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 천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2013. 02. 04
주방에서 신기한 걸 보았다. 재환이형이 냉장고 옆에서 물병을 들고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어서 저 형 또 이상한 짓 하네 생각하고 형에게 갔었다. 그런데 형 손에 들린 페트병이 갑자기 흔들리더니 물과 함께 뚜껑이 쏟아졌다. 혼자 또 쇼하네 생각하면서 형을 불렀는데 그 순간 당황한 기운을 너무나 정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남의 감정을 이렇게 느낀 적이 없어서 조금 의아했다. 마치 누가 친 것 처럼 물병을 떨어뜨린 형이었기 때문에 조심히 마시라고 타박하면서 누가 친 줄 알았다고 말했더니 당황한 기운은 더 정확하게 느껴졌다. 곧이어 그 느낌은 미안함으로 바뀌었다. 왜 미안하지? 그래서 형을 바라봤는데 미안한 감정은 그 곳에서 나오는 게 아니였다. 조금 더 옆, 재환이형 옆에서 나오고 있었다. 신기한 기분에 계속 바라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인생에서 제일 기묘한 하루였다.
2013. 02. 26
요즘 재환이형이 이상하다. 특히 오늘은 더. 올더케이팝 녹화날이었는데 재환이형이 녹화 내내 오모오모를 연발해서 몇 번 눈치도 받았다. 예능 처음 촬영하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신기했는데 재환이형은 하나하나에 다 놀랐다. 저 형 왜 저러나 그 생각밖에 안들었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가관이었다. 항상 좁은 엘리베이터에 같이 낑겨타던 형이 숙소 주차장에 차가 도착하자마자 내 옆에서 소리지르던 학연이형의 목소리를 제쳐두고 먼저 달려가 숙소로 들어가버렸다. 오늘 왜 저래. 그 와중에 옆에서 소리지르는 학연이형 목청이 너무 좋아서 주민 신고가 들어올까 걱정도 되었다. 숙소에 들어가니 재환이형은 그저 거실에 쭈그려 앉아있었다. 뭐 되게 중요한 일이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저러고 있어서 일부러 툴툴거리는 소리를 냈다. 아무래도 요즘 재환이형이 많이 이상하다.
2013. 03. 11
어제는 다칠 준비가 돼 있어 마지막 방송 날이었다. 분장도 채 못 지우고 차에 탔는데 우리가 새 리얼리티를 한다고 했다. 와, 다이어리. 오랜만의 다이어리라 반가웠다. 촬영때문에 차 안에 옹기종기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숙소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고, 아 옷은 학교에서 어떤 형이 입은 옷을 따라서 입어봤다. 그 형은 멋있는데 내 다리는...(시무룩) 그래도 뭔가 놀러가는 느낌이라 즐거웠다. 재환이형은 운전하는 걸 미리 알고 있었는지 제작진이 차키를 줘도 당연하게 받았다. 이런 거 미리 하면 좀 알려주지. 어디 가는지 맞출 때도 어디서 들은게 있는지 자꾸 뭐라고 얘기하는데 정확하게 맞추는 건 하나도 없었다. 어휴, 저 형이 그러면 그렇지. 멤버들이랑 게임도 하고 폭죽도 쏘고 해돋이도 보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왔을 때 재환이 형은 저번처럼 먼저 들어가버렸다. 우리가 들어갔을 땐 재환이형은 저번처럼 엉거주춤한 자세로 거실에 쭈그려 있었다. 이번에는 지난 번과 같은 기운을 재환이형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 고마움이었다. 왜 그런 기운이 느껴지는 지는 몰랐지만 혼자 올라간 형이 얄미워 한 마디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확실히 재환이 형이 이상하다.
