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보통의 하루(inst.) - 정승환
요즘은 그런 용어가 유행이라고 하더라. 인싸, 아싸.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을 딱 그 두 가지로 구분하는게 유행이라고. 그걸 누가 구분짓는지는 모르겠다만, 나는 알 수 있다. 내가 후자라는 걸. 내 성격이 모난 건 아니다. 그렇다고 막 좋은 것도 아니다. 남들과 어울리는 걸 싫어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막 좋은 것도 아니다.
여유.
남들과 어울려 지내고, 하하호호 웃으면서 지낼만한 여유가 없다. 내게는 그런 시간들이 사치에 불과하다. 그리고 딱히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다. 어쩌면 누려보지 못했기에 그런걸지도 모르지만.
" 다녀왔습니다. "
불이 꺼진 집은 언제나 훈기가 아니라 냉기가 돌았다. 방 하나, 방 크기 만한 거실 하나, 거실 옆에 애매하게 붙어있는 주방, 그리고 화장실 하나. 그게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살고 있는 집이었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거실의 불을 켜면 여전히 날 반기는 것은 냉기뿐이었다. 숨을 고르고 방으로 들어가면 작은 옷장에, 책장, 몇 년은 쓴 책상, 그리고 낡은 매트리스가 그 작은 방을 꽉 채우고 있었다. 익숙하게 여기저기 헤진 가방을 의자에 얹어놓으면 삐걱거리는 소리가 매번 크게 들렸다. 후아, 숨을 내뱉으며 매트리스에 누우면 한 눈에 다 들어오는 방의 천장이 날 압박했다.
" 으챠 "
잠시 누워 숨을 고르는 시간이 내게 유일한 휴식시간이었다. 교복을 벗고, 집에서 아무렇게나 입는 티와 바지를 걸치고 주방에 쌓여있는 설거지를 하는 것 또한 내게 휴식의 일종이었다. 독서실에서 끝내 풀지 못 한 수학 문제라든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오르지 않는 영어성적이라든가, 내게는 공기처럼 익숙한 지긋지긋한 집안의 사정을 생각하는 일 따위는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의미없는 헹굼을 반복하다보면 어느새 십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깨끗하게 정돈된 것 같은 집은 사실 집 안을 흐트릴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열여덟살인 나는 학교와 독서실과 집만 오가고, 나보다 스물 몇 살이나 더 많은 엄마는 새벽 일찍 나가 밤 늦게 돌아와 죽은 듯 잠만 자기 때문이었다.
남들이 다 가지고 있다는 최신형 스마트폰은 꿈꿔본 적이 없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집에서, 월 7만원짜리 독서실도 겨우 다니는 내가 그럴 수는 없었으니까. 하루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스무살이 되자마자, 아니 수능이 끝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으고 싶다고 생각했다. 탈출. 이 익숙함과 지긋지긋함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어릴 때는 느끼지 못했던, 내게는 너무나 당연했던 이 낡은 것들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나를 숨막히게 하는 것도 돈, 나를 살게하는 것도 돈이었다. 이 빌어먹을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는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가장 필요했다.
그리고 이 생활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또다른 한 가지는, 공부였다. 장학금을 받고 대학을 들어가서 좋은 곳에 하루라도 빨리 취직하는 것. 그게 내 목표였다. 아니, 사실은 꼴에 같잖은 자존심이었다. 학교에 그 흔한 친구 하나도 없는 내가, 꼬질꼬질한 가방과 신발에, 물려받은 교복을 입고 다니는 내가 남들에게 떳떳하게 설 수 있는 것. 나를 옥죄는 이 당연한 것들과 익숙한 것들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는 것. 좋은 대학과 직장이었다. 그래야만... 그래야만 내 자존심이라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열여덟의 나는, 돈과 대학이 절실했다. 그 때는 그거면 다 되는 줄로만 알았다. 그거면 내 삶이 지금보다는 나아질 줄 알았다.
전지적 짝사랑 시점
A-1
" 어우, 담배 냄새. "
" 4500원입니다. "
" 담배 냄새 난다니까요, 알바생님. "
" ...어쩌라고요. "
후. 한숨을 뱉고 검은 비닐봉지에 과자와 캔음료를 담았다. 어쩌라고요, 라는 내 말에 킥킥거리는 내 앞의 김재환을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었다. 이런 시시껄렁한 농담할 시간있으면 빨리 가서 이거나 먹어. 내가 그렇게 말하자 김재환이 검은 비닐봉지를 손목에 걸었다.
