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 우리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걸까.
아이고, 성규야. 사람들의 통곡 소리가 가득찼다. 눈물이 얼굴을 모두 가려 앞 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바닥을 내리치는 손은 바빴다. 마른 바닥에 마른 손바닥이 마찰하며 소리는 공허하게 울렸고 향이 퍼트리는 향기만이 단상을 가득 채웠다. 영정사진에 웃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예쁘다, 예뻐. 우현은 하얀 꽃을 내려놓았다. 술을 마셔야 한다는 관습이 있지만 우현은 손을 차마 가져다 대지 못하고 술을 내려놓았다. 손에 힘이 더러 풀렸다. 옆집에 이사왔다던 가족이 떡을 돌릴때 까지만 해도 우현은 성규라는 아이에 대해 딱히 무슨 사람이다라고 정의를 내릴 수 없었다. 그냥 옆집 사는 눈 작은 아이. 딱히 이것 말고는 성규를 정의할 수 있는 말들이 있지 않았다. 다음날에도 하얀 티셔츠를 입고 '이거, 떡 남았는데…' 하며 시루떡을 가져오던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눈물을 짓눌러 닦아내도 다시 고이고, 한번 더 고이고, 멈출 수 없을만큼 고여 결국 쏟아내었다. 성규야, 성규야… 끝내 울음소리에 뭍혀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입모양만 벙긋거리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소매를 눈에서 떼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있을 뿐, 다음 사람이 조문을 기다리는데도 우현은 도저히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눈치를 주어도, 다른 사람들이 앉아 울지 않는 우현을 무시하고 그 위에 꽃을 놓고 인사만 하고 가도, 우현은 그 제자리에 앉아서 눈물로 죽음의 아픔을 대신했다.
장례식장이라는 곳이 다 그렇듯 어린아이는 분위기 파악을 못했고 늙은 분들은 술을 마시기에 바빴다. 부어라, 마셔라. 말들이 오가고 우현은 한참을 그 자리에서 울다가 결국 밥 한끼 먹지 않고 신발을 신었다. 성규 엄마라는 여자는 우현을 붙들고 저녁이라도 먹고 가라고 했지만 우현은 고개를 저었다. 저 오늘 저녁에 연구 회의 있어요. 여자는 결국 더 우현을 붙들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가가 발갛게 부어있었다.
" …어머님, 어떤 말씀도 드릴 수 없어서 정말… "
죄송합니다. 안녕히계세요. 여자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장례식이 모두 끝나고, 사람들은 제 각각의 일을 보러 퇴장했다. 밥을 얻어먹으러 거짓눈물로 위장한 사람도, 진심으로 성규를 아껴주던 사람도, 그저 친분으로 참석한 사람도 전부 각각의 일로 인해 그곳을 모두 떠났다. 긴 하루가 지나고, 해가 뜨는 지금, 상조 직원에게서 전화가 울렸다. 아직도 울먹이는 말투로 여자는 전화를 받았다. 받자마자 하는 소리는 안부도 아니었고, 위로의 한마디도 아니었다. 그저 화장할까요? 하던 말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고 여자는 그 끄덕이는 고개도 부러트릴기세로 말렸다. 시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며 절대 안된다고. 결혼하고 10년간 아이가 없던 여자에게 소위 말하는 늦둥이인 성규는 큰 의미를 갖고 있었다. 엄마가 늙었는데 성규는 하나도 안 부끄러워? 물었던 말에 일초의 망설임 없이 당연하다고 대답한 성규가 그리웠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집에 도착한 여자와 남자는 상조 직원들이 벌써 검은 차를 두고 온 모습에 한숨을 쉬었다. 여자의 말대로 집 앞 바로 앞산에 묻자고, 무조건 가까이서 봐야 한다고. 하는 말에 동의하는 분위기로 결국 앞 산에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어제 전화로 미리 말해서 그런지 반쯤 파여진 구덩이가 보였다. 관이 들어갈 정도로 깊어진 굴은 아득했다. 이곳에서, 이 차가운 곳에서 우리 성규가 산다고? 여자의 말에 남자가 여자를 부여잡았다. 그리고 그 구덩이 옆은 언제 가져왔는지 관이 보였다. 남색빛도 나고, 검정빛도 나는 아득한 관. 아까 보였던 검은 차로 먼저 운반해 놓은 듯 싶었다. 대장정 남자 몇명이 관을 부여들고 구덩이로 향했다. 던지기에는 분명 예의가 아니므로, 직원들은 조심히 관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올라와, 삽으로 흙을 넣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여자의 오열이 시작되었다.
