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빈씨랑. 아는 사이였어 형?
응.
대체..무슨 사이인데?
글쎄.
원식이 질문하는 말에만 간결하게 대답하고는 말이 끝나면 바로 굳게 닫아버리는 택운의 굳은 입술에
원식만 속이 타들어갈 지경이었다.
왜? 어째서 아는 사이인건데?
그런거에도 이유가 있나?
원식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택운의 표정에는
오전에 같이 있던 재환에게 짓던 표정과는 사뭇 다른
화가 묻어나 있었다.
내가 아는 형은..되게 착하고, 완벽하고, 언제나 자상한 그런 형인..데..
그래서?
왜 홍빈씨한테는 그런 짓을..한거야..?
그런 짓? 택운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짓? 뭐, 어깨에 커피 뿌린거? 아니면. 니네 회사 앞에서 키스한거?
...!
키스는 이홍빈이 먼저 한짓이고,
..
어깨에 커피 뿌린건..
내꺼라는 걸 알리기 위한 표식이었는데.
택운이 뒷말을 삼키고는 원식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보니,
저자식이 이홍빈 어깨를 치료해줬다지.
내가 아는 형은 그럴 사람이 아닌데..왜..
충격에 빠진 원식을 뒤로한 채 택운은 조용히 안주머니에서 자신의 담배를 꺼내들었다.
니가 아는 그 형이 잘못된거야.
형, 어째서.
니가 아는 그 형은 담배도 못 핀다지?
그거 참 가식적이야. 택운이 냉소를 지으며 원식의 앞에서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지폈다.
이홍빈이 회사에 다시 정상적으로 다닐 수 있게 해준 건, 고맙게 생각해.
무슨 염치로 그런 말을 쉽게 해!
염치? 지금 염치라 그랬어?
연기를 내뿜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던 택운이 제 고개를 들어 원식을 쏘아보았다.
남의 것에 남겨놓은 표식까지 지워버리는 근본없는 새끼가, 지금 나한테 염치?
그게 무슨 소리야. 표식?
알 거 없고, 너한테 염치 그딴 소리는 안어울려.
훠이,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고는 그 손으로 원식의 앞에서 저리 가라는 듯 휘젓은 택운이
고개를 양 옆으로 내저었다.
그러고보니 김원식, 너도 참.
뭐.
한상혁, 그 놈하고 많이 닮았네.
그건 또 누구야.
있어, 너랑 무지 닮은 놈.
...
눈치 없이 앞에서 나대는 것도 똑같고.
...
남의 것에다가 괜시리 관심주다 끝이 안좋게 되는 것도 똑같고.
...
미친놈들한테 덤비다가 미쳐버리는 것도 똑같고.
택운이 말을 끝냄과 동시에 들고있던 담배를
원식의 어깨에 지져버렸다.
아, 흐악, 아...하아..악...!!!!!!!!!
담배라는 건 말야,
어쩌면. 또다른 표식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며칠 전에야 제대로 깨달았지 뭐야-
고통에 몸부림치는 원식의 명치를 무릎으로 가격하여
간단하게 원식을 제압한 택운.
원식아, 오지랖은 이런 결과만 불러오는거야.
아, 하긴.
니가 오지랖이 없었으면
내가 이홍빈이 어디에 있는지 못알아냈겠지.
7년 이상을 너랑 가까이 지내면서 쓸모있을 일이라고는 네 뒷배경밖에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원식을 들어올려 차 트렁크에 던져넣은 택운이
고통으로 정신을 잃어버린 원식을 바라보고 비웃다
트렁크 문을 닫았다.
이렇게 쓸모있어줘서 고맙다, 김원식.
차의 시동이 걸리고,
원식의 눈이 떠졌다.
자신의 왼쪽 어깨에서 나오는 고통에 저절로 새어나오는 신음을 틀어막고
핸드폰을 들어
자신보다 곧 더 위험해질 듯한 홍빈에게 전화를 걸려
핸드폰을 켰다.
홍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없는 번호라 뜨는 핸드폰에 망연자실해진 원식이
1,1,2. 경찰에게 신고하려 번호를 누르고 통화버튼을 누르려 하는 순간.
트렁크 문이 열렸다.
원식이 일어났네-
원식의 누나와 택운의 형은 둘도 없는 친구였다.
유치원때부터 서로 친하게 지내오던 택운의 형과 원식의 누나.
그렇게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건, 원식의 누나가 택운의 형을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택운의 형은 원식의 누나를 한번도 이성으로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다른 여자를 이성으로 생각하는 듯 해보이지도 않았다.
원식의 누나가 택운의 형을 좋아한지도 꽤 될 무렵,
택운의 형과 원식의 누나.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둘의 대학교가 갈라져
더이상 같은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머리가 좋았던 원식의 누나가 계속 택운의 형을 보기 위해 생각해 낸 묘안은
아직 중학생이라 같은 학교인 택운과 원식을 친해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택운과 원식은 처음 만났고,
금새 친해졌다.
몇년 후 군대까지 다녀와 더 늠름해진 택운의 형이
어느날 덜컥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원식의 누나에게 말을 하였다.
난생 처음, 택운의 형에게 첫사랑이 생겼다는 말에
원식의 누나는 가슴이 찢어졌지만, 참았다.