" 담배 좀 고만펴. 아주 골초다, 골초. "
" 뭔 상관이야. "
" 너 진짜 독서실에서도 아주 그냥 맨날... "
" 오지랖 부리지 말지? "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농담을 하는 김재환을 쳐다도 보지 않은 채 말하자 김재환이 큼, 하며 헛기침을 했다. 그러더니 부스럭거리며 비닐봉지에서 방금 산 유자차를 꺼내 내게 건넸다.
" 그래도 같은 학교에, 같은 독서실도 나오고, 같은 과동기인데 요정도 인연이면 오지랖 부려도 되지 않냐? "
" ... "
" 원쁠원이길래. 너 하나 마시라고. 날도 서늘한데. "
" ...잘 마실게. "
" 뭘~ "
김재환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는 편의점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자마자 휴대폰을 보는 김재환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내 앞에 놓인 유자차 병을 집어 들었다. 김재환과는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 같은 반이었던 적도 한 번 있었고. 친하진 않았다. 김재환은 요즘 말하는 인싸, 나는 아싸였으니까. 김재환은 항상 쉬는시간마다 노래를 부르곤 했다. 흥얼거리는 김재환 주위에는 항상 많은 애들이 있었다.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김재환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하는 애들도 꽤 많았다. 축구도 잘했고, 노래도 잘했다. 얼굴도 귀엽게 생겨서 선후배들한테도 인기가 많았다. 나는... 김재환과 정반대였다. 노래는 커녕 쉬는시간엔 문제집만 보고 있었고, 문제집을 보지 않을때는 엎드려 자는 척을 하고 있었다. 내게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내가 관심을 갖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사람에게 호기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늘 내 머릿속에는 풀지 못한 문제들과 지긋지긋한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는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 어? 너도 여기 다녀? '
수시는 엄두도 못 냈다. 감히 내가 낼 전형따위는 없었다. 고등학교 입학을 할 때부터 목표는 정시였다. 그리고 그 목표는 처참히 무너져내렸다. 수능을 치고 돌아오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내 앞을 가로 막는 큰 벽을 나따위가 쉽게 넘을 수가 없었다. 원하던 대학에는 원서를 써보지도 못할 성적이었다. 그렇다고 마음에 차지도 않는 학교에 들어가 몇백이나 하는 등록금을 내고 싶지 않았다. 같잖은 자존심, 내 안의 열등감. 그 누구도 나에게 무어라 하지 않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마음 한 구석에 존재했던 나의 감정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져있었다. 그래서 재수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것도 혼자서 공부를 하겠다고. 고등학교 3년 내내 다녔던 7만원짜리 독서실은 그새 10만원으로 오르고, 나는 그것조차 엄마에게 손 벌리는게 미안해 수능이 끝나자마자 알바를 시작했다. 2월까지 바짝 돈을 모으고서야 3월에 다시 독서실을 등록할 수 있었다. 10만원으로 오른 독서실은 변한게 없었다. 딱 하나, 내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는 것 빼고는.
' ... '
' 아, 야. 머쓱하게 왜 인사를 무시하고 그러냐? 반가워서 그런건데. '
작은 독서실 로비에서 마주친 김재환은 나와 친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내게 인사를 건넸다. 당연하게 인사를 받아주지 않고 신발장에 신발을 넣자 김재환이 고새 쫑알거리기 시작했다. 반에서 저만 재수를 하는 줄 알았다면서. 그것도 독학재수로.
' 그래. 안녕. '
김재환이 왜 재수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이 독서실에 다니면서 혼자 공부를 하게 되었는지는 내게 중요하지 않았고, 중요해서도 안 됐다. 나는 나를 생각하기에도 벅찼다. 남들이 스무살이 되는 일월 일일날 술집에 들어가 술을 마실 때, 나는 서빙을 하고 있었다. 돈을 더 벌 수 있다고 좋아했다. 그런 비참한 생각이 김재환을 보면 마구 떠올랐다. 고등학교 시절 항상 무리의 중심이었던 김재환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터져버린 열등감과 자격지심을 애꿎은 사람에게 표출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무시하고 싶었다. 내게 친한 척 해오는 김재환을.
