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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다니엘을 만나는 그 교양강의 시간이 되었다. 저번에 앉았던 자리 말고 완전 반대의 자리에 앉았다. 아직 강다니엘은 오지 않은 듯 했다. 그래서 일부러 저번에 앉았던 자리말고 딴 자리에 앉았다. 김재환처럼 무시하면 될텐데, 왠지 모르게 강다니엘의 그 웃음이, 호의가 불편했다. 나를 알면 얼마나 안다고. 같은 과 동기라는 이유만으로 호의를 보이는 강다니엘이 불편했다. 주섬주섬 노트와 필통을 꺼내고 있을 때, 누군가 내 옆에 앉는게 느껴졌다. 일부러 가방 놔두려고 했는데.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자 보이는 건... 역시 강다니엘이었다.




" 안녕하세요, 누나. "

" ...여기 네 자리 맡아놓은거 아닌데. "

" 가방 놔두려고요? 주세요. 제 옆에 놔둘게요. "




강다니엘이 손을 내밀었다. 내가 여전히 불편하다는 표정으로 강다니엘을 봤지만 강다니엘은 한 치의 구김도 없는 표정으로 내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가방을 건네자 강다니엘이 입술을 꾹 다물며 씨익 웃어보였다.




" 누나 보이길래 여기 앉았어요. 기분 나쁘면 미안해요. 근데 독강보단 같이 듣는게 서로 도움도 많이 될 것 같아서. "

" ... "




별다른 말을 하지 않자 강다니엘이 다급히 말을 덧붙였다.




" 저 나름 공부 잘해요. 애들 다 저랑 수업 듣고 싶어하는데. "

" ... "




그래서? 어쩌라고. 김재환이었으면 그렇게 말했을거다. 이렇게 보이는 최소한의 관심, 호의. 내게는 다 불편했다. 나이를 말한 순간부터 누나, 누나 거리는 것도 꽤나 거슬렸다. 이미 내 열등감과 자격지심은 애꿎은 사람에게도 벽을 치고 있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이런 상황에, 이런 모습에 익숙해져 있는 나를 굳이 변화시킬 생각은 없었다. 이게 편했다. 이게 적어도 어린 시절의 나보다는 나았다. 성격이 모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내 성격을 사물화 시키면 어쩌면 잔뜩 모가 나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이렇게 돼버린걸까 하는 잠시 슬픈 생각도 들었다.




" 들어, 그럼. "

" ...넵. "




내 짧은 대답에 강다니엘의 입꼬리가 올라가는게 보였다. 대체 얘는 내가 이렇게 구는데도 이러는 이유가 뭘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김재환같은 애라면 뭐 충분히 그럴수는 있다만. 강다니엘에 대한 생각을 거두고 노트를 폈다. 그래 뭐, 수업 같이 듣는 동기 하나 쯤 있으면 나쁠 것 없지.






[워너원/강다니엘/김재환] 전지적 짝사랑 시점 A-2 | 인스티즈

[워너원/강다니엘/김재환] 전지적 짝사랑 시점 A-2 | 인스티즈






전지적 짝사랑 시점

A-2











" 어, 누나. 안녕하세요. "




사물함에 전공책을 넣고 있는데 바로 옆에 누군가 내가 슥 다가와 서는게 느껴졌다. 이 학교에서 나와 대화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대화를 했다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혔다. 그 중 하나는 독서실 메이트였던 김재환,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지금 내 눈 앞의 이 사람. 강다니엘이었다.




" 안녕. "




사물함을 닫고 딱딱하게 인사를 건넸다. 사물함 앞에서 더 할 말도 없고. 돌아서 가려는데 다니엘이 허겁지겁 내게로 다가오는게 느껴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나와 발 보폭을 맞추는 강다니엘이었다. 키도 나보다 두 뼘은 넘게 큰 것 같았다. 내 옆에 서서 누나, 다음 수업은 뭐에요? 하며 밝게 묻는 강다니엘에게 대답할 틈도 없이 복도에 있던 사람들이 강다니엘에게 인사를 건네는게 보였다. 아, 이게 인싸의 삶이란거구나. 역시 다른 세상의 사람이었다. 쟤랑 나는. 이 복도 어디에도 나와 반갑게 인사를 할 사람은 없다. 지금 내 옆에서 무슨 생각으로 내게 이렇게 친근함을 표하는지 모를 얘만 빼고.