2013. 03. 28
요즘 벚꽃이 예쁘게 잘폈다. 제대로 벚꽃놀이 하지 못해서 조금 아쉽지만 지나가다 보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여전히 재환이형은 좀 이상하다. 혼자서 이야기를 한다거나 이상한 짓을 많이 한다. 그리고 요즘따라 외출도 늘었다. 물어보면 한강에서 운동하고 왔다고 하는데 편하게 운동화신고 나갔다 오는게 진짜 운동하고 온 것 같은데 그게 더 수상하다. 그래서 오늘은 재환이형을 따라나섰다. 저 형 가끔 큰 소리도 내고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는데 우리 팀인거 알까봐 조마조마 했다. 빅스 아니에요! 저런 사람 빅스에 없어요! 얼마나 걸었을까 재환이형을 부르려고 형에게 다가간 순간 형 목소리가 아닌 다른 소리가 들렸다. 정확히는 여자의 목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 동안 형 옆에 있던 그 감정들을 알 수 있었다. 어떤 여자가 재환이형 옆에서 웃는 얼굴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여자를 보는 재환이형도 웃고 있었다.
형과 그 여자 얼굴에 묻은 당황함을 보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지금 이 형이, 우리가 어느 때인데, 연애를 하는거야? 설마? 그래서 그 여자를 흔들면서 이 사람 누구냐고 물었고 재환이형은 놀라서 내 손을 그 여자의 어깨에서 떼어놓았다. 기가 찼다. 요즘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로 미쳤을줄이야. 실실 웃고 혼잣말하나 싶었는데 그게 다 연애하는 거였어? 재환이형은 처음에는 말도 안되는 변명을 늘어놓더니 내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조용한데 가서 이야기하자며 나랑 그 여자를 끌고 갔다. 얼굴 팔리면 우리 팀만 손해겠다 싶어서 형을 따라 숙소로 향했다. 숙소로 가는 길에 형은 내가 오해한거라고 말했다. 다짜고짜 내가 오해한거라니, 어이가 없어서 저 여자는 뭐냐고 물었다. 형은 곤란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지나가던 아주머니 한 분을 잡고 우리가 몇 명이냐고 물었다. 저게 지금 말이야 방구야, 저 형 진짜 이상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아주머니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두 명이라고 대답하셨다. 여기 나도 있고 형도 있고 그리고 저 여자애도 있는데 두 명이라고? 이어지는 재환이형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런 증거가 없는 뺑소니 교통사고 범인을 잡기 위해 미래에서 왔다는 그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 혼란스럽다.
2013. 04. 22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애의 이야기는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첫째로 그 여자애는 나와 재환이형밖에 볼 수 없었고 둘째로 내가 어제 시구하는 것 까지 그 애는 다 알고 있었다. 한두번도 아니고 플랜V다이어리 이야기와 스케쥴에 관해서 우리보다 자세히 알고 있으니 이 쯤 되면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애는 미래에서 왔고, 범인을 찾아야하고, 그걸 도울 수 있는게 우리라는 걸. 그리고 이 애는 우리 팬이라는 것도. 너무 자세히 알고 있길래 꼬치꼬치 캐물었더니 사실 완전 팬이라고 줄줄이 늘어놓는게 귀여웠다. 아, 그 애의 이름은 빚쟁이다. 이름도 귀여웠다.
오늘은 조금 황당한 일이 있었다. 빚쟁이는 우리가 어디 나가있는 사이에 숙소에 혼자 있는 게 심심해서 종종 숙소 밖을 나가있고는 한다. 그래서 나는 어디 나가기 전에 어떤 스케쥴로 얼만큼 자리를 비우는 지 알려주고는 했는데 오늘은 연습을 하러 연습실에 가야했기 때문에 언제 돌아올지는 모른다고 했다. 생각보다 연습이 일찍 끝나서 숙소로 돌아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데 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당황해하는 빚쟁이가 보였다. 쟤는 또 왜 저러나 싶었는데 빚쟁이의 마음이라도 읽었는지 재환이형이 아이스크림을 쏜다고 말했다. 재환이형 표정을 보니 얼른 그렇다고 말하라는 것 같아서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결국 멤버들은 다시 밖으로 나가 재환이형이 쏘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돌아왔고 다시 돌아왔을 때는 빚쟁이는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만들며 웃어보였다. 저녁에 왜 그랬냐고 물어보니까 비밀번호를 까먹어서 여러번 누르다가 잠금 장치가 작동되서 문이 열리지 않았다고 했다. 재환이형 버금가는 애가 나타난 것 같다.
