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ink - 사랑동화
연습실 안.
나와 멤버들은 동그랗게 모여 앉아서 빚쟁이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종이들을 하나씩 접었다.
학연이형은 회사의 허락을 받아내기 위해 별빛들을 위한 이벤트를 하겠다는 뻥을 쳤고
우리가 직접 뽑을거니까 그 종이도 직접 만들겠다 부득부득 우겨서 우리가 종이까지 완벽하게 준비를 하게 됐다.
새벽에 숙소 앞에 있는 피씨방에 가서 빚쟁이의 이름과 주소가 빼곡히 채워진 종이들을 뽑아오고
숙소로 돌아와 다같이 자르고 접어서 마침내 통 안에 모두 넣은 순간, 기분이 벅차올랐다.
빚쟁아, 조금만 기다려.
그 날, 원식이와 함께 온 숙소를 뒤져 찾아낸 편지는
아직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하고 다시 접어 일기장 사이에 끼워놓았다.
일기장 사이에 끼워놓았다가 다시 꺼내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이렇게라도 가까이 있고 싶은데
도저히, 빚쟁이에게 미안해서 편지를 읽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나에 대한 마음으로 가득할 그 편지를 읽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조금만. 아주 조금만 나중에.
용기가 생길 때, 그 때 다시 꺼내볼거다.
지금 내 눈 앞에는 언제나와 같은 카메라가 있었고
멤버들은 한 줄로 나란히 서서 저마다 한마디씩 말을 하고 있다.
나는 본래 그림 역할에 맞게 꾸욱 다물고 서있었는데
어느때보다도 내 역할이 그림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짜자잔~ 별빛님들@,@ 오늘은 저희가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했어요!@,@ 어떤 이벤트죠?"
"네! 바로 저희 빅스가!ㅇㄴㅇ! 직접! 별빛분들을 찾아가는 이벤트인데요! 홍빈씨!"
멘트를 마친 재환이형이 옆에 서있던 내 허리를 쿡쿡 찔렀다.
눈을 치켜뜨며 재환이형과 학연이형을 바라보니 얼른 말하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 나 그림홍빈인데....
"여기 통 안에 별빛 여러분들의 이름이 모~두! 들어가있어요! 여기서 저희가 딱! 한분을 뽑아서 직접 갈 예정인데요 ㅇ_ㅇ"
"그럼 우이 효기가 한번! 뽑아볼까요?! @,@"
"아... 저는 너무 떨려서.. 그럼 레오형이...? ㅡwㅡ"
".....ㅇㅅㅇ"
"아 그러면 또 와~ 막내를 위해서 라비형이...?ㅡwㅡ"
내 말이 끝나자마자 몸을 휙 돌린 학연이형은 상혁이를 끌어당기며 뽑아보라고 말했다.
내 할일은 끝난건가 싶어 어느때처럼 멍하니 카메라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혁이에게 갔던 제안은 택운이형을 지나 원식이에게 도착했다.
"그럼 이거는! 우리 그림 홍빈이가! 오늘 모처럼 이렇게 말하는데 홍빈이가 뽑는걸로~´Д`"
상혁이를 바라보고 있던 원식이는 몸을 돌려 나를 가리키며 나에게 뽑으라고 했다.
의아한 표정으로 원식이를 바라보자 원식이는 뭐하냐면서 나를 툭툭 쳤다.
"아, 그럼 제가 뽑겠습니다."
나는 검은색 통 안에 손을 넣고 휘휘 적는 척을 했다.
어차피 뭘 뽑아도 빚쟁이일텐데.
조심스럽게 종이 한장을 꺼내 심호흡을 했다.
멤버들도 궁금하고 긴장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분위기를 조성했고
종이를 조심스럽게 펼쳐서 카메라 렌즈에 가져다 대었다.
거기서부터는 일이 일사천리였다.
다행히 공식 팬클럽에 가입해놓은 빚쟁이 덕분에 빚쟁이의 전화번호 역시 수중에 들어와있는 상태였고
우리는 그저 빚쟁이에 이벤트에 당첨이 되어 우연하게 전화를 건 척, 연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이러라고 받았던 연기 수업이 아닐텐데...
한참동안이나 신호가 갔지만 빚쟁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왜 안받지?"
"다시 걸어봐, 다시다시."
별빛들을 위한 이벤트라는 그럴싸한 포장 덕택에 우리가 직접 빚쟁이에게 전화를 걸고 있지만
몇번이나 걸어도 신호 건너편에서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렇게 몇번이나 더 걸었을까,
"여보세요?"
마침내 수화기 건너편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근데 이거 빚쟁이 목소리가 아닌데.
네, 알겠습니다. 그럼 그리로 찾아갈게요.
학연이형이 대신한 마지막 대답을 마지막으로 전화가 끊겼고
숙소 안에서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그럼, 병원으로 가면 되는거죠. 형?"
조심스럽게 병실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침대 옆에 앉아 계시던 한 분이 일어나 우리를 맞이하셨다.
우리를 반겨주시는 저 분은 우리의 전화를 대신 받으셨던 빚쟁이 어머님이고
그리고, 저기에 누워있는 사람은.
빚쟁이었다.
빚쟁이에게 너무나도 미안하고 미안해서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대신해서
빚쟁이를 간호하고, 청소도 하고. 하는 김에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나를 보시면서 건실한 청년이라고. 왜 우리 딸이 좋아했는지 알겠다면서 웃으셨지만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저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드리는 것 말고는 할 수가 없었다.
