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시간은 빨리 흘러갔고 나는 바빴다.
어느덧 기말고사가 시작이 되었고 눈 코 뜰 새 없이 공부를 했다. 교수님이 무턱대고 바꿔버린 시험 시간표로 인해 거의 2주란 시간동안 시험 하나를 가지고 질질 끌어야 했다. 뻐근해진 목 부근을 주무르며 고개를 들자 완연히 뜨거워진 햇살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내가 옹성우에 대한 감정을 깨달았어도 달라진 건 없었다. 물론, 달라질만큼의 시간이 내게 주어지지도 않았지만서도. 마지막 시험이 끝나자마자 강의실을 나서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내일부터 시작되는 방학 얘기로 들떠있었다. 이번에 또 무슨 알바를 구해야 하나. 처음 대학에 들어와서 맞이하는 방학임에도 딱히 설레지 않았다. 어차피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가 한 번쯤 집에 올라오라는 부모님의 성화에 본가에 갔다오면 두어달은 금방 지나갔다.
"시험 잘 봤어?"
근데, 이번에는 조금 달라지진 않을까. 언제 나타났는지 옆에서 내 가방을 들어주던 성우 선배는 여전하게도 내 옆을 맴돌고 있었다. 이거 사물함에 두고 가, 방학 기간에도 계속 써도 된대.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 학번이 적힌 사물함에 친히 책까지 넣어주고 있는 선배의 얼굴을 멀건히 바라보다가 문득, 왜? 라는 말로 나를 마주하는 그의 시선에 얼굴이 붉어지는 게 일종의 습관이 되어버렸다.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순애보였다고. 우습기 짝이 없을만큼 순식간에 옹성우를 향한 내 마음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얼굴은 시도때도 없이 뜨거워지기 일수였고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선배의 눈짓이나 손짓에도 당황스러워 했다.
"요즘 왜 그래? 할 말 있으면 해도 돼."
"네?"
"매일 내 눈치 보잖아. 무슨 일인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걸 들켜버린 사람이 선배라니. 할 말이 있는 건 맞았지만 눈치를 보려고 한 건 아니었다. 처음부터 옹성우에게 해야할 말이라고 하면 정확하게 정해져있는 마당에 그걸 말할 용기는 또 없었다. 선배가 싫은 것도, 거진 매일마다 내 집 앞까지 데려다주는 게 싫은 것도 아니었는데 정문에 다달을 때까지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는 내가 못내 답답했는지 선배는 내 앞길을 막아왔다. 왜 그러는지 말을 해줘야 내가 알지, ㅇㅇ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정말?"
부러 다정하게 물어와주는 선배가 미웠다. 고등학교 때는 고백만 잘했으면서 이제와서 왜 그러는지 나도 알 수가 없었다. 아니, 답은 알고 있었지만 내색하고 싶지는 않았다. 선배에게 느끼는 감정을 말하기 위해서 몇 번이고 시도를 했는지는 옹성우보다 내가 더 잘 알았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잘못 먹은 것처럼 목을 막아오는 건 강다니엘, 이라는 이름이었다. 결정을 내리기까지 했던 고민도 힘들었는데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만만치 않았더랬다.
"너가 이러면 괜히 내가 불안해져."
"......"
"내가 너 좋아한다고 했던 게 혹시 부담이라도 되는 건가, 아니면 내가 불편한 건가."
계속 혼자 삽질하게 된다고. 그러니까 차라리 말을 해줘, 그래야 나도 뭐가 됐든 준비를 할 거 아냐. 교내 안에 있던 벤치에 털썩 주저앉던 선배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꺼내면서 얼굴은 전혀 괜찮지 않아 보였다. 저런 생각까지 할 줄이야. 여느 때나 항상 밝았던 선배의 얼굴에 지친 기색이 가득한 건 보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힘들게 만들려고 한 건 아니었다. 그런 그 순간에도 나를 위해서 말간 얼굴로 웃는 옹성우를 마주하고 나서야 나는 그제야, 혼자 힘들어하기 바빠서 주변 사람을 챙기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익숙한 일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이런 건 또 처음이여서 내 자신이 힘든만큼 옆에 있던 성우 선배도, 그리고 어쩌면 다니엘도 편치 않았다는 걸 깨달아야만 했다.
