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량주의)
(1화부터 15화까지 빚쟁이의 시점과 재환이의 이야기를
비교하면서 읽으시는 것도 나름 쏠...쏠...한? 재미가 있을거에요 헷)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최대한 티를 내지 않고 무슨 일이냐고 물을 수 밖에 없었다.
말이 입 밖으로 나온 순간 그 말이 너무 차갑게 느껴져 나도 모르게 아차 싶었다.
그녀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자신이 앞집에 살아서 인사를 온 것이라고 했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리는 것만 같다. 그녀에게 들릴까 무서웠다.
우연으로라도 만나길 바랐던 만남은 너무 일찍 찾아왔고 나는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 곳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나는 그녀를 그녀에게 핑계로 대며 문을 닫았다.
닫힌 문에 기대어 스르륵 주저 앉았다.
온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고개를 들었을 땐 TV에서 웃고 있는 방금의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바로 내 앞집에 산다.
한숨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아니 잘 생각이 들지 않았다.
처음 제대로 된 미술학원을 다녔었던 날보다 설렜던 밤이었다.
다음 날에는 택운이 형과 약속이 있었다.
세번째인가 네번째 부모님의 아들이었던 택운이 형은
내가 들어가는 날이나 돌아가는 날이나 언제나 한결같이 나의 편이 되주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나의 손을 잡고 나를 미술 학원으로 데리고 갔던 것도 형이었으며
내가 진심으로 웃고 요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평범한 사람처럼 지낼 수 있는 순간은 형과 있을 때 뿐이었다.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을 때 보였던 것은 그녀의 옆모습이었다.
목도리와 마스크로 자신을 가린 그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나는 쭈뼛거리며 그녀의 옆에 조심스럽게 섰다.
그녀가 옆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더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는 지는 알 수 없지만
나의 머리 속은 이미 그녀로 꽉 차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리 둘은 공중에서 손이 만났다.
지하주차장으로 가는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그 아래에서 그녀의 손이 올라왔다.
우리 둘은 같은 곳을 가고 있었다. 몇 초 안되는 짧은 순간이지만 설레었다.
그리고 너무나 떨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녀와 나는 천천히 자신들의 목적지를 향해 걸어갔다.
내 앞에서 총총대며 뛰어가는 그녀는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그리고 내가 나의 자동차에 이르렀을 때 그 옆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차와 나란히 주차되어 있는 나의 차로 들어가 앉아서는 도저히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나의 오른쪽에 그녀가 앉아있다고 생각하니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나에게 고마움을 알려준, 그리고 작은 행복을 알려준 그녀가 바로 나의 오른쪽에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몇 가지 되지 않았다.
그 몇가지 일들 중에서 가장 제정신으로 보일 행동은 그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나의 고개는 앞으로 고정된 채 나의 자동차는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언제나 그렇듯이 형은 형의 집으로 들어가는 나를 무심하게 힐끗 보고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것이 형에게 있어서 최고의 환영임을 아는 나는 형에게 애교를 부리며 다가갔다.
형은 A4용지 더미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게 뭐냐고 묻자 형은 인터넷에서 나름 반응을 얻고 있는 글인데 내용이 좋아서
출판하려고 검토 중인 작품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택운이 형은 자신이 이미 읽은
부분의 종이를 나에게 넘겨주었다. 형이 읽고 나면 내가 읽으면서 하루를 보냈다.
그 글은 나의 마음을 찔렀다. 내가 겪었던 외로움과 슬픔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글이였다.
종이 위로 나의 외로움이 겹쳐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본 형은 나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았지만 곧 가져가서 읽어도 좋다고 말했다.
그 글은 나의 외로움으로 스며들었다.
넓은 세상에서 같은 외로움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았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어두운 밤이었다.
언제나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은 외롭고 쓸쓸했지만 한 손에 안고 있는 종이 뭉치들이
나의 외로움을 가져갔다. 언젠가 내 품에 항상 안겨있던 곰돌이 인형처럼 글들은 나의 외로움을 환히 밝혀주었다.
상 위에 종이를 놓고 막 옷을 갈아입었을 때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그녀일까 하는 마음에 바로 누구세요하고 인터폰에 물었다.
앞집이라는 소리가 들리자 마자 들뜬 내 발걸음 저절로 문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그녀에게 무슨 일로 오셨냐고 물었다.
그녀는 나와 친하게 지내고 싶다며 초콜릿을 건넸다.
그녀가 나에게 준 초콜릿은 세상 어디에서도 맛 보지 못할 달콤함을 가지고 있었다.
