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열은 소년의 말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멍하니 소년과 백희를 번갈아 보았다. 이제 보니 하얀 얼굴과 귀여운 눈매가 소년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 잠깐. 백희가 7살이니까...
"사고쳤어?"
"....."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에 소년이 살짝 노려보자 찬열은 머쓱하게 웃으며 작게 사과했다. 26살에 7살 딸이면.. 18살에 사고 쳤다는 거잖아? 생긴 거 답지 않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찬열은 이내 자신과 상관없다는 생각에 어깨를 으쓱이고는 백희의 볼을 살짝 잡아 흔들며 말했다.
"니가 아빠를 닮아서 이렇게 귀여웠구나~"
"누가 내딸 마음대로 만지래? 누구 딸인데 당연히 귀엽지."
백희를 만지는 찬열의 손길에 소년이 한 발짝 물러서며 경계하자 찬열을 입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한번 만진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백희 안전하게 데리고 있었는데 뭐 없나?"
"뭘 바래? 경찰에 신고 안 한걸 다행으로 생각하시지?"
백희를 땅에 내려놓고 손을 잡으며 집에 갈 준비를 하는 소년의 모습에 찬열을 한번 떠보자는 식으로 한마디 툭 던져 보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쳐진 눈꼬리를 한껏 올려 쳐다보며 쏘아대는 소년의 말에 그저 입맛만 다셨다.
"아니 뭐... 집에 들어가서 저녁 먹을꺼 아니야?"
"...맞는데 왜."
"왜긴. 식사라도 한번 대접해달라는 말이지."
"참나. 원래 사람이 그렇게 뻔뻔해?"
"백희야 오빠랑 저녁 같이 먹고싶지?"
소년의 말을 무시하고 백희를 안아 들어 물어보자 다행히도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백희의 행동에 찬열은 씨익 웃어 보이며 소년을 쳐다보았다.
"백희 안 내려놔? 왜 마음대로 안고 그래! 그리고 우리 가족도 아니고 밥을 같이 왜 먹어?"
"꼭 가족이어야 같이 밥먹나? 친구끼리 한끼 같이 할 수도 있지."
"웃겨. 댁이 나랑 무슨 사이라도 돼?"
"방금 친해진거 아니야?"
"참나..."
"아빠 아빠. 오빠랑 같이 밥 먹을래요."
"거봐 백희도 나랑 같이 밥 먹고싶다잖아~"
백희까지 합세해 저를 조르는 둘의 모습에 소년은 머리를 짚고 인상을 썼다. 변백희 너까지 진짜...
"...따라 오던지 말던지 마음대로 해."
이내 포기한듯 집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소년의 모습에 찬열은 앗싸! 라고 소리 내고 미소를 지으며 재빨리 소년의 옆으로 갔다.
"아빠 아빠. 우리 오빠랑 같이 밥 먹어요?"
"응. 아, 변백희 너 아빠가 길에 돌아다니는 강아지 만지지 말랬지!"
"치..."
"애가 강아지 좋아할 수 도 있는거지 뭐.."
저의 품에서 입을 삐죽거리는 백희를 보며 그치? 라고 되묻자 고개를 끄덕이며 개구지게 웃어 보이는 백희의 모습에 찬열도 따라 웃으며 백희의 볼에 입을 맞췄다.
"나중에 오빠한테 시집와~ 알겠지?"
"아 뽀뽀하지마! 남의 딸한테 뭐하는짓이야! 시집간대도 내가 못보내!"
뽀뽀 한번 했다고 기겁을 하며 저의 품에서 백희를 데려가려는 소년을 이리저리 피해 가며 백희에게 속삭였다. 백희야, 너희 아빠가 너 되게 좋아하나 봐-
"어? 나 여기 바로 옆동 사는데."
"근데 뭐."
"자주 놀러오라고."
"내가 당신네를 왜 놀러가?"
"그럼 내가 놀러올까?"
아파트 현관을 들어서면서 저에게 자꾸 말을 걸어오는 찬열의 행동에 소년은 살짝 인상을 쓰며 신경질적으로 도어락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손을 씻긴다며 백희를 데리고 화장실로 들어간 소년을 보고는 거실을 돌아다니며 집을 구경하던 찬열이 화장실에서 나온 소년을 보고 물었다.
"엄마는 아직 일하시나봐?"
"....."
"하긴 요즘 맞벌이 하는 집이 많긴 하지."
"...백희 엄마 없어."
