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편으로 끊으려 했으나 그냥 한 편으로 끝냅니다. 다만 좀 많이 길어요.
마침 오늘 구독료 무료네요! 울 독자님들 맘 편히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애프터 첫사랑》 외전입니다. 본편을 먼저 읽어주세요.
# 첫사랑 비하인드 1
열일곱, 소년의 첫사랑 이야기.
# 1.
최민기는 주변이 조용한 걸 싫어했다. 외로움을 탄다거나 그런 건 아닌데, 그냥 주변이 시끌시끌해 귓가에 소리가 비는 틈이 없는 걸 좋아했다. 물론 혼자서 공부를 할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이어폰은 최민기의 필수품이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최민기가 본인 부모님의 출장으로 인해 텅 빈 집에 나를 포함한 애들을 초대한 건 별로 의아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내가 좀 황당했었던 부분은,
"야, 우리 누나 픽업 좀."
친하지도 않은 제 누나를 내게 부탁하는 거였다. 겁이 많아서 혼자 집에 못 온다나 뭐라나. 네가 가면 되잖아. 그렇게 말했더니 본인은 집 주인이라 집에 손님들만 두고 비우면 안된단다.
솔직히 가도 별 상관이 없었다. 최민기의 말에 따르면 거리가 그렇게 먼 것도 아닐 뿐더러 최민기의 누나 되는 사람은 이미 학원을 마쳤기에 내가 가서 기다려야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냥 궁금했다. 왜 하필 '나'야?
그걸 궁금해하는 이유는 별 거 없었다. 그냥, 최민기의 누나는 오직 나랑만 말 한 마디 안 해본 어색한 사이였지, 나를 제외한 최민기의 집에 있는 다른 녀석들이랑은 친했으니까.
"내가 가면 좀 어색할텐데."
"너 아님 믿을 사람이 없다. 곽영민은 이미 자고 있어서 깨워도 안 일어나지, 황민현은 씻고 있지, 그리고 김종현은."
쿠당탕탕.
만화책을 두 손 가득 안고 위태롭게 거실로 걸어나오던 김종현이 넘어지는 소리였다.
"...저 하체 부실을 어떻게 믿어."
"...그건 좀 인정."
"아, 가는 김에 둘이 좀 친해지고. 누나가 너 무서워서 못 친해지겠다잖아."
내가 무서운가?
"그래. 3번 건물?"
"어. 얼굴은 알지?"
"응."
몇 번 본 적은 있으니까. 핏줄은 역시 핏줄이라 그런지, 최민기랑 닮았더라.
둘이서 나란히 걸어 돌아오는 길은 너무나도 어색했다. 아, 나 이런 거 별론데. 무슨 말이라도 해 볼까 싶어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돌연 입이 먼저 열렸다.
"저 무서워요?"
내 뜬금없는 질문에 순간 당황한 듯 하다가도 조곤조곤 말을 이어가는 모습이 남매임에도 불구하고 최민기랑은 느껴지는 게 조금 달랐다. 조금 더 차분했달까? 아직 내가 어색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마음에 들었다. 이 누나. 아, 오해는 삼가해주길 바란다. 그냥 단순하게 사람 대 사람으로 마음에 든다는 의미니까. 친해지면,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친해진 후의 그 모습이 머릿속에 막 그려지고 있는 것만 같아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저는 진짜로 누나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아, 벨을 누른 건 진짜로 실수였다. 순간 최민기의 누나라는 사실을 까먹어버렸지 뭐야.
# 2.
솔직히 말하자면 이 날은 기억나는 게 딱히 없다. 속이 안 좋다는 누나의 문자에 미안함만 가득 차서 어쩔 줄 모르고 허둥댔던 것 말고는.
정말 많이 미안하고 속상했다. 억지로 매운 걸 먹인 것만 같아서. 시험기간인데 아프게 해서. 정말로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아프게 한 건 나고 아팠던 건 본인인데도 불구하고 누나는 그저 내가 미안함에 사다 줬던 죽이랑 약이 고맙다며 더 맛있는 걸 사 준다고 했다. 나, 얻어먹어도 되는 건가?
