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찬열] 사신밀담 05(부제 : 잘못된 만남)찬열은 현재 격하게 팩소주를 빨고 싶어졌다. 야구장에 갈 때나 한번씩 빤다는 그 팩소주를 말이다.그리고 소맥을 섞어서 한 다섯 잔 정도 마시고 막걸리를 반 병 정도 마신다면 속이 좀 풀릴 것 같았다. 사실, 찬열은 꽤 술을 잘했다. 술만이 나의 낙, 인생의 낙 운운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지만 사실 술이라던가 하는 유흥거리를 좋아하긴 했다. 담배는 철없던 시절 잠깐 하다가 냄새가 역해서 끊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담배마저도 고플 지경이다. 그만큼 속이 꼬였다. 제일 이상한 건, 답답하고 귀찮지만 싫다는 않았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이 밤에 이러고 있는 게 좀 불쌍하고 안쓰럽기도 했다.이런 까진 새끼를, 그것도 술이 떡이 되서 널부러진 놈을 왜?아마도 그것은 찬열의 본능이라고 독자들은 생각할 테지만 찬열은 그 이유를 타고난 자신의 오지랇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사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었다) 그래도 자칭 멀쩡한 성인 남자가 미짜가 술에 취해 헤롱대고 있는 꼴을 그냥 지나칠 수 없기도 하고. 아, 그나저나, 얘는 왜 이렇게 무거워?" 야, 니가 머리털 난 사람이면 이런 진상은 부리면 안되지.. "나름대로 연장자가 항의를 해보지만 씨알도 안 먹힌다. 당사자는 진짜 아예 맛이 가서 끌려가는 와중에도 잠을 자고 있었다.그것에 찬열이 다시 한숨을 쉬었다. 주머니를 뒤지니 민증도 뭣도 없어보였고 찜질방에 던져주기엔 찜질방 사람들이 너무 불쌍해서(사실 지갑과 소지품 등이 미자가 자는 새 털리지 않을까 걱정스러워서) 집으로 질질 끌고 가는 찬열이 무게에 낑낑댔다. 끝까지 운 한번 지지리게 없었다.그러니까 사건을 되짚어 보자면 이랬다.쫄딱 젖은 찬열에게 당황한 듯 보이는 여자가 서둘러 장소를 빠져나갔다. 또 다른 일행(불륜녀로 보이는)은 싫든 좋든 찬열이 틈을 벌어준 김에 일찌감치 도망치고 없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결국 찬열과 미자, 덩그러니 둘만 남았다. 찬열은 쫄딱 젖은 자신의 운을 저주하며 물수건으로 꼼꼼히 닦았지만, 여전히 저 지랄맞은 미자와 함께 있어서인지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곱지 않은 시선으로 쳐다보는 시선을 알기나 하는 건지, 풀린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미자가 영 아니꼬왔지만 한대 쥐어박을 생각 전에 일단 깨우기로 했다. 찬열은 나름 성의있게 미자의 몸을 흔들어 깨웠다. " 야, 싸가지. "" 아, 꺼져.. "" 일어나지? 술처먹고 쳐자는 정신나간 새끼가 제일 미친놈인거 몰라? "" 씨발.. 또 너냐?.. "" 헐 이게 어디서 반말이야, 꼬장 그만 부리고 못 일어나냐? "" 아 진짜 씨발 존나 지랄이야.. 왜 하필이면 여기로 와선 "와 씨발 진짜 쟤는 구제불능이다..찬열은 결국 그 말에 욱해서 미자를 발로 까려고 준비하며 서서히 그의 가까이로 다가갔다. 발로 까기만 할줄 아냐? 