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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전정국] 그대야 안녕 9화 | 인스티즈 

 

 

BGM - 우연히 마주친 계절 (스윗사운즈) 


 


 


 


 


 


 


 


 


 


 

9화 

: 구름 


 


 


 


 


 


 


 


 


 


 

 어제 저녁 교문에서 불쑥 나타나 내게 물음표를 던졌을 때가, 학원 차가 오기까지 아직 한참 이른 시각이었음에 한 번. 


 

 '콩-' 


 

 옅은 구름 위를 걷듯 한없이 조심스러웠던 너의 말투와 도르륵 굴러가던 큰 눈동자에 두 번. 


 

 '콩-' 


 

 오랜만에 같이 탄 학원 차에서, 머리가 어지러울 만큼 내게 진하게 다가오던 은은한 네 향기에 세 번. 


 

 '콩-' 


 

 그리고 며칠 전. 내 풀이를 조금 지우고 다시 풀어주느라, 굳이 안 더럽혀도 됐을 새끼손가락에 남게 된 거무죽죽한 보드 마카 자국까지. 


 

 '콩-' 


 

 말 튼 지 얼마 되지 않은 너와의 역사를 되짚어보다가, 뒤죽박죽 맘대로 섞여버리는 설레는 기억들에 결국 바람 빠지는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내 앞에서 짜장밥을 입에 넣던 나영이가 기면한 것 같은 나를 보고 흠칫 놀라 무언가 말하려는 듯하다가 됐다, 하고는 금방 관둬버린다. 날이 갈수록 내 상태가 이상해지는 게 이제 조금씩 적응이 되려는 모양이었다. 앞에 있는 사람이 내게 어떤 망측한 눈빛을 보내든 말든, 간질거리는 맘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 기억들을 상기시키며 콩자반을 부질없이 톡톡 괴롭히니 콩, 하고 앉으려던 게 도르르 굴러 밥 칸으로 안착한다. 너도 참 누구처럼 동글동글하게 생겼구나. 이쁘기도 해라. 볶음밥 위를 귀엽게 장식하는 완두콩도 아니고 콩자반의 쭈글쭈글한 검은콩을 보고서 한다는 말이 괴상하기 짝이 없지만 지금 내 눈에는 똥도 카레로 보일 지경이니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어제 그 역사적인 일이 있고 나서, 우리 아파트에서 어떤 여고생이 실성한 듯 새벽 내내 소리 없이 웃다가 결국 뜬눈으로 등교했다던데.. 그게 나다. 어제부로 날개 잃은 천사가 확실해진 정국이가 어젯밤 내 잠자리까지 날아와 정신없이 날 온통 흩뜨려놓는 게 아니던가.​ 내가 네 날개를 숨겨둔 것도 아닌데 날 정신없이 들춰대는 통에 괜히 조마조마해져 이불 안으로 몸을 꽁꽁 감추니, 오기라도 생긴 듯 넌 날 더 괴롭혀왔었다. 처음엔 그 간지럼이 달가워 콧구멍으로 김을 내뿜으며 혼자 베개에 얼굴을 묻고 웃음을 참았고, 갈수록 눈꺼풀은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하며 온몸에 힘이 빠졌지만 네 생각에 빠져있던 정신은 이상하게 점점 멀쩡해지는 탓에 곤란한 새벽이었다. 게다가 오늘따라 유독 인색했던 노란 보름달은 내가 슬그머니 이불 안으로 네 생각을 끌고 들어가기가 무섭게 해를 불러왔기 때문에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침대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심심찮게 일어나는 그런 날 중 하루인 오늘, 익숙해질 법한 퀭한 눈을 하고 상쾌한 걸음으로 학교로 향했다. 이젠 너한테 내 자는 시간을 뺏기는 게 적응이 되는 것 같기도 했지만, 물에 젖은 듯 무거운 몸을 생각해보면 역시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것 같다. 텅 비어있던 새벽을 떠올리다 보니 어느덧 침침해진 눈 때문에 얼른 밥 위에 누워있는 콩을 숟가락으로 펐다. 오늘은 양치 안 하고 얼른 가서 눈 좀 붙여야겠다. 