# 3.
어딘가 익숙한 모습이었다. 근데 또 느낌이 달랐다. 긴가민가하다 결국은 조심스레 이름을 불러 봤다. 돌아보는 얼굴은 누나가 맞았다. 아, 많이 꾸며서 느낌이 달랐던 거였구나. 와, 근데, 예쁜 거 알고는 있었는데 또 이렇게 보니까 진짜 예쁘시다.
"근데 누나는 여기 무슨 일로...?"
"데이트하러 나왔다가 집 가는 중."
"예에?????????????"
아무 생각 없이 물었다가 돌아오는 대답에 깜짝 놀랐다.
"뭘 그렇게 놀라. 나는 남자친구랑 데이트하면 안 돼?"
그러게. 나 왜 이러지. 이렇게까지 놀랄 필요는 없었는데.
"네? 아, 어... 누나 남친 있는 줄 몰랐어요. 없다고, 그러니까, 그랬는데, 최민기가."
그냥 생각나는 그대로 말을 뱉았다. 잔뜩 버벅거리며 대답하는 내가 웃겼던 건지 누나는 짧게 웃었다. 아, 쪽팔려.
"장난이야. 버스 왔다, 타자."
근데 이건 또 무슨 말이람. 나는 완전 놀라고 버벅거리고 막, 어? 그랬는데 저렇게 태연한 표정으로, 아니, 아 진짜.
사람 들었다 놓는 재주 있으시네요. 장난 한 번 참...
어쩌다 보니 옆자리에 앉았다.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그냥, 그렇게 눈에 밟혀왔다.
'이번 정류장은 플디도서관입니다. 다음은...'
아, 벌써?
뭔가 아쉬웠다.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었다. 그래서 그냥 같이 내렸다. 제대로 약속을 잡고 또 만나고 싶었다. 핑계가 필요했다. 도서관 사건 이후 내가 시간이 될 때 맛있는 걸 사 준다고 했던 그 약속을 떠올렸다. 사실 내가 너무 미안해서 그냥 넘어갈 생각이었는데. 약속까지 잡고 나니 정말로 갈라져야 할 타이밍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마주보고 있으려면 무슨 말이라도 더 해야 했다. 그래서 그냥 오늘 버스정류장에서, 또 버스에서 줄기차게 생각해왔던 걸 얘기했다.
"원래도 예뻤지만 오늘은 더 예쁜 것 같아요."
내 말에 누나는 웃었다. 예쁘게.
"고마워."
그날 밤, 이상하게도 잠이 오지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자연스럽게 누나의 생각 역시 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드라마에서 줄기차게 얘기하는 그 '사랑' 같았다. 떠올리면 기분이 참 묘한 게, 오늘 내가 했던 행동이란 게 말이다. 심지어는 그냥 사랑도 아닌 무려
'첫사랑.' 그래. 바로 그거였다.
# 4.
"이거 저번에 그 옷이네요?"
"오,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잊겠어요.
"그날 우주 누나가 너무 예뻤거든요."
내 첫사랑을 찾은 날인데.
내 사촌 생일선물을 고르려 들어갔는데, 아까부터 뭔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길래 내가 고른 것도 어떤지 한 번 물어볼 겸 다가갔다. 흘끗 본 진열장 유리로 정말, 진짜로 누나와 잘 어울릴 법한 시계 하나가 보였다. 아, 나중에 저것도 사야 될 것 같다.
"커플 시계로는 이게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잘 나가요."
뜬금없이 다가온 직원이 뜬금없이 한 말이었다. 우리가 커플인 줄 아는 것 같다.
"...네? 아..."
잔뜩 당황한 누나의 모습에 내가 먼저 정정했다. 커플이 아니라고.
진짜 커플이었으면, 어땠을까?
애인이 있냐는 질문에 잠시 멈칫했다. 왜 물어보는 걸까. 내 대답에 따라 반응이 달라질까. 의문은 꼬리를 물었다. 애인은 없고, 좋아하는 사람은 있다고 말했다. 차마 그게 누나라고는 말 못하고.
"그 사람은 좋겠네."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었겠지만,
"...왜 그렇게 생각해요?"