"...어?"
소년의 말에 오늘 1년 치 놀랄 것을 다 놀라는 찬열이었다. 엄마가 없다니... 설마 사별한 건가? 괜히 자신의 방정맞은 입을 때리는 찬열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건지 소년은 부엌으로 들어가 이것저것 준비하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애 낳고 바로 호주로 가버렸어."
"아..."
"자기는 애키울 생각없으니 알아서 잘 키워보라나 뭐라나.."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하는 소년의 모습에 괜히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것 같아 한층 더 밝은 목소리로 소년의 옆으로가 뭐 도와줄 거 없냐며 물어오는 찬열의 행동에 소년은 손이나 씻으라며 타박을 했다.
도와준대도 뭐라 그래.. 궁시렁거리던 찬열이 손을 씻고 나와 백희와 놀아주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고소한 햅 굽는 냄새에 찬열과 백희의 고개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돌아갔고 소년이 식탁에 이것저것 올리며 빨리 와서 먹으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찬열이 백희를 안아 들고 자리에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누가 보면 아빠랑 딸인 줄 알겠네."
똑같이 수저를 들며 인사를 하는 찬열과 백희의 모습에 살짝 질투하는 듯 투덜대는 소년을 보며 웃은 찬열이 젓가락질이 서툴러 햄을 자꾸 놓치는 백희의 밥 위에 햄을 올려주며 말했다.
"근데 백희 아빠는 이름이 어떻게 돼?"
"변백현"
"변백현..나는 박찬열"
"안 물어봤는데."
"거참 정 없게 자꾸 그럴꺼야?"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얼른 밥이나 먹고 가."
"너무하네 진짜..."
입을 삐죽이며 일부러 느리게 밥을 먹는 찬열을 보며 백현은 저도 모르게 작게 미소가 지어졌다. 진짜 애도 아니고.
"나도 백희같은 애 하나 키우면서 살고싶다- 집에 혼자 있으면 진짜 심심한데."
"말이야 쉽지.. 한번 내 입장되봐라. 가끔 막막할 때도 많고.."
"하긴. 요새 애한테 들어가는 돈이 장난이 아니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입을 오물거리며 밥을 먹는 백희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주고는 말없이 밥을 먹던 찬열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백현을 쳐다보았다.
"내가 퇴근하면서 백희 데려올까?"
"뭐?"
"오늘 같이 일 허겁지겁 끝내고 오는 날 많은 것 같은데 백희 내가 퇴근하면서 집에 데려오는거 어떠냐고."
"나야 뭐 편하지만..."
"앗싸! 백희야 이제부터 오빠가 백희 유치원 데리러 간다? 좋지?"
말끝을 흐리는 백현이를 보던 찬열이 자기 멋대로 해석해서 좋아하는 것을 보며 백현은 진짜 믿어도 되는 건가 싶어 잠시 고민했다.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은 외모로 판단하면 안 되니까.. 하지만 백희를 보며 웃는 찬열의 모습에 어쩐지 믿음이 가는 백현이었다.
"그럼 백희 집에 데려와서 좀 기다리고 있어."
"왜?"
"왜긴. 저녁 같이 먹으려고 그러지."
"진짜?"
"집까지 데려다 주는데 그 정도도 못해줄까봐.. 나 그렇게 속 좁은 사람 아니거든?"
"앗싸! 맨날 혼자 인스턴트로 때우는 것도 질렸는데 잘됐다!"
"집에서 밥 안 해먹어?"
"요리같은거 잘 못하니까."
싱글벙글 웃으며 저를 쳐다보는 찬열의 모습에 괜히 기분이 묘해져 백현은 애꿎은 밥만 이리저리 뒤적거렸다.
"그럼."
"....."
"앞으로 잘 부탁해 백희 아빠."
"...나야 말로."
작가의 말 | ||
항상 어려운 글 마무리.....스트레스.....ㅠㅠ... 이번 글은 제가 여태 쓴 글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글이에요!!! 한시간 정도 후에 들어와보니 상상도 못했는데 쪽지가 많이 와있어서 진짜 감격했어요 ㅠㅠ 원래 상중하로 쓰려고 했지만 뒤에 내용 구성이 아직 다 안되서...아마 쓰게된다면 번외로 쓸 것 같아요!
신알신 해주신 분들, 댓글 써주시는 분들, 제 글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정말 하트 합니다 ㅠㅠ 오타지적과 피드백은 항상 감사히 받고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