" 나 이제 수업 다 끝났어. 알바 가야 돼. "

" 알바? 카페요? "




그러고보니 그 때 카페에서 만났었지, 참. 아니라고 짧게 답하자 강다니엘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어왔다. 그럼, 다른 알바 또 해요? 강다니엘의 표정에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선. 내가 쳐놓은 이 선을 아무렇지 않게 저벅저벅 밟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나 날을 세워서 너를 경계하는데, 너는 아무렇지도 않은걸까.

응.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자 강다니엘이 우와, 하며 놀라워하는 듯한 탄식을 뱉었다.




" 짱이네요. 학교도 다니고 알바도 두 개씩이나 하고. 존경스러워요. 진짜. "

" ... "




뭘 존경까지야. 그런 말을 하려다 말고 또 강다니엘에게 인사를 건네는 내 동기로 추측되는 사람들 때문에 입을 닫았다. 언제 피어난지 모를 미소가 싹 걷어지는게 느껴졌다. 큼큼, 헛기침을 하고 뭘. 하며 짧게 대답하자 강다니엘이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 계단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한결같이 밝은 표정, 기분 좋은 생글거림. 그리고 그 모습이 어쩐지 불편한 나, 또 한 편으로는 어쩐지 간질거리는 나.




" 피곤할텐데 힘내요. 누나. "

" ...고마워. "

" 저는 여기서 전공 수업 들어서. "

" 아. 어... 열심히 들어. "




강다니엘이 꾸벅 내게 고개를 숙이고 나도 그런 강다니엘이 뒤를 돌아 강의실에 들어갈 때까지 한참을 바라보다 발걸음을 돌렸다. 북적거리는 강의실 안에서 여러명 사이에 둘러앉은 강다니엘의 모습이 방금 전 내 옆에 있던 사람이 맞구나, 하는 자각이 들게했다. 나와는 다른 삶, 성격, 여유. 내게 알 수 없는 관심과 호의를 보이는 저 특유의 성격이 꽤나 부러워지기 시작했던 나였다.













" 누나, 이거. "




다음 수업시간이었다. 강다니엘과는 학년도 같고 동기였지만 전공강의가 하나도 겹치지 않았다. 전공 강의실에 들어가 눈으로 살폈지만 강다니엘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강다니엘을 만날 수 있는건 일주일에 딱 한 번 있는 세시간 연강짜리 교양강의 뿐이었다. 강다니엘은 세번째 수업시간이 되던 날, 커피 캐리어를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 당연하게 내 옆자리에 앉아 책상에 캐리어를 놔두며 커피 한 잔을 꺼내 내게 건넸다.




" 누나 마셔요. 저번시간에 보니까 막 꾸벅꾸벅 졸더만. "




아. 그러고보니까 잠깐 졸았었다. 강다니엘이 못 본 줄 알았는데. 갑자기 화끈거리는 기분에 커피를 낚아채듯 잡자 강다니엘이 카페 모카에요. 하며 말을 덧붙이곤 자리에 앉았다.




" 잠도 깨고 달달한거 마시면서 기분도 좋아지고. "

" ...고마워. "

" 뭘요. "




그래도 고맙다는 소리는 해야할 것 같아 나지막하게 말하자 강다니엘이 뭘요, 하며 냉큼 대답했다. 강다니엘이 건넨 커피를 입에 물자 내가 만들었던 커피보다는 덜 단, 적당히 달달한 커피가 혀를 타고 느껴졌다. 새삼 내가 그 때 커피를 잘 못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웠다.




