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녹차하임
베개를 던진 종대가 씩씩거리며 문을 열고 들어선 크리스를 바라보았다.
크리스가 바닥에 떨어진 베개를 줍고 종대에게 다가섰다.
침대에 고이 베개를 내려놓은 그는 종대의 양볼을 쭈욱쭈욱 늘이며 말했다.
"그러다 혈압까지 오른다. 아직 퇴원하기 싫은가보네."
"으아.. 으그 느아아아!!!"
종대가 발버둥치는 모습에 큭큭, 웃음을 터뜨린 크리스는 한참후에야 그의 볼을 놓아주었다.
얼얼한 볼을 감싸쥐고 자신을 째려보는 종대의 시선을 무시하며 들고온 차트를 한참을 들여다 본 크리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몸을 얼마나 굴렸던거야?
입원은 가벼운 찰과상으로 했지만 검사를 해보니 여기저기 성한 곳이 없다.
특히 영양이 너무도 불균형이다.
밥도 안주고 일을 시키나.. 작게 혀를 찬 크리스가 종대를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소름이 돋는다며 종대가 괜히 투덜거린다.
"밥 제대로 안먹는다며?"
"..."
"그러니까 퇴원을 못하잖아. 잘 챙겨먹으라고 몇번을 말해."
"맛이..."
"?"
"맛이 없다구요..."
초등, 아니 유아 수준의 대답이 흘러나오자 크리스는 작게 한숨을 쉬며 종대의 머리를 콩, 하고 쥐어박았다.
며칠간 주치의로써 지켜봐온 종대는 그야말로 몸만 큰 애기였다.
편식을 하지않나, 틈만 나면 나가 뛰어놀지않나...
가끔 친구들이 오면 더욱 시끄러워지는 종대가 신기하기도 했다.
크리스가 종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며 상체를 숙였다.
급격하게 가까워진 두 얼굴에 종대가 주춤거리며 뒤로 몸을 뺐다.
침대에 손을 짚으며 얼굴을 더 가까이 한 크리스가 종대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뭐,뭐에요?"
"내가 직접 떠먹여주길 바라는거야?"
"하..?"
"아니면 입으로 먹여주길 바라는건가?"
"무슨..."
"앞으로 또 식사가 그대로 있다는 소리 들리면 식사시간마다 찾아올거야."
"..."
"한시간 뒤에 확인할거다."
귓가에 속삭이더니 씨익 웃어보이고는 병실을 나가는 크리스에 종대가 넋을 잃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주치의가 그로 바뀌고 나서 그는 순회를 빙자하여 하루에도 몇번씩 찾아왔다.
그리고 방금과 같이 마치 여자를 꼬시는 듯한 말들을 툭툭 내던지고 사라졌다.
처음에는 질색하던 종대였지만 오해가 풀리면서 딱히 그를 피할 이유가 없어졌기에 마주하다보니 그가 몇번씩이나 불쑥 찾아와 말을 건네는 것에 익숙해져갔다.
하지만 저런 말들은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당연했다. 종대는 여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왜이러지.. 가슴이 간지럽고 숨이 벅차오르는 기분에 종대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발을 동동 굴렸다.
***
종대는 침대에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었다.
환자복이 아닌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종대는 드디어 퇴원하는 소원성취를 이루었음에도 표정이 밝지 않았다.
퇴원을 도와주기 위해 온 백현이 옷을 챙기다가 한숨을 푹푹 쉬는 종대에게 손에 들린 옷을 던졌다.
얼굴에 정확히 덮힌 옷에 정신을 차리고 백현을 바라보는 종대가 울쌍을 지었다.
"아, 뭐야..."
"퇴원하고 싶다며 난리칠 때는 언제고, 아까부터 뭔 한숨을 그리 쉬냐?"
"아... 그게..."
"빨리 이리와서 짐 안챙겨? 이제 손도 멀쩡한게."
"응..."
종대가 뭉기적거리다 자리에 일어나 백현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문쪽에서 말소리가 들려왔고 어느새 문에 기댄 채 서있는 크리스에 두사람의 시선이 꽂혔다.
"드디어 퇴원인가. 축하해."
"..."
"어? 형! 얼굴 못보고 갈 줄 알았는데. 지금은 안바쁜거에요?"
크리스의 등장에 종대는 당황한 듯 입을 다물었고 백현은 반갑게 말을 이었다.
다시 고개를 내려 묵묵히 짐을 싸는 종대를 내비두고 백현은 크리스에게 다가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백현과 얘기를 나누는 크리스가 조용한 종대에게 힐끔힐끔 눈길을 보냈지만 종대는 그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짐싸는데 집중했다.
이번엔 또 무슨 일로 저럴까? 크리스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굳은 종대의 얼굴을 살폈다.
"백현아, 원무과에서 퇴원수속하러 오라던데."
"아, 맞다. 아직 안했구나! 네. 알겠어요. 김종대!! 짐 마저 다 싸놔라~"
"으,응..."
백현이 나가자 병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똑딱똑딱거리는 시계소리만이 조용히 울려펴졌다.
크리스는 딱히 종대에게 말을 걸지는 않았지만 종대는 입이 바싹바싹 말라갔다.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이 자신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는 압박으로 느껴진다.
애써 고개를 돌리지 않고 묵묵히 받아내고는 있지만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을 알기에 결국 종대가 먼저 두손을 들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빤히 보지말고 말을 하라구요..."
"좋아하는 모습 보려고 왔는데 표정이 왜그래?"
"내 표정이 어,어때서요? 나 지금 완전 신나있는데요?"
"아닌데? 말해봐. 이번엔 또 뭐가 마음에 안든거야?"
크리스의 물음에 종대는 미간을 좁혔다.
그의 저런 태도가 무척이나 맘에 들지 않았다.
말을 튼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마치 자신에 대해서라면 뭐든지 알고 있다는 듯한 저 말투에 괜히 심통이 났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그가 읽은 자신의 기분이 틀린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진짜 맘에 안들어..."
종대가 작게 속삭이자 크리스가 긴 다리로 성큼성큼 다가와 종대 앞에 섰다.
저 큰 덩치로 서슴없이 다가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행동을 취할 때마다 커지는 짜증에 종대는 눈동자를 굴려 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다음 이어진 크리스의 행동에 종대는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