' 야, 너 혹시... 이거 어떻게 푸는 지 알아? '
' ... '
' 아, 너 지금 밥 먹고 있어서 말걸기 좀 그렇긴 했는데... 공부할 때 말 걸 순 없잖아. '
독서실 휴게실에서 삼각김밥으로 배를 채우는 나에게 바나나우유를 들이밀며 넉살좋게 말하던 김재환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으니까. 매일 내가 삼각김밥으로 저녁을 떼운다는 걸 아는지 몰랐는지는 몰라도 나는 어느새 김재환의 호의를 꽤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김재환과 나는 딱 그 정도의 사이를 유지하기 시작했다. 사적인 얘기는 하지 않지만, 독서실에서만큼은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그 정도의 사이로.
그랬던 김재환과 나는, 같은 학교 같은 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하향 지원이었다. 장학금을 준다고 해서 간 학교였다. 김재환에게는 그런 사실을 알리지 않았지만, 어렴풋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독서실에서 매일 사는 사람처럼 굴어댔으니까. 김재환은 좋아했다. 이게 무슨 우연이냐며 좋아했지만, 내게 그건 평소와 같은 호의정도로 여겨졌다. 그냥 겉으로 하는 인사치레. 잘 됐네. 내가 짧게 말하고 독서실에서 짐을 챙기자 김재환이 머쓱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 술이라도 한 잔 하자고 할랬는데... 바쁘냐? '
' 알바 구했어. 시간 돼서 가 봐야돼. 미안. '
' 그래. 뭐, 어쩔 수 없지. 화이팅. '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김재환의 휴대폰이 아까부터 울리는 걸 보고 나는 알 수 있었다. 김재환은 나말고도 친구가 많았다. 굳이 오늘 합격한 날, 같은 독서실에 다니며 같은 과에 입학한 내가 아니라도 김재환과 술을 마실 사람은 널렸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나는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김재환 뿐이었다. 독서실에 나오며 깊은 숨을 뱉었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합격을 했는데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였다. 내가 얼마나 노력을 해왔는데.
1년간의 재수는 나를 더 벼랑 끝으로 몰아세웠다. 내게는 오로지 돈과 대학만이 중요했다. 무시받지 않으며,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살아가는 것. 내게는 그 목표가 절실했다. 아무도 손가락질 할 수 없도록 아무도 나의 이런 속을 모르는게 편했다. 친구, 술, 뒷풀이. 이런 것은 늘 내게 사치였다. 대학에 들어와서 김재환은 내가 그어놓은 그 선을 넘지 않았다. 왜 모두가 김재환과 친해지고 싶어하는지 잠시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름의 배려겠지.
" 어서오세요. "
김재환이 건넨 유자차를 다 마시고 나서야 김재환의 배려에 새삼 감사했다. 이 정도의 선에서 더 넘어가는 것은 내게 사치였다. 스물하나의 내게도 여전히 중요한 것은 열여덟때와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장학금을 유지하려면 꽤 높은 성적을 유지해야했다.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받아든 성적표에 기뻐하기도 잠시, 나는 알바 대타를 하기 위해 얇은 가디건을 입었다. 재수하던 날부터 꾸준히 입어왔던 가디건이었다. 그래, 그 때의 나보다는 지금의 내가 조금이나마 더 낫지. 거울을 보며 그렇게 위안을 했다. 내가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은 나 자신이 잘 버티고 있다는 사실 하나였다. 지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 내게 그 이외의 것들은 사치였다.
" ...후우. "
그런 내게도 아주 작은 사치를 부릴 때가 있었다. 물론 그 횟수가 점차 늘고 있긴 하지만... 김재환이 골초라고 말한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성인이 되자마자 담배를 피워댔으니. 독서실 휴게실에 앉아있을 때마다 김재환이 킁킁거렸던 게 생각났다. 너, 담배피워? 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던 김재환이 조금은 귀여워보며 내가 웃었던 기억도 난다. 그러고는 다시 아무렇지 않게 너한테 피해 안 주잖아. 하고 말하자 김재환이 머쓱하게 뒷머리를 쓸며 그건 그렇지. 하고 하하 웃었다.