"좋아해요."
갑자기 소나기처럼 내리는 빗소리에 내 목소리가 잠깐 떨려왔다. 작은 소리로 꺼낸 말이었지만 천천히 바라본 선배는 이미 다 들은 듯한 표정을 해왔다. 막상 말을 꺼낸 나조차 수치스러울 정도로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옹성우의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건 당혹감이었다.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한 사람이 누군데, 왜 이제와서 자기가 부끄러워 하는 거야.
"결국 뱉어놓으니까 아무것도 아닌 이 말, 하나 하려고 저도 엄청 노력했어요."
"......."
"근데 혹시라도 한순간의 감정일까봐, 그래서 선배만 힘들게 할까봐 말 못한 거예요."
한차례 지나가는 소나기라고는 했어도 우산도 쓰지 못한 나와 선배는 이미 옷이 젖어있었다. 하필이면 나름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하는 고백인데 타이밍 한 번 참 구리네. 어떻게 보면 긴 시간 동안 멋도 모르는 나로 인해 고생했을 옹성우를 더 힘들게 만든 것만 같아 미안하다는 말까지 덧붙였지만 목석처럼 굳어있는 선배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거친 빗줄기 때문에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다시 감기에 걸릴 요량인지 몰라도 선배의 손을 잡아 이끌자 그때서야 날 보는 옹성우는 웃어 보였다.
"선배, 우리 일어나요. 이러다가 진짜 또 감기 걸리겠..."
말이 제대로 이어지질 못했다. 뭐가 그리 급한지 그대로 입술을 맞대오는 옹성우 덕분에. 끊임없이 내리는 비로 인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던 그 날, 오늘 나는 우습게도 첫 키스를 했다. 부드럽게 맞물렸던 입술이 짧은 순간 동안 이어졌고 아주 느릿하게 떨어졌을 때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좋아해, ㅇㅇ야."
그리고 또다시 입술이 부딪혔다. 벌어진 틈을 메꾸듯 뜨겁게 차오르는 선배는 성급했지만 그만큼 조심스러웠다. 처음 해보는 낯간지러운 고백에, 바로 이어진 입맞춤이라니. 상상과 현실의 괴리감은 존재한다고 했다. 수업 중에 강의실에서 가끔씩 들려오던 연애 이야기는 다들 그랬다. 내가 상상했던 거랑 많이 다르더라. 아마 그들의 말이 맞은 듯했다.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그저 혓바닥이 서로 마주하는 것 뿐인데, 좋아한다고 말해봤자 얼마나 그 시간이 이어질려고. 다소 부정적이었던 내 예상이 모조리 다 틀렸으니까. 미숙하기만한 내가 두 눈을 감고 어쩔 줄 몰라하자 살풋 코에 닿는 선배의 웃음 소리가 간지러웠다.
"아, 진짜 좋아 죽겠다."
선배의 머리카락에 톡, 하고 떨어지는 빗물이 내 얼굴로 떨어져 내렸다. 옹성우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잠깐의 빈틈이 생길 때마다 그는 내게 입을 맞춰왔고 먹구름이 가득 껴있어서 어두컴컴해지는 하늘에도 나를 안아오는 품은 따뜻했다. 비 오는 날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비를 맞는 건 정말 싫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 뒤 상황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이러다 정말 감기에 된통 당할지도 모른다는 말조차 까맣게 잊을 정도로 서툰 혀가 얽히는 감정은 어떤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표현할 수가 없을만큼 좋았다.
정말, 많이 좋아해.