" 우리 성규가, 이렇게 죽었는데?… 이렇게 죽는다는데?… 못본다는데?… 그게 말이 되요? 당신 입이 있으면 말을 해봐요, 우리 성규를 내가 얼마나 아끼는데, 내가 얼마나… " " 나도 알아, 당신이 얼마나 아끼는지, 나도 아빠야. 나라고 모르겠어? "
그래도. 갈 사람은 가는거잖아. 어쩔수 없잖아. 이제 놔줘. 남자의 말은 단호했다. 끝내 묻어진 관 위에 흙이 덮어졌다. 어머님 아버님이 흙을 덮어주셔야 합니다. 직원들의 말에 여자는 손으로 흙을 바스라지도록 쥐어 관 위로 던졌다. 남자 역시 흙을 쥐어 관 위로 뿌렸다. 점점 관 겉테가 흙에 의해 사라졌다. 성규는 죽었다. 더 볼수 없었다. 더 이상 잡아둘 수 없었다.
##
4년 후.
우현은 한숨을 쉬며 혈액을 채취했다. 실험체 AS-H 01 혈액 채취 완료, 귀에 낀 걸리적 거리는 무언가에서는 말이 흘러나왔다. 우현이 귀에 연결된 마치 가수들이 쓰는 마이크 같은 곳에 말을 흘려보냈다. 식초산 가져와. 말이 끝나자마자 하얀 장갑을 낀 누군가가 연구실을 문을 열고 조그마한 통 하나를 우현에게 건넸다. 우현이 별거 아닌 것 처럼 그 용액을 받아들었다. 통을 건넨 연구원이 연구에 빠져있는 우현을 타박이라도 하듯 말을 건넸다.
" 점심도 안먹냐?, 진짜 징하다 " " 배 안고파 "
오늘 밤에 몇 명 더 뽑는거 알아? 생 살 찢던데 막… 구경 안 갈래? 우현과 동기 연구원인 성열이 옆에 있는 커피를 한 입 들이키며 물었다. 우현은 그런거 못봐, 하며 단호하게 답했다. 한 입 먹었던 커피가 뜨겁지 않은 모양인지 목을 꺾어 커피 전부를 들이킨 성열이 마치 착한짓 하는 사람을 뒤에서 욕하는 악플러 마냥 우현을 향해 비아냥 거리는 말을 퍼부어 댔다.
" 미친… 살 찢어서 피 채취하는 연구원 주제에, 동정심도 있냐? " " 넌 없냐? 난 여기가 혈액 연구소만 아니면 진작에 빠져나갔다 "
너의 피 사랑이 각별하긴 하지, 성열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는 구경하러 간다. 곧 커피잔을 내려놓은 성열이 개인 연구소를 나섰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고, 우현은 곧 플라스틱 판 위에 놓여진 조그마한 혈액 위에 성열이 가져온 식초산을 부었다. 기포가 이는 것을 보니 일산화탄소 중독인 듯 싶었다. 우현은 위 찬장에 붙어있는 포스트잇 하나를 뜯어 'Co -' 라고 적고는 뚜껑을 덮고 옆으로 밀었다. 생각보다 이상반응이 나타나는 혈액이 몇몇 있었다. 뱀파이어. 사람을 생으로 찢어 연구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음에 분명했다. 국가 기밀 안보관이라고 나름 칭호를 달아놓아도 현실적으로 보면 그냥 사람 죽이고 피 뽑고 그런곳이니까. 연구원장이 혈액에 대한 관심 또는 호기심으로 뱀파이어의 혈액 성분을 알고 싶다고 했다. 국가는 알아서 하라며 도장을 찍어주었고 그 이후 원장은 도대체 어디서 끌어오는지 어린 뱀파이어들을 무서워 하지도 않고 덥썩덥썩 잡아왔다. 우현이 생각하게 원장도 제정신이 아님은 분명했다.
