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국 - 봄 타나봐(BOMTANABA) (Inst.)
"야 한상혁. 너 수학 숙제 다 했냐?"
"야한상혁이라고 붙여서 말하지 말해줄래? 이상한 생각 들거든"
"이 병신이"
너빚쟁은 고등학교 3학년 꽃다운 19살이야.
동네 공학에서 공부 잘한다는 소리 몇 번 들어본 나름대로 성실한 학생이지
옆에 앉아 있는 한상혁은 중학교 3학년 때 우연히 친해진 걸 계기로 지금까지 친하게 잘 지내고 있는 친구야.
보통은 전학을 잘 보내주지도 않는 중학교 3학년 겨울에 너빚쟁은 복잡한 이유로 이 동네로 이사를 왔어
남들은 이제 헤어짐을 준비해야 할 시기에 느닷없이 전학을 온 너빚쟁은 반에서 어정쩡한 존재가 되었어.
당시에는 조금 통통했던데다가 어딘가 음침한 구석이 있어서 반 친구들이 쉽게 다가오지 않았거든.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상혁이도 너빚쟁 반으로 전학을 왔어.
어딘가 너빚쟁하고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던 상혁이는 큰 키와 눈에 띄는 외모 덕분에
너빚쟁과는 달리 반 아이들의 관심을 많이 받았지만 상혁이가 가장 먼저 마음을 연 건 전학 온 그 날 짝이 된 너빚쟁이었어.
전학 온 첫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너빚쟁은 상혁이 같은 아파트에 얼마 전에 이사 온 애란 걸 알게 됐어
듣기로는 어린 학생이 혼자 산다고 했었는데 그게 상혁이일줄 몰랐던거야.
그래서 그 후에 상혁이는 종종 너빚쟁 집에서 같이 밥을 먹기도 했어.
그렇게 낯선 이방인이 된 두 사람은 서로를 챙겨주면서 함께 하게 되었어.
그렇게 나름대로 설레게 시작했던 두 사람은
지금은 누가 보면 쌍둥이 남매라고 해도 무색할만큼 가깝다 못해 허물이 없어진 사이가 되었어.
게다가 우연인지 악연인지 비슷한 시기에 같은 반으로 전학을 왔던 것도 모자라서
고등학교 삼년 내내 끈질기게 같은 반이 되어서 본의아니게 붙어있게 되어버렸어.
그래도 너빚쟁은 상혁이랑 같이 있으면서 도움을 받은게 몇가지 있었어.
중3때 전학 온 후에 너빚쟁은 다이어트의 필요성을 느꼈는데 그 때 옆에서 같이 공원을 달려준 것도 상혁이었고
집으로 오면 곤란한 것들을, 예를 들면 몇십장 묶음으로 사버린 빅스 앨범이라던가 앨범이라던가, 자신의 집에 숨겨준 것도 상혁이었고
그리고 지금.
전교 1등 상혁이에게 공부 도움... 이 아니라 책을 빌려 숙제를 베끼는 이 순간도 상혁이는 너빚쟁을 여러모로 도와주고 있었어.
물론 그렇다고 해서 상혁이가 마냥 착하기만 해서 물심양면 도와준 건 아니었어.
"오늘은 떡볶이 콜?"
"콜!"
오늘은 학원을 가는 날이라 종례가 끝나자마자 학교를 나선 두 사람은 학원 근처 떡볶이 집으로 향했어.
긴 수업을 듣기 전에 간단하게 요기로 배를 채울 생각이었어.
그리고 계산은 당연히
"아까 내 책 베꼈으니까 너가 계산하는 거지?"
"아 한상혁 진심 쪼잔해"
너빚쟁이었지.
배부르게 떡튀순 야무지게 먹고 나온 두 사람은 물로 입을 오물오물 헹구면서 학원으로 향했어.
그리고 그 순간
"소매치기야!"
하는 소리가 들렸고 언제나 정의라면 엎드려 자다가도 번쩍 고개를 드는 경찰지망생 한상혁은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갔지. 아 한상혁 같이가! 라고 너빚쟁은 소리쳐 불러보지만
그 소리가 상혁이에게 들릴 리가 없었고 결국 너빚쟁도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갔어.
"고마워요 학생. 정말 고마워요"
"에이. 옆에 있는 경찰아저씨가 잡은 거죠"
숨을 헐떡이면서 달려 간 골목 끝에서는 고맙다는 듯이 연신 인사를 하는 한 아주머니가 계셨고
그 맞은 편에는 누구보다도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얼굴을 하면서도 괜찮다고 말하는 한상혁이 있었어.
"몸 조심하랬잖아! 다친데는 없어?"
여기서도 잘난척하네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너빚쟁은
상혁이에게 달려가 어디 다친데 없나 몸을 돌려 확인하면서 상혁의 등짝을 팡팡 때렸어.
예전에도 이렇게 나서서 돕다가 자잘하게 다친 적이 몇 번 있어서 더 걱정이 되는 너빚쟁이야.
"학생 덕분에 잡은거지. 정말 고마워요. 여기 근처 고등학교 다녀요?"
골목 반대편에서 낯선 저음의 목소리가 들렸어. 그 목소리가 매력적으로 느껴진 너빚쟁은 고개를 돌려서
그 쪽을 바라봤어. 그 사람은 범인에게 수갑을 채우고 손을 털면서 몸을 일으켰어.
세상에. 무슨 경찰이 저렇게 멋있어? 아니 경찰이라 멋있는건가?
그 경찰은 뒤에 따라오는 경찰차에 범인을 싣고 너빚쟁과 상혁이 쪽으로 다가와서 상혁이에게 손을 내밀었어.
덕분에 고맙다며 상혁이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그 목소리도
너무 멋있어.
너무 멋있어서 너빚쟁은 그 사람을 멍하고 바라봤어.
한참을 상혁이와 이야기를 나누던 경찰은 상혁이에게 인사를 하고 옆에 멍하니 서있는 너빚쟁을 보면서
여자친구야? 귀엽네.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고 돌아서서 경찰차로 올라탔어.
머리 위로 느껴진 감촉에 놀라 멍하니 있다가 여자친구 아닌데... 라는 말을 했을 때 이미 경찰차는 멀어져 보이지 않았어.
"야, 나 표창장 받는 다니까? 야 이빚쟁!"
옆에서 상혁이가 뭐라고 하는 것 같기는 한데 너빚쟁에게는 들리지 않았어.
여자친구야? 귀엽네. 친구야? 귀엽네. 귀엽네. 귀엽네. 귀엽네.
그 사람의 목소리만 계속 맴돌았어. 이름이라도 물어볼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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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은 언제나처럼 새 글이 시작됐으니 새로 받을게요 ㅠㅅㅠ
이 글이 독자님 취향 탕탕 저격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