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먼저 말해줘, 나를 원한다고 말해줘.
그럼 나 못 이긴척, 너의 마음을 받아줄 수 있는데
# 열 번째. 날 원한다고 말해줘
☆★☆★☆★
3월 모의고사 가채점을 해 보았다.
그리고 난 찬열이의 얼굴에다가 시험지를 던져 버렸다.
"망했어, 진짜. 학원 다녀야 되나?"
"많이 못 봤어?"
"봐 봐."
"원래 못 봤으면 숨기지 않아?"
"뭐하러 숨겨. 그냥 봐."
찬열이가 내 시험지를 천천히 훑었다.
원래 내가 어느 정도 성적을 받는 지 알고 있는 지라, 내 표현 선택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모양이었다.
"너무 놀아서 그런가."
"넌?"
"나? 그냥. 비슷한데. 망하진 않았고."
바닥에 스르륵 주저앉았다.
찬열이는 공부도 잘한다. 정말 신기하게, 공부도 잘 하고 잘생기고 키도 크다.
"나 어떡하지. 이 성적으론 대학 못 갈 텐데."
"아직 고1인데 재수없게 대학 얘기 하지 마."
"야. 아직이라니. 지금부터라도 올려야지."
"너 나쁘지 않아. 중학교 때도 내신 30% 안에 들지 않았어?"
"그게 잘 하는 건 아니지."
한숨을 재차 쉬었다.
처음 와 보는 찬열이의 집인데,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한 반응을 내놓지 않는 중이라 먼저 말을 꺼내기도 민망했다.
다만, 한 차례 몸살을 너무 심하게 앓은 탓에 몸이 좀 뻣뻣해서 침대에 눕고 싶었을 뿐인데.
그렇다고 남자애 침대에 마구 뛰어드는 건 또 아닌 것 같고.
쓸 데 없는 낯가림과 철벽 탓에, 차마 물어보진 못하고 계속 입만 뻐끔대며 망설이고 있었다.
찬열아, 나 너 침대 올라가도 돼? 아니. 이건 변태 같잖아.
야. 나 누워도 돼? 이게 더 야한데?
내가 고뇌하는 듯한 표정을 짓자, 찬열이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
"라면 끓여줄까?"
"라면 끓일 줄 알아?"
"엉. 밥도 내가 해."
"뭐야. 존나 세상 혼자 사네."
"뭐라고?"
"아니야. 물 많이 넣지 말고, 계란 넣지 말고, 너무 푹 익히지 마."
"마님이네 완전."
"그럼 넌 돌쇠잖아. 돌쇠가 마님한테 말대꾸도 해? 얼른 갔다 와."
찬열이가 내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나는 웃으면서 머리를 정리하다가, 그냥 무심결에 뱉어 버렸다.
"침대 올라가 있어도 돼?"
"엉. 너 이거 말하려고 계속 그렇게 혼자 얼굴 찌푸렸다 폈다 한 거야?"
"응. 어감이 야하잖아."
찬열이가 웃었다.
하긴, 이런 애도 처음 보겠지.
"진짜 야해, 오징어."
"뭐가. 알아들은 너도 변태잖아. 얼른 끓여와."
"그러고 보니까 마담이랑 돌쇠도…"
이런 대화가 지속된다면 난 아마 흥분을 주체하지 못할 게 뻔했다.
그러니까, 아니라고 변명하는 것에.
나는 휘휘 손을 저어 찬열이를 보낸 뒤, 침대 위로 엎어졌다.
너무 피곤했다. 밤을 새기도 했고, 꼭 기면증처럼 푹신한 게 몸에 1 제곱 센티미터라도 닿으면 잠이 쏟아지는 고질병이 있기 때문에.
나는 눈을 느리게 꿈뻑이며, 어느 각도가 가장 예쁠까 재 보다가, 결국 이래도 저래도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안 된다는 걸 깨닫고 그냥 얼굴을 베개에 파묻었다.
찬열이의 향이 깊게 배어 있었다.
나는 변태 같이 흐흐흥, 웃으며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다.
-
"우음…"
"…일어났어?"
일어나보니 찬열이가 뭔가 컴퓨터를 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그러고 보니 하늘도 어둑어둑하고.
"몇 시야?"
"일곱 시 반."
"에에?"
"진짜 자 버리냐."
"라면은?"
"두 개 끓였는데. 그냥 혼자 먹었지."
너무 미안해져서 나는 그만 벌떡 일어나 입꼬리를 축 내렸다.
"미안해. 진짜 미안."