" 야, 빨리 들어와. 손 모자라. 손님 엄청 온다, 오늘도. "
" 아. 네, 죄송해요. 오빠. "
2분도 채 안 되는 시간동안 담배를 피우던 나는 술집에 사람들이 많다는 소리에 한 대를 더 피우려다 말고 허겁지겁 계단 위로 올라갔다. 방학이라 그런지 사람이 꽤나 많았다.계절학기도 끝났다고 했으니 다들 술이 떡이 되도록 마셔도 상관이 없겠지. 저렇게 술자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늘 이질감이 들었다. 내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라 그런걸까. 새내기들이 맨 처음으로 모인다는 정모도, 새터도, 엠티도 가본 적이 없던 나였다. 과에서 날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아니 아마 한 명밖에 없을거다. 김재환 딱 한 명.
" 저기 여기 생맥 천칠백 하나랑요, 야야 소맥 먹을거야? "
내 또래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빨개진 얼굴로 내게 주문을 해오는 모습은 이제 익숙하다. 익숙하다 해서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 애초에 중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혼자서도 잘 다녔잖아. 오히려 지금이 편해. 그런 말을 속으로 외우며 생맥주를 따랐다. 나는 괜찮았다. 지금 이정도면 충분히 행복하다. 스스로 돈을 벌고,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니고, 가끔 배달 음식도 시켜먹으면서 혼자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것. 이 정도 여유면 충분하다. 남들과 어울릴 여유는 없어도, 혼자서 누릴 이 정도의 여유면... 나는 충분하다...
그런 소리를 하며 마음을 무디게 만들어왔던 나였다. 빌어먹게도 그 애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 헐! 심리학과? 저도 심리학관데! "
선. 내가 그나마 친하게 지내는 김재환에게도 그어놓았던 선이 있었다.
" 근데 왜 내가 누나를 모르죠? 나 우리 과사람들이랑 거의 다 아는데. "
김재환도 그 선을 알아서 내게 일정 수준의 관심이나 호의따위 보이지 않았다. 물론 독서실을 처음 다닐 때에는 이것 저것 말하며 내게 관심을 끌려고 했지만, 그게 다 부질 없는 짓이라는 걸 지내면서 알았을거다. 김재환도 어쩌면 나와 친해지고 싶지 않았지만, 심심하니까. 독서실에서만큼은 심심하니까 내게 손을 내민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 누나 동아리는 뭐에요? "
그런데 지금, 오늘 처음 본 이 사람이. 내 동기라는 이 사람이 내게 같잖은 관심과 호기심을 보이고 있었다.
" ...저기. "
조금 전 교양수업에서 만난 사람이었다. 1학년 2학기 첫 수업부터 토론을 하라는 교수님의 말에 근처에 모인 사람들끼리 간단히 자기소개를 할 때였다. 저는 심리학ㄱ... 라고 말을 하자마자 내 앞에 앉은 남자의 눈이 반짝이는 걸 알 수 있었다. 저 사람도 심리학과인가보네. 대충 토론이 끝날 무렵, 강다니엘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 남자가 내게 이것 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이미 토론을 같이 하던 다른 세 학번 위의 선배들은 짐을 싸고 있었다. 나도 빨리 고학년이 됐으면.
" 저 동아리 안해요. 과생활도 안하고. 그 쪽이 모를 수도 있죠. "
최대한 날이 서지않은 채로 말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렇게 느끼지 못했는지 예전 독서실에서의 김재환처럼 머쓱하게 웃었다. 아, 그래요? 전 그냥 교양 수업에서 같은 과 사람 만난게 처음이라서. 무안한지 말을 덧붙이는 그 사람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나도 선배들처럼 짐을 싸기 시작했다. 다음 수업이... 심리학개론. 저번 학기에 전공강의에서 삼삼오오 모여 웅성거리던 동기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사이에 혼자 앉아있던 내 모습도.
" 자, 수업은 이쯤 합시다. 첫날이니까. 수고했어요~ "
교수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짐을 다 챙긴 사람들이 무섭게 감사합니다, 를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서서 강의실을 빠져나오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나를 잡았다. 아. 그 사람인가보네. 그 생각에 뒤를 돌아보자 그 남자가 생글생글 웃으며 내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 다음에 봐요, 누나. 그래도 독강인거보다 같은 과 사람이랑 듣는게 훨 좋잖아요. "
" ... "
" 수고하셨어요. "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하고는 나보다 먼저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성격보니 쟤도 꽤 과에서 이름 좀 날리겠거니 싶었다. 김재환처럼 인싸에, 얼굴도 귀엽게 생겨서 여자애들이 좋아하겠네. 학창시절의 김재환과 겹쳐보였다. 꼬박꼬박 누나라고 해가며 말하는 그 애도 곧 김재환처럼 내게 별 의미 없는 지인 중 하나가 되겠거니 싶었지만 말이다.
