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청난 이웃
by. Aby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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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내 친구 김명수
남우현 저 싸가지 없는 자식. 어째 아까 잘해준다 싶었어. 문을 쾅 닫고 사라지는 남우현을 보며 혀를 쯧쯧 차다가 다시 내 앞에 서 있는 멀끔한 페이스의 남자에게 집중했다.
"언제 귀국했어?" "오늘. 두 시간 전에 한국 왔어." "집에는 들렀다 온 거야?" "어. 너 보러 간다고 말씀 드리고 나왔지." "그랬어? 가족들이랑 시간 좀 보내다 오지." "안 그래도 어머니가 너 보고 싶으시다고 집에 데려오래. 저녁 먹자고." "어머니가? 우와. 나 너네 어머니 요리 진짜 오랜만에 먹어. 벌써부터 배고프다."
명수 어머니 요리 진짜 잘하시는데. 식당 하셔도 될 만큼 실력이 수준급이시다. 학교 다닐 땐 명수 집 가서 밥도 여러 번 얻어먹고 그랬는데. 명수랑은 중학교 때부터 베스트 프렌드였다. 언제부터 친해졌는지도 기억 안 날 정도로 오랫동안 친구였다. 나는 시끄럽고 오지랖 넓고 아무한테나 정을 잘 퍼주는 그런 성격인 반면에 명수는 조용하고 자기 일 아니면 관심도 없고 쿨가이 뭐 그런 정 반대의 성격인데도 우리는 잘 맞았다. 반대여서 잘 맞았다고나 할까. 사실 명수는 마음 터놓은 상대한테는 한도 끝도 없이 잘한다. 나한테 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난 명수한테 받은 걸 돌려주려면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평생 명수를 업고 다녀도 모자랄 거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정나미 없이 냉랭하게 굴지만 나한테는 다정한 명수. 내가 명수의 친구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참 여러 번 했다. 명수네 어머니도 겉으로는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성격인 명수보다는 어머니한테 더 살갑게 대하고 애교도 부리는 나를 더 예뻐하셨다. 우리 집이 망했을 때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명수네 부모님이 나를 많이 돌봐주셔서 그나마 견딜 수 있었다.
"너 저녁 또 안 먹었지? 내가 뭐 좀 사왔으니까 일단 먹자. 들어가자."
그러고 보니 명수의 손에 검정색 비닐봉지가 들려 있다. 역시, 김명수. 내 베프야. 혼자 살다보니 끼니를 잘 거르는 습관이 있는 나를 잘 아는 명수는 끼니때면 날 찾아내서 밥을 먹이려 혈안이 되어 있곤 했다. 2년 전에 유학을 떠날 때도 자기보다 내 걱정을 더 했을 정도였다. 그 새 잊지도 않고 나를 챙기는 명수가 고맙게 느껴졌다.
"그런데, 저 앞집 남자. 누구야?"
떡볶이를 먹다 말고 명수가 물었다. 아, 맞다. 남우현. 쟤를 자꾸 까먹네.
"어...혹시 남우현 알아?" "남우현?" "응. 그, 있잖아. 연기도 하고, 드라마도 나오고, 영화도 찍고 하는 사람."
쟤 직업이 뭐더라. 예전에는 가수였는데, 지금은 정확하게 뭘 하고 있지? 드라마를 찍나? 영화를 찍나? 아니면 CF만 주구장창 찍던가?
"배우?" "어! 맞어!"
역시 명수는 브레인이다. 내가 하고 싶던 말을 콕 집어서 말해 준다.
"남우현? 인피니트였던 애?" "맞아, 맞아! 와, 너 어떻게 알아? 너 연예인 별로 관심 없잖아." "어쩐지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라 했어. 랭귀지 스쿨 다니던 한인 여자애 하나가 남우현 광팬이었거든. 어찌나 빠순이 티 팍팍 내던지 내가 다 창피하더라." "남우현 팬도 있나보네. 하긴, 연예인인데." "근데 남우현은 왜 여기서 살아? 자기 집이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 구나. 하긴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할 거야. 남우현이 이런 후진 곳에 산다는 게 거짓말 같겠지. 나도 그랬다니까.
