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다. 나는 분명 불고기고추장맛 삼각김밥을 채워넣은 기억이 없다. 그런데 방금 전 사람은 불고기고추장맛을 사갔다. 불고기고추장맛은 분명 매일오는 그 잘생긴 남자가 사갔을 텐데.
혹시나 해서 진열대를 보니, 진열대에는 불고기고추장맛 삼각김밥이 한 개도 남아있지않다. 방금전 저 사람이 사간게 마지막이겠지. 기분이 이상했다. 찝찝하고.
"어서오세요."
오늘도 왔다. 그 잘생긴 남자. 오늘도 들어와서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삼각김밥을 집어든다. 어......? 그러고보니 오늘도 저 옷이네. 저 옷을 좋아하는 건가? 아무리 잘생겨도 매일 같은 옷만 입는건 좀 아닌데.
"800원 입니다."
"아, 여기요."
오늘도 지갑에서 동전을 꺼낸다. 슬쩍 보이는 지갑엔 항상 백원짜리 몇 개뿐인 것 같다. 검소한 사람인가?
"저기, 다른건 안드세요?"
"......에?"
"어제도 삼각김밥 사가시고, 항상 오실 때마다 삼각김밥 사가셨잖아요. 요즘 새로나온 도시락세트도 괜찮은거 많아요."
"저, 오늘 이 편의점 처음 왔는데요."
"아니에요! 분명히 어제도 오셨고, 엊그저께도 오셨어요!"
"제가요?"
"네! 아, 혹시 요 앞에있는 학교 다니세요?"
"그렇긴 한데."
"어쩐지 자주오시더라. 왜 항상 삼각김밥만 사가세요?"
"아, 맞다. 잠시만요."
남자는 무언가 생각난 듯, 진열대로 되돌아가 트윈 삼각김밥을 들고온다. 후, 갑자기 말을 끊는 바람에 나를 싫어하거나 피하는 줄 알았다.
"1400원 입니다."
"......아."
남자는 지갑을 보더니 살짝 미간이 찌푸려진다. 설마.
"돈 모자르시죠!"
"어떻게......"
"저번에도 트윈사려고 하시다가, 돈 부족하셔서 단품으로 바꾸셨잖아요."
"......"
"그 때 제가 폐기김밥 드렸는데 기억안나세요?"
혹시 정말로 기억상실증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한테 내가 몹쓸 짓을 한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죄송한데 혹시 오늘이 몇일이죠?"
"오늘요? 음, 26일이요."
"......26일이요?"
"네. 왜요?"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남자는 굉장히 미묘꾸리하고 똥씹은 듯한 뭐같은 표정이 되어, 황급히 800원을 놓고 밖으로 나간다. 급한 약속이라도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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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네."
"어, 저녁밥 사왔어?"
분명히 종인이는 나에게 또 다시 그럴것이다. 깜빡했다고, 미안하다고. 알고있다. 오늘까지 하면 19일 째인가.
"여기."
......어? 다르다. 평소와는 무언가 다르다.
"무슨 맛인지는 몰라. 아무거나 집어왔어."
"고맙다. 너는 먹었고?"
"먹었어. 걱정마."
오늘은 종인이가 전과 다르다. 무슨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어, 불고기고추장맛이네."
......왜 하필 불고기고추장 맛일까. 왜 하필.
"아 맞다 백현아."
"어?"
"오늘 몇 일이지."
"오늘?"
종인이는 항상 같았다. 종인이에게는 오늘이 4월 7일 일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4월 7일일 것이고. 그러나, 오늘의 종인이는 뭔가 다르다. 정말 많이 다르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할까.
"......7일"
"...... 아, 벌써 시간이. 나 갈께."
"가게? 조심해서 가. 내일 연습하러 나오고."
"알겠어."
종인이는 손목시계를 보더니 그렇게 오늘도 가버리고 만다. 아니, 가려고 했었다. 갑자기 뒤돌기 전까지는.
"아, 내 핸드폰 못 봤어?"
"......잃어버렸나보지. 내일 봐."
오늘은 종인이가 좀 많이 이상하다. 18일 동안 보아오던 종인이가 아니다. 항상 보아오던 종인이. 지금 느껴지는 이 감정은 익숙함이다.
하지만, 평소와 다른 익숙한 종인이도 곧 평소처럼 뒷모습만을 보이며 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린다.
아무래도 오늘도 종인이에게 가봐야겠다.
나는 택시를 타고, 또 다시 갔다.
익숙한 그 곳으로.
그리고 들어가서 본 종인이가 누워있는 침대 위에는 어제 준 삼각김밥이 없었다.
"저기요."
"네?"
"오늘 김종인환자. 면회온 사람 있었나요?"
"아니요. 없었는데, 무슨 일 있으신가요?"
"아니에요. 그냥 물어본 것이였어요. 아, 그럼 혹시 청소하시는 분이나, 다른 분이 병실에 들어오셨었나요?"
"오늘 김종인환자 병실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내가 준 삼각김밥은 어떻게 된 걸까. 아, 잠깐. 아까 종인이가 준 삼각김밥이...... 여기있다. 혹시나,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보는 거지만. 심장박동수는 빨라지고, 두근두근 떨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내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유통기한이 '4월 25일'이라 적혀있는 것이.
오늘도 종인이는 가만히 누워서 말이 없다. 야, 좀 일어나봐.
"야, 저녁사온다고 나간놈이 내가 사준걸 그대로 돌려주냐?"
......
"하여튼, 뻣뻣한 놈. 잘생기면 뭐하냐? 넌 너무 뻣뻣해서 나한테 안돼."
......
"하긴, 너 춤 잘추니까. 그거때문에 여자애들 뻑가지?"
......
"내가 너보다 춤은 어떨지 몰라도 노래는 더 잘하거든? 누가 이기나 해볼래? 바이올린은 어차피 비슷할꺼아냐."
......
"야, 얼른 일어나......일어나......제발......"
이 나쁜놈. 너때문에 내가 또 울잖아. 언제 일어날꺼니? 제발 눈이라도 떠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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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세요 용자여.....! 는 개드립.
덧글 써주시는 익인분들 사랑합니다......ㅜㅜ 아, 내용 이해가 안된다는 몇분에게 설명을 드리자면
종인이는 사고로 인해 지금 거의 3주 가까지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는 상태인데, 자신이 식물인간인걸 모르고 귀신(?) 비슷한 형태로 자신과 죽기 전
저녁을 사온다고 약속했던 백현이를 계속 찾아가는 거죠. 근데, 백현이는 종인이가 사고가 난걸 아니까 애가타는거고.
그리고 경수는 편의점 알바생인데, 점점 눈치를 채가고있죠...... 내용설명은 여기까지! 대강이라도 이제 이해가 가셨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