" 엠티 안 가냐? "
" 엠티는 무슨. 내가 그런거 가는거 봤어? "
" 하기사... 너는 맨날 알바 하는데. 괜히 물었네. "
학식을 먹고 있는데 누군가 내 앞에 턱 앉아 고개를 들어보니 역시나 김재환이었다. 너는 친구 없어? 왜 혼자 밥을 먹어. 내가 그렇게 묻자 김재환이 지는. 이라며 킥킥거렸다. 친한 애들 다 지금 수업이라서 혼자 밥 먹으러 왔지, 뭐. 밥 정도야 혼자 먹을 수 있잖아. 김재환이 그렇게 말하며 오므라이스를 퍼서 입에 넣었다. 조용히 밥을 먹고 싶었는데. 독서실에서 매일 삼각김밥을 먹고 있으면 바나나우유나 컵라면을 건네던 김재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와 마찬가지로 김재환은 내게 이것저것 말을 붙여왔다. 쟨 진짜 말을 안 하면 답답해서 죽나보네.
" 알면 묻지마. 밥이나 먹어. "
" 아 진짜 한결같이 차갑게 구네. "
" 싫으면 딴 데 가서 먹든가. "
" 에헤이, 야. 그래도 혼자 먹는 것보다야 둘이 먹는게 맛있잖아~ "
" 조용히 좀 하고 먹어, 그러면. "
이 정도 단호함과 딱딱함에는 익숙해졌다는 듯 김재환이 넉살좋게 웃으며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만 들릴 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내가 아니라 다른 친구였으면 김재환은 계속해서 재잘거리며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나에게 익숙해져있는 김재환이 조금은 안쓰럽기도 했다.
" 야, 근데 이건 내가 궁금해서 묻는건데. "
" ... "
조용히 밥이나 먹자. 라고 말한지 3분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내가 숨을 내쉬고 김재환을 보자 김재환이 오물거리던 밥을 삼키고 내게 궁금한듯 물었다.
" 넌 대체 뭔 재미로 사냐? 담배 피우는 재미? "
" ...알아서 뭐하게. "
" 그냥. 궁금해서 그러지. 잘 놀지도 않고 그러는 것 같으니까. 나랑도 술 한 번 마신적도 없고. "
" 그래, 나 담배 피는 재미로 산다. 넌 그럼 뭔 재미로 사는데. 술 마시는 재미로 살아? "
" 빙고~ "
김재환이 그렇게 말하며 다시 밥을 입에 넣었다. 그런 재미에 한 번 빠지면 돌아올 수 없거든. 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그런 김재환을 무시하고 다시 밥을 먹기 시작하자 김재환이 재미없다는 듯 에이, 야. 맨날 그렇게 심드렁해가지고. 뭘 물어보질 못해요. 하며 투덜거렸다.
" 묻지마 그냥. 언제부터 나한테 관심이 그렇게 많았다고. "
" 야, 난 너 독서실 처음 왔을 때부터 관심 엄청 보였어. 니가 다 쳐낸거지. "
" ...그럼 관심 가지지 말던가. "
김재환이 내 말에 쩝, 하며 소리를 내고는 됐다. 됐어. 너랑 무슨 말을 해. 밥 같이 먹는 것만 해도 많이 친해진거지 뭐. 하며 두 손을 들었다. 어쩌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내 반응을 김재환은 항상 저렇게 구렁이가 담 넘어가듯 능글맞게 넘어가곤 했다. 어쩌면 정말로 김재환은 알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내가 말하지 않는 나의 속마음들을. 내가 그런 여유가 없다는 것쯤을.
" 좀 즐기고 살아란 말이야, 내 말은. "
" ... "
" 꼰대 같이 들릴 수도 있는데 이건 조언 뭐 그런게 아니고. "
" ... "
" 너 치열하게 사는거 내가 그래도 너 주위에서 제일 잘 알거니까 그렇지. "
알고 있다. 김재환은. 그도 그럴게 김재환 눈에는 내가 얼마나 공부만 하고, 알바 하고... 또 담배 열심히 피는 애로 보이겠어. 김재환의 말에 먹던 밥을 대충 삼키고 김재환을 쳐다봤다. 김재환이 움찔하며 내 시선을 피했다.