나한테는 그 의미가 달랐다. 잠시 고민하던 누나는 이내 물을 한 번 마시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좋은 사람이니까."
"......"
그게 누나라면, 누나는 어떻게 할 건가요. 저를 그냥 친한 동생으로만 보는 누나는, 제 마음을 내칠 건가요? 뱉지 못하고 속으로 삼킨 질문들이 입 밖으로 나오고 싶어 몸부림치는 걸 애써 외면했다.
사실, 누가 봐도 짝사랑이었다.
헤어져야 하는 타이밍에 아까 샀던 시계를 내밀었다. 선물이라고 했다가도 뇌물이라 정정했다. 그저 멍하니 보고만 있는 표정이, 그냥 내 마음이라고, 선물이라고, 그렇게 얘기하면 꼭 받아주지 않을 것만 같아서. 사실은 뇌물 아니고 선물이 맞는데, 그래도 그냥.
뇌물이라는 내 말에 누나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 예쁜 입에서 나온 말은 충분히 아팠다. 억지로 웃었다.
"왜, 내가 그렇게 좋아?"
누나 질문은 그저 장난이었겠지만,
"네. 저는 누나 좋아해요."
제 대답은 진심이었어요.
생각보다 힘드네요. 혼자 좋아하는 거.
# 5.
"생일선물로 갖고 싶은 거 없냐."
뜬금없이 최민기가 묻는다. 얘가 이런 거 물을 애가 아닌데. 무슨 꿍꿍이냐 묻자 너무나도 당당하게 말한다.
"누나가 이거 알아오면 치킨 사 준댔어."
...너네 누나는 이런 전개를 바라진 않았을 것 같은데.
"갖고 싶은 거 딱히 없는데."
그냥 누나의 축하를 바랄 뿐인 거지. 하여간 최민기, 돌려 말하는 재주 진짜 없다.
며칠 뒤, 밤에 전화가 왔다. 누나로부터. 다짜고짜 만나자는 말에 당황하기도 잠시, 내 생일날 만나자며 다시 정정하는 모습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 전 또. 제 생일 챙겨주려고 그러는 거 맞죠?"
ㅡ 응, 미안해. 내가 이런 거 돌려 말하는 재주가 없어서.
솔직하다. 그것도 엄청. 최민기도 그러더니, 남매는 역시 남매인가보다.
어쩌다 보니 방학식이랑 겹쳐버린 내 생일에 내가 누나의 학교 앞으로 가기로 약속을 잡고는 통화를 끝내려 했다.
"알겠어요. 누나 안녕히 주무세요."
ㅡ 말고.
"네?"
ㅡ 안녕히 주무세요 말고 잘 자요 해 줘.
뜬금없이 뱉는 말에 웃음이 나오기도 잠시,
"네, 잘 자요 우주 누나."
누나가 원하는대로 대답했다. 근데 나도 이쪽이 더 마음에 드는 것 같다.
그렇게 오래 기다린 건 아니었다. 다만 기다리는 시간이 아주 심심했던 건 사실이다. 하나둘씩 학교를 빠져나오는 교복 입은 사람들의 모습에 기웃거리며 누나를 찾는 것도 잠시, 이내 저 멀리서 후다닥 뛰어오는 모습에 넘어지면 어쩌려고 저렇게 뛰나 걱정이 되더라. 순간 내 앞으로 훅 다가온 누나가 내 손을 붙잡고 어서 가자며 이끌었다. 덕분에 온 신경이 붙잡힌 손끝으로 향했다. 아마도 누나는 별 생각 없이 잡았던 거겠지만.
어느 순간 빨랐던 발걸음이 다시 느릿해짐과 동시에 내 손을 붙잡은 손에서도 힘이 풀려가는 게 느껴졌다. 아, 계속 잡고 있고 싶은데.
그래서 그냥 손에 깍지 끼고는 그걸 한 번만 선물로 달라고 했다. 물론 그 말을 하면서도 싫다고 대답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빼놓지 못했다. 그런 일이 없었기에 다행이지만.
"좋아서 챙겨주는 건데 뭘."
