했다. 지금도 그렇고. 민현이가 양 손에 핫팩을 들고 있는 내 손을 꼭 잡고선 두 계단 위에 올라가 있는 나와 눈을 맞췄다. 공기가 차가웠고, 우리 둘은 그렇게 서로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부끄러워서 고개를 먼저 떨군건 나였지만.
" ... "
그리고 민현이가 핫팩으로 데워진 따뜻한 손으로 고개를 떨군 내 얼굴을 찬찬히 들어올리곤 예쁘게 웃어보였다. 민현이 눈에 아파트 현관 불빛이 비춰 반짝거렸다. 민현이의 얼굴이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왔고, 내가 눈을 감았다. 늘 그랬듯이.
" ... "
" ... "
가끔 멀리서 지나가는 차소리만 들릴 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민현이의 얼굴이 차차 멀어지고, 민현이가 다시 예쁘게 웃었다.
" ...시험 친다고 고생 엄청 했네, 우리 여주. "
" ...나만 쳤나, 뭐... "
" 고생했지, 고생했어. "
민현이가 그렇게 말하며 내 앞머리를 정리해줬다. 민현이 너도... 나 시험 치는 동안 우리 학교 맨날 오느라 고생했어. 나도 민현이가 한 것처럼 민현이의 가지런한 앞머리를 매만지자 민현이가 푸흐,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 빨리 바다 가서 너 이때까지 시험 때문에 답답했던 거 다 풀고 왔으면 좋겠다. "
" ...바다? "
" 응? 어. 바다. 아까 내가 밥 먹으면서 바다 가자고 그랬잖아. "
...바다...?
그... 우리 동기가... 기념일날 갔던 곳도... 그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헙, 하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민현이는 모르는 것 같았지만. 근데 아까 밥 먹을 때 내가 정신을 놓기는 했었구나. 민현이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단 1도 나지 않습니다만...
" 새벽에 일찍 나가서 해 지는 것보고 저녁 먹고 집에 오자고 그런거 기억 안 나? "
" ...어어... 어?! "
" ...아... 진짜 밥 먹는다고 내 얘기 하나도 안 들었구나, 너? "
" ...아...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
잠시만. 새벽에 갔다가 저녁에 해질 때 온다고? 순간 머릿 속에서 이때까지 했던 고민들이 사르르 없어지는 것 같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것보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조금 실망감이 들었다. 순간 멍하더니 이내 정신이 들고 민현이의 해맑은 얼굴이 보였다. 그럼 지금까지 나 혼자... 그냥... 막 바보같은 고민하고 그런거야? 민현이는... 당연히 당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나혼자...
그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얼굴을 두 손에 파묻고 말았다. 아, 완전 부끄러워. 미친거 아니야. 김여주. 너혼자 무슨 그런 상상을 한거야. 아. 진짜 민현이는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 여주야? 여주야, 왜 그래? "
" ...민현아... 나 혼자 있고 싶으니까 먼저 들어갈게. 미안. 음란마귀같은 여자친구를 용서해줘. "
" ...응? "
" 미안. 민현아! "
그렇게 말하고 다급히 현관 비밀번호를 치고는 아파트 안으로 들어와버렸다. 엘레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혼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진짜 바보 같아. 와. 진짜 혼자 음란마귀 다 껴가지고... 엄청 부끄러웠다. 이런 생각을 들키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혼자 완전 바보짓할 뻔 했잖아!!! 그래... 우리 순수한 민현이도 내일 모레 스물넷이지만, 그래... 우리 스윗한 민현이는 그렇게 은근히 드러내는 성격이 아닐거야...
혼자 별별 생각을 하며 엘레베이터에 몸을 실은 그때, 민현이에게서 카톡이 왔다. 무슨 일이 있냐고. 민현아... 무슨 일? 무슨 일은 일어날뻔 하다가 안 일어났지, 그래.. 네... 민현아... 네 여자친구가 참.. 혼자 앞서나갔어요. 그래.