귓방맹이를 후려주겠다는 일념이 가득한 찬열은 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세며 그의 옆에서 서서히 준비를 했다. 이번에도 안 일어나면 진짜 귀싸대기를 때려버릴 것이다. 하나, 둘, 세.." 야 진짜 빨리 안 일어나면 너- "" ……. "" … 어? "대답이 없다.찬열은 당황한 얼굴로 미자의 멱살을 쥐고 짤짤 흔들었다. 그래도 안 일어난다. 귓방맹이를 후려도 안 일어난다! 진짜 잠들었다. 맙소사! 찬열은 급하게 미자의 주머니를 뒤졌다. 지갑이 있다! 털어보니 민증도 집 주거지도 안 나온다. 돈이랑 카드만 나온다. 아 진짜 이놈은 끝까지! 셔츠 주머니도 뒤져봤지만 역시 안 나온다. 설상가상 곧 퇴근시간이다. 퇴근을 앞두고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에이, 시발.. 찬열은 잠깐 고민했다. 과연 이 자식을 어떻게 해야 하나.." 저 퇴근할게요. "- 어, 그런데 그 남자앤 누구? 친구야?" … 그냥 좀 아는 사이요, 술이 떡이 되서 이러고 있길래 좀 데려가려고요. "징징이 넌 진짜 고마운 줄 알아라, 나같은 착한 사람이 집에 데려가서 재워준다는 것 자체가 너한텐 축복이야 축복.세상 모르게 자고 있는 미자를 째리는 찬열의 표정은 좋지 못했지만, 그것도 잠시 곧 무거워서 낑낑대는 소리만이 들렸다.하느님, 안 믿어서 뭐가 뭔지는 몰라도 진짜 너무 큰 시련을 주시네요.아침,종인이 부스스 눈을 떴다. 일어나자마자 밀려오는 두통에 작게 욕지기를 내뱉고 나서야 자신이 벗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씨발 뭐야? 그러고 보니 환경도 보통 모텔이나 호텔방이 아니다. 무슨 빌라 같은데, 누워있는 곳도 소파였다. 일어나자 달랑 속옷만 걸친 채 벗고 있는 꼴을 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아, 좆나.. 연신 욕을 해대는 종인의 뒤에서 쯧쯧대며 혀차는 소리가 들리더니 덥석 꿀물을 탄 그릇을 건네는 누군가가 보였다. 존나 오지랖도 넓은 여자다 싶어 고개를 들어보니 …씨발." 넌 말끝마다 욕이냐? 진짜 존나게 까졌네. "" 뭐? "" 여기 내 집이거든, 마시고 정신이나 차리시지? 싸가지가 진짜.. "" 어쩌라고.. "마음만 같아서는 어제처럼 종인의 멱살을 짤짤 흔들고 싶었지만 왠만해서는 비폭력주의자인 찬열은 꾹 참았다. 진짜 저런 자식이 내 형제, 친척, 친구였으면 진작 죽빵을 날렸을 텐데.. 데리고 갈 곳이 없어서 집에 데려다 놓긴 했지만 여전히 마음에는 정말 안 든다. 금방 샤워하고 감은 머리를 닦는 척 하면서 계속 종인을 째렸다. 그렇지만 그것을 못볼 만큼 종인은 미련하지 않았다. 꿀물을 마시다 찬열의 아니꼬운 표정을 본 종인도 (원래도 그랬지만) 표정이 더러워졌다." 존나 띠껍네, 꼽냐? "" 어, 꼽다. 니가 나 퇴근하려던 계획 다 망치셨거든요, 미자가 술 먹고 뻗어서 내가 뒷수습 다 해야 했거든? "" 그래서 어쩌라고. "" 와 씨발 이새끼가 진짜! 야! 어제 진짜 기억 안나냐? 네가 나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종인은 여전히 무표정으로 모르쇠만 일관할 뿐이었다. 찬열은 더 열불이 났다. 이따위 새끼를 내가 집안에 들였다니. 한편 종인은 종인대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제 일이 기억이 하나도 안 났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파트너(애인이 아니다, 파트너다)가 자신에게 집착하자 바로 관계를 단절한 뒤 룸잡고 마셨던 것까지는 기억하는데. 