가끔은 빚쟁이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앉아서 멍하니 빚쟁이를 바라보다가, 손도 잡아보다가.
그러다가 눈물도 나고는 했다.
하루에도 수백번씩 그냥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지금 거짓으로 위장하여 가수 생활을 하는게 더 중요한게 아니라고.
이 끔찍한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그런 생각이 하루에도 수백번씩 들었지만
이건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가 이 병실에 들어설 때만 해도 차가운 공기만 이 가득했던 세상에
조금씩 따뜻한 봄기운이 스며들고 있었다.
어느때처럼 빚쟁이가 누워있는 병실로 들어섰다.
빚쟁이는 여전히 죽은 듯이 잠들어 있었고 나는 그 옆의 의자에 조심스레 앉았다.
매일같이 드나들다 보니 이제 병원 내에서도 우리에 대한 관심은 점차 줄어들었다.
우리는 병원의 일상에 스며들었고, 빚쟁이 어머님도 우리를 믿고 맡기시기 시작했다.
과연 빚쟁이가 깨어날 수는 있는 걸까.
왜 못깨어나고 있는 걸까.
우리가 함께 했던 그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그 꿈은 행복한 꿈이었던 걸까.
다른 멤버들보다 좀 더 서둘러 병원을 온 탓에
이른 아침의 병실은 조용하기만 했고 이따금씩 빚쟁이의 휴대전화가 울리곤 했다.
여즉 깨어나지 못하고 병실에 누워있게 된 탓에 빚쟁이는 불가피하게 이번 학기를 휴학하게 되었고
그 소식을 듣게 된 사람들이 하나 둘씩 연락을 하게 된 탓이다.
보통은 카톡이나 문자 알림만 울리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달랐다.
"Yeah she is a killer~"
휴대전화는 우리의 노래를 우렁차게 불러대기 시작했다.
내 전화가 아니여서 그냥 가만히 놔두었더니 한참을 울리다가 저절로 그쳤다.
이제 됐겠지, 하고 고개를 돌리는데 다시 노래가 울리기 시작했다.
세번쯤 그 일이 반복되자니 시끄러워서 견딜수가 없었다.
마침내 받아든 전화 건너편에서는 또랑또랑한 목소리의 여자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뭐야, 전화 받네? 여보세요? 빚쟁아. 깨어난거야? 아, 어머님이신가? 여보세요?"
"빚쟁이 휴대전화입니다."
"어? 누구세요? 남친인가?"
"어, 음. 빚쟁이 간호하러 온 사람인데요."
"와, 남자간호사에요? 혹시 빚쟁이 깨어났어요?"
"아, 그건 아닌데..."
"아 그렇구나! 그럼 수고하세요!"
폭풍과 같았던 전화가 끝나고 홍빈은 멍하니 전화가 꺼진 휴대전화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받자마자 시작한 질문의 폭격부터, 남친? 남친이 있나? 남자간호사가 아니라는 걸 말하고
빚쟁이가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는 걸 말하려 했지만 아무래도 여자는 뒤의 말만 그대로 이해한건지
자기 식대로 이해하고 전화를 툭 끊어버렸다. 뭐야, 이 여자.
전화가 끊겨 화면이 꺼진 휴대전화를 살짝 들어보니 다시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잠금 패턴도 없는지 하얗게 빛이 나는 휴대전화 화면에 우리 빅스의 얼굴들이 떡하니 보인다.
"얜 뭐야, 일코인가? 그것도 안하나?"
원래 볼 의도가 없었지만 화면이 저절로 켜져서 그런거라며 변명아닌 변명을 속으로 마친 나는
손가락을 넘겨 화면들을 확인해보았다.
"원식이, 원식이, 원식이. 상혁이, 재환이형, 원식이, 원식이. 학연이형. 택운이형. 상혁이. 나. 원식이
뭐야 이거 원식이 사진이 왜 이렇게 많어?"
괜히 얄미워서 얌전히 누워 자고 있는 빚쟁이를 째려보다가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인가싶어 허탈하게 웃었다.
남의 폰 허락도 없이 만지는 건 예의가 아니다 싶어 조심히 탁자 위에 휴대전화를 올려놓았다.
그래도 힐끔힐끔 눈이 가는 건 어쩔수가 없어서 다시 조심스레 휴대전화를 집었다.
아무도 없는 병실을 괜히 두리번두리번 돌아보다가 메뉴를 열어서 갤러리로 들어갔다.
아니, 무슨 여자애가 잠금도 안해놔ㅡㅡ;;; 너무나 쉽게 열리는 갤러리에 조금 당황했지만
손가락으로 화면을 하나씩 넘기면서 사진들을 구경했다.
"빚쟁이 사진도 있고 우리 사진도 있고."
폴더를 하나하나 클릭하면서 사진을 넘기던 나는 주머니에서 빚쟁이의 편지를 꺼내 읽을 수 밖에 없었다.
폴더명.
언제나 웃는 얼굴로 노래해줘요.
사진.
[암호닉]
코쟈니님
문과생님
치즈볶이님
하얀콩님
레오눈두덩님
아영님
망고님
라온하제님
큰코님
니나노님
찌꾸님
2721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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