 


 


 


 


 


 


 


 


 


 

 다가오는 중간고사 기간에 ‘학생 출입 금지’라는 종이가 전교 교무실 문에 붙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복잡해지는 내 머릿속도 차근차근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30분을 푹 자고 6교시에 일어나 비몽사몽 흐릿하게 수업을 들으며 몰래 오답노트를 완성했고, 나영이한테 빌린 경제 필기를 옮겨 적었다. 다음부턴 안 빌려줄 거라며 웃으며 꿀밤을 드는 애한테 가방에 있는 사탕을 물려주니 헤헤 하고 시끌벅적한 복도로 사라지는데, 몇 초 안 되어 다시 나타난다. 


 

 "야. 그러고 보니까 우리 창의 활동 어디 갈지 안 정했잖아." 

 "아, 맞다." 


 

 7교시에 창의 활동 부서를 정한다고 했던 날이 오늘이구나. 아침에 녹초처럼 누워있는 내 옆에서 뭐 할까 쫑알쫑알 얘기하던 나영이가 그제야 생각이 나, 급하게 뻐근한 발목을 이끌고 칠판 옆 게시판으로 향했다. 아침에 얘기를 꺼낸 후로 나영이도 새까맣게 잊은 모양인지 헐레벌떡 내 옆으로 다가와 작은 글씨로 빽빽하게 쓰여있는 부서와 그 옆으로 설명되어있는 글을 읽어본다. 독서토론, 영화토론, 농구, 사물놀이, 신문, 경제, 영어회화, 바느질.. 음.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어 곤란하게 눈길을 돌리다 나영이와 눈이 마주쳤는데 아무래도 나와 같은 생각인 모양이다. 금요일 7교시마다 꾸준하게 돌아오는 활동이니 저번처럼 대충 골랐다가는 멍하니 꽹과리만 치며 시간을 보낼 게 분명했기에 이번엔 생각이란 걸 해보고 정해야 하는데. 그나마 영화 토론이 제일 눈에 들어오지만 영화는 좋고 토론은 싫어서 미련없이 고개를 돌렸다. 더군다나 지금은 토론 동아리에 가입 신청도 해놓은 상태고, 만약에 창의 활동에 이어 동아리도 들어가게 된다면 내 인생에 다신 없을 토론의 시대가 펼쳐질 판국이 아닌가. 상상만 해도 진절머리가 나서 약한 도리질을 하고 떨쳐버리니 문득 비집고 들어오는 정국이 생각에 발에 시동이 걸렸다. 정국이는 뭐 할까. 네가 들어가는 데면 군말 없이 따라 들어가서 뭐든 잘 할 수 있을 텐데. 아직 쉬는 시간이 몇 분 남아있어 가서 물어볼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그러기엔 너무 뜬금없는 상황이 연출될 것 같아 안타깝지만 다음을 기약하기로 한다. 서로 마땅히 부르는 말 없이 짧은 대화만 오갔을 뿐이니 아직 섣불리 친한 척할 사이가 아니기도 했다. 번뜩 들었다가 풀풀 연기처럼 달아나는 생각에 아쉬움을 삼키니, 기다렸다는 듯이 쉬는 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린다. 오늘따라 호석이의 귓바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 


 


 


 


 


 


 


 


 


 

 아침까지만 해도 솜으로 하늘을 꽉 채워 누른 듯 구름이 많이 꼈었는데. 어두워진 구름이 무게를 덜어낼 줄 알고 챙겨왔던 파란 우산이 심심해보여 괜히 이리저리 살폈다. 얼마 전에 새로 산 우산이라 아직 몇 번 못 쓴 게 은근히 아쉬웠지만 새삼 깨끗한 상태인 게 뿌듯해 움직여 돌려보려다가 그만 우산을 떨어뜨렸다. 적당히 붐비는 버스에서 탕탕, 생각보다 큰 소리가 나니 모든 시선이 이쪽을 돌아본다. 순간 민망해져 저기 떨어진 우산을 찾아와 다시 자리에 앉으니, 못 봤던 우산 손잡이 위쪽 부분이 눈에 띈다. 