애초부터 혈액에 관심이 있던것은 아니었고 생물학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 와중 해부 시간에 오는 혈액에 관심이 생겼고 우현은 아무것도 모른 채 혈액연구원이라고 써져있는 곳에 제 이력서를 내밀었다. 나름 스펙이 있던 우현은 낙방을 하지 않고 연구원으로 임명되었고, 그 와중에 성열을 만났다. 그리고 실태를 알게 되었다. 미지수의 방이라 써져있는 끝 방에서는 날마다 비명소리가 들렸고 맨 위층은 아이들이 우글거렸다. 어린 아이들. 그것을 목격한 후 우현은 술을 진탕 들이켰다. 그리고 술을 잔뜩 먹은 자신을 맞은 성열에게 무작정 화를 냈다. 넌 알고 있었지, 넌 왜 그랬어, 넌 착한애잖아.
알고 있었지. 난 돈이 없어, 근데 가족도 있어. 먹여 살려야 하잖아, 너도 입 다물어. 혈액 공부 하는곳은 여기 밖에 없잖아. 꿈을 이루려면 양심도 버려야 하는거 몰라? 성열의 말은 비수가 되어 박혔다. 그리고 달리 힘이 없었던 우현은 손을 떨궜다. 술병이 눈이 쌓인 바닥으로 떨어졌다. 눈물소리만이 자욱했다.
보고를 위해 우현은 반응으로 본 혈액 성분을 쓴 A4용지 몇장을 들고서는 푹신한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 연구실을 벗어났다. 곧 원을 돌아다니며 원장을 찾아다녔다. 원장실에 가니 그저 덩그러니 책상과 의자만이 남아있을 뿐 원장은 존재하지 않았다. 뒤돌아서 나가려는데, 원장의 비서로 보이는 한 여성이 종이를 붙들고 서있었다. 약간 놀란 우현이 여자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 원장님 어디가셨어요? " " …지금, 채취방에…… "
우현은 종이에 머리를 대고서는 다시 내렸다. 골 때리네 진짜, 우현은 알았다고 목례를 건네고서는 계단을 서둘러 올랐다. 분명히 또라이같은 원장은 저 스트레스 푼다고 죄 없는 뱀파이어 아이들을 목적 명 수 보다 더 괴롭혀 댈게 뻔했다. 막아야 했다. 원장실이 1층이니 4층까지 올라가기엔 무리였는지 아까 올라왔을때 보다 훨씬 걸음 속도가 느려졌다. 우현이 가쁜 숨을 뱉으며 끝내 4층 문을 열었다. 공허한 어두운 공기들만이 떠다녔다. 맨 끝에 위치한 채취실인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비명소리는 4층이 시작되는 부분부터 계속 울렸다. 귀를 막았다. 그래도 들렸다. 왜 자꾸 들려, 왜.
끝내 다다른 곳에 문을 열었다. 몇명의 희생이라도 먼저 더 막아야 했다. 우현은 문을 열고 들어간 곳에 발을 들이자 마자 찢어질듯한 비명소리를 경험했다. 아아악-! 아이들이 마치 장난감을 뺏긴 후 지르는 비명과는 차원이 틀렸다. 실험대 위에 팔이 묶인채로 생 살에 칼이 들이밀어지는 광경은 도저히 두 눈 뜨고 볼 수 없을 잔인한 장면이었다. 우현이 칼로 천천히 팔뚝을 베는 원장의 팔을 부여잡았다.
