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덕 오세훈 사장님
그 날 아저씨가 미친 듯이 쓸고 담았던 옷들과 액세서리들이 담긴쇼핑백 안에는 영수증도 함께 담겨 있었다. 입었던 정장 몇 벌을 제외하곤 모두 그에 손에 꼭 쥐어 들려 보냈고, 그 날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나는두 번 다시 세훈과 엮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스쳐가는 인연. 그렇게 정의하기엔 너무 멀리까지 와 버렸다.내 손으로 끊어 버린 인연. 그래, 딱 그 정도가 적당하겠거니와 애초부터 나 같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끊음 자체가 불가능 한 사람이었다. 기대도,실망도 하지 않겠다는 나의 다짐은 생각 외로 쉽게 실천 되었다. 가끔씩 전화벨과 문자 알림이 울려 핸드폰을 확인 하면 대부분 그 사람으로부터 발신된 것들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울리는 핸드폰을 애써 외면했다. 문득 그 사람 얼굴이 떠오를 때가 있으면, 스스로 팔을 꼬집으며 그 생각을 멀리떠나 보내곤 했다. 그렇게 3주. 무려 3주란 시간이 지났다.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을 죽지 못해 살던 내겐 어느 때 보다 길게 느껴지고 폭풍이몰아 치는 시간들이었음을, 그 사람은 알까.〈o:p>〈/o:p>
“예, 여보세요.”
“저번에 면접 보셨던 ㅇㅇㅇ씨죠?,문자 확인을 안 하시는 것 같길래요.”
“아… 예.”
“합격 되셨구요, 월요일부터정상 출근 하시면 됩니다.”
“제가요?”
“예. 사장님 지시로 합격및 채용 되셨습니다.”
나는 혼이 나간 사람처럼 계속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두손으로 붙들고 있던 핸드폰에서는 뚜,뚜,뚜. 하는 끊겼다는 신호음이 들려왔고, 나는 핸드폰을 조용히 핸드폰 위에 던져 버렸다. 모든 게 제 멋대로인사람이다. 내가 정말로 자신의 비서 일을 하면서 기뻐할 거라 생각을 한 걸까. 나는 한숨을 쉬며 침대 위에 놓여진 핸드폰을 멍하니 주시했다. 전화진동 때문에 이불 위에서 한참 동안이나 부르르 떨리던 전화기 위로 선명히 발신자 표시가 되었다. ‘받지마’. 애초부터 받고 싶지않았으면 번호를 삭제 하고 차단 시키는 게 맞는 일이었거늘, 나는 왜 항상 미련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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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덕 오세훈 사장님
퀴퀴한 냄새가 나는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들고 집을 나섰을 때였다.여전히 번듯한 차, 익숙한 색깔. 나는 애써 고개를 바닥에 처박을 듯 더 떨구며 세훈 아저씨의 차를 태연하게 다른 사람인 냥 지나 갔다. 음식물쓰레기 수거 통이 쓸 때 없이 먼 탓에 저벅저벅 어두운 길을 홀로 거닐며 차가운 밤 공기에 시린 코를 훌쩍이며 쌀쌀한 온도를 체감 할 수 있었다.‘혼자’ 라는 것은 많은 걸 절감케 한다. 혼자서 차갑다 못해 시린 밤공기 때문에 몸을 움츠리며 거니는 밤길이얼마나 외로운 건지. 을씨년스러운 이 밤에 연락 한 통 할 사람 하나 없다는 것이 얼마나 쓸쓸한 것인지.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넋 나간 사람처럼걷다 보니 쓰레기 수거 통에 다다랐다. 코 끝을 찌르는 시큰하고 불쾌한 냄새에 얼른 봉투에 들은 쓰레기를 털어 넣고 봉지 수거함에 손에 들린 봉지를던져 넣었다. 저벅저벅 슬리퍼 끌리는 소리를 내며 어두운 밤길을 또 다시 걷는다. 별 몇 개가 총총 박힌 밤하늘을 함께 나란히 바라보며 이야기를나눌 누군가가 없다는 사실에 울적해지는 맘을 달래며 빌라 단지에 가까워 졌을 즈음, 누군가의 발소리와 내 발소리가 겹쳐 들리는 것이 분명해 나는우뚝 멈춰 섰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생각에 나는 걸음을 다시 재촉했다. 