2013. 04. 29
요즘은 빚쟁이때문에 재환이형이랑만 놀고 있다. 오늘도 방 안으로 들어와 빚쟁이랑 재환이형이랑 셋이 이야기를 하면서 놀았다. 빚쟁이한테 다음 앨범 컨셉을 물어봤더니 예전에는 잘도 대답해줬는데 요즘에는 절대 말 안해준다. 그 모습이 괜히 얄미워서 안 믿어줄거라고 말해봐도 꿈쩍도 안한다. 치사하다, 흥. 칫. 뿡. 빚쟁이 팔을 잡고 찡찡대니까 빚쟁이는 내가 귀찮았는지 그리스로마신화, 경찰, 마술사, 지킬앤하이드 중에 하나 있다고 말했다. 와, 진짜 치사하다. 이쯤되니 나도 치사하게 나갈 수 밖에 없었다. 내 옆에 멍하니 앉아있는 빚쟁이한테 어깨동무를 하면서 왜 말 놓냐고 캐물었다. 빚쟁이는 자기가 21년 살았으니 2013년에 21살인 나한테 말을 놓아도 된다고 따박따박 대답했다. 그래도 나는 93년생인데, 진짜. 아오. 오빠 소리 좀 들어보겠다고 오빠라고 안하면 안 믿어줄거라고 진상을 부렸다. 어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짓인데 내가 하고 있어. 그래도 이상하게 빚쟁이한테는 꼭 오빠 소리를 듣고 싶다.
그렇게 빚쟁이랑 놀고 있는데 갑자기 재환이형이 손가락으로 누가 온다고 나를 가볍게 쳤다. 너무 놀라서 어깨동무를 푸니까 문이 열리면서 상혁이가 들어왔다. 귀여운 상혁이는 들어오자마자 요즘 너무 나랑 형이랑만 논다고 칭얼댔다. 사실 그 사이에 귀여운 빚쟁이가 하나 더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상혁이는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나와 재환이형 사이에 앉으려고 다가왔다. 공교롭게도 상혁이가 앉으려는 자리에 이미 빚쟁이가 앉아있어서 놀란 마음에 엉거주춤 일어나는 빚쟁이의 팔을 잡아 내 뒤에 앉혔다. 갑자기 움직인 내 팔을 이상하게 볼까봐 괜히 그 자리를 몇 번 더 털면서 상혁이에게 앉으라고 했다. 빚쟁이를 조심스럽게 상혁이 반대쪽에 앉았고 상혁이까지 껴서 이야기를 나눴다. 네 사람이지만 세 사람처럼 이야기 하는 것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2013. 05. 20
오늘 Hyde 앨범이 나왔다.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어서 일기가 밀렸다. 먼저 지난번에 빚쟁이가 말했던 여러 가지 컨셉 중에 지킬앤하이드가 바로 이번 앨범 컨셉이었다. 맞을 걸 알고 있었기는 했지만 이렇게 또 맞추니 빚쟁이가 진짜 사람이 아니라는 게 실감이 났다. 정말 미래에서 온 사람이구나. 신기함보다는 언젠가는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졌다. 그래서 자꾸 빚쟁이에게 미래를 묻고 확인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틀려서 안 맞으면? 그 때는 빚쟁이의 말을 믿지 않으려했나. 잘 모르겠다. 그냥 이 순간에 다른 곳에서 진짜 빚쟁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조금 믿기 어려웠다. 빚쟁이가 되도록 오래오래,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다.
뮤직비디오 촬영장에 갈 때 차가 비어서 생각없이 빚쟁이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우리가 뮤직비디오 촬영하는 걸 보면서 빚쟁이가 멋있다고 이야기 해주는게 좋았다. 빚쟁이가 지루한 표정으로 세트장 구석에 서있을 때 마다 조마조마 했다. 나 안 멋있나? 이상한가? 화장은 또 왜 이러지... 괜히 신경쓰여서 빚쟁이에게 피곤하면 차에 가서 쉬어도 좋다고 말했다. 힘들면 나한테 이야기해도 되는데, 언제나 혼자 고민하는 것 같아 그것도 신경쓰인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옆에 택운이형이 와서 우리에게 뭘 하고 있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그 말이 뭐가 이상한지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빚쟁이는 나와 재환이형에게만 보이는 존재였다. 지금, 저 형이 뭐라고 한거지? 너무 놀란 빚쟁이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고개를 돌려 택운이형을 봤더니 서늘한 눈으로 우리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가 뭐하고 있는거냐고 다시 묻길래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해보려고 했지만 택운이형은 너무나도 정확하게 빚쟁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든 수습을 해야겠는데 하필 그 때 스태프가 나를 불렀다. 마음같아서는 촬영을 미루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스태프에게 붙잡혀 촬영장으로 가면서도 빚쟁이를 자꾸 바라봤다. 어떡하지.