" 관심 없어. 그런 데에. "
짧게 말하고 다시 숟가락을 들자 김재환이 큼큼거리며 헛기침을 했다. 그래 뭐, 니가 그런거면 그런거지. 김재환의 짧은 대답을 끝으로 우리는 더이상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내 속을 들킨 것같은 마음 반, 그리고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나머지 반이었다. 이렇게라도 사는게 내 마음이 편하다는 걸, 너는 모르겠지. 아니 몰랐으면 했다.
" 어서오세요. "
운 좋게 카페 알바를 구했다. 경력이 없어서 뽑아 줄까 했는데 잘 됐다는 마음이 컸다. 카페 알바에 익숙해지면 술집 알바는 그만해도 되겠지. 항상 늦게 마쳐 잠을 통 자지 못했던 나였다. 화장도 하지 않아 푸석푸석한 피부를 가리지도 못했던 내가 거울을 봤을 때 피부가 꽤 상한게 눈에 띌 정도였으니 상태는 심각했다. 건강은 챙겨야지. 그래야 한 푼이라도 더 벌지. 그런 생각에 알바를 바꾸기로 결심한지 일주일 째, 운 좋게 카페 알바를 하게 된 나였다.
"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이요? 네, 여기 진동벨이요. "
학교 앞 카페는 생각보다 분주했다. 테이블이 네 개 밖에 없다지만 테이크 아웃을 해가는 사람도 많아 일손이 모자랐다. 전날 새벽 늦게까지 알바를 해온 터라 정신도 없었고, 피곤했다.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나는 아직까지 음료를 제조하는 일에 서툴렀다. 커피 종류를 외우는 것만 해도 벅찼는데, 커피 제조법까지 외워야했으니. 그리고 그렇게 정신이 없던 와중의 일이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내 귀를 강타했다.
" 어떤 걸로 드릴까요? "
손님의 얼굴도 보지 않고 포스기부터 보고 있던 내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자 날 보며 해맑게 웃고 있는
" 카페 모카 두 잔이요. 아이스로요. "
강다니엘이 보였다. 강다니엘은 당황해하는 내 표정을 보고는 여전히 웃으며 카드를 건넸다. 아... 네. 테이크 아웃잔에 드릴까요? 내가 강다니엘에게 묻자 강다니엘이 네. 근데 한 잔은 유리잔에 담아주세요. 하고 내게 말했다. 강다니엘을 뒤로하고 커피 머신을 만졌다. 카페 모카가 그러니까... 제조법을 흘긋흘긋 보며 쩔쩔매며 겨우겨우 커피를 완성해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 하고 말하자 팔짱을 끼고 나를 쳐다보던 강다니엘이 팔을 뻗어 음료를 들었다.
" 안녕히 가세요. "
내가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고 커피 머신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강다니엘이 저기, 누나. 하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 이거, 누나 마셔요. "
" ... "
" 커피 맛있네요. 다음에 또 와야겠네. "
강다니엘이 그렇게 말하고 유리잔에 담긴 커피를 내게 건넸다. 아니, 저기 나는 괜찮은데. 하고 말하기도 전에 강다니엘이 다음 수업에 봐요. 하고 내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처음 본 그 날처럼 자기 할 말만 쏙 하고 사라진 강다니엘을 어안이 벙벙한 채로 보고 있다가 커피잔을 들었다. 그리고 한 입을 마시는 순간... 인상을 팍 찌푸렸다. 아, 너무 달아. 내가 초코시럽을 너무 많이 넣었나. 남은 카페 모카를 내려놓고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결국 달아빠진 카페모카를 다 마시지 못하고 마감시간이 되어버렸다. 얼음이 녹아 송골송골해진 유리잔을 잡고 싱크대에 넣었다. 이렇게 단 걸 걔는 다 마셨을까. 강다니엘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그러다 이내 설거지를 하며 생각을 지워버렸다. 설거지를 하며 아무 생각하지 않던 습관이 새삼 고마웠다.