" 그래도 누나가 만든게 더 맛있네요. "

" ...미안. 그 때 내가 너무 달게 해서... "

" 아니에요. 저 단거 짱 좋아하거든요. "




강다니엘이 그러게 말하며 나를 보고 웃었다. 순간 속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느껴졌다. 뭔가 찌르르 하는게, 느낌이 묘했다. 고개를 돌려 노트를 펴고 다시 커피를 입에 물었다. 달달한 커피가 느껴졌다. 심장이 조금씩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커피 때문에 그런거라 생각했다. 숨을 고르고 커피를 내려놓자 강다니엘이 내려놓기 무섭게 내게 말을 걸었다.




" 누나 근데 언제언제 카페 알바해요? 다음에 가면 서비스 좀 줘요. 내가 이렇게 커피도 사왔으니까. "

" ...나도 일 한 지가 얼마 안 돼서. "

" 나중에 쫌 더 짬차면 그 때 서비스 줘요. 자주 갈테니까. "

" 그래... "




선. 내가 항상 몇 안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선을 그은 적이 있었다. 강다니엘에게도 그 선을 그었고, 어쩌면 호의를 보이는 상대가 불쾌할 수도 있는 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티없이 맑게 웃어주는 강다니엘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이상했다. 내가 그어놓은 선을 헤쳐놓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강다니엘을 많이 찾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 입으로도 말했지만, 옆에 있으니 알 수 밖에 없었다. 강다니엘은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 음울하고, 음침한 내게도 환한 미소를 보여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 아 참, 누나 이번 학기에 전공 뭐뭐 들어요? 생각해보니까 누나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

" 나? 나는... 어... "




내가 그은 이 선. 강다니엘에게 그은 이 선이 어쩌면 아주 조금은 무너질 수도 있겠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원인 모를 뒤틀거림과 그와 대비되게도 자꾸만 피식피식새어나오는 웃음이 그 문장을 증명하는 듯 했다.













" 과제, 같이 해요. "




수업이 끝나기 전, 교수님이 공지한 과제가 있었다. 교수님이 쓴 논문 20장을 5장으로 요약하는 과제였다. 교수님 딴에는 배려한답시고 2인 1조의 팀과제로 묶어줬지만 내게 그런 제안이 반가울 리가 없었다. 웅성거림을 교수님도 느꼈는지 혼자하는게 편하면 혼자 내도 됩니다. 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 말에 당연히 고개를 끄덕이며 짐을 싼 나였다. 혼자해야지. 늘 그렇듯 혼자가 편했다. 그런데 가방을 다 싸고 일어날 때, 강다니엘이 안부인사를 하듯 아무렇지 않게 내게 말을 툭 뱉었다. 과제를 같이 하자고.




" 혼자 할거였어요, 혹시? "




강다니엘이 아차 싶은 표정으로 내게 묻고 내가 한참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어쩌면 속에서는 강다니엘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강다니엘이 내 끄덕임에 아. 하고 짧게 말을 뱉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졸지에 내가 강다니엘을 올려다보게 되었다.




" 나 프리라이더 안 하고 잘 할 자신 있는데. 20장은 너무 많잖아요. 인간적으로. "

" ... "

" 아, 근데 누나가 뭐 정 혼자 하고 싶으면 굳이 같이 안 해도 되구요. "




강다니엘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 대답을 기다리는 똥강아지 마냥 초롱초롱한 모습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오고야 말았다. 그런 모습에 강다니엘이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 뭐야, 왜 웃어요? 하고 싶다는 뜻으로 받아 들여도 되는거? "

" ...어..아...아니, 그게. "




차마 네가 귀여워서 웃었어. 라고 말을 하지 못해 더듬거리자 강다니엘이 씩 웃으며 같이 해요, 그냥. 누나도 혼자 하면 힘들잖아요. 하고 내게 자신의 뜻을 밀어붙였다. 휩쓸리듯 나도 어어, 하고 대답하고야 말았다. 어쩌면 그게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일지도 몰랐다. 그 말을 하고 담배를 필 때처럼 마음이 뻥 뚫렸으니까. 어쩔 줄 몰라하는 내 앞에 강다니엘이 자신의 폰을 건넸다.