" 원장님, 아직 혈액 많아요. 그만 채취해도 되요 " " …손 치워 봐, 좀만 더 하고 "
지금 이러는거, 진짜 미친사람 같으니까, 그만해요. 우현의 나긋나긋한 말에 원장은 곧 움직이던 칼을 내려놓았다. 씨발… 너 때문에 기분 다 망쳤잖아. 원장이 이 말을 끝으로 하고 곧 채취실을 나섰다. 구석에 몰려있던 아이들의 표정이 그제야 풀렸다. 침대에 있던 아이는 팔뚝에 피를 줄줄 흘러내리면서도 웃었다. 우현은 누워있는 아이는 차마 신경쓰지 못하고 일단 바닥에 앉아 벌벌 떨고 있는 아이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손짓으로 도망가라는 표시를 해보이자 겁을 잔뜩 먹은 아이들은 종종걸음으로 방을 빠져나갔다.
" 3층으로 내려가, 밥 먹어 "
차마 도망가라고 하지 못하는 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멀리서 내뱉는 말을 공허하게 퍼졌다. 우현은 주머니를 뒤져 붕대를 꺼냈다. 가위로 잘라낸 붕대를 피가 철철 흐르는 팔에 가져다 대자 쉽게 피로 젖었다. 괜찮아? 하고 얼굴을 들어 숨을 내쉬는 아이의 얼굴을 보는데, 익숙한 속눈썹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 ……아파요… "
우현은 아이의 아프다는 말에 멍했던 정신을 가져오고선 붕대로 막은 곳을 지혈했다. 근처 벽장에 보이는 수건을 들고 바로 옆에 있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수돗물을 틀어 물로 적신 후 꾹 짠다음에 다시 방에 들어섰다. 이미 벌어진 상처는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우현은 수건으로 재빨리 그곳을 막았다. 피를 다 닦아내고선 선반 위 응급상자를 열어 거즈를 꺼냈다. 상처부위를 덮고서는 붕대로 팔을 감아주니 그제야 피가 새어나오지 않았다. 한숨 돌린 우현이 바닥에 주저앉으며 숨을 뱉어냈다.
" …왜 여기있어? "
누워있던 아이는 우현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우현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까 바닥에 앉아있던 어린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나이인듯 싶었다. 대략 18살 정도 되어보이는 외모, 그리고 키. 그리고 익숙한 얼굴. 우현은 고개를 돌린 아이의 얼굴을 계속 응시했다. 찢어진 눈이 눈동자를 굴려 우현과 눈을 마주쳤다. 다른 사람 처럼 허공을 응시하는 눈이 이상했다. 사람을 따뜻하게 보던 눈빛과는 차원이 틀렸다. 겉모습은 같은데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우현은 조금 몸을 가까이 끌어앉아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갈빛 머리칼이 형광등에 비쳐 빛이났다.
" 성규야… "
어쩌다 여기 왔어, 왜 하필 너가 됐어. 우현은 울먹였다. 죽은 시체에 영혼이 들어가 뱀파이어가 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몇몇 그런 사람들도 봤었으니까, 그게, 하필 자신이 아끼던 동생이 될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부모님은 지금 슬프게 살아가시는데, 왜 너가 여기 왔어. 우현의 말에도 성규는 그저 대답없이 조용히 입을 다물고 머리를 정리해주는 우현과 시선을 마주쳤다. 지금 생각하는 자체 부터가 성규 생각이 아닐테니까, 성규는 우현도 기억하지 못하고, 제 부모도 기억하지 못할게 뻔했다. 그저 짐승 처럼 살아갈 모습이 눈 앞에 훤해 절로 눈물이 났다. 차라리 밖에서, 그렇게 짐승처럼 살아가면 그래 더 좋았을텐데. 여기서 이렇게 혹사당하는게, 더 가슴아프고, 그냥 더 무서웠다. 우현은 정리하던 머리를 가만두고, 성규를 그저 쳐다보았다. 잠깐 하품을 하는 이에서 송곳니가 튀어나온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더 절망스러웠다. 눈빛부터가 틀린 모습에 우현은 한숨을 내쉬고 결국 고개를 떨궜다. 순간, 말이 없던 성규가 다시 입을 벌려 한마디를 꺼냈다.