짝사랑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여주의 표정이 엄청 안 좋아보이길래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성우에게도 연락 했었다. 당연히 네가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아냐는 답이 돌아왔지만.
" 많이 피곤하지? 시험기간이라. "
" 평소에 공부 제대로 안 한 내 탓이지. "
내가 사 온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코가 빨개져선 씩 웃는 여주를 보자 나도 모르게 손이 여주의 볼로 향했다. 따뜻하네, 황민현. 따뜻한 커피로 데워진 내 손의 온기가 여주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는지 여주가 놀란 기색 없이 여전히 웃었다. 여주는 알까? 매 순간마다 내가 이렇게 자신을 만지고 싶어한다는걸. 어감이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 이제 시험 몇 개 남았다고 했지? "
" 3개! 전공은 2개 밖에 안 남았어. 으아. "
이번엔 내 손이 나도 모르게 여주의 손으로 향했다. 나도 왜 이러는진 모르겠는데. 언제부턴가 우리의 스킨쉽이 자연스러워지긴 했다. 그도 그럴게 사귄지 반년이 다 돼가니까.
" 조금만 더 힘내, 여주야. 빨리 끝내고 여행 가자. "
" ... "
내가 신이 난 목소리로 말하며 여주를 흘긋 쳐다보았다. 여주는 조금 전처럼 예쁘게 웃은 것과 달리 조금은 굳어진 표정으로 커피를 마시려다 말았다. 여주는 모른다. 자신의 표정에 감정이 굉장히 잘 드러난다는 걸. 우울할 때나 기쁠 때, 얼굴에 바로바로 드러나는데 지금은...
" ...왜...그래? "
" 어? 어어, 아니. 아무것도. "
여주가 한참을 멍 때리다가 내가 조심스레 부르자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뜨거운 커피를 벌컥 들이켰다. 여주야, 뜨거워! 내가 말릴 새도 없이 여주가 아, 뜨뜨. 하며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이상하네, 진짜로 여주가 왜 그러지...? 나랑 여행 가는게... 조금 싫은건가?
" ...그니까. 김여주가 너랑 여행 가기 싫어하는 눈치다, 이거야? "
" ...인정하긴 싫은데 그런 것 같아. "
간만에 성우를 만나 술을 마시기로 했다. 물론 내 잔에는 물이나 음료수로 채워져 있었지만. 옹성우가 눈 앞에 있는 계란말이를 집어 입에 넣더니 그래서 요즘 황민현이 축 처진거구만. 하고 나를 흘긋 쳐다보았다.
" 김여주는 너 엄청 좋아하는데 그건 알고 이런 말 하는거지? "
" 그거야.. "
알지. 내가 그렇게 말하고선 성우를 쳐다보자 성우가 눈꼴 시렵다는 표정을 하고선 술잔을 비웠다. 눈에서 아주 그냥 꿀이 뚝뚝 떨어지네.
" 누가 보면 너는 연애 안 하는 줄 알겠다, 성우야. "
" 나는 둘이 있을 때만 너같은 표정 지어주지, 네 앞에서 그런 표정은 죽어도 못 짓겠다. 임마. "
성우가 빈 소주잔에 소주를 따르고는 무튼, 그럼 김여주가 너랑 여행 가는게 싫을게 뭐가 있어. 하고서 말을 이었다. 금세 내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는게 느껴졌다.