내게 케이크와 편지를 건네며 그렇게 얘기했다. 오해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밤에 최민기한테 전화가 왔다. 받았더니 다짜고짜 하는 말이,
ㅡ 너 내 누나 좋아하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저거였다. 아, 티가 났나.
그럼 혹시 누나도 알아챘을까.
# 6.
또 와서 자고 가란다. 최민기가. 너네 누나 고3인데 괜찮냐 물으니 눈을 얍실하게 만들어 날 노려본다. 옆에서 황민현이 우리가 고3 방해하는 거 아니냐 묻자 다시 원래의 눈으로 되돌아오더니 허락 받았다고 한다. 똑같은 질문인데 왜 반응이 다른건지 모르겠다.
최민기 집에서 그냥 놀다가 잠들었다. 아마도 자꾸만 울려대는 최민기의 휴대폰이 아니었더라면 그대로 계속 잠에 빠져 있었겠지. 누나의 전화였다. 그러고 보니, 새벽 두 시가 넘었는데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은 것 같았다. 어디냐고 묻자 영화관이라며 곧 올 거라 했다. 그런데,
ㅡ 너 설마 혼자 가려고? 최우주 미쳤어? 지금 시간이 몇 신데 혼자 가.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누나의 것이 아닌 다른 목소리가 좀 거슬렸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 말의 내용이.
결국 겉옷을 들었다. 아무래도 데리러 가야 할 것 같았다.
"미안해."
"갑자기 뭐가요?"
너 귀찮게 한 것 같아서. 고개를 푹 숙이고 중얼였다. 딱히 귀찮지 않았는데.
"괜찮은데."
"그래도, 잘 자고 있는 널 내가 깨워서 밖으로 불러낸 거잖아."
솔직히 말하면, 내게 왜 굳이 미안해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은데.
"...누나."
걸음을 멈추고는 불렀다. 자꾸만 미안해하는 모습이, 우리는 이 정도의 일조차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없는 사이라고 선을 긋는 것 같아서.
"제가 원해서 나온 거에요. 누나 보고 싶어서. 데리러 가고 싶어서."
"...어?"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있잖아요, 왜 저는 꼭 누나가 다 알면서 일부러 밀어내는 것 같죠.
"자꾸 미안해하니까 기분이 좀, 네, 그래요."
제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항상 애매하네요.
"아..., 나는."
"알잖아요."
욕심내다가는 지금 유지하고 있는 관계마저 깨질까 일부러 참고 있었는데,
"...제가 누나 좋아하는 거, 이미 알고 있잖아요."
뭐가 되든 그냥 한 번 해보려고요.
그러니 제게 확신을 주세요. 어느 쪽이든.
# 7.
아,
그냥 아파도 좀 더 참을 걸 그랬나 봐.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 8.
"좋아해."
"...나?"
"응, 너."
고백을 받았다. 중학교 때 내내 같은 반으로 지내며 나와 친했던 여자애였다. 무표정이 일상이라 자칫하면 오해를 사곤 했던 그 애는 내게 고백을 할 때도 무표정이었다.
"미안해.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내게 차일 때는 그럴 줄 알았다며 씩 웃어보이긴 했지만.
"그럴 것 같았어."
"뭐가?"
"차일 것 같았다고. 그래도 후회 안 해. 너 나랑 절교할 거 아니잖아?"
웃으면서 덤덤하게 하는 그 애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좀 많이 지난 후의 이야기이지만, 그 애는 그 애를 예전부터 졸졸 쫓아다니던 한 선배의 끝없는 구애에 결국 사귀기 시작했는데, 정말 행복해 보이더라. 심지어는 내 연애상담까지 다 들어줬다고.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은 여전했지만 분위기는 뭔가 달랐다. 조금 더 차분해졌고, 조금 더 피곤해보였다. 고3은 원래 다 이런 건가 싶다가도 혹시 내가 그때 했던 말이 신경이 쓰여 피곤한 건 아닌가 싶은 걱정이 불쑥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할 말이 있다면서 자꾸만 머뭇거리는 모습에 불안해졌다. 내가 불편해졌나. 아님 내 마음에 대한 부정적인 대답을 주려 그러나. 그래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 그때 밤에 그거는 그냥 못 들은 걸로 해 주세요."