" 퇴근하겠습니다. "
사장님께 꾸벅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2학기가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후덥지근한 공기가 나를 감쌌다. 그렇지만 이렇게 습한 공기 속에서도 나는 카페에서 얼마 벗어나지 못한 골목에서 담배를 꺼내들었다. 돈이 꽤 많이 드는 악취미라는 걸 알면서도 담배는 끊기가 힘들었다. 설거지를 할 때처럼 담배를 필 때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가 있었다. 게다가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폐가 썩어문드러진다고 하더라도 이 취미는 포기하기가 힘들 것 같다고 항상 생각했다.
[ 곧 있으면 전세 재계약 기간인거 알지? 엄마가 전화가 안 돼서 학생한테 문자 보내. ]
휴대폰에는 몇 안되는 연락처가 찍혀있고, 그 중 하나는 집주인 아줌마였다. 어린시절부터 살아왔던 집은 2년 단위로 계약을 하고 있었다. 그마저도 1년으로 계약이 줄었지만.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전세금이 오백만원이나 올랐다. 그마저도 돈이 모자라 반전세에 월세를 따박따박 내고 있는 상황으로 바껴버렸다. 장학금을 받고 학교를 다니면 뭐해, 차라리 재수하지 말고 바로 취업이나 할걸. 그런 절망적인 생각을 하다가도 마음을 다잡았다. 내 노력의 결과를, 내 발버둥의 결과를 후회하고 싶진 않았다. 담배를 깊이 빨았다가 내뱉었다. 후우우우우우, 속이 더 뻥 뚫렸음 했다. 이번 월세는 또 어디서 메꾸나. 담배를 피다말고 헛웃음이 나왔다. 잠시나마 즐길 수 있는 여유와 사치가 고작 이 담배다. 다같이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고 내 이야기를 뱉는 것도 아니고, 내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카페를 가는 것도 아니다. 이 후진 뒷골목에서 사람들이 담배꽁초를 떨어트려놓은 이 곳에서 담배를 피는게 고작 내가 찾은 자유다.
" ...푸우. "
울컥, 무언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속에서 뒤틀린 감정이 눈으로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금세 눈 주위가 빨개지고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겠지만 눈 주위를 꾹꾹 눌렀다. 찌든 담배냄새가 코를 찔렀다. 김재환이 골초라고 뭐라할만 하네. 눈살 찌푸릴만한 냄새다. 독하다, 독해. 순식간에 울음을 터트리려다 풉, 하고 웃음을 뱉고야 말았다. 소리내서 엉엉 울지도 못하는 한심한 애가 나였다. 남들이 볼까봐, 아무도 없는 이 골목에서 울지도 못하는게 나였다.
자리에서 털썩 주저 앉아 소리없이 울음을 터트렸다. 스물하나의 내가 버티기엔 세상이 조금 잔인하다는 생각에 억울해서 울음이 터졌다. 바라지 않은게 아니었다. 나도... sns도 해보고, 맛집도 가보고, 예쁜 옷도 사입고, 나를 꾸미고 단장하고 싶다. 내가 누리지 못한 것들을 누리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돌리는 걸 그만두고 싶었다. 이 지긋지긋한 생활에서, 돈에 급급한 나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 생각에 결국 소리를 내어 울고 말았다.
나의 열등감이, 자격지심이, 그리고 한심함이 내 입밖으로 새어나왔다.
내 자신이 처절해보여서 손에 든 담배가 떨어져 바스라질 때까지 엉엉 울고야 말았다.
열여덟 때의 나보다 나은게 하나도 없는 삶이란걸 그 순간에야 비로소 인정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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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에요 여러분!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생각이 나서 요로케.. 글을 쓰게 되었답니다..!
제목은 깨발랄한데 내용은 안 그래서 죄송합니다 후후.. 그래도 재밌게 지켜봐주세요 !
그리구... 012101 이라...
[강다니엘/김재환] 말고 [워너원/강다니엘/김재환]으로 쓰게 되었어요! 활동이 끝났지만 그래도 같은 그룹의 멤버였기 때문에 카테고리도 워너원으로 넣었습니다 :)
쌩옹과 너집앞은 제가 복구를 해보려 시도했는데 아예 안 되더라구요
댓글로 알려주신 방법도 안 먹혀서... 제가 멘탈이 탈탈 털렸다가 마무리도 할 겸 새로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ㅎㅎ
6-7편 정도 될 예정이에요 :>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