 

 '김태형' 


 

 귀엽고 또박또박한 글씨체로 써있는 '김태형'이라는 세 글자에 순간 사고회로가 정지됐다. 뭐지. 김태형? 내 우산인데 왜 김태형이라고.. 아, 설마 바뀐 건가. 근데 이건 틀림없이 내 건데? 누구한테 맞은 듯 순식간에 멍해진 정신에 우산을 다시 부산스럽게 살펴보니 세 글자만 빼면 정말 내 것이었다. 혼란스러워지는 와중에 버스가 학원에 다 와가고 하차 벨을 누르니 이번 신호만 지나면 내릴 정류장이었다. 언제 바뀐 걸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며 슬금슬금 뒷문 기둥을 잡고 서니 문득 떠오르는 게 저번 주 주말에 갔던 독서실이다. 그때 그 비 오던 날, 휴게실 창문을 열어놓고 책을 보던 태형이가 기억이 난다. 그때 아마 어디 갈 데 있다고 나보다 먼저 퇴실했을 텐데 그렇다면 태형이가 모르고 똑같이 생긴 내 우산을 들고 간 건가. 깊어지는 생각이 해답에 다다랐을 때 정차한 버스의 문이 열리고 천천히 발을 내딛었다. 근데 만약에 태형이한테 내 우산이 없으면 어떡하지. 똑같이 생긴 우산이 세 개였다면? 아님 내 우산은 다른 사람이 훔쳐간 거였다면? 이런저런 생각에 조금씩 초조해지는 걸음으로 학원이 있는 상가 건물에 들어섰을까, 저 뒤에서 이상하게 많이 들어본 듯한 웃음 소리가 들린다. 꺄르르 웃으며 크게 리액션해주는 호석이의 웃음 소리가 확실한 것 같아, 불안한 맘을 뒤로 하고 반가움에 소리의 근원을 찾아 그쪽을 돌아보니, 마침 모퉁이를 돌아 호석이가 모습을 나타낸다. 


 

 "어? 깨빵?" 


 

 그리고 태형이도 함께. 


 

 "엇?" 


 

 모습을 드러낸 키 큰 애들 두 명이 나를 발견하더니 눈이 커지고 그 중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 명의 손에는 누구처럼 파란 우산이 들려있다. 파란 우산이 보이자마자 나도 모르게 태형이의 눈을 반갑게 마주치니 서로 무언의 눈빛이 통한다. 그 순간 내 얼굴의 모든 구멍이 커지며 동시에 웃음이 터지고 그 옆의 애는 어리둥절하다. 둘이 내 쪽으로 오며 가까워지고 다가오는 태형이의 코 찡긋하고 웃는 얼굴은 참 맑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상봉하고 나서도 왠지 모르게 어이가 없어 서로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픽픽 흘린다. 


 

 "왜, 왜. 뭐가 웃긴데. 같이 좀 웃자." 


 

 그 옆에서 멀뚱멀뚱 우리를 지켜보던 호석이가 궁금한 듯 이유를 묻는다. 난 그제야 웃던 얼굴을 추스르고 정신을 차려 우산을 내밀었다. 


 

 "여기 네 꺼." 

 "이거 네 꺼 맞지. 이름 안 써져있는데 네 꺼 맞지?" 

 "응, 맞아. 아~ 말을 하지. 내 꺼가 그렇게 갖고 싶었어?" 

 "네 꺼 새 거던데~ 이참에 그냥 바꿀까?" 

 "시러~ 나도 이제 이름 써놓고 다닐래." 