단순하기 그지없는 그 말을 서로 조용히 내뱉는 것조차 기뻤다. 서로가 서로에게 같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벅찼다. 이런 기분을 알게 해준 성우 선배가 좋았고 작게 눈을 찡그리는 그의 버릇도 좋았다. 단번에 꺼낸 '좋아한다'는 네 음절은 잔잔하게 요동치는 하늘을 걷는 듯했다. 아득하기만 한 하늘이었다.
옹성우가 좋았다.
![[워너원/강다니엘/옹성우] 러브서클(LOVE CIRCLE) 11 | 인스티즈](//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7/10/11/3/e3c91139012e91cae1559568b8fdd2af.jpg)
LOVE CIRCLE
W. LIGHTER
늦게까지 밤을 지새우고 놀고 먹는 걸 반복한 방학이 몸에 익숙해졌을 때쯤 비는 시시때때로 주룩주룩 내려댔다.
좋아한다는 말을 하고 서로간에 마음을 깨닫고 난 이후부터 나와 선배 사이는 크게 차이가 있진 않았어도 달라진 건 확실히 존재했다. 밤을 새우는 날은 언제나 옹성우와 통화를 했고 방학이 얼마 남지 않는 지금이 되기까지 낯설기만 하던 선배와의 만남은 이제는 없으면 허전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스치듯 지나쳐간 사람처럼 알바를 끝내고 가는 길에 김재환을 만났다. 고등학교 때 다니엘을 만날 때면 드문드문 볼 수 있었던 김재환은 나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더구나 다니엘과 같은 학과라고. 시시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나름 어른이 되었다는 걸 자각하고 있었을까 문득 다니엘에 대해서 말을 꺼냈던 김재환으로 인해 나는 여적 한 구석에 응어리진 그가 생각났다.
'걔가 너 좋아하는 거 진짜야.'
'......'
'그냥 알아줬으면 좋겠어서 말한 거야. 아무리 그래도 내가 그 놈이랑 친구잖냐.'
실없이 웃던 김재환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다른 것도 아니라 날 좋아한다는 건 굳이 김재환 때문이 아니여도 여기저기서 그 말이 진짜라고 여러번 증명을 해주었으니까. 그런데 참 이상했다. 한 때는 그렇게나 원했던 말이였는데도 별 다른 감정이 생기지 않았고 아마 그 때의 난 몇 번 건네받은 술잔을 빠르지 않게 마시면서 힘없이 웃었던 것도 같았다. 이런 내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맞은 편에 앉아있던 김재환이 부러 놀란 표정을 해왔던만큼. 있잖아,
'짝사랑은 이뤄지지 못하면 쓸모가 없어진대.'
그 때의 난 꼭 갓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처럼 말을 건넸었다. 사람의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지만 내 뜻은 특별할 게 없었다. 숱하게 아파왔던 감정들이 웃기게도 그 존재 가치를 잃어버리면 쓸모가 없어지는 건 당연했다. 오랜 시간을 끌어온 마음이었고 그만큼 고되었다. 다니엘에게 고백을 했던, 스물을 코 앞에 두었던 열아홉의 끝자락의 난 좋아하면 그걸로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마음은 이뤄지지 못했으며 비겁하게도 도망치는 걸 택했을 뿐이었다. 강다니엘을 마주하기가 두려웠다. 결국 친구도 무엇도 되지 못했지만 그 때 난 다니엘과 다시 친구로 돌아갈 수 없을까봐, 그리고 그를 보면 다시 좋아하게 될 내가 무서웠다.
안 그래도 같은 학교라는 걸 알았을 때, 또다시 그가 다가왔을 때 빠르게 뛰던 심장이 부담스러웠다. 내 의지가 아니었으니까 그건 그냥 본능이었다. ㅇㅇㅇ라는 사람에게서 하나의 공식처럼 달고 다니던 강다니엘이란 이름처럼. 미련하게 잡았던 사람도 나였으면서 차마 표현할 수 없이 속으로만 앓아대던 감정은 곪아 터지기 일수였다. 그러다가 자존감이 낮아지는 게 여러번 반복이 되었고 그가 날 좋아한다는 말을 구태여 여러번 되새김질 당했을 때에는.