" …목말라요 "
떨궜던 고개를 번뜩 들었다. 우현은 제 주머니에 있던 휴대용 칼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날을 이용해 제 손가락에 금을 그었다. 조그마한 플라스틱 실험판에 몇 방울 떨어트리더니 곧 그 판을 성규에게 건넸다. 혀를 내밀어 핥는 모습이 뱀파이어임을 증명하듯 익숙했다. 얼마 안가 깨끗해진 판에 우현이 성규에게서 판을 빼앗았다. 성규가 판을 다시 잡으려고 하자 우현이 막아섰다. 눈을 치켜뜨고 노려보자 우현이 손으로 성규의 눈을 막았다. 노려봐도 상관없어. 결국 판을 내려놓은 우현이 성규의 팔을 붙들었다. 일단 나가고 보자.
" 성규야, 일단 여기서 나가자. " " ……성규가 아니라… "
일으키려는 우현의 몸짓에 공허한 눈빛만을 지니던 성규가 상체만 일으킨 후 서있는 우현을 향해 말했다. 우현이 뭐? 하는 눈빛으로 성규를 쳐다보았다. 성규는 익숙히 말을 이었다.
" …실험체 AD-H 13. " " ………? "
의문이 담긴 말에 우현이 뭐라고? 라는 말과 함께 성규에게 귀를 가까이 하며 재물었다.
" 내 이름은, 성규가 아니라… " " ……… " " 실험체 AD-H 13 이라구요. "
다리에 힘이 풀린 우현이 땅에 주저앉았다. 더 움직일 수 없었다. 한자 한자 또박또박 읊는 이름에 손이 절로 떨렸다. 내가 무슨 짓을 한거야, 우리가 무슨 짓을 한거야, 죄책감이 들어 더 움직일 수 없었다. 무릎을 세우고 머리를 그 무릎 사이로 묻었다. 절로 눈물이 흘렀다. 실험체 AD-H 13. 우현의 꿈의 부산물은 고작 이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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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공중에서 아이들을 짚었다. 한마리, 두마리… 손가락으로 세어지는 공포감에 덜덜 떨던 한 아이가 발목이 붙들려서는 바닥에 있는 경사는 신경도 쓰이지 않은 채 끌려나갔다. 부딫힌 머리가 아팠고 붙잡힌 발목이 아팠지만 그런것 쯤 앞으로 있을 고통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채취실이라고 써져있고, 곧 고문실 같은 곳에 도달한 후 침대에 올려진 아이가 팔이 단숨에 묶였다. 그리고 아이들이 어릴때 가지고, 또는 던지고 놀던 표창같은 것이 팔뚝에 박혔다. 고통스러운 비명이 방 안에 퍼졌다. 피가 터지듯 시트를 적셨다. 연구 목적으로 인해 아이를 끌고 온 남자는 흐르는 피를 그릇에 받아냈다. 그리고 곧 피가 멈추자 남자는 아까 그것을 이용해 상처를 더욱 벌렸다. 비명이 한번 더 터졌다. 지옥같은 곳, 몸은 달아오르고 숨소리는 점점 막혀만 갔다. 남자는 곧 옆에 얹어놓은 젖은 수건으로 아이의 상처를 막았다.