"잘 자다가 왜."
"야. 삐졌어?"
"아니."
"아, 그러지 마. 나 진짜 심장 쫄깃해져."
"마님한테 저녁 바치러 라면 끓이러 갔더니 교복 입고 침대에서 엎어져 자고 있고."
"미안해 진짜. 나 그냥 오늘 너무 졸려서…"
찬열이는 진지한 듯 말을 하다가, 결국엔 푸흐 웃어 버렸다.
"아 귀여워. 막 눈꼬리 쭉 내려갔어."
"풀린 거지?"
"애초에 화 안 났어."
"뭐야."
"배 안 고파?"
"괜찮은데."
"그래? 나중에 배고플걸."
"괜찮아."
나는 거울을 보고 머리를 대충 정리한 뒤 문득 뻐근한 허리와 어깨에 인상을 팍 찌푸렸다.
허리는 주물러 달라고 하기도 민망한데.
"야. 근데 나 어깨 좀 주물러주면 안 돼?"
"어?"
"어깨. 아파."
"진짜 돌쇠처럼 부려먹네."
손에 힘이 강해서 그런가. 생각보다 시원했다.
한참을 정말 마님처럼 안마만 받다가, 문득 어깨에 올려진 찬열이의 팔을 꼭 붙잡고 고개를 뒤로 젖혀 눈을 맞췄다.
"나가자."
"지금?"
"한강 가자."
"한강?"
-
한강이 바로 집 앞이라 5분 정도만 걸으니 바로 한강 공원이 나왔다.
가는 길에 집도 잠깐 들러서 옷도 편하게 갈아입고, 자전거도 끌고 나왔다.
자전거를 잠깐 길가에 세워두고, 내가 머리끈을 입에 문 채 머리를 하나로 모아 묶기 시작했다.
슥슥, 손가락을 꽂아 하나로 모으는 내 손동작을 본 찬열이가 감탄했다.
"와, 머릴 저렇게 빨리 묶어?"
"그럼 얼마나 걸려야 돼."
"그런 건 아닌데."
"다 됐다. 타."
찬열이는 찬열이의 하얀색 자전거에, 나는 나의 민트색 자전거에 올라타서 여유롭게 라이딩을 시작했다.
바람이 와 닿는 것도 살랑살랑 기분 좋았고, 머리를 묶고 나니 머리카락도 얼굴에 닿지 않아 편했다.
늘 즉흥적인 성격 탓에 즉각적으로 무언갈 제안하면 그를 받아주는 사람이 몇 없었는데, 찬열이는 바로바로 내 제안을 받아들여주었다.
지금처럼, 갑자기 자전거를 타자고 해도 웃으면서 같이 나가 주고.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너무 찬열이가 예쁘고, 멋있고, 정말. 내가 언제 이런 남자를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 스스로가 행복해진다.
뭐 하나 흠 잡을 게 없는 것 같고, 이런 남자가 날 좋아한단 것도 신기하고.
찬열이가 정말 날 좋아하는 게 맞을까? 날 그냥 떠 보는 건 아닐까? 그런 고민도 여러 번 해 봤지만, 어찌 되었든 다 부질없는 것이었다.
지금 현재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면 그것이 완벽한 것이니까.
나는 웃음을 감추지 못해 눈을 휘어 웃으며 찬열이에게 이렇게 물었다.
"야. 너 김종대랑 친해?"
"김종대? 어."
"걔 착해?"
"어. 좀 바보 같긴 한데, 뭐."
"소개시켜 줘."
"…어?"
"나 말고 표혜미. 걔가 좋아해."
"깜짝이야."
이런 사소한 밀고 당기기로 설레어하고, 또…
"어!"
자전거에서 내리다가 자전거가 쓰러져서 내 다리를 퍽 긁어 피가 날 때,
"아프겠다. 어떡해. 호오-"
"간지러 임마. 하지 마."
"피 난다. 어떡하지? 흉 지면 어떡해. 여자 다린데."
"뭐 어때."
"여자 다리는 예뻐야지."
"넌 내 다리에 저거 있으면 갑자기 내가 못생겨 보이냐?"
"아니. 징어는 맨날 예쁘지."
"음, 그건 좀 오글거렸는데. 어쨌든. 뭐 어때. 내 다리 흉터까지 사랑해 줄 남자랑 결혼해야지."
찬열이가 소심하게 내뱉는 대답에 환하게 웃는 이런 일상이,
"나랑 결혼해야겠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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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가 기승인데 모두들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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