그 다음이 기억이 안 난다. 신나게 울리는 머릿속을 뒤로한 채 무심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는데, 그 한 마디는 그야말로 천하의 개쌍놈이나 할 발언이었다." 뭐, 자기라도 했냐? "" …뭐? "" 존나 기집애처럼 떽떽거리네, 내가 그쪽이랑 자기라도 했냐고. "" 씨발 미쳤냐?! 내가 왜 너랑 자? "" 아니면 된 거고. "" 야.. "" 뭐. "" 몇 살이나 먹었는데 반말을 찍찍 해대냐? 나 스물하나거든? 너 진짜 싸가지 없다.. "" 존나 오지랖은... "" ...뭐? "" 됐고, 간다. "" …야! "띠꺼운 표정으로 돌아본 미자에게 했던 말은 호구 인증이나 다름 없었다.밥 먹고 가,..........찬열은 학창시절에도 자타공인 오지라퍼였다.미자는 의외로 조용했다. 밥을 줘서 그런지 몰라도 어쨌건 그랬다. 단지 밥을 먹고 가라는 자신의 말에 이뭐병.. 식의 표정으로 쳐다본 것이 다일 뿐이었다. 나도 나 호구인거 내가 알거든? 너무 공개적으로 그러지 말아줄래. 찬열은 이내 제 자신이 슬퍼졌다. 자신이 봐도 호구같았다. 때려도 시원찮을 놈한테 밥까지 차려주다니 나 진짜 전생에 무슨 신이었나 봐. 조용히 복숭아를 깎는 자신을 존나 이상하게 바라보는 저 미자의 표정은 여전히 이뭐병..이다. 다 깎은 복숭아를 내놓자 삐뚜름하게(찬열은 과일을 잘 못 깎았다) 잘려진 과일이 우스운지 과일이 뭐 저러냐고 물어오는 미자한테 그냥 닥치고 먹으라고 하며 포크를 내놓았다. 복숭아를 입에 넣으며 찬열이 첫번째 질문을 했다." 이름. "" 뭐하냐? "" 숙식 제공해줬잖아, 이름은 말해주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 ……김종인. "" 어, 좋아. 난 박찬열, 나이는? "" ,,,,,19. "" 허얼.. 좆고딩이 나한테 반말 찍찍 해대면서 술빨고 담배 피고 다녔냐? 이거 진짜 까졌네.. "" 빠른인데. "" 어? "" 빠른이라고, 못 듣냐? "" 그래도 미성년자잖아! 야, 원래 미성년자는 그러면 안되는거야. 불법도 모르냐? "" ……. "" 그래, 나이트는 잘 뚫어주든? 민증 조작했냐? "" 잘만 들여보내주던데. "이 까진 미자, 아니 김종인을 욕할 게 아니라 나이트를 욕해야겠네.아까보단 확실히 밥을 먹여서 그런가 좀 순해진 까진놈은 꽤나 수사에 협조적이라서, 찬열은 싸가지 이미지를 조금 덜어냈다. 두번째 복숭아를 입에 넣었다. 종인이 복숭아 맛이 뭔가 좀 이상하다고 했으나 그냥 먹으라고 하자 군소리 없이 먹었다. 사실 원래부터 복숭아 맛이 조금 이상하긴 했다. 복숭아가 이상하게 엄청 달아서.. 터키산인가? 터키산은 이렇다던데. 복숭아를 씹던 찬열이 제일 묻고싶은 질문을 종인에게 했다. 수사의 주목적이었다." 너 부모님은 안 계시냐? 안 걱정하셔? "" …뭘. "" 부모님 계실거 아냐, 아들이 이렇게 외박하고 술마시고 이러면 어떻게 생각하시겠냐. "" 없는데. "" 뭐. "" 없다고. "간단하고 명쾌하게 패드립을 저지르는 종인의 패기는 디씨인 못지 않았으나 찬열은 종인의 그 말에 적잖이 당황했다. 오지라퍼의 머릿속에 또 다시 잡생각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설마 어린 시절 부모님을 잃은 상처로 망가져서 비행을 일삼으며 이렇게…. 아주 소설을 써대는 찬열은 오지라퍼답게 다시 종인이 측은해졌다. 