" ...야, 근데 너 혹시... "
내가 아무런 말이 없자 옹성우가 내 쪽으로 사이다를 밀다 말고 무언가 생각난듯 내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 1박 2일? "
" ...아, 무슨 소리야. 여주 아버님 걱정하시게. 당일으로 갔다올거야. "
" ...아저씨가 너를 믿는 이유가 있네. 그리고 나 김여주가 뭐 걱정하는지 좀 알 것 같다. "
" 뭔데? "
옹성우가 뿌듯한 표정을 지어보이고는 다시 계란말이를 젓가락 한 쪽으로 쿡 찍었다. 여행가자는 말에 무슨 의미가 들어있냐, 보통? 당일치기? 아니지... 성우가 내 눈 앞에 계란말이를 들이 밀었다가 자신의 입으로 넣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 김여주는 너랑 1박 2일로 자고 오는 여행인건줄 아는거지. "
" ...나는 자고 온다고 말 안했는데? "
" 아, 보통 여행간다고 하면 다 그런줄 알지. 너랑 여행가기 싫어서 그런게 아니라 그냥 그런 생각 때문에 좀... 그래서 그런걸걸? "
옹성우가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고선 민현아 짠하자 짠, 답 나왔네. 근데 계란말이 진짜 맛있다. 하나 더 시킬래? 하고서 아무렇지 않게 화제를 전환했다. 성우의 말이 머리에서 맴돌았다. 내가 여행가자고 말했을 때 여주의 표정이 문득 생각났다. 어딘가 초조해보이는 그 표정...
" 야, 민현아. 계란말이 시킨다? "
" ... "
" ...뭐야. 야, 근데 너 귀는 왜 빨개지냐? "
" ...어? 어어, 시켜. 아... 좀 더워서. 하, 하하하... "
" ...참나. "
순간 나도 모르게 열이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로 여주가 오해한거라서 그렇게 반응한거라면...
" 여주야, 이제 방학도 했고 곧 있으면 크리스마스니까... "
" ...어? "
" 바다 갈까? "
" 어어. 그래. 가자, 가. "
조심스레 꺼낸 말이었는데 여주의 긴장된 반응이 느껴졌다. 얼굴에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 빨리 계획 짜야겠네. 둘이서 처음으로 가는 여행인데. "
" ...어...어 그렇지. 하...하하... "
" 너 시험 칠 때 말하긴 좀 그래서. 혼자 어디가 좋을까 생각하고 있었거든. "
역시... 맞는 것 같았다. 어색하게 반응하는 여주를 보니 옹성우가 했던 얘기가 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일부러 더 강조했다. 당일치기라고. 자고 오는 여행이 아니라고. 새벽에가서 해가 지면 올거라고 돌려서 말했는데 여주는 여전히 멍한 반응이었다. 왜 그러지, 그냥 장소가 맘에 안 들어서 그런가. 하고 생각을 하며 여주를 집에 데려다 주었을 때,
" 빨리 바다 가서 너 이때까지 시험 때문에 답답했던 거 다 풀고 왔으면 좋겠다. "
" ...바다? "
" 응? 어. 바다. 아까 내가 밥 먹으면서 바다 가자고 그랬잖아. 새벽에 일찍 나가서 해 지는 것보고 저녁 먹고 집에 오자고 그런거 기억 안 나? "
" ...어어... 어?! "
" ...아... 진짜 밥 먹는다고 내 얘기 하나도 안 들었구나, 너? "
" ...아...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
여주가 당황한 표정을 해보이며 말을 더듬었다. 아까 내 얘기를 제대로 안 들은거구나. 긴장..해서 그랬나?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여주를 일단 달래야겠다 싶어 여주의 두 어깨를 붙잡고 여주를 불렀는데,
" 여주야? 여주야, 왜 그래? "
" ...민현아... 나 혼자 있고 싶으니까 먼저 들어갈게. 미안. 음란마귀 같은 여자친구를 용서해줘. "
" ...응? "
" 미안. 민현아! "
여주가 황급히 들어가버렸다. 풉. 하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여주가 아까 내 얘기를 제대로 안 들어서 이제서야 안 것 같았다. 우리의 여행이 당일치기라는걸. 여주가 어떤 상상을 했을지 생각하니 귀여워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그냥 말해주지 말걸 그랬나?
짝사랑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 혼자 설레발이란 설레발은 다 치고. ]
" ...더 웃긴건 뭔 줄 알아? 내가.. 그 순간에 실망감이 들었다는거야. "
[ 이왕 이렇게 된거 1박 2일로 가자고 해봐. 아니 1박 2일이 뭐야, 방학도 했겠다. 알바 빼고 그냥 한 일주일 정도... ]
승완이와 침대에 누워 통화를 하며 그냥 사실대로 다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실망했다고. 오죽했으면 지난 며칠간 알바하는 와중에도 재환이가 멍때리는 날 보면서 그랬겠냐고.