생각보다 빚쟁이가 택운이형과 이야기를 잘 한 것 같았다. 촬영을 마치고 빚쟁이에게 갔을 땐 그저 멍한 표정으로 대기하고 있는 택운이형이 옆에 있었고 재환이형과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는 빚쟁이도 있었다. 나랑도 웃으면서 이야기했으면 해서 시간만 나면 빚쟁이에게 달려가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놀았다. 뮤직비디오 촬영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빚쟁이가 있어서 전보다는 즐거웠다. 촬영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야 하는데 빚쟁이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빚쟁이가 앞에 있는 멤버들을 가리키자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보, 갈 때는 차가 꽉 차는데 왜 그걸 생각 못했지? 차로 가면서 재환이형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택운이형의 도움을 받아 빚쟁이를 재환이형 다리 옆에 앉혔다. 마음같아서는 내 옆에, 아니 내 무릎 위에 앉히고 싶었는데 옆을 보니 눈을 감고 있는 상혁이와 원식이가 보였다. 이럴 때 도움 안되는 것들 어휴. 이와중에 학연이형이 시트를 뒤로 넘겨서 빚쟁이는 비명을 지르고 안 들린 척 해봤지만 이미 4명이 들은 상황에서 씨알도 안 먹힐 소리였다. 아오, 한상혁. 재환이형의 은근 자기 자랑으로 넘어가는 듯 했지만 빚쟁이를 보면서 피식 웃는 택운이형이 거슬린다. 다 거슬려, 다!
이 와중에 우리 뮤비가 19금 판정을 받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차피 결국 다 보게 되겠지만 그래도 쌤통이다, 한상혁.
2013. 05. 24
어제는 하이드로 컴백하는 날이었다. 어제는 빚쟁이가 못 왔는데 오늘은 온다고 했다고 한다. 했다고 한다라고 쓰는 이유는 재환이형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빚쟁이 이게 재환이형한테 되도 않는 애교를 부리면서 오늘은 꼭 온다고 말했다고 한다. 짜증나. 그래도 오늘은 데뷔 1주년이라 설렌다. 우리는 먼저 차를 타고 가기로 했기 때문에 차에 타기 전에 빚쟁이에게 화이팅하는 손동작을 해줬다. 빚쟁이는 힘든 일이 있는 건지 슬쩍 웃기만 했다. 좀 크게 웃었으면 좋겠는데, 요즘따라 예전에 비해 즐거워 보이지 않아 걱정이다.
검정 립스틱, 검정 화장, 끔찍한 녹화. 오늘 하루는 엉망진창이었다. 빚쟁이를 찾아보려고 고개를 빼봐도 빚쟁이는 보이지 않았고 무대도 영 별로여서 기분이 언짢았다. 그래도 힘내야지, 힘. 방송국에서 빚쟁이는 한 번도 못 보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아직 빚쟁이가 들어오지 않아 걱정이 되서 나가보려고 했는데 택운이형이 먼저 선수를 쳤다. 저 형은 또 왜 저러나 짜증이 치밀었지만 그래도 형이니 수습하고 정리를 하고 있는데 거실에서 재환이형이 어?하는 소리를 냈다. 고개를 돌리니까 빚쟁이가 있었다. 옆에 어떤 남자와 함께. 너무 놀랐지만 다른 멤버들도 있으니 입모양으로 어떻게 들어왔냐고 물었다. 빚쟁이는 옆에 서 있는 남자를 가리키면서 덕분에 들어왔다고 대답했다. 택운이형이 너 데리러 나가있다고 애기했더니 빚쟁이는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사이에 택운이형은 물병을 들고 들어왔고 우리를 보고 별다른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빚쟁이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옆에 서 있는 남자를 바라봤고 그 시선을 나에게로 돌리기 위해 오늘 무대는 잘 봤냐고 물었다. 빚쟁이는 일이 생겨서 못 봤다고 했고 오늘 일을 못 본게 차라리 다행이다 싶어 조심히 들어왔으면 됐다고 했다.