 "내가 먼저 가져갔던 건데 몰랐어. 히히. 미안." 

 "아냐. 나도 방금 알았는데, 뭐. 난 이름도 안 써놔서 잃어버린 줄 알았어." 


 

 행방을 몰랐다면 그 정처 없는 욕이 고스란히 태형이 것이 됐을 것이 뻔했는데 찾아서 다행인 일이었다. 무사히 내 품으로 돌아온 이름 안 써져있는 파란 우산에 한숨을 돌렸다. 


 

 "아, 둘이 우산 똑같아서 바뀐 거야?" 

 "응응." 


 

 태형이와의 대화를 들으며 가만히 상황파악을 하던 호석이가 입을 떼더니 곧 무언가를 부추기며 진지한 투로 말한다. 


 

 "그래서 누가 잘못한 건데?" 

 "내가. 내가 잘못 가져갔어. 흐힉." 

 "그럼 깨빵이한테 맛있는 거 사줘야겠네." 

 "맞아. 그래야겠다. 맛있는 거 사줄게. 지금 가자." 


 

 아직도 조금 웃음기가 남아있는 얼굴로 태형이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몸의 방향을 돌린다. 그에 내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려고 하니 나보다 호석이가 먼저 선수를 친다. 시끄러운 우리 말소리 때문에 천장이 높은 상가 복도가 크게 울리고 그 탓에 귀가 멍멍해진다. 


 

 "그렇지. 그러고 판사님도 한 몫 했으니까 챙기고." 

 "숟가락 안 받는다." 

 "아, 왜~ 중재가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건지 모르지? 아주 큰 거 놓치고 사네, 얘가. 큰일나겠어~. 어?" 


 

 도대체 무슨 중재를 해준 건지 모르겠는 호석이가 지금까지 한껏 진지한 말투를 쓴 이유가 수긍이 가기 시작했다. 경건한 분위기 속에 자기도 자연스럽게 끼어들려고 깐 밑밥이었다. 소소하게 묻어가려는 게 새삼 귀엽게 느껴져 작은 웃음을 흘리니, 그걸 또 언제 보고는 방금 동의한 거냐면서 말이 빨라지고 신이 난다. 정신없는 말소리가 양쪽 귀를 오가다가 결국엔 태형이가 모두를 사주는 걸로 결론이 나고 금방 옆에 편의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거절을 하려 해도 호석이와의 투닥거림이 끝나자마자 지체 없이 편의점으로 향하는 태형이 걸음에, 그냥 별말 없이 뒤를 따르기로 했다. 어쩔 수 없이 느리게 따르는 내 발에 맞춰 알게 모르게 천천히 걷는 둘 때문에, 심금을 강타하는 감동을 받아 속으로 주먹을 물었다. 어느덧 편의점 안으로 들어간 셋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아이스크림 냉장고 앞으로 다가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태형아. 넌 스크류바 먹으면 되겠다. 애가 베베 꼬였으니까." 

 "그럼 넌 구구콘 먹어야겠다. 9등급 받아야 되니까." 

 "아, 장난 그렇게 받지 말라고오오. 살벌해, 진짜." 


 

 웃으며 또다시 장난을 시작한 호석이에 툭 던지듯 무서운 말을 뱉은 태형이었다. 그에 인상이 뚱해져서 입을 쭉 내밀고서 태형이 어깨를 살짝 때리는 호석이가 금방 아이스크림 하나를 든다. 


 

 "난 이거." 


 

 그러고서 콘 한 개를 얼굴 옆에 들어보이고 입꼬리를 쭉 당기는데 그 미소가 오래가지 않는다. 비싸. 딴 거. 라는 단호한 두 마디에 군말 없이 내려놓고 열심히 다른 아이스크림을 탐색한다. 금방 맘에 드는 걸 찾은 듯 갑자기 혈색이 좋아짐과 동시에 연두색 아이스크림 포장지가 보인다. 메로나였다. 