' 누나, 어디 아파요? 볼이 빨간데? '
...그래. 내 머리에 아주 음란마귀가 삽니다. 살아요. 대체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산걸까...? 승완이에게 말하자 승완이가 김여주, 이거 황민현이 알아야 하는데. 하며 엄청 웃어댔다. 뭘까, 자꾸만 드는 이 씁쓸함. 어쩌면 나는 기대했던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게... 민현이랑 사귄지도 꽤 됐고 나도 민현이가 정말 정말 많이 좋았으니까. 민현이도 그래보이고. 아, 뭐 성인남녀가 그러는게 이상한 일도 아니고!
[ 귀엽다, 귀여워. ]
" 심란하거든? "
[ 그냥 니가 말하라니까~ 황민현한테도 음란마귀같은 너를 용서해달라고 했다매. ]
" ...그 말은 내가 왜 한걸까? 미친걸까? "
민현이 분명히 내가 이때까지 멍때린거 다 알고 웃었을거야. 혼자 엄청 고민했겠지 싶어서. 그 생각에 한숨이 푹 새어나왔다. 그 말은 정말 나도 모르게 튀어나간 말이었다. 지난 며칠간 오만가지 상상을 다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며.
" 아, 잠시만. 민현이한테 카톡 왔다. "
전화를 하다 울리는 진동소리에 화면을 확인하니 민현이에게서 온 카톡이었다. 승완이에게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을 한 뒤 카톡을 확인하고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이 다시 볼이 빨개지고야 말았다.
[ 야야, 김여주. 뭐야, 왜 말을 안 해? 잠깐만 기다리라매! ]
" ... "
음... 저기요, 여러분.
[ 여주야, 전화 끊었니? 아닌데. 황민현한테 뭐라고 카톡 왔는데? ]
" ... "
이건... 그 우리 여행이...
[ 야! 김여주! ]
...당일치기가 아니라는거 맞죠?
♥미녀니♥ [ 여주야 우리 그 날 해돋이까지 다 보고 갈까? ]
오해하는거...아니죠? 네... 아닌거 같아요. 왜냐면 그 다음 카톡이 또 왔으니까요.
♥미녀니♥ [ 솔직히 말하면 조금 불순한 의도 99퍼 섞인거 맞아 ]
[ ㅎㅎ ]
짝사랑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예전에 여주한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고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거, 정말 엄청난 용기라고.
...그런데 그것보다 내게는 지금 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 여주야 있ㅈ ]
이건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카톡을 쓰다 지우다를 반복하다가 큰 맘 먹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떨리는지. 솔직히 말하면 나도 여주랑 시간에 쫓기듯 빨리 갔다와야 하는 당일치기 여행보다 조금 더 여유롭게 함께 있을 수 있는 여행이 좋았다. 아, 물론... 조금 불순한 의도도 포함해서. 내가 그러지 않았던가? 여주를 매 순간마다... 건드리고 싶다고.
여주의 '음란마귀같은 여자친구를 용서해' 라는 말이 생각나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며칠동안 김여주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한건가 싶다가도 나도 똑같았다는 생각에 그냥 넘겨버렸다. 너를 안고 싶고, 너와 함께 있고 싶고, 너를 매일 보고싶은 내 마음을 너는 알까? 항상 너무 과하진 않을까 조심스레 분위기를 잡았던 걸 어쩌면 너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너는 내가 너의 빨개진 두 볼을 읽듯 내 빨개진 두 귀로 마음을 읽어버리니까.
내게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 나와 같은 마음이라는 것이 새삼 고마웠다. 정말로, 정말로 감사했다. 너에게 내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다면. 네가 다른 곳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내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지금 이런 터질 것 같은 설렘을 함께 느낄 수 있었을까, 여주야.