"몰라. 뭐 서민 체험이래나 뭐래나. 개소리하더라." "서민 체험?"
명수도 픽 웃는다. 어이없지? 나도 그랬어. 쟤 그냥 무시하고, 이거나 먹자.
"근데 남우현 우리보다 한 살 많지 않아?" "어... 그러고 보니까 그러네. 나 연습생 할 때도 쟤한테 선배라고 불렀던 거 같다." "연습생? 아, 너 남우현 소속사에서 연습했었지." "응. 남우현 많이 컸지. 그땐 듣보였는데."
과거를 생각하니 또 속이 쓰리다. 나도 쟤처럼 성공할 수 있었는데. 왜 남우현은 나타나서 자꾸만 괴롭게 내 인생을 돌아보고 비교하게 만드는지. 난 행복 지수가 높은 사람이라 작은 것에도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고! 입맛이 뚝 떨어져서 젓가락을 놓았다. 하지만 이미 다 먹은 뒤다. 내가 배를 통통 두드리며 뒤로 벌러덩 눕자 명수는 먹고 바로 누우면 안 된다고 하면서 나를 일으켜 벽에 기대 앉혀 놓는다.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기 싫어하는 나를 위해서 TV를 틀어주고 우리가 먹은 걸 주섬주섬 치운다. 짜식. 내가 친구 하나는 진짜 잘 뒀어. 만족스럽다. 배가 부르고 명수 만난 게 기분이 좋아져서, 잠이 솔솔 온다.
"...열아, 일어나." "......." "성열아. 일어나봐." "으으....왜....?" "우리 집 가야지. 어머니가 너 언제 데려 오냐고 성화야. 이제 그만 자고 일어나자."
잠을 얼마나 잤는지 눈 주위가 퉁퉁 부어서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명수가 눈을 벅벅 비비는 나를 보면서 웃었다. 내가 그렇게 웃기게 생겼나. 그래, 너 잘생겼다.
"가서 세수하고 와." "으응."
찬물로 세수를 하고 나니 정신이 좀 든다. 아, 얼굴 부은 거 봐. 먹고 바로 자서 아주 달덩이가 됐네.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면서 밖으로 나오니 명수가 벌써 달이 떴네? 이러면서 장난을 친다. 이씨, 이 자식이. 수건으로 명수를 퍽퍽 때리자 명수가 아픈 척을 한다. 귀여운 놈. 옷을 갈아입고 명수와 함께 명수의 집으로 갔다.
"어머니!!! 안녕하셨어요?" "이게 누구야. 우리 성열이 아니야?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어. 보고 싶었잖니."
명수 어머니와 나는 친 모자 지간처럼 꼭 껴안았다. 오랜만이다. 엄마 품 같은, 아니 정말 어머니의 품. 다정하고 포근한 느낌이 좋아서 계속 그러고 서 있었는데 정말 친 자식인 김명수의 뚱한 얼굴이 보였다. 저 재미없는 자식. 어머니한테 좀 잘하라니까.
"으아, 어머니. 저 배고파요."
명수의 눈빛을 견디다 못한 내가 슬쩍 떨어지면서 배고프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밥 다 차려놨다고 하시면서 우리를 주방으로 이끄셨다. 와, 이 푸짐한 밥상. 진짜진짜 먹고 싶었다.
"지금 먹어두 돼요?" "그럼. 우리 성열이 배고플 텐데, 어서 먹어. 많이 먹으렴."
숨도 안 쉬고 한동안 먹기만 한 것 같다. 며칠은 굶은 것처럼 식욕이 당겼다. 명수 어머니 밥상이 그리웠던 나날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와, 이거 진짜 맛있어요. 그동안 더 솜씨가 느신 것 같아요." "그래? 맛있다니 다행이다. 그러니까 아줌마가 집 주소 좀 적어놓고 가라니까. 반찬도 부실하고 그럴 거 같아서 내가 얼마나 마음이 쓰였는지 아니? 명수도 안 가르쳐 주고." "헤헤. 염치가 있죠. 어떻게 그래요." "우리 사이에 무슨 염치를 따져. 안 그래도 돼. 그리고 이따가 갈 때 아줌마가 반찬 싸줄 테니까 이번엔 꼭 들고 가구. 이번에도 안 가져가면 진짜 아줌마가 이놈, 할거야?"