그러나 원식의 누나에게 들려온 그 소식은
택운의 형이 좋아하는 사람이 남자라는 것이었고
몇년동안 짝사랑해오던 남자가 게이라서, 그래서 자신을 거들떠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원식의 누나는
택운의 형이 좋아한다는 홍빈에게 앙금을 품어버렸다.
그리고 비슷한 무렵, 택운또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똑같은 사람을 사랑한 자신의 친형에게 앙금을 품었다.
결국 택운은 자신의 친형을 제 손으로 죽였고,
택운의 형이 죽었다는 사실을 들은 그 날부터
원식의 누나는 전보다 더 눈의 불을 켜고 '이홍빈'이라는 존재를 찾기 시작한다.
항상 착하고 또 한사람만 바라봐서 안쓰럽던 자신의 누나가
점점 괴물처럼 변해가는 모습에 무서웠던 원식은
택운을 믿고 의지하기 시작했다.
택운의 형이 죽었을 때도 꿋꿋하고
언제나 수석을 도맡을 정도로 머리가 좋으며
자신에게 너무도 상냥하고 다정하며 착한
그리고 모든 일에 완벽해 덜렁거리는 자신을 챙겨주고 충고해주던
그래서 원식에게는 롤모델과 같았던 그 택운.
어쩌면 원식의 부주의함으로
그리고 어쩌면 택운의 소유욕으로
원식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존재를
잃어버렸다.
창섭아- 나 왔어.
혀엉, 형이다!
현관문 앞까지 나와 활짝 웃으면서 민혁을 반기는 창섭.
앞치마를 두른 채 민혁에게 손을 흔드는 창섭은
영락없는 아줌마였다.
저녁 차려놨어!
언제 올 줄 알고 저녁을 차려놔-
에이, 매일 이시간에는 오면서 그래.
해맑게 웃는 창섭의 엉덩이를 토닥여준 민혁이 손을 씻고 밥먹으러 부엌으로 들어갔다.
재환이는? 아직 안왔어?
응, 아마 늦을 건가봐. 누구 만난다던데?
...전화했어? 이재환이?
아까 전화왔었는데?
이새끼가 왠일이래...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민혁이 창섭의 어깨너머로 요리를 훔쳐보았다.
어라, 호박전 하는거야?
맛있겠지! 먹어볼래?
갓 만든 호박전 하나를 들고 민혁의 입에 쑤셔넣은 창섭.
아, 아으...으!!!!!
아차, 뜨겁다 그거.
결국 민혁은 눈물까지 쏙빼고 나서야 다 데인 입천장을 식힐 수 있었다.
뭐, 요즘 작가 일은 잘 되고? 어제는 시나리오 안써진다고 찡찡대더니.
거실에는 창섭이 오후내내 고민한 흔적이 가득한
시나리오 종이와 노트북이 한데 널브러져있었다.
사실, 아직도 잘 안되긴 해.
뭘 쓰는데 그래?
음.. 형사물 이런건데- 너무 진부하면 제일 재미없어지는 게 형사물이잖아.
음식접시를 한가득 식탁에 나르다가 시무룩해진 창섭.
창섭은 드라마 작가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남자치고는 꽤나 섬세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괜찮아, 우리 창섭이 글 잘쓰잖아. 그치? 할 수 있어-
그런가..? 그렇겠지?
그럼.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민혁이 시무룩한 표정의 창섭을 끌어 식탁에 앉혔다.
그나저나, 진짜 형사가 여기 앞에 있는데 왜 안물어봐?
형은 검사잖아!
...검사랑 형사랑 같이 일해...몰라?
아, 진짜?
너 형사물은 어찌 쓰냐.
한가지 단점이라면, 창섭은 자신의 전공분야 외에는 기본적인 일상상식조차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냥, 뭐...헤헤.
으휴.
음, 그럼 막 사건같은 거 말해줘!
사건? 민혁이 조용히 입술을 핥았다.
글쎄.. 형사 납치사건도 있고.. 자살 해프닝도 있고. 말해줘?
응, 응! 당연하지!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민혁에게 귀를 기울이는 창섭.
조근조근 며칠전 학연과 상혁의 이야기를 상세히 들려주는 민혁을 바라보다
창섭은 문득
민혁의 빨간머리가 참 잘어울린다는 생각을 하였다.
근데 형, 형 되게 빨간머리 잘어울린다.
그래?
응, 무슨 색이야?
레드와인.
아...진짜? 형이랑 되게 잘어울려.
창섭이가 잘 어울린다고 하니 기분 좋다.
씨익, 웃은 민혁을 바라보던 창섭이
입술을 핥았다.
순간적으로 창섭을 바라보던 민혁이 섬칫했다.
짜잔!!!!!!! 밥먹고 와서 수정할 게 있으면 수정할게요 ㅋㅋㅋ
1편이 초록글에 올라갔었더라고요! 으헿 감사해요 모두 헤헤헤헤ㅔ...
이해 안되는 부분이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세요!
음... 저번에도 그랬지만 분량조절은 언제나 Fail..ㅋㅋㅋㅋㅋ
+) 수정 완료! 음.. 제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항상 같으라는 법은 없는건데 항상 착각하네요ㅠㅠ 난 바보야.,.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