 

 "응. 그건 통과." 

 "아싸~." 


 

 통과 받은 아이스크림을 들고 신이 난 얼굴에서 광대가 도드라진다. 볼록 올라온 광대는 호석이가 얼마나 행복한지 알려주는 척도였다. 방긋 고개를 내민 광대가 편의점 조명을 받아 보기 좋게 빛이 나니 새삼 호석이도 웃으면 얼굴이 동그래지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호석이가 방방 가벼운 걸음으로 아이스크림 냉장고 앞에서 비키고, 그 다음으로 내가 아이스크림을 살펴보는데 어느새 저기서 음료수를 하나 고르고 다시 이쪽으로 다가오는 태형이다. 


 

 "먹고 싶은 거 골라. 아무거나!" 

 "응. 고마워."  


 

 맘에 드는 쭈쭈바를 하나 꺼내자 태형이가 내게 미심쩍은 눈빛을 보냈고, 그거면 되겠냐는 물음에 충분하다고 답했다. 잡화 코너에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있는 호석이 손에서 아이스크림을 뺏어 계산을 마친 태형이가 편의점을 빠져나오며 우리에게 건네줬다. 호석이도 나도 고맙다며 받아들고 먹기 시작하는데 오랜만에 먹는 쭈쭈바는 역시 맛있었다. 호석이도 같은 생각인지 맛있게 쫍쫍 먹는 모양새가 꽤나 만족스러워보인다. 태형이는 이온 음료를 콸콸 마시고 감탄사를 크아아, 뱉는데 나까지도 더위가 날아갈 것 같은 소리에 문득 저번에 처음으로 학원에 걸어갈 때가 떠올랐다. 관자놀이가 띵해질 만큼 차가웠던 아이스티 생각에 나도 모르게 옅게 몸을 떠는데, 금방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곧 3층에 내렸다. 둘이 몇 발자국 걷다가 뒤에 날 보고는 아차, 하고 다시 되돌아오는데, 착하고 배려심 가득한 쟤넨 대체 어디서 왔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고 믿음직스러워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걸음을 늦추며 금방 또 투닥대기 시작하는 둘의 얼굴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천진했다. 학원 들어가는 길이 벌써 이정도로 편해진 것엔, 분명 너희 덕이 크다는 생각이 들어 새삼 또 고마워지면서 느린 걸음으로 유리문에 다다르니, 태형이가 달려가 문을 열어 내가 지나가기까지 받쳐준다. 그러면 옆의 호석이는 가만있을 리가 없지. 


 

 "아~! 매너 하면 김태형이지. 그러취~!" 

 "아. 쟤 짜증나니까 빨리 들어와, 깨빵.. 아니.. 그게 아니라."  

 "..깨빵?" 


 

 학원에 자신의 등장을 알리듯 입장하자마자 수선을 떠는 호석이를 보고 태형이가 혀를 내두른다는 것이.. 주구장창 호석이의 입에서만 나올 것 같던 호칭이 태형이에게서도 흘러나와버렸다. 뭔가 배신당한 것 같은 기분에 놀라서 사뭇 험악하게 인상을 쓰고 올려다보니 태형이의 얼굴이 퍽 난감하다. 


 

 "아니. 그. 너. 그.. 뭐야. 찰깨빵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어?" 

 "..찰깨빵?" 

 "응.. 아닌가.. 하하. 안 좋아해, 찰깨빵?" 

 "안 좋아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너까지 그럴 줄.." 

 "봐봐! 좋아하지? 너 그거 나한테 말한 적 있어. 잘 생각해봐." 


 

 천연덕스럽게 상황을 무마해보려 큰 눈으로 내 정신을 쏙 빼놓으며 부축해주다가, 이내 잘 생각해보라며 어깨동무를 한다. 갑자기 다가온 태형이에 내심 놀라 움찔했지만 금세 받아들이고 슬쩍 웃으며 싫은 소리를 했다. 