" 번호 줘요. 연락해야죠. 과제 하려면. "




강다니엘이 눈썹을 들썩이며 내게 말하고 내가 머뭇거리며 폰을 받아들였다. 번호를 누르고 강다니엘에 휴대폰을 건네자 다니엘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우웅, 내 폰에 진동이 울리고 모르는 휴대폰 번호가 액정에 떴다.




" 저장해요. 누나. 연락할테니까. "

" ...어, 알았어. "

" 다음에 봐요. "




다니엘이 꾸벅 고개를 숙이고 강의실을 먼저 빠져나갔다. 싱숭생숭한 기분이 들었다. 부재중전화 목록에 들어가 강다니엘의 번호를 저장했다. [강다니엘] 맨 위에 뜨는 전화번호부의 이름이 왠지 모르게 낯설었다. 몇 명 없는 휴대폰 전화번호부에 몇 십명은 더 생긴 기분이 들었다. 강다니엘은 내게 한 명분이 아니라 여러명 분의 역할을 해내는 사람 같았다. 저 성격이 부러웠고, 좋았다. 처음에 느꼈던 적대감과 낯섬은 온데간데 없어진지 오래였다. 이상하게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선이, 무너지고 있다는걸 자각하지 못하는 나였다.












" 너 일부러 여기 오는거지. "




오늘도 과자와 음료수를 한 아름 싸들고 온 김재환을 보며 바코드를 찍었다. 김재환이 늘 그렇듯 생글생글 웃으며 이왕이면 아는 사람 있는 데 오는게 낫잖아. 하며 넉살좋게 답했다.




" 야, 그리고 저기 저것 좀 줘봐봐. "

" ...저거? "




김재환이 손끝으로 가리키는 쪽으로 돌아보자 담배가 한아름 보였다. 이름 말해봐. 내가 바코드를 다시 찍으며 말하자 김재환이 큼, 하고 헛기침을 하며 아, 니가 피는 걸로 하나 줘봐. 하며 답했다. 바코드를 다 찍고 익숙하게 내가 피는 종류를 꺼냈다.




" 이것까지 하면 만오천ㅅ... "

" 왜 사는지 안 물어보냐? 비흡연자가 담배를 사는데. "

" ...너도 성인이잖아. 성인이 담배 사가는데 무슨 문제야. "




내가 그렇게 말하고 김재환이 건넨 카드를 긁자 김재환이 에휴, 무슨 말을 못해요. 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이런 니가 무슨 매력이 있다고 아직까지 친구를 하는지 원. 김재환이 흘러내리는 기타를 다시 메고 내가 꺼낸 봉지에 자신의 과자와 음료수를 담기 시작했다. 




" 담배는? "




담배는 빼고 담기에 물으니 김재환이 인상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곤 내게 담배를 건넸다. 이거, 니꺼.




" ...내꺼? "

" 어. 허구한 날 담배 펴대니까 음료수 하나 주는 것보다 담배 하나 주는게 나을 것 같아서. 왜? "

" ... "

" 내가 피지 말라고 해도 필거니까 그냥 너 폐 썩어 문드러져도 좋아하는거 하라고. 그게 니 재미라며. "




김재환이 그 말을 하곤 검은 비닐봉지를 뒤적이다 홍삼 음료를 꺼내 내게 건넸다. 병주고 약주고, 이럴 때 쓰는 말 아니겠냐? 하고 킥킥 웃는 김재환을 보며 픽 웃자 김재환이 숨을 크게 내뱉었다. 나 간다, 친구야. 열일해라. 김재환이 한 손을 들어보이곤 다시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넣었다. 김재환이 놓고간 홍삼음료와 담배가 이렇게 이질적으로 보일 수가 없었다. 김재환다운 발상이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다시 새어나왔다.