" 피 알아서 막아 "
어린 아이의 훌쩍거리는 소리만이 방 안에 남고, 남자는 수건을 팔에 얹어준 채 피를 받은 그릇을 들고 방을 나섰다. 방을 나선 후 문을 닫았을 때, 바로 앞에는 익숙한 얼굴이 자리잡고 있었다. 남자는 잘됐다는 듯 그릇을 내밀며 서있는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 잘됐네, 마중왔어? 실험체 AD-H 14 혈액 검사 시작해 " " ……주사로 뽑을 수도 있잖아요. "
그릇을 건네준 채로 지나치려던 남자의 발걸음이 멎었다. 우현이 부들부들 떠는 손을 겨우 진정시킨 채 말을 이어나갔다.
" …그렇게 잔인하게 안 해도, 충분히 혈액 채취해서 검사할 수 있잖아요… " " 그 애들은, 이렇게 해봤자 죽지도 않아, 내가 왜 실험체를 얘네로 선택했는지 몰라서 그래? "
우현은 원장의 말에 결국 할 말을 잃고서는 눈으로 원장을 응시했다. 할말 더 있어? 더 시비 걸거면 그냥 여기서 나가. 풀린 눈이 우현의 눈동자를 똑같이 응시했다. 보이지 않는 기싸움이 이어진 후, 우현이 결국 한 발 뒤로 물러서며 그릇을 받아들었다. 검사 시작해오겠습니다. 채취실에 덩그러니 놓여진 아이를 그냥 둔 채, 우현은 결국 그릇을 들고 계단으로 향했다.
스포이드로 혈액을 놓은 후, 다시 식초산을 부었다. 이번에는 아무 반응이 일어나지 않았다. 위에 붙어있는 포스트잇에 - 라고 써놓고는 판을 덮은 후 옆으로 밀어내었다. 그리고 다음 혈액을 밀고 들어와 곧 판을 열었다. 몇 방울 되어보이지 않는 혈액이 플라스틱 판 위를 머물고 있었다. 우현은 또 다시 식초산을 떨어트릴까 하다가, 구석에 위치한 현미경을 들고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렌즈 초점을 맞춘 후, 나사를 조절한 후에 우현은 눈을 지정된 위치에 놓고 반사되는 화면을 관찰했다. 인간의 피와 다를 바가 없이 생생히 움직이고 있었다. 눈을 렌즈에서 뗀 우현이 옆에 있는 메스 하나로 제 손가락을 그었다. 스치는 따가움과 함께 피가 맺혔다. 그리고선 아래 서랍을 열어 플라스틱 판을 꺼내 제 손가락에서 머무는 피를 떨어트렸다. 방울진 피가 보였다. 우현은 원래 있던 혈액을 치우고, 지금 놓은 제 혈액을 렌즈 아래 판에 놓았다. 그리고 다시 초점을 맞춘 후 눈을 가져다 대었다. 그렇게 해서 보이는 혈액은, 아까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었다. 단지 혈액운동이 아까 것에 비해 조금 느리다는 것 빼고는, 하나도 다를것이 없었다.
한참 관찰을 하는 도중, 누군가가 연구실 문을 여는 것이 느껴졌다. 우현은 성열임을 추측하고 왔냐? 하고 감흥없는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순간, 아직은 덜 자란 키가 보이는, 그리고 익숙한 얼굴의 성규가 보였다.
" …저기 "
우현이 당황하듯 렌즈를 내려놓고 벌떡 일어나서는 성규한테 다가갔다. 그러고서는 기운이 없는 성규의 어깨를 붙들으며 물었다.
" 맘대로 와도 돼?… " " …목말라요… "
성규의 말에 우현이 허겁지겁 연구실을 뒤졌다. 성규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나이가 좀 있는 상태였다. 체구가 작고 아직 덜 자란 상태로 뱀파이어가 된 아이들은 제대로 피가 나오지 않아 채취도 많이 못할 뿐더러 주위에서 거의 말리기 때문에 원장은 어린아이보다는 나이가 있는 뱀파이어들을 채취하기를 즐겼다. 맘껏 괴롭혀도 혈액은 그대로 나오고 손만 묶는다면 이빨을 드러내도 무서울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는지, 성규가 AD-H 13이라는 것을 알기 전까진 'AD-H 13 혈액' 이라고 써진 연구 결과들을 많이 내놓았고, 그만큼 성규를 많이 괴롭혔다는 뜻이 되었다. 얼마 들어온지도 안 되어 보이는데, 그 작은 기간안에 많은 피를 뱉어냈다는 것에 우현은 먼저 한숨을 뱉었다.