 

 "거짓말하네~." 

 "..미안. 이제 그렇게 안 부를게." 

 "됐어~ 하도 그렇게 들어서 모르게 튀어나온 걸. 그렇게 불러도 돼. 찰깨빵 좋아하기도 하니까." 


 

 살짝 웃는 낯으로 내 기색을 조심스레 살피던 애의 얼굴이 펴진다. 쿨한 반응에 계속 신경쓰여하던 다소 어두운 낯이 풀리며 다시 흥흥, 하고 걱정 없는 웃음을 되찾는다. 


 

 "..진짜로?" 

 "응. 별 상관없어, 사실." 

 "화난 거 아니지?" 

 "뭐 그런 걸로~." 

 "다행이다. 흐흥." 


 

 호석이만큼이나 단순한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내 말에 금방 분위기가 풀린 태형이가 어깨동무를 풀고 다시 저 앞으로 달려가 활짝 웃으며 이젠 강의실 문도 열어준다. 


 

 "들어가세용, 찰깨." 


 

 쌤이랑 농담 따먹기 하러 교무실로 사라졌는지 모를 호석이는 주위에 보이지 않고 문을 열고 날 기다리고 있는 태형이의 얼굴은 반짝반짝 빛난다. 너도 참 못 말리겠다. 


 


 


 


 


 


 


 


 


 


 

 끝나라. 끝나지 마라. 

 끝나라. 끝나지 마라. 

 이성과 마음이 부딪혀 개싸움을 벌이는 영어 시간. 원래 이 개싸움은 수학 시간에만 한정되어있었지만 점점 난이도가 높아지는 영문법 때문에 영어도 슬슬 이쪽 싸움에 깔짝대기 시작했다. 대각선에 앉아 널 보는 나는 고민에 빠졌다.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하는, 창조의 근원을 찾는 답 없는 질문처럼 뒷자리에서 너를 맘껏 봐야 하는 소중한 시간과 얼른 끝나야 하는 영어 수업이 대치했다. 수학 시간이라면 그럴 때마다 이기는 건 늘 전자여서 끝나는 매순간이 미치도록 아쉬웠지만, 오늘은 어려운 문법 진도를 많이 나간 탓에 오답 노트는 내 뱃살처럼 금세 불어나있어 조금 위험했다. 자칫하면 이젠 영어놈까지 먹혀버려 정국이를 조금이라도 포기하게 될 것 같아, 네 귀를 보며 마음을 다잡으니 수업의 끝을 알리는 한 줄기 빛 같은 종소리가 나온다. 그와 동시에 수업을 마무리하시려는 영어 쌤이 책을 보던 눈을 멈추고, 오답 노트를 해오라는 당부의 말씀을 끝으로 짐을 챙기신다. 수학 오답 노트가 줄어 행복했던 게 엊그제인데, 놀리기라도 하듯 평소보다 몇 개나 더 늘어버린 영어 오답 노트 때문에 고개를 숙였다. 이번 수업 시간에도 남은 건 역시 정국이 귀 뿐이었다. 


 

 "깨빵, 자?" 

 "응.. 아니.." 


 

 이해하려고 열심히 노력은 하는데 머리가 생각처럼 잘 따라주지 않아 몸에 힘이 빠졌다. 탈진해있으니 앞에서 가방을 챙기는 듯한 소리와 함께 내게 가볍게 장난치듯 묻는 호석이 목소리가 들렸다. 눈앞이 깜깜해지자 오늘 잠이 부족한 탓인지 밀려오는 잠에 눈을 감아볼까 했다. 잠깐은 자도 괜찮지 않을까. 


 

 "깨빵, 힘들어?" 

 "응.." 