괜찮다고 말해도 침울해하길래 달래주려고 했는데 옆에 서 있던 남자가 원래 그런 운명이었다고 빚쟁이에게 말했다. 그제서야 그 남자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햇님이랑 똑같이 생겨 기분이 나빴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빚쟁이가 자기 애인이라고 대답한다. 순간 당황했지만 그 표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햇님이랑 닮았다는 이야기로 주제를 바꿨다. 기분 나쁘고 인정하기 싫지만 진짜 햇님 닮기는 했다. 내가 말하자마자 빚쟁이도 그 말을 했다고 그 남자는 대답했다. 괜히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남자는 빚쟁이를 도와주는 저승사자였다. 햇님을 닮은 저승사자라니 조금 무서웠지만 일단 빚쟁이 애인이 아니니까 그거면 됐다. 다행이다.
2013. 06. 21
요즘 빚쟁이가 이상하다. 힘도 없고 나를 멀리하는 느낌이다. 내가 뭘 잘못했나. 우울하다. 즐겁게 해주려고 장난도 치는 데 반응이 없다. 왜 그러지.
팬싸인회를 마치고 숙소 문을 열었을 때 검정 책을 사이에 두고 얼굴을 가까이 마주보고 있는 그 햇님 닮은 저승사자와 빚쟁이가 보였다. 나는 멀리하면서 저 남자랑은 저렇게 가까이서 장난도 치고, 기분이 나빴다. 아주, 많이. 내 표정을 보고도 빚쟁이는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두 사람 사이에 얼굴 간격은 멀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모습을 더는 보기 싫어서 먼저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너무 티를 안 냈나. 저런 거 보면 나는 화가 나는데. 쟤는 안 그러는 걸까.
2013. 06. 30
하이드로 공식적으로 활동하는 마지막 날이다. 더불어 학연이형의 생일이기도 해서 팬 분들이 깜짝 이벤트를 해주셨다. 학연이형은 기분이 좋은지 그 새 영상을 다운받아 계속해서 돌려봤다. 그 모습을 보는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도 빚쟁이는 방송국에 오지 않았다. 요즘따라 우리를 멀리하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안 좋다. 아니, 느낌이 아니다. 확실히 빚쟁이는 우리를 피하고 있었다. 거실에 둘러앉아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영상도 계속 보고. 시간이 지나자 다들 하나 둘 씩 일어나더니 결국 각자의 할 일을 위해 일어났다. 멤버들이 모두 방에 들어갈 때 까지 기다렸다가 다들 들어가니까 바로 빚쟁이에게 가서 말을 걸었다. 왜 요즘 기분이 안 좋은지 꼭 알고 싶다. 그리고 풀어주고 싶다. 하지만 내가 얘기할수록 빚쟁이의 표정은 점점 안 좋아졌다. 걱정이 되서 빚쟁이는 진짜 사람이 아니라 열이 안 나는 걸 알면서도 자연스럽게 손을 이마로 가져다 대면서 괜찮냐고 물었다. 혹시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걸 알고 있어서 그런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로 걱정하는 게 더 안타까웠다.
빚쟁이는 내 손을 쳐버렸다. 그것도, 아주 아프게. 신경쓰지 말라는 이야기는 화살이 되어서 내 마음을 찔렀다. 왜, 나한테. 왜 그러는 건지 감이 안 왔다. 혼란스러운 마음은 금방 화로 바뀌었다. 내가 뭘 잘못했으면 말해주지. 고칠 수 있는데. 원망은 커져갔다. 나는 다 해줄 수 있는데. 결국 택운이형이 나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오늘만큼은 빚쟁이가 미웠다. 그 작은 머리로 무슨 생각을 하길래, 왜 이렇게 멀어지려 하는지.