내가걸음을 빨리 하면 빨리 할수록 뒷사람은 걸음을 재촉 시켰고, 내가 걸음을 늦추면 늦출수록 거북이 걸음으로 내게 다가 왔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아저씨 전화번호가… 전화번호가… 010… 통화 기록을 지워 버린 걸 후회 하며 입술을 오물거렸다. 시린 손과 몸이 사시나무떨 듯 떨려 왔고, 나는 내 손에서 떨어지는 핸드폰을 멍하니 바라보며 내게 가까워지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찬 머리를 설레설레 저으며 앞에보이는 세훈 아저씨의 차로 무조건 향했다. 눈물이 핑 돌고 심장이 빨리 뛰고. 저벅저벅 점점 가까이 들려오는 발소리와 듬성듬성 고장 난 가로등이나의 두려움을 배로 더 해주었다. 벌벌 떨리던 다리는 얼마 못 가 풀렸다. 주저 앉아 우리 집 빌라 단지 앞에 주차 된 세훈 아저씨의 차를 하염없이바라 보았고, 이내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는 주위를 살피며 절망하던 내 귀에 들린 것은 중후한 목소리의 억! 하는 괴성이었다. 벌벌 떨며 귀를두 손으로 막고 있던 나는 뜬금 없는 상황에 뒤를 바라 보았고, 목소리의 주인공의 멱살을 잡고 끌고 오는 세훈 아저씨의 얼굴에 눈을 치뜨는 나에반해 덤덤한 모습이 눈엣가시다. 다른 사람일 거라 눈을 비비고 보아도 저 얼굴은 세훈이 분명 했다.
내게 가까이 다가 온 아저씨는 손을 잡아 나를 일으켜 주었고,그 사이 도망치는 괴한을 보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저거 완전 미친 새끼 아니야?”
“…”
“경찰에 신고를 했어야지핸드폰을 놓치면 어떻게 해. 아님 가족들한테 연락을 하던가.”
내 손에 아까 놓쳐버린 핸드폰을 꼭 쥐어 준 세훈 아저씨의 얼굴을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후. 하고 한숨을 쉬는 내 입에 반해 몸은 여전히 벌벌 떨리고 있었다. 내 몸이 왜 이러지. 내가 왜 이러지.이제 괜찮은데. 몸 안에 모든 감각이 다 낯설어 지는 기분이다.
“너 왜 이렇게 떨어. 일단경찰서부터 가자.”
“얼굴… 못 봤어요.”
“그럼 병원 가자. 너 지금손 떨려.”
벌벌 떨리는 손을 내려다 보았다. 계속 해서 떨린다. 추위 때문에떨린다는 것은 말이 안될 정도로 떨려 온다. 떨려 오는 손을 애써 잡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병원… 갈 정도는… 아니에요.”
“집에 가족들 있어? 얼른들어 가.”
집에 가족들이 있냐는 말에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입을 오물거리다꺼낸 한마디는 매우 절망적이었다.
“가족 없어요.”
“어디 가셨는데.”
“가족 없다구요. 엄마도아빠도 이모도 고모도.”
“뭐?”
아저씨는 실소를 내뱉으며 되물었다. 뭐? 하고.
‘그래, 나 너 불쌍해.불쌍해도 너무 불쌍해. 막 가여워. 나도 내가 미친놈 같은데 네가 너무 불쌍해.’
저번에 만났을 때 아저씨가 내게 한 말이 떠올랐다. 아저씨는내가 불쌍하다며 온전히 동정심만으로 이 쓸모 없는 관계를 이어온 사람이다. 난 얼른 끊고 지내야 할 관계의 사람에게 또 다시 한 번 해선 안 될짓을 했다. 고개를 떨구며 아저씨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저씨는 따뜻한 제 손으로 시린 내 손을 붙들며 말했다.
“손이 차다. 할 얘기 있었는데오늘은 못 하겠네. 얼른 들어 가라 아가.”
의외의 대답에 나는 얼이 빠져 차로 향하는 아저씨를 바라 보기만했고, 얼른 종종 걸음으로 좇아 아저씨의 외투 자락을 붙잡았다.
“할 얘기 있음 오늘 해요.차라도 마시고 가세요.”
막무가내로 제 손을 잡고 끌고 가는 내게 못 당해 집안으로 들어온세훈 아저씨는 머뭇거리다 이내 신발을 벗으며 집안을 이리 저리 둘러 보았다. 멀대 같은 키 때문에 머리가 천장에 닿을 듯 했다. 외투를 벗어 걸어두며 소파 위에 걸터앉은 세훈 아저씨에게 홍차를 건넸고, 아저씨는 고맙다며 차를 홀짝였다.
“일단…, 고맙습니다. 저쫓아 오신 거에요?”