내 얼굴에는 저절로 웃음이 피어 올랐다.
긴장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조금 더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나의 집으로 초대하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내가 그녀에게 고마움을 전해주고 싶은 순간은 그녀와 내가 동등하게 마주한 순간이지
그녀가 가득한 나의 공간에서 내가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는 순간은 아니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그녀의 집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냐고 물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잠시 나를 문앞에 세워놓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지금 그녀의 집으로 들어간다는 이 순간이 꿈만 같았다.
곧이어 그녀가 나와 나에게 그녀의 집으로 들어올 것을 허락했다.
살짝 고개를 끄덕인 나는 그녀의 집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어디에 어떻게 있어야 할지 몰라서 우두커니 현관에 서있자
그녀는 나의 팔을 잡고 거실 한가운데에 있는 쇼파에 앉혔다.
그리고 그녀는 주방으로 사라졌다.
그녀가 잡은 팔이 화끈거리는 것만 같았다.
아마 화끈거리는 것은 팔만이 아닐 것이다.
상자에서 초콜릿을 하나 더 꺼내서 앞을 바라본 순간 TV 화면 가득히 그녀가 나오고 있었다.
이미 어떤 드라마인지, 앞으로 어떤 대사가 나올지 이미 다 알고 있었기에
나는 조용히 그녀의 모습을 감상했다. TV 속 그녀는 다시 행복을 노래한다.
주방에서 주스를 들고 나온 그녀는 TV를 보고 있는 나를 보면서 부끄러워했다.
TV 속 그녀가 지금 내 앞에서 당황하며 웃고 있는 것이 꿈만 같아 나는
그 드라마에 나온 사람이 당신이냐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그렇다고 하면서 자신을 보고 반응이 없었던 내가 조금 놀라웠다고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그녀를 잘 모른다는 사실에 대해 안도했다.
나의 거짓말이 시작되어 버렸다.
나는 그녀에게 연예인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랬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그녀가 내 앞집이라 놀랐다는 나의 대답은 진실이었다.
그녀와 나는 서로의 이름을 묻고 나이를 물었다.
나와 동갑인 그녀는 새로운 친구가 생긴 것에 대해 매우 기뻐했다.
그리고 예술 분야에서 일하는 나의 이야기에 매우 즐거워했다.
나는 처음으로 나만의 이야기로 다른 사람을 즐겁게 만들었다.
그것은 나를 즐겁게 만들었고 그녀와 있을 때는 마치 택운이형과 있을 때처럼
평범한 사람, 행복한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녀는 내게 좋은 친구라고, 최고의 이웃이라고 말해주었다.
택운이형은 나에게 블로그에서도 글을 읽을 수 있다고 했다.
오랜만에 킨 인터넷에서 나는 그녀의 뉴스를 읽을 수 있었다.
그녀는 새로운 드라마를 찍는 모양이었다.
대본 리딩을 하는 모습이 기사화되어서 인터넷을 장식하고 있었다.
대본을 보며 연기를 하는 그녀의 모습은 나에게 행복을 주었다.
블로그에서 글을 새로 뽑았다.
택운이형이 주었던 종이는 이미 내 눈물로 얼룩져 제대로 읽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그 종이들을 버리기 위해 한 데 모아 집 밖으로 향했다.
집을 나선 순간 내 눈앞에는 다시 그녀가 보였다.
그녀는 나의 집 문이 열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고 우리의 눈은 허공에서 어색하게 마주쳤다.
내가 먼저 입을 열어 지금 들어오는 거냐고 물었다.
그녀는 큰소리로 새 드라마 대본 리딩을 했다면서 회식까지 하고 지금 오는 길이라고 했다.
마땅히 할 얘기가 없었는데 손에 종이뭉치가 느껴졌다.
그래서 그녀에게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글을 소개시켜줄까 말을 하려던 참에 그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카톡! 하고 경쾌하게 복도에서 울리는 그 소리에 그녀는 잠시만 하고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그녀에게 카톡을 한 상대도 궁금했지만 더 궁금한 것은 그녀와 카톡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연예인이기에 내가 먼저 쉽게 번호를 묻기는 어려웠다.
그저 지금처럼 가끔 집 앞에서 만나 인사를 하는 사이로도 감사했다.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언젠가는 흘러가는 이야기로 그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리라 마음을 먹고 있는 동안
그녀는 메세지를 다 보냈는지 나를 바라 보고 있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다시 굳어버렸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쓰레리 버리러 내려가 보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내게 웃어주며 그럼 조심히 들어가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종이 뭉치를 버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잠이 드는 순간까지 나는 행복했다.