2013. 07. 15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빚쟁이를 좋아하고, 옆에 있고 싶다. 다만 지금은 빚쟁이가 나를 밀어내고 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조금이라도 이해해보려고 빚쟁이에게 말을 여러번 걸었지만 그 때마다 빚쟁이는 차갑게 대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나는 지쳐갔다. 언젠가는 말해주겠지, 언젠가는 예전으로 돌아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기다리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버렸다. 좋아하는 마음을 인정해버린 순간부터 그 마음은 커져갔는데 빚쟁이에게는 아무 것도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예전처럼 날 보고 웃고 장난치고, 그런 모습이 좋았는데. 이유없이 좋아졌는데 빚쟁이는 이유없이 나를 밀어내고 있다.
그나마 나를 이해해줄 수 있는 재환이형에게 너무나 답답한 마음에 다 털어놓아버렸다. 풀고 싶어, 진심으로. 재환이형은 그래도 빚쟁이와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는데 형 역시 빚쟁이가 끝없이 밀어낸다고 했다. 나는 빚쟁이의 행동에 상처를 받아 지쳐버렸는데 지치지 않는 형이 진심으로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나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것도. 역시 형이다.
우리는 점점 바빠졌고 빚쟁이 얼굴이라도 볼 기회는 점점 더 적어졌다. 숙소에 머무는 시간은 줄었고 빚쟁이는 언제나 그 저승사자와 함께 다녔다. 항상 구석에 있었다, 두 사람은.
지난 번 하이드 뮤직비디오 촬영장에서 즐거워하던 빚쟁이가 생각나 후속곡 뮤직비디오 촬영장에 같이 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재환이형에게 했다. 형은 그래도 빚쟁이와 말을 아직도 하고 있으니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했다. 작은 기대가 있었지만 곧 부셔져 버렸다. 빚쟁이는 언제나처럼, 아니 평소보다 더 우리를 차갑게 대했다. 지난번처럼 형의 손까지 내쳐가면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풀지 않으면 안 되겠다. 도대체 요즘 너 왜 그래? 제말 이유 좀 말해줘.
빚쟁이의 말은 나를 너무나 아프게 찔렀다. 나를 그동안 어떻게 생각한거지. 우리가 그렇게 못 미더웠나. 나는 너 절대 못 잊는데, 너가 나한테 어떤 존재인데, 왜. 나는 빚쟁이 너가 신기한게 아닌데, 단지 언젠가 나를 떠날 사람처럼 굴어서 계속 물어본건데. 그 때 마다 당황하는 네 표정이 귀여웠던 건데, 왜. 왜 그런 말들로, 그런 오해로 내 마음을 아프게 해, 왜!
창피하게 눈물이 흘렀다. 평소에 잘 울지도 않았는데. 감정이 주체되지 않고 그대로 눈물로 흘렀다. 재환이형은 그런 나를 안타깝게 보다가 등을 두들겨주고 밖으로 나갔다. 잘 하고 오라는 말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흐르는 눈물을 멈추고 빚쟁이에게 물었다. 제발, 말해줘. 이유라도 알려줘.
한참의 침묵 끝에 열린 빚쟁이의 이야기는 마음이 아팠다. 빚쟁이는 원래 자기 자리로 돌아가면 기억을 다 잊는다. 그 사실을 빚쟁이는 우리를 위해서 이야기하지 못하고 혼자서 끌어안고 있었다. 그리고 혼자만의 생각으로 시작된 상상은 결국 우리가, 내가. 자기를 잊는다는 결말을 맺었다. 불안정한 자신의 상황에 두려움을 느끼는 빚쟁이의 외로움은 이 상상과 만나 우리를 밀어내게 만들었다.
내가 널 어떻게 잊어. 나는 널.
빚쟁이를 내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나는 널, 좋아하는데.
언제나 코ㅎ맙습니다@,@
[암호닉]
코쟈니님
문과생님
치즈볶이님
하얀콩님
레오눈두덩님
아영님
망고님
라온하제님
큰코님
니나노님
찌꾸님
2721님
니풔님
투명인간님
뎨라프님
낭만팬더님
타요님
태긔요미님
솜사탕님
라바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