저렇게 다정한 어머니한테서 어떻게 김명수 같이 무뚝뚝한 놈이 나왔지? 미스테리야 진짜. 명수 어머니가 밥을 더 퍼다 주시겠다며 내 밥그릇을 들고 가셨다. 명수는 아직 밥 그릇 절반도 안 비웠는데, 난 다 먹어 가고. 뭐야. 나 돼지 같잖아. 원래 김명수가 내 두 배는 먹는데. 진짜 배고팠나부다. 괜히 멋쩍어서 반찬 몇 개를 집어 먹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어? 남우현이잖아?
"얘가 진짜 왜 이러나 몰라." "남우현이야?" "어."
내가 명수 집에 간 걸 왜 질투해, 자기가. 명수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 떼어놓고 우리 둘만 너네 집 왔다고 짜증내잖아, 너랑 친하지도 않은 게. 아까도 너 막 째려보고 그랬지? 왜 이러지 진짜? 미친 건가?" "...난 좀 알 것 같은데." "어?" "성열아, 밥 더 가지고 왔다. 많이 먹어."
뭘 알 것 같다고? 명수가 중얼거린 말을 채 물어보기도 전에 명수 어머니가 밥을 더 갖다 주셨다. 아ㅠㅠ감사해요 밥 먹느라 명수가 무슨 말을 했는지 더 생각볼 것도 없이 식사에 집중했다. 근데 남우현은 진짜 왜 저럴까.
띵동. 조용하다. 반응이 없다. 쳐 자나? 나갔나? 내가 먹을 거 싸온다고 집에 처박혀 있으랬는데. 나가진 않았겠지. 띵동 띵동. 자나보다. 그냥 돌아가려다가 남우현이 매번 잠자는 나를 깨운답시고 초인종 어택을 한 게 기억이 나서 마구마구마구 초인종을 눌렀다. 역시나 남우현은 퍼 자고 있었는지 부스스한 차림으로 기어 나왔다. 남우현은 여태 보지 못했던 멍청한 모습을 한 채로 내가 내민 종이봉투를 들고 가만히 서 있는다. 잠이 덜 깼네. 비몽사몽 하나부다. 아, 만족스러워. 어때, 니가 당해보니까. 그렇게 꿀잠 잘 때 억지로 깨워지는 게 어떤 기분인지 이제 알겠지. 몇 마디 얘기를 좀 하고 알바를 하러 갔다. 죽여버린다고 말한 건 좀 심했나? 하지만 여태 내가 당한 걸 생각하면 더 심한 욕지거리를 했어도 정당방위다. 아 그런데... 남우현 진짜 나보다 한 살 많은 것 같은데. 계속 그냥 말 놓고 야야 거리고 그랬는데. 왜 화를 안 내지? 연습생 때는 꼬박꼬박 선배 소리 들은 주제에. 아, 몰라. 남우현이 별 말 안 하는데 뭐. 앞으로도 그냥 남우현 남우현 거려야겠다. 아무튼 오늘 복수해서 기분 째짐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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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 빨리왔졍ㅋㅋ아닌가요...ㅠ.......아니면 말구영... 내가 예상 보다 좀 더 늦게 온 이유는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대들ㅋㅋㅋㅋㅋㅋㅋ내가 막 불륜 막장극 단편 쓰면 읽을래영? 난 멘탈이 더러운지ㅋㅋㅋㅋ이런 거만 생각남ㅋㅋㅋ 근데 이건 오늘 영화보고 갑자기 떠오른 거긴 한뎈ㅋㅋㅋㅋ절반 썼어욬ㅋㅋㅋ 단편치고는 길어져서ㅋㅋㅋㅋㅋㅋㅋ한 일주일은 걸릴듯ㅋㅋㅋㅋㅋㅋ 어때요ㅋㅋㅋㅋㅋ커플링은.........일단 수열이긴 한데... 맘 바뀌면 또 바꾸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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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