" 일단, 이거 마셔 "
일반 인간과의 혈액을 비교하기 위해 헌혈센터에서 몇개 빌려온 혈액을 우현이 그릇에 덜었다. 성규는 담긴 피를 보자마자 혀를 내밀어 혈액 안으로 담궜다. 마치 몇일 못 먹은 강아지 마냥 성규는 말도 없이 계속 담궈져있는 혀를 움직였다. 우현이 말없이 성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성규야 "
말 없이 계속 들이키던 성규가 우현의 말에 고개를 슬쩍 들어보였다. 입가에 잔뜩 혈흔이 묻어 얼굴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약간 입만 벌리고 있음에도 띄는 송곳니에 우현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소매로 성규의 입가를 닦아냈다. 성규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우현과 여전히 눈을 마주쳤다. 입가를 전부 닦아낸 우현이 말을 이었다.
" …날 믿어? " " ……무슨소린지 모르겠어요 "
그래, 힘 없는 대답을 한 우현이 그릇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성규는 바닥에 놓인 그릇을 따라 몸 자체를 아래로 내렸다. 바닥에 누워서라도 계속 핥아먹는 모습에 우현이 안쓰러운 듯 쳐다보다가도, 연구 시간이 모자란 듯 의자로 향했다. 그리고 순간, 의자로 향하는 발목을 붙드는 말 소리가 다시 울렸다. 우현은 고개를 돌렸다. 아까 닦아냈던 피가 입가에 다시 묻은것이 보였다.
" …저기요 "
성규의 서툰 말에도 시간이 모자란 듯 결국 우현은 자리에 앉아서 무심히 대답했다. 말해, 왜?
" 나를 '한 명'으로 불러주세요 " " ………? "
알아들을 수 없는 성규의 말에 결국 우현이 뭐라고? 하고 고개를 돌려보였다. 돌린 고개에 우현과 눈을 마주치며 성규는 말을 이었다. 아까 무서운 아저씨가 그랬는데, 나는 죽어도 '한 마리' 라고 했어요. 아프지 않으려면 '한 명' 이 되서 오라고 했어요.
" 그러니까, 나를 '한 명'으로 불러달라구요. "
우현은 결국 한숨을 쉰 채 고개를 떨궜다. 성규는 그 말만을 남기고 다시 아래 그릇에 담긴 피를 향해 고개를 낮췄다. 미안해, 공허한 말 만이 연구실을 울렸다.
사담!
일. 안녕해염 여러분 제가 요즘 글잡 출몰이 잦죠 네 그래염 저 하루종일 밥만먹고 글만쓰는듯... 보이 5가 아직 덜 완성되서 이거부터 먼저 써볼까 하다가 벌써 뚝딱^^; 제송해염 하라는 연재는 안하고!!! 이. 이건 다름 그대에게 드리는 선물이에염~^▽^♥ 금같은 소재 정말 잘 썼어요 너무 좋았슴돠ㅠ▽ㅠ 사실 부담감이 좀 쩔어요 아직도...ㅠㅠ! 그대 맘에 안 드시더라도 잘 받아주셨으면 좋겠슴돠 아 참고로 하편 있어요 이거 상편이야! 아직 안 끝났어요! 삼. 새벽 그대 소재도 받아놓았는데! 그건 아마 이번주 주말 아니면 다음주 평일에 완성될거 같아요! 귀욤귀욤한 우횬! 사. 일단 전 배가 너무 고파서 쓰러질 지경이니 밥부터...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