강다니엘

누나!

저장했어요?

ㅋㅋㅋㅋㅋ

저 다니엘이요




알바가 끝난 새벽이 돼서 휴대폰을 켜자 보이는 것은 낯선 카톡이었다. 엄마와 강다니엘, 두 사람의 카톡이 나란히 보이는데 담배와 홍삼처럼 이질적으로 보였다. 강다니엘의 톡을 먼저 누르자 자기 성격다운 카톡을 보낸 게 티가 났다. 뭐라 할지 몰라 화면이 어두워질 때까지 한참을 보고 있다가 톡톡 액정을 눌렀다.




저장했어




내가 보냈지만 참 나다운 카톡이라 생각했다. 사람과의 관계가 익숙치 않은 나였다. 김재환에게 시덥지않게 대꾸를 하던 버릇이 이렇게 자연스러워질 수 있다니. 강다니엘에게 조금은 미안했다. 나와 다르게 따뜻하고 기분 좋은 에너지를 뽐내는 그 애에게.




강다니엘

ㅋㅋㅋㅋㅋㅋ

저장해서 다행이다

안 한 줄 알고

카톡했어요!

아참 누나

우리 과제 언제부터 시작할까요??




금세 1이 사라지고 답장이 온 톡을 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게 되었다. 알바를 끝나고 천천히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서는 늘 멈춰서 담배를 피곤 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은 뭐라 답할지, 무슨 얘기를 해야할지만 온통 머릿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제출이 2주 뒤니까 빨리하는게 좋을 것 같아

각자 해서 내는게


강다니엘

논문 찾아봤어요 누나? ㅠㅠ

완전 어렵던데 ㅜㅜㅜ

날 잡고 하루는 같이 정리하는게 좋을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

각자하자고 할려고 했구나 누나는...


아...

그게 아니고...

그래 그러면 하루는 같이 정리하자




같이. 같이라는 말을 해본지가 얼마나 됐더라.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이상한 노릇이었다. 후덥지근한 날씨인데 마음까지 더운게 참 이상한 노릇이었다. 강다니엘은 카톡으로 하는 대화마저도 다정했고, 따뜻했다. 김재환과 오버랩되다가도 다른 느낌이 들었다. 벽을 치는 나에게, 선을 긋는 나에게 이렇게 스미듯 들어오다 보면 언젠가 나도 강다니엘처럼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착각이 들게 할 만큼.













" 어. 너 오늘 알바였어? "




어서오세요, 라고 말하기도 잠시. 자리를 안내해주라는 사장님의 말에 네, 하고 짧게 대답하며 고개를 들자 눈이 마주친 건 김재환이었다. 학교 앞 술집이니 술 좋아하는 김재환을 만나는건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그 전에는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지만 말이다. 약간은 당황스러운 눈으로 김재환을 보자 김재환도 황당한 듯 내게 되물었다. 김재환의 뒤에 서있던 남자 두명이 서로를 툭치며 눈짓을 하는게 보였다. 누구냐는거겠지.




" ...어. 자리 안내해줄게. "




대타로 나온 날이었다. 같이 일하는 언니가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에 걸려 꼼짝도 못한다기에 마침 편의점 알바도 안하는 날이겠다 싶어 흔쾌히 대타를 해주기로 했던 나였다. 그런데 하필 오늘 여기서 김재환을 만날게 뭐야. 문득 일년전, 갓 스무살이 되었을 때 들었던 생각이 떠올랐다. 스무살이 된 첫날 친구들과 모여 술을 마신 김재환과 알바를 하고 있던 나를 비교하던 내 모습이 떠오르자 헛웃음이 나왔다.




" 여기요. "




김재환과 친구들을 자리로 안내해주고 메뉴판을 건넸다. 김재환이 눈이 휘게 웃으며 여긴 뭐가 맛있냐? 하고 내게 물었다. 내가 미간을 좁히자 김재환이 그제서야 친구들의 눈치를 보더니 내게서 시선을 거뒀다. 내가 가고나면 김재환한테 묻겠지. 쟤는 누구냐고, 친구냐고.