'이제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자.'
'너무 늦었다.'
정말, 늦은 고백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남는 건 상처밖에 없는 걸 알면서 바보같이 붙잡고 있던 건 내가 아닐까, 라고 제자리를 돌고 도는 내 생각은 끊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었는데 그런 나를 붙잡아 주던 사람이 성우 선배였다. 나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같은 마음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하고 행복한지 알아차린 내가 이제서야 뒤를 돌아본다고 한들 바뀌는 것은 없었다.
밥 먹듯이 쏟아지는 비와 함께 동반되는 먹구름이 가득 쌓인 나는 지금 선배의 얼굴이 보고싶었다. 아직 물기가 마르지 않는 노란색의 우산을 펼치며 카페를 나선 내 발걸음은 다분히 의도적이었고 빨랐다.
'지금 어디야?'
Episode 11,FIN
라이터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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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너원/강다니엘/옹성우] 러브서클(LOVE CIRCLE) 11 | 인스티즈](//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7/06/30/11/a515d0f630c6ca23b0679bd4442183db.gif)
* 안녕하세요, 라이터에용
나름 빨리 들고 오려고 후다닥 가져왔습니다!
![[워너원/강다니엘/옹성우] 러브서클(LOVE CIRCLE) 11 | 인스티즈](//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7/10/11/1/e5dd02b70a0c082f791779ecd992d1e8.jpg)
드디어 두 사람이 키스를 했대요~~~~에베베베베베~~1!! 워후!!!!! 아주 좋아부러!!!!!!!!!!!!!!!!!
원래 짤 안 쓰고 싶었는데 뭔가 역사적으로 기념해야 할 것 같아서....ㅎ....좋겠다...키스도 하고....(훌쩍)
러브서클 제목에도 [강다니엘/옹성우] 이렇게 써서 마치 남주가 다니엘인 것처럼 해놓고 성우랑 이어지게 해서, 우리 다니엘 눈물 주르륵 하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사실 원래 러브서클 연재할 때부터 남주는 정해져 있었습니다.(놀라셨다구요? 또 죄송해요)
그랬으면서 다니엘을 앞에 둔 건 나름의 작가의 훼이크와 재롱이라고 봐주세여...성우와 이어지는 글이긴 했어도 다니엘이 맡은 캐릭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물론 여주나 성우나 하물며 선배미 낭낭한 지성 선배, 재환이 어느 누구 하나 중요하지 않은 캐릭이 없지마는 원래 찌통인 캐릭터는 더 소듕해지는 법이잖아요^^
글에 관한 이야기는 완결을 다 하고 난 뒤에 주절 주절 더 힘차게 입을 놀려볼 예정이구 우리 예쁜 독자님들이 항상 재밌다고 해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답니다. 슬슬 러브서클 차기작도 생각해야 하는데 무엇을 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하네요...후...(원하시는 소재가 있다면 스리슬쩍 말씀해주시면 저야말로 땡큐입니다)
이제 10월도 막 가고 있는데 곧 있으면 수능을 보실 수험생 여러분들도, 항상 일거리에 치여서 퇴근을 바라보고 있는 직장인 분들도, 공부하고 있는 학생분들, 그리고 제 글을 봐주시는 모든 독자님들 누누히 말하지만 항상 건강해야 하고 좋은 일만 있어야 해요!!!!
그럼 우리 다음화에서 또 만나요!
P.S 암호닉은 12화까지만 받겠습니다. |
*암호닉 신청은 최신화에 해주세요*
암호닉 확인하구 가세요!!!(사랑한다, 아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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