차라리 이게 나을 것 같기도 해요.
"...내가 생각하는 게 맞는 거야?"
" 제가 데리러 갔던 날이요. 그냥 없었던 일로 해요."
저는 그러고 싶지 않지만, 누나가 불편하다면.
"...너는."
"...누나?"
예쁜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게 보였다. 뭐지, 나 뭘 또 잘못한 거야. 당황스러운 마음은 뒤로한 채 우선 누나를 달래기에 급급했다.
"왜, 왜 울어요 누나. 저 좀 봐요."
"못 들은 걸로 하면 없었던 일이 되는 거야?"
눈물을 소매로 닦아내며 물었다.
"...누나."
"내가 묻잖아. 대답해 줘."
내 대답을 듣겠다는 의지는 확고했다. 순간 정말 없던 일로 하자는 건가 싶어 허탈해졌다. 나도 참 바보같다. 내가 원한 거였는데 정작 또 그렇게 흘러가니까 속이 답답해진다.
"네. 그렇게 되는 거에요. 그냥 예전처럼, 편한 누나 동생으로."
근데 사실 전 그러기 싫어요. 뒷말은 삼킨 채 대답했다.
"그래? 그러면..."
"......"
"나는 평생 기억할래. 못 들은 걸로 안 해."
처음에는 내가 잘못 들은 건가 했는데,
"나는 네가 좋아. 그냥 하는 말 아니야. 나 그날의 네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아서 고민 많이 했어. 두 달 넘게 고민했어. 근데 암만 생각해봐도 좋아하는 게 맞는 걸 어떡해. 그거 아니면 다른 답이 없는데. 그래서 못 들은 걸로 못 하겠어. 안 할래. 널 좋아한다는 걸 깨달아가는 두 달 동안 무엇 하나도 쉬운 거 없었어 나는. 지금도 똑같아. 그러니까 그렇게 쉽게 없었던 일로 하자고 하지 마."
잘못 들은 게 아닌 것 같았다. 믿기지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 누나가 저를 좋아한... 다고..."
말을 더듬으며 내가 들은 게 정말인지 다시 물었다. 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꿈 아니죠."
"꿈 아니야."
"안아봐도 돼요?"
그래도 된다는 대답이 들려오자마자 꽉 껴안았다. 진짜였다. 내가 바랐던 현실이었다.
“진짜 많이 좋아해요.”
크게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내쉬었다.
“그러니까 저랑...”
"그냥 아는 누나 동생 하지 말고 애인 사이 할래요?"
말없이 고개가 아래로 내려갔다가 제자리를 찾았다. 첫사랑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 첫사랑 비하인드 2
주변인 최 군의 관찰 후기.
나한테 이런 건 대체 왜 쓰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쓰라고 하니까 써야겠지.
솔직히 말하자면 두 사람 다 잘 아는 입장에서 굉장히 주관적으로 보면 나는 강동호보다는 최우주가 더 먼저 좋아했다에 내 이어폰 건다. 아, 이어폰 무시는 하지 않길 바란다. 내 필수품이니까. 아무튼, 진짜로 내가 볼 때는 최우주가 먼저 좋아했다. 이건 옆에서 17년 정도 본 사이면 당연히 다 아는 거다. 데이트 간다고 그렇게 꾸며댈 때 눈치챘다(4화 참고). 그냥 저 바보가 멍청해서 지 마음 하나 제대로 몰랐던 거지.
근데 이게 또 기분이 되게 묘하다. 내 친구가 내 누나를 좋아한대. 내 누나가 내 친구를 좋아한대. 그 두 가지 사실이 좀 뭔가 그랬다. 내 친구고 내 누나인데 추가적으로 '내 친구(혹은 누나)의 애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게 별로 마음에 들지가 않았다. 그냥 최우주는 내 누나, 강동호는 내 친구. 여기서 끝일 때가 나는 더 좋았는데. 뭔가 내 친구도 내 누나도 뺏긴 기분이야.
그래도 둘이 좋다 그러니까 할 말은 없다.
또 뭘 더 쓰지. 아 그래 그거.