친구. 김재환과 내가 과연 친구일까? 어쩌면 나는 김재환을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해 온 사이가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뒷골목에서 담배를 피다 엉엉 울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냐, 그 때 못난 마음 다 뱉었잖아. 후아, 크게 숨을 내쉬었다. 김재환말고도 손님이 꽤나 많았다. 그래, 일 생각만 하자. 일 생각만.











" 후우- 하. "




담배를 깊이 빨았다가 뱉었다. 맨 처음 담배 폈을 때는 뭣도 모르고 훅 빨았다가 기침만 잔뜩 했었는데, 이제는 세번째 손가락 굳은살에 담배냄새가 배길 정도로 능숙해진 내 모습이 조금은 처량했다. 내게 주는 사치, 내게 허락된 자유, 내게 허락된 공간. 쪼그려 앉아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나를 감싸고, 이게 9월인가 싶을 정도로 습한 날씨가 불쾌하게 나를 반겼다. 골목과 골목 사이, 세 보폭 정도 될까 싶은 그 틈에서 반짝거리는 거리와 북적거리며 무리 지어다니는 사람들을 보니 저 사람들과 내 세상이 확실히 다르구나. 여기가 내 자리구나 싶어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담배를 필 때만큼은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었는데, 요즘 들어 참 희한하게 담배를 필수록 솔직해 지는게 이제 진짜 끊어야 될 때가 온건가, 싶었다. 숨을 내뱉자 하얀 공기가 뿌옇게 피어올랐다가 금세 사라졌다. 의미 없이 담배를 피우다 보니 어느새 한 갑이 다 비워져있었다. 아직 쉬는시간 10분 남았으니까 편의점이나 갔다와야겠다.




" 에체 하나 주세요. "




알바하는 술집 근처 편의점으로 들어가 지갑을 꺼내며 말했다. 얼마입니다, 하고 말하는 알바생에게 돈을 건네고 금방 밖으로 나왔다. 서늘한 편의점 공기와 다르게 꿉꿉한 공기가 훅 느껴졌지만 그런 것쯤은 별 상관 없었다. 편의점 앞이 으슥하니 사람도 없는데 여기서 한 대 더 태울까 싶어 방금 산 담배를 뜯고 있을 때였다.




" 야, 알바 땡땡이 치고 뭐하냐? "




아. 김재환. 내가 눈살을 찌푸리며 입에 문 담배를 내리자 김재환이 그런 날 흘긋 보고는 피울거면 피워, 나 편의점 가려고 온거니까. 하고 중얼거렸다. 딸랑, 하는 종소리가 들리고 김재환이 들어가고 나서야 다시 입에 담배를 물었다. 항상 넣어놓는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고 담배를 깊게 빨았다. 1분은 지났을까, 여전히 담배를 피고 있는 나와 까만 비닐봉지를 들고 나오는 김재환의 눈이 마주쳤다. 김재환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편의점 앞에 마련된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껐다.




" 그냥 계속 피지. 괜찮은데 난. "

" 니가 맨날 골초라면서 담배 냄새만 맡아도 눈살 찌푸리잖아. "

" ...알바는? "




내 대답에 김재환이 히죽 웃더니 알바는? 하고 내게 물었다. 술냄새가 확 풍겼다. 정확히 말하면 알싸한 알콜향이. 내가 눈살을 찌푸리며 김재환을 쳐다보자 김재환의 두 볼이 빨개져있었다. 담배 피고 난 뒤에 날 보는 김재환의 눈빛이 이해가 갔다. 냄새만으로도 머리가 이렇게 아픈데.