어느 날은 그녀가 갑자기 나의 집을 찾아왔다.
무슨 여자애가 이렇게 남자 집에 불쑥 불쑥 오냐며 장난을 쳤지만
그녀는 내게 남자가 아니라 그냥 친구라고 맞받아쳤다.
좋은 지 아픈 지 알 수 없는 마음을 뒤로 하고 무슨 일로 왔냐고 묻자
그녀는 나에게 대본 연습을 같이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처음에는 그녀와 연기를 해야한다는 것에 놀라 거절을 했지만
그녀는 내게 대사만 해주면 된다고 간절하게 부탁했다.
결국 나는 다시 그녀의 집으로 향했고 지난 번 앉았던 그 쇼파에 앉아
그녀로부터 대본을 넘겨 받았다.
내가 해주어야 할 역할은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었다.
두 남녀 주인공이 어색한 첫만남을 가지는 장면을 연습하면서 그녀는
상대 남자 배우와 얼른 친해져야 한다고 투정을 부렸다.
나는 얼른 그 배우와도 '친구'가 되라고 대답했다.
생각보다 연기는 어렵지 않았다.
즐거워보이는 연기는 내 전문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배우해도 되겠다며 칭찬을 했고
나의 기분은 걷잡을 수 없이 즐거워졌다.
나는 대본리딩 기사에서 다음 주 쯤에 크랭크인을 할 것이라는 문장을 기억해내고
그녀에게 다음주가 크랭크인이냐며 물었다.
묻고도 아차 싶었다. 그녀는 나에게 날짜를 알려준 적은 없었다.
그녀는 바로 자신이 날짜를 알려줬었냐고 되물었다.
중요한 날짜는 항상 들고 다니는 대본 앞에 적어 놓는다는 그녀의 인터뷰가 기억이 났다.
그리고 자신의 대본을 들어 보였던 그녀의 모습이 생각이 났다.
나는 대본 앞에 써놓은 것을 봤다면서 둘러댔다.
그 변명은 먹혔지만 내 마음 속 거짓말은 하나 둘 쌓여가고 있었다.
한동안은 그녀를 보기 어려웠다.
그녀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인터폰으로 그녀와 나의 집 사이를 확인하는 것은 습관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어느 날은 운좋게 인터폰을 켠 순간 그녀가 집 밖으로 나온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급하게 차키만 챙겨 문을 열었다.
그 어느 날 보다도 예쁘게 차려입은 그녀는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나는 사실 아무런 약속도 없었지만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 나간다고 또 거짓말을 했다.
그녀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두 손에 가득한 쇼핑백을 전해주러 간다고 했다.
그 소중한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궁금했지만 더 궁금한 것은 내가 그녀의 소중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였다.
소중한 사람을 만나러 가는 그녀는 누구보다도 예쁘고 아름다웠다.
둘만 있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녀는 나에게 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녀와의 거리가 한 걸음 가까워진 느낌이 들어 기분이 하늘 위로 나는 것 같았다.
가방을 열기 위해 낑낑 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저절로 웃음이 났다.
나는 그녀의 한 쪽 손에 있던 쇼핑백을 뺏어 들고 그녀에게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내가도 되냐고 물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을 때 나는 그녀의 가방을 열어 휴대전화를 꺼내 나의 번호를 입력했다.
나의 휴대전화의 그녀의 번호가 떠올랐을 때 만큼 짜릿했던 순간은 없었다.
나는 그녀의 휴대전화를 다시 가방에 넣고 다른 한 쪽에 있던 쇼핑백도 들었다.
그녀는 자기가 들 수 있다며 달라고 했지만 평소보다 들뜬 나는 이정도는 들어도 괜찮다고 하면서
그녀의 자동차에 쇼핑백을 놓아주었다.
그녀와 처음 만난 날 이후 항상 같은 자리에 차를 주차시켰는데
그녀 역시 같은 자리에 주차를 해놓았다. 괜히 뿌듯해진 나는 운전석에 앉아 그녀에게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목적없이 나온 내가 갈 곳은 하나 뿐이였다.
택운이형 집에서 나는 형과 글들을 마저 읽었다.
점심 때 쯤에 형은 라면을 끓여준다면서 주방으로 향했고 나는 휴대전화를 열어
예쁘게 저장된 그녀의 이름을 확인했다.
떨리는 마음을 잡고 그녀에게 쨘ㅇㄴㅇ하고 톡을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녀는 쨘@,@ 하고 답장을 보냈다.