 

 짐을 챙기는 소리가 점점 줄어들고 애들 몇 명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남자 하나, 여자 둘이겠지.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저 밑에 있는 의식 속으로 풍덩 빠지려고 하는데 앞에서 힘드냐는 한 마디가 머릿속을 파고든다. 어김없는 호석이 목소리였다. 그에 힘없이 대답하니, 잠에서 깨게 해주겠다며 내 손을 이끈다. 졸린 붕어눈을 하고 축 늘어져 있다가 깜짝 놀라 눈이 번쩍 뜨이는데 앞에 있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 


 

 막 가방을 메고 있는 정국이었다. 떨어지는 의식 속에 본 너는 누구보다도 선명했다. 호석이가 이끄는 손목에 가방도 챙기지 못하고, 여전히 다리를 절뚝이며 복도로 나가니 뒤에서 정국이가 느릿하게 따라오는 것 같은 기척이 들린다. 그러다 저 앞에 유리문을 열고 나가려는 갈색 머리 소유자의 뒷모습이 보이는데, 문득 뒤를 돌아 누군가를 찾더니 금방 입꼬리에 웃음이 걸린다. 


 

 "찰깨. 나 간당." 


 

 수업이 끝나서 기분이 좋은 것 같은 태형이가 싱글벙글한 얼굴로 내게 인사를 건네고, 제 할 일을 다 마친 듯 미련 없이 문 밖으로 사라진다. 졸려서 정신이 온전치 못한 탓에 인사도 제대로 못 받았는데, 그 몽롱한 상황에 태형이 손에 들려있던 파란 우산이 이상하게 아른거리고 그 이유를 떠올려보기 시작한다. 버스 타러 갈 때 지팡이 짚듯이 하고 온 우산이 혹시 휜 건 아닐까 하던 우려가 내심 맘에 걸렸던 건지. 아무래도 걱정이 앞섰던 잠재의식인 것 같았다. 나중에 태형이 우산 휘어있으면 바꾸자고 해야지. 


 


 


 


 


 


 


 


 


 


 



 
라잇나잇
일주일 안에 오는 것은 실패하였지만 1주 1편!! 성공했습니다!! 앞으로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안 하겠습니다..😭 다음 주 주말까지 더 알차게 돌아올게여!! 그리고 여러분들 저번 화 독자님들 댓글 제 맘속에 박제 완료했어요💜 천사 같은 댓글 써주신 덕에 더 힘낼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해요💕
6년 전
독자1
헐 ! 아니! 뒤에 이야기가 더 있는게 아니어따...!! 근데 우리 깨빵이가 저렇게 절뚝거리면서 가는데 뒤에서 정국이 따라가는거 너무 심장아픈 일,, 작가님은 진짜 설레는 포인트를 너무너무너무너무 잘 알고 계시는군요.. 오늘은 너무너무 졸려하는 우리 깨빵이에게 힘드냐고 물어본 호석이가 짱인듯합니다 ㅜㅜㅠㅠ!!! 다음편도 기다리고있을게요 ㅎㅎ 항상 설레고 좋은 글 감사해요💜💜💜
6년 전
라잇나잇
항상 매 화마다 리뷰해주셔서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ㅠㅠ 독자님 생각하면 눙물이 주룩주룩 나요 ㅜㅜ 글 잘 보고 계신다고 매번 알려주셔서 마음이 조금은 놓여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독자님♥ 행복한 한가위 보내세요~😍
6년 전
독자2
이거 완전 소설책으로 나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ㅠㅠㅠㅠ
매주 기대돼여 ㅠㅠㅠㅠㅠㅠㅠ

6년 전
라잇나잇
아이쿠 ㅠㅠ 칭찬도 이런 칭찬이 없습니다 ㅜㅜ 과분한 칭찬 정말 감사합니다💘 매주 기대되신다니 글을 올리는 이유가 더 확실해지는 것 같아요!! 더 노력할게요!! 앞으로도 지켜봐주세요!! 독자님 알라뷰~😍
6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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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 [방탄소년단] 경성블루스 五2 11.07 12:07
기타[실패의꼴] 최종 면접에서 탈락하셨습니다 한도윤10.26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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