나, 황민현의 짝사랑에는 꽤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오랜 시간 동안 한 사람을 바라본 김여주를 좋아하는 것부터 내 마음을 전하는 일까지. 그래서 여주에게 더욱 고맙다. 해바라기 같은 나의 사랑을 알아봐주어서. 내 진심이 담긴 고백을 알아봐주어서.
그리고 너와 사랑을 시작한 매 순간마다 내게는 용기가 필요했다. 너의 손을 잡을 용기, 너를 내 품안으로 넣을 용기, 너에게 입 맞출 용기, 그리고 지금까지도.
" ...바로 전화 하네, 김여주? "
[ ...그 저 민현아... 아니... 그... 이게 참... ]
너의 부끄러워하는 모습까지도 나는 참 좋아.
너의 모든 모습을 나는 좋아한다.
" 나 용기내서 말했는데 대답 안 해줄거야? "
[ ...그.. 이게 대답이 필요한거야? ]
" ...푸핫. "
[ 야, 나도 용기내서 말한거야!! ]
정말로 많이 좋아한다.
진심으로, 너를 많이.
짝사랑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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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꼼
여러분..
안녕하쉐열...
해를 넘기고 돌아온...
교생친구입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절 미워해주셔도 좋아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변명을 하자면 (...) 정말 다른 걸 할 틈이 없을 정도로 12월까지 바빴어요 ㅠㅠㅠㅠㅠㅠ
(그 와중에 콘서트도 갔다와서..하핫..옹과 미년을 보니 더 빨리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원래는 12월 31일에 업뎃하려고 그 전에 쓰고 있었는데 갑자기 연말에 어디 가야하고 그래서... 시간이 안 나서 결국 이제서야 올리게 됩니다 죄송해요 ㅠㅠ
그리고.. 사실 마지막회를 달달하게 쓰고싶은데!!
당최 뭘 어떻게 써야 우리 독자님들이 좋아하실지를 모르겠어서 소재를 많이 생각하다가...
...으른 연애를... 주제로 잡아보았습니다...
뜨거운걸 쓰고 싶었지만서도 뭔가 간질간질 설렘설렘한걸 쓰고 싶었어요
여주와 민현이 두 사람 모두 처음 (어감이 이상한데 그니까 뭐 뽀뽀라든지 그런거요 ㅎ) 이라 그런 풋풋함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네...
그 동안 우리 소설 속 여주, 민현, 성우는 스물네살이 되었네요 와
성인연애~~~~ 화끈하게 하자 얘두라~~~
ㅋㅋㅋㅋ 죄송해요 ㅋㅋㅋㅋㅋㅋ 아무튼!!! 그래서 쪼끔이 아니구 많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ㅠㅠㅠㅠㅠ
(10에서 5로 포인트 내렸어요.... 죄송해요 도르르르르륵)
아참참 그리구 이번 편은 분위기가 아련아련하지 않아서 당황하신 분들도 많을 것 같은데
마지막 편인데 해피해피 달달해야죠 ㅎ^ㅎ
민현이랑 여주랑 결혼길만 걸어 예~~
2017.8.20 ~ 2017.1.5
두번의 계절을 보내고서야 완결이 났네요!!! 오랫동안 기다려주시고 진심어린 댓글로 늘 제 글을 아껴주셨던 독자님들 정말로 감사합니다!
완전한 맺음은 번외편이 마무리 되고나서겠지만 미리 인사를 드릴게요
정말로 정말로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함께 달려주셔서 정말루요,,, 하트하트
그러나!! 예정대로 우리 성우의 번외편!
만약 성우와 여주가 잘 됐더라면이!!! 2~3편 정도로 연재될 계획인거 아시죠!?!?
걱정마세요 더이상 늦게 오지 않을거에요 (쩌렁쩌렁)
우리 독자님들 중에.. 수험생 분들 많았던 것 같은데
다들 합격길만 걸으세욧!!!!!!
오래만에 암호닉 분들 이름 외쳐보고 죄인은 이만 물러가겠사옵니다
사랑합니다 독자님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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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주세요 여러분..
아직 ... 아직 우리 성우가 남아있어요...
우리 성우.. 여주 얘기.. 봐주세요.... 또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