“의도치 않게 그렇게 되었네.내 목적은 그 자식처럼 널 겁 주려는 게 아니라 대화를 좀 하려는 거였는데. 하도 전화도 안 받고 문자도 안 받길래.”
“저 그거 안ㅎ…"
홀짝이던 찻잔을 내려 놓은 그의 행동에 안 할 거라는 단호한나의 말이 끊겼고,
“그나저나 여기 밤길은 여전히험하고 무섭구나.”
그 소리가 듣기 싫었는지 이내 화제를 돌려 버리는 아저씨이다.
“아저씨.”
“핸드폰 떨어트려서 액정나갔더라. 가족들 아무도 없다며, 누구한테 연락 하려고 그랬어?”
“당연히 경찰이요.”
“글쎄. 한참을 붙들고 있던데.112는 금방 치는 번호 아닌가.”
“…”
“가족도 없고, 아는 지인도없는 걸로 추정 되고. 누구한테 연락을 하려고 했던 거야.”
나는 세훈 아저씨가 원하는 대답을 해 줄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눈을 피하며 대답을 않고 있는 내게 세훈 아저씨는 사나운 투로 말했다.
“여튼, 너 정말 이럴 거야?”
“제가 뭘 어쨌는데요?”
“나 너 때문에 커피도 못마셔. 스케줄은 언제까지 내가 확인 해야 돼?”
“비서야 하고 싶은 사람은널리고 널렸겠죠, 저 말고 다른 사람 고용 하세요.”
“안 하겠다고 네가 말 했어?”
“그렇죠. 그니까 지금 말할게요. 저 안 해요.”
아저씨는 인상을 마구 썼다. 거친 눈빛에 겁을 먹고 고개를 떨군것도 잠시, 내가 잘못한 건 없다. 그저 제 멋대로인 세훈 아저씨 때문에 나는 죄인 취급을 받을 수 없다며 합리화를 했고, 고개를 빳빳이 들어세훈 아저씨와 눈을 마주했다.
“나 세탁비 탕감해준다고말 한 적 없는 걸로 기억 하는데.”
“…”
“거기다 그 날 네가 우리백화점 화장품 깨트린 것만 해도 장난 아니고, 병원비도 꽤 들었고. 나머지는 뭐… 말 안 해도 알 테지.”
나는 한숨을 쉬며 마른 세수로 대답을 대신했다. 뭐 이렇게 갚을게 많아. 너 대체 왜 이렇게 많은 해를 끼치고 살았니, ㅇㅇㅇ. 새삼 내가 원망스러워 지는 순간이다. 멀뚱멀뚱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던 아저씨는이내 조심스럽게 다정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한다.
“발목은 괜찮은 건지, 비서할 생각은 여전히 없는 건지, 항상 불쌍하게 사는지.”
“…”
“그거 궁금해서 왔어, 난.”
“…”
“그리고…”
“…”
“아직까지 나 어려워하는지.그게 제일 궁금했어.”
발목은 괜찮은 건지, 비서 할 생각은 여전히 없는 건지, 항상불쌍하게 사는 건지, 아직까지 내가 그를 어려워 하는 건지. 그가 한 마디를 뱉어 내면 뱉어 낼수록 마음이 따끔거리는 기분이다. 대체 그게 왜궁금하냐고 묻고 싶지만, 안 그래도 답은 나온 문제였으니까. 그게 가장 나를 슬프고 비참하게 만들었다. 네가 미치도록 불쌍하니까. 불쌍해서. 그래서당신은 해답을 얻었을까. 내가 괜찮은지, 비서 할 생각이 여전히 없다는 것을, 항상 불쌍하다 못해 비참하게 사는 것을 알았을까.
“이제 안 떠네, 오늘 아무생각 없이 푹 자고. 혹시 아직도 발목 안 나았거나 내일 안 괜찮으면 병원 한 번 가 보자. 출근은 당연히 하고.”
이번 역시도 병원 한 번 가 봐. 하는 치레적 친절이 아닌 가보자. 하는 과도한 친절에 놀라기도 잠시, 원체 이런 사람인데 놀랄 게 뭐가 있냐며 쓴 웃음이 절로 나왔다. 과도한 친절이 일상인 사람.
그는 접어서 걸어 두었던 외투를 챙겨 들며 현관으로 향했다.잘 있으라는 말을 끝으로 그는 마음 한 켠에 차가운 냉기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의 발자취는 항상 차갑다. 가고 난 뒤에 남은 시린 공기가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