꿈에 그리던 그녀와의 카톡에 너무 들떴는지 내 입에서는 저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라면을 들고 글이 쌓여 있던 테이블로 오던 택운이형은
살다가 이재환 입에서 노래가 나오는 것도 보게 된다며 어이없어 했다.
그 후로 지금 뭐해?ㅇㄴㅇ라는 톡을 보냈지만 그녀에게 답은 없었다.
많이 바쁜가 하고 많이 바빠?ㅠㄴㅠ라고 보냈지만 여전히 답이 없었고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ㅠㄴㅠ라고 보내도 답은 없었다.
그녀에게 사정이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급한 일인가 보네ㅠㅠㅠㄴㅠㅠㅠㅠㅠㅠ라고 보냈지만
그래도 갑자기 끊긴 톡에 서운해 그래도 이렇게 톡하나 놓고 사라지면 걱정되쟈냐ㅠㅠㅠㅠㄴㅠㅠㅠㅠㅠㅠ
지금 바쁜 척 하는고야???!!!!????ㅠㅠㅠㅠㅠㄴㅠㅠㅠㅠㅠ라고 보냈다.
결국 기다리는 입장의 나는 톡 보면 답톡답톡ㅇㄴㅠ으로 보내고 수시로 카톡 창을 확인했다.
내가 휴대전화만 붙잡고 있는 사이 택운이형은 회사에 일이 있어 갔다오겠다며 집을 잘 지키고 있으라고 나갔다.
나는 건성으로 대답을 하고 휴대전화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내가 보낸 메시지 옆 사라지지 않던 1이 드디어 사라졌다.
어? 읽었다ㅠㅠㅠㅠㅠㅠㄴㅠㅠㅠㅠㅠㅠㅠ
빚쟁이 님이 톡을 읽으셨다!!!!!!!!ㅇ_★
이라고 보낸 톡에 그녀는 귀엽다고 웃으면서 식사 하느라 못 봤다고 답장을 했다.
그녀는 곧 촬영하러 가야 한다면서 혹시 답장이 늦더라도 촬영이 끝나면 확인할테니
아까처럼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윽고 답장이 끊기고 나는
지금 촬영하나?ㅇㄴㅇ
오모오모 빚쟁이 드라마 찍고 있나?ㅇㄴㅇ이라고 톡을 보내놓았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그녀에게서 온 답장은 그녀의 이야기를 가득 담고 있었다.
그녀가 촬영하면서 실수한 이야기, 그래서 꾸중을 들은 이야기까지 줄줄이 늘어놓는데
그녀에게 있어 내가 정말 가까운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나는 언젠가 택운이형의 기분이 안 좋았을 때 그랬던 것 처럼 그녀에게 온갖 즐거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와의 카톡은 밤이 되어도 끊기지 않았다.
그녀는 촬영 중간 중간 시간이 날 때마다 나에게 카톡을 해주었고
나 역시 메신저로 누군가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해본 것은 처음이라 들떠있었다.
그녀와 나는 서로의 일이 힘들다고 칭얼대고 다독여줬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녀는 내가 자신을 진짜 일반인 친구로 봐주는 것 같아 좋다는 이야기를 했다.
마음 한켠이 무거워져 나는 그녀가 내 앞집이라 좋다는 진심을 이야기 했다.
택운이형은 집으로 돌아와 우리가 읽던 그 글을 출판할 것 같다고 입을 열었다.
나는 형에게 표지랑 삽화를 내가 하면 안되겠냐고 조르고 졸랐다.
처음에 형은 거절할 것처럼 안된다고 말했지만 출판하기로 계약을 할 때
작가 쪽에 나의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약속했다.
그녀는 점점 드라마 촬영이 바빠져 집에 오는 시간이 들쑥날쑥해졌다.
보통은 카톡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내가 작업을 집에서 한다는 이야기를 그녀에게 한 이후로
그녀는 집에 잠깐이라도 들릴 때 나를 초대해 함께 밥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넌지시 나의 집으로 오고 싶다고 물어보았지만 집 안 가득한 그녀의 사진이 생각이나
나는 그림 핑계를 대며 거절을 했다. 그녀는 수긍하는가 싶더니 그럼 나중에 청소할 때라도
가보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러라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청소는 꼭 그녀가 집을 비운 날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녀로부터 촬영이 바빠져서 따로 밥을 시켜 먹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에
나는 그녀의 팬카페를 돌면서 그녀의 스케쥴을 확인했다. 경기도 외곽의 스튜디오에서
장시간 촬영하는 날을 알아내어 그 날에 맞춰 촬영장에 그녀를 위해 밥차를 쐈다.