" 지금 쉬는시간이야. 담배 없어서 사러 왔어. "

" 어쩐지. 아까부터 너 안 보인다 했더니. "

" ... "

" 아까 걔네 우리 과동기 애들이야. 걔네도 재수 했거든. "

" 안 물었어. "

" 치이... 그냥 좀 궁금해 해주면 덧나냐. 그래도 같은 관데. "




남한테 관심가질만큼 그런 여유 있는 사람 아니거든. 이라고 말하려다 문득 강다니엘이 떠올랐다. 따지고 보면 강다니엘도 나와 별 상관이 없는 사람인데. 그냥 같은 과 동기에 수업 하나 같이 듣는 그 정도 사인데. 그런 생각을 방해한 건 내 옆에서 숨을 푹푹 내쉬며 술냄새를 풍기는 김재환이었다. 미간을 좁히며 적당히 좀 마시지. 하고 말하자 김재환이 다시 히죽 웃었다. 그러더니 비닐봉지를 뒤적거려 내게 초코우유를 건넸다.




" 술 깨는데 좋거든. 초코우유가. "

" 난 술 안 마셨어. "

" 맛있잖아. 그냥 마시라고. "

" ...넌 맨날 편의점에서 왜 내 것까지 사냐. "




잘 마실게. 내가 그렇게 말하고 초코우유를 받아들자 김재환이 다시 헤실헤실 웃더니 그러게나 말이다. 하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 그냥 너 보면 뭐라도 하나 주고 싶은 친구의 맘이랄까... "

" ... "

" 동정, 연민. 그런 같잖은 감정은 아니고. "




김재환이 그 말을 하며 킥킥 웃었다. 취했네. 김재환과 술을 한 번도 마셔보지 않은 나였지만, 김재환이 취했다는 것 쯤은 알 수 있었다. 후덥지근한 바람을 타고 김재환의 술냄새가 다시금 풍겨왔다.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 야. 몸에 좋지도 않은 담배 필거면 차라리 술을 마셔. 담배보단 술이 덜 해롭다더라. "

" 그거나 이거나... "

" 너 그거 아냐? "




투덜거리듯 내가 중얼거리며 김재환이 건넨 초코우유를 한 모금 마시자 김재환이 툭하고 말을 뱉었다. 후웁, 하고 숨을 크게 들이쉬며 뱉는 김재환의 숨에서 소주 냄새가 풍겼다.




" 너 디게 신기해. "

" 내가 뭘. "

" 아까 걔네가 묻더라고. 너 누구냐고. 친구라 그랬지. 그러니까 우리 학교냐더라. 그래서 우리학교에 우리 과동기라고, 심지어 나랑 같은 고등학교도 나온 친구라 그랬지. "




숨도 안 쉬고 말하는 김재환은 내가 말할 틈도 주지 않았다. 물론 김재환이 말하는 와중에 끼어들 생각은 없었지만.




" 처음 보는 얼굴이라고 그러더라. 과생활 안 한다고 답해줬지. 걔네가 그러면 서비스를 달라고 해보래. 고등학교 때 친군데 심지어 과동기면 얼마나 친하겠냐면서. "




김재환이 그 말을 끝으로 깊게 한숨을 내쉬고는 초코우유를 먹다 말고 가만히 김재환의 얘기를 듣고 있던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나도 덩달아 김재환을 쳐다보자 김재환이 특유의 눈꼬리가 휘는 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 근데 못하겠다 그랬지. 한번도 너한테 그런 부탁 해 본 적도 없고 받은 적도 없었으니까. "

" ...달라고 해도 못 줘. "

" 지금 그 말을 하자는게 아닌데. "




김재환이 푸흐, 하고 웃음을 뱉으며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넣은 채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 이거 봐라, 또. 너 나한테 자꾸 벽 치는거. "




김재환을 따라 일어서자 김재환이 기다렸다는 듯 내게 말했다. 아까와는 조금 다른 진지해보이는 표정으로. 순간 김재환의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김재환도 몇 년간 나와 지내며 느꼈겠지. 내가 딱히 사람들이랑 교류하지 않는다는걸.




