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엔 이미 놈들이 제 자리를 잡고 앉아, 비어있는 자리가 없는 듯했다. 가늘게 뜬 눈으로 자리를 스캔하던 중,
"홍빈아- 여기 !"
자신의 옆자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살갑게 말을 걸어오는 녀석. 큼지막한 이목구비가 눈에 먼저 눈에 들어온다. 큰 눈망울과 그에 못지않게 하늘로 치솟은 높다란 코, 살짝 두터운 입술. 첫 인상부터가 남다른 놈이었다. 누가봐도 이국적인 얼굴. 그를 처음 보았을때, 혼혈이 아닌가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놈들이 있었던지, 제게 조금 비틀린 시비를 걸어오는 놈들에게 이재환은 '토종한국인이다. 쨔샤' 하며 배에 어퍼컷을 꽂는 시늉을 하며 웃었더랬다. 인상이 워낙 강렬해서 껄끄러워 하는 놈들도 많았지만, 실제로 이재환은 쾌활하고 적극적인 녀석이었다. 제가 매년 과대를 맡아오면서도 놈이 욕먹는 건 본적이 없다. 의외로 세심한 면이 있어, 동기들을 하나하나 잘 챙기는 성격 때문이었다.
"어"
"박교수님이 차가 밀리신다고, 오늘 10분정도 늦으신대-"
"그러냐"
"응. 아, 이번에 상혁이 유급할 뻔 했다면서?"
"어. 저 놈 난리도 아니었어"
"푸하~ 그래도 다행이네. 교수님이 논문으로 퉁쳐주셔서- "
"세달동안 12개 써야 된댄다"
"와~ 한상혁 진짜 어쩐대냐~ 아우, 웃겨서 눈물이 다 나네~"
배를 잡고 뒤집어질듯이 웃어대는 이재환. 동기놈들 중에 그나마 한상혁 다음으로 편하게 대할 수 있는 녀석이었고, 누가봐도 좋은 녀석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이재환에게 마냥 좋은 감정만을 느끼는 건 아니었다.
"아, 이번학기에 카데바 하는거지?"
"응"
"으아~ 어떡하지. 나 진짜 그런거 자신 없는데- "
"실제로 해부하는 건 몇명만 한다더라"
"매도 미리 맞는 게 낫다고, 울 아부진 기회 되는 대로 꼭 한번 하고 오라시드라...하.."
의과대를 다니는 놈 치고 의사집안이 아닌 놈은 드문 편이었다. 뭐, 정택운 만큼은 아니더라도 이재환 또한 가업을 잇는 놈들 중 하나였으니. 아무리 좋은 놈이고 어쩌고 한들, 그런놈들에게 여전히 태생적인 열등감을 느끼는 나였다. 내가 한상혁에게 유일하게 유대감을 느끼는 부분이었다. 워낙에 칠렐레팔렐레- 흩뿌리고 다니는 놈이고, 얼굴만은 여느 부잣집 아들들마냥 곱상한 터라 이 놈도 걔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작년에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져 학교를 다닐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도, 놈은 아무런 내색 않고 있다가 '유급'사건이 터지자 내게 넌지시 대출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며- 마치 오래된 일인양 덤덤하게 내뱉었더랬다. 아마 놈을 내버려두었던 건, 이런 이유에서 였겠지.
"야! 이홍빈!! 이 치사한 놈! 또 나 빼놓고 저 혼자 수업들어간거봐!! 진짜 의리 없는 새끼!!!"
강의실 문간에 서서 바득바득 이를 갈며 나를 흘겨보는 한상혁을 바라보며, 나는 서랍속 전공서적을 꺼내든다. 어제 어디까지 했더라-. 귀 언저리에서 왱왱대는 놈의 목소리를 뒤로 하며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당장 저 놈을 내쳐야겠다고.
더보기 |
홍빈이가 보는 재환이의 인상 ! 유독 이 편분량이 짧은 이유는 다음화에 있겠죠? 빠른 전개를 위해 따로 잘라버린 3화였습니다 (찡긋) + 까칠한 콩이와 잔망스런 효기의 조합이 전 너무 좋아요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