그녀는 서프라이즈로 찾아온 나를 보고 깜짝 놀랐지만 곧 신나서 나를 스태프들에게 소개시켜주었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었고 장난으로 나와 그녀가 잘 어울린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그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녀의' 소중한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그녀의 상대 배우와 그녀가 나에게 촬영장 위치에 대해서 물었을 때
나는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인터넷에 다 나온다고 둘러댔다. 거짓말이 늘었다.
그 남자 배우는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그 남자는 그녀가 그의 손에 이끌려 촬영장으로 가는 그 순간까지 나의 신경을 건드렸지만
그녀와 사랑 연기를 하는 그가 조금 부럽게는 느껴졌다.
나도 그녀와 사랑을 하고 싶다.
형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 작가의 대리인과 출판하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궁금해했던 작가님은 몸이 아파서 오시지 못하고 까무잡잡한 남자분이 대신 오셨다고 했다.
그리고 나를 표지와 삽화 작가로 써준다고도 했다.
그녀 이후로 내 삶에 위안이 되었던 그 글에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어서 나는 행복했다.
형과의 행복한 전화를 마치자 마자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지금 나의 행복한 마음을 그녀에게 조금이나마 전해주고 싶었다.
언젠가 택운이형이 나의 집에 오면 해주고 싶었던 요리 재료들을 들고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둘이 먹을 때도 항상 시켜먹거나 이미 조리된 음식을 먹고는 했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제대로 된 음식을 먹여주고 싶었다.
그녀를 식탁 의자에 앉히고 나는 요리를 시작했다.
기쁜 마음에 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그녀는 내가 이렇게 신난 이유가 궁금하다며
얼른 알려달라고 나를 재촉했다. 행복함을 숨길 수 없었던 나는 환하게 웃으면서
그녀에게 그 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글에 관해 이야기 할 때 나는 마치 그녀에 관해 이야기 하는 것 처럼 행복해졌다.
이야기를 마치고 그녀를 위한 요리를 하는 동안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 날 그녀는 내가 해준 파스타를 맛있게 먹었고 우리는 웃는 얼굴로 헤어졌다.
그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는 일상은 없었다.
그녀는 촬영으로 매우 바빠졌으며 나는 책에 들어갈 그림을 그렸다.
우리는 보통 카톡으로 이야기했고 가끔 그녀가 집으로 돌아오는 날
우리는 그녀의 집에서 함께 밥을 먹었다.
출판 관련 미팅은 항상 작가님 대신에 차학연이라는 남자가
참석해서 의견 조율은 힘들었지만 책이 먼저 나오면 그녀에게
가장 먼저 선물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그러던 어느 날은 그녀가 밤샘 촬영으로 한동안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다.
언제 그녀가 집에 올지 몰라 집 안에 쌓여있는 각종 캔버스들과 종이들을
처리하지 못해 곤란했는데 그녀가 없는 동안 얼른 치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을 반쯤 열어놓고 엘리베이터로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캔버스들을 날랐다.
얼마나 왔다갔다 했을까 연습용으로 날려버린 캔버스들은 모두 내놓고
새로운 캔버스들을 받아서 올라왔는데 현관문이 닫혀있었다.
아까 열어놓고 나온 것 같아서 의아했지만 바람에 닫혔나 생각하고 문을 열었다.
그 문 앞에는 그녀가 서 있었다.
그녀는 집안 가득한 그녀의 사진을 보고 나를 보았다.
그녀는 나를 밀치고 그녀의 집으로 돌아갔다.
문이 닫혔다.
아마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저렇게 문이 닫히고 나면 나는 더이상 그녀를 보지 못한다는 걸.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ㅎㅏ....★☆ 슬픈 뎨화니 얘기는
읽고 계신 독자님들도 힘드실까봐 그냥 한편에 쭉 몰아서 가져왔습니다...★☆
평소보다 좀 늦었죠..ㅜㅜㅜ 저를 매우 치십셔
다음편부터는 이제 다시 빚쟁이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우울한 뎨화니 이야기 봐주시느라 정말 수고가 많으십니다...우니별요니별
우니는 어떻게 나왔는데 시긔..!ㅜㅜ 시긔시긔원시긔는 어디서...★☆
재환이에 대한 판단은 여러분에게 맡길게요...★☆ㅜㅜㅜ흡...발손
오늘도 코ㅎ맙습니다
[암호닉]
뎨뎨아기님
레오눈두덩님
로션님
까까님
코쟈니님
치즈볶이님
오파리님
설렘님
홀리폴님
아영님
하얀콩님
찌꾸님
땡땡이님
에델님
배꼽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