" 깊어지질 않아. 깊어지지가. 신기하다니까. 이 정도 알고 지냈는데. "

"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지금까지 이렇게 잘 지냈으면 된거 아냐? "




반 쯤은 날이 선 듯, 또 반 쯤은 원래 그랬듯. 김재환에게 툭 뱉듯 말하자 김재환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 그냥 쫌 슬퍼서. 알고 지낸지 이만큼이나 됐는데, 나만 너랑 친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 그래서. "

" ... "

" 아, 몰라. 술김에 하는 말이니까 그냥 잊어라. "




김재환이 손을 휘휘 저으며 먼저 걸어나갔다. 김재환이 내게 말한 것들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다. 내가 그은 선, 내가 친 벽. 김재환이 느끼지 못했을리가 없다. 하지만 내게는 누군가를 마음에 들여 그 사람을 생각하고, 떠올릴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습관처럼 온 몸에 배여있었다. 사람과의 관계를 잘 맺어오지 못한 내가 지금 이렇게 김재환이 섭섭하다고 말한다고 해서 한순간에 바뀔 수는 없다는 말이다.




" 이게 최선이야. "




김재환 옆에 나란히 서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섭섭해하는 김재환을 나름대로 달래자고 한 말이었다. 김재환이 그 말 뜻을 이해했는지는 몰라도 픽 웃으며 검은 비닐봉지를 뒤적거리더니 소세지 하나를 꺼냈다. 최선을 다해줘서 고맙네. 김재환이 장난조로 말했다.




" 얼른 가자. 십분 다 돼간다. "

" ....그래. 이건 잘 먹을게. "

" 오오냐. "




김재환의 솔직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마음을 솔직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눈치 빠른 김재환이라면 어렴풋이 짐작이나 하지 않을까. 이렇게 여유가 없이 사는 나를 보며 내가 어떤 상황일지. 아니, 오히려 그렇게 알아버린다면 언젠가 마음 한 구석에 있는 이 못난 감정도 들킬게 뻔했다. 그런 마음은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 하나를 달래기도, 넘어진 나 하나를 일으켜세우기도 너무 벅찼으니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안뇽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1편보다 좀 더 긴 것 같은데..!!!

3편도 얼른 데리고 오겠습니다

읽어주시는 독자분들 댓글남겨주시는 독자분들 넘넘 사랑해용...하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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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재환이 넘 짠하네요ㅠㅠㅠㅠㅠㅠㅠ 여주가 벽 그만 치고 재환이랑 더 친하게 지내줬으면.. 재환이가 다니엘이랑 여주 사이 알면 되게 질투 할 거 같아요 ㅋㅋㅋㅋ 글 잘 읽었습니다!!
5년 전
독자2
ㅠㅠ 여주 성격 묘사도 그렇고 재환이랑 다니엘이 서로 다르게 접근하는 것도 그렇고 너무 최고에오 ㅠㅠㅠㅠ
5년 전
비회원26.112
작가님 정말 이 글 너무 좋아서 어떡하죠? 오늘 처음 읽었는데 비회원임에도 불구하고 막 댓글 작성하고 있어요 정말 이렇게 좋은 글을 읽어서 기뻐요 작가님 응원할게요 감사합니다 회원가입하고 싶은 욕구가 막 들어요ㅠㅠㅠㅠ
5년 전
독자3
여주는 다니엘에게 이미 벽이 많이 무너져내린것 같아요 재환이에게도 마음을 좀 더 열어줬으면ㅠㅠ 사람이 사람들하고 어울리면서 살아야지 혼자는 힘든데.. 여주 넘 안쓰러워요ㅠㅠ
5년 전
독자4
진짜 나이만 조금 더 어렸으면 여주를 공감 못했을것 같은데 나이가 많아 지니까 현실을 아니 공감되요...그래도 어린 친구들이 담배는 안폈으면 좋겠엉ᆢㄷㅠㅠㅠㅠ
5년 전
독자5
으아ㅜㅜㅜㅜㅜ 여주가 너무 불쌍해요ㅠㅠㅠ흑흑
행복해야 돼..ㅠㅠㅠ

5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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