제발 둘이 연애하는 데 중간에 나 좀 그만 끼웠으면 좋겠다. 사귀기 전에도 생일선물 알아봐달라(5화) 사탕 전달해달라(8화) 어쩌구 저쩌구 막 시켜대더니 어째 사귀고 난 다음에도 달라지는 게 없냐. 며칠 전에도 누나라는 작자가 남친 시험기간이라며 큰 쇼핑백에 이것저것 주워담고는 나더러 전달해달라더라. 나한텐 쪼꼬만 초콜릿 두 개 줬으면서(서운). 중간에 몇 개 꽁칠까 생각도 했지만 참았다. 난 착한 최민기니까.
몰라, 알아서 적당히 연애하고 둘이 안 맞으면 헤어지겠지 뭐. 근데 이왕이면 싸우지도 말고 헤어지지도 말고 권태기도 없어라. 그래놓고 나한테 와서 막 고민상담이나 뭐 투덜대거나 그러지 마라. 나 곤란해져. 난 누구의 편도 들지 않을 거야. 알았지?
그럼 끝. 팔 아프다.
# 첫사랑 비하인드 3
From You, To Me (Q&A)
Q1. 비회원은 외전을 아예 못 보나여??
ㅡ 제가 회원공개로 돌리지 않는 이상 볼 수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쓰는 모든 글은 전체공개예요! 그 뭐냐 비회원보기인가...? 그거 있을 겁니다!! 저는 그렇게 알고 있는데 혹시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거라면 아무나 제게 댓글로 알려주셔요,,
Q2. 애프터첫사랑 제목은 무슨 뜻인가요?
Q3. 첫화부터 완결까지 너무 재밌게 잘봤습니다ㅠㅠㅠㅠㅠㅠㅠ 애프터첫사랑을 쓰게 된 계기가 뭔가요?
ㅡ 이 두 개 질문은 묶어서 대답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우선 쓰게 된 계기는 그냥 단순하게 설레는 연하남 강동호가 보고 싶은데 글잡에 동호 글이 많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쓰자! 마음먹고 막 구상을 하다 보니까 글이 술술 써지더라고요 근데 제가 중간에 한 번 파일을 통째로 날려먹는 바람에 원래 계획과는 조금 다른 엔딩이 되었어요 원래는 ‘첫사랑’이 아닌 ‘첫사랑 이후’가 메인인 글이었는데 말이죠... 원래 제 계획은 ‘첫사랑은 시간이 지나도 첫사랑이다’라는 문장을 위주로 첫사랑이 이루어지기 전과 후의 서로에 대한 감정 뭐 그런 걸 쓰고 싶었는데 다시 쓸 대는 어째 도무지 제가 원하는 느낌이 안 나와서...
제목은 파일 날리기 전에 연재하던 그 제목을 바꿀 수가 없어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Q4. 동호 너무 설레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작가님 진짜 어떻게 그렇게 잘쓰세요??
ㅡ 헤엑 그건 정말 과찬이셔요 솜씨도 없고 그냥 끌리는대로 쓸 뿐인걸요!! 설레어 해 주셨다니 너무 기분 좋습니다! 감사해요 독자님! (뿌듯)
Q5. 글 재밌게 봤습니다❤❤ 혹시 기회가 된다면 동호로 한번 더 연재할 생각이있으신가요ㅠㅜ
ㅡ 당연히 있습니다! 다만 기회를 잘 잡아야 할 것 같아 조금 머뭇거리고 있는 중이에요 하핫
외전까지 거의 세 달이 걸렸네요 다시 한 번 많이 부족한 제 글을, 글 속 동호와 우주를 많이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기만족으로 쓰기 시작한 글에 하나둘 소중한 댓글이 달리는 게 너무 기분이 좋아 주체하지 못하고 모조리 답글을 달아드렸었는데 알림 거슬리진 않으셨는지 걱정되네요
귀찮았을텐데 옆에서 피드백 많이 해 준 친구 고마워❤
아무튼, 애프터 첫사랑은 진짜로 안녕.
드래그로 확인 (이라 해 놓고 펌금 걸어버린 멍청한 작가) |
↓ 2018. 01. XX '흔적' 연재 시작 죄송합니다 저 진짜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