좀 철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안되긴 했다. 찬열은 솔선수범해서 어른인 자신이 종인을 도와주기로 결심했다. 정말 오지라퍼다운 결정이었다. 눈을 반짝이며 빛내는 찬열을 보는 종인의 표정은 아직까지 이뭐병이었지만." 앞으로 술 마시면 나한테 와. "" 미쳤냐? "" 안 마실 순 없을 거 아냐, 모텔 같은데서 잘 바에야 이쪽으로 오면 되잖아. "" 오지랖도 가지가지다.. "" 야, 걱정해주는 거거든? "" 됐거든. "종인이 무심하게 대꾸하며 찬열의 손에 끼워진 반지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자신의 약지에 끼워진 것과 같은 반지다. 그러고 보니까 이전처럼 찬열에게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야, 손 줘봐. 종인이 재촉했다. 의아한 표정의 찬열이 순순히 손을 내밀자 종인이 반지를 쑥 뺐다. 곧바로 기운이 형형하게 쏟아졌다. 이전보다 훨씬 강한 기운이다. 악한 부류의 것은 아니지만 이것, 꽤 묘하면서도 강하다. 악귀와 괴물들이 노릴 만한 영혼이다. 이 반지는 아무래도 각성한 기운을 막는 무언가인 모양이다. 보아하니 기는 상당히 약한 편이다.이것으로도 부족할 것 같은데, 종인이 반지에 제 양기를 조금 더 불어넣었다. 찬열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그것을 그저 보고만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다. 다시 반지를 끼워준 종인이 무표정으로 찬열을 바라보다 일어섰다. 종인이 찬열에게 무언가를 던졌고, 그것은 정확히 찬열의 손바닥에 착지했다. 자세히 보자, 그것은 몇 개의 부적이었다." 이게 뭔데? "" 몸 조심하고 다녀라. "" 어? "" 언제 미친놈들이 너한테 지랄하고 다닐 지 모르니까. "" 뭐래.. "도통 제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의 찬열을 보던 종인이 어깨를 으쓱하다 빌라의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자세히 보니까 빌라에 결계가 있다. 미세하지만 어떤 악한 존재도 쉽게 드나들 수 없을 만큼 강한 기운으로. 선귀仙鬼중 하나인가? 신선이라기에는 심하게 젊은데, 알 수 없다는 얼굴을 한 종인이 조금 약해진 결계를 조금 더 단단하게 굳혔다. 그리고, 그 새 안으로 침입한 조무래기들을 간단히 없애버렸다. 태산에서 자취를 감춘 10년 전부터 그는 인간계의 귀鬼들을 감시하며 퇴치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기에 그것은 몹시도 쉬운 일이었다. 제 기운에 눌려 바로 형체가 붕괴되는 조무래기들을 보아서는 찬열은 꽤 중요한 존재인 것 같았다. 실은 그럼에도, 실질적으로 찬열을 지켜주어야 할 의무가 없었다. 그저 그냥 두고 가도 되었던 것이었다. 그런데도 제 몫의 부적을 주고 힘을 불어넣은 자신에게 종인은 스스로 의문했다.내가 왜?그러나, 알 수가 없다.태산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10년 간의 유예기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그런 종인에게 나타난 뜻밖의 존재에 심경이 복잡해졌다. 박찬열, 종인이 그 이름을 속내에서 곱씹었다.자신이 어째서 그를 구하려 했을까?종인은 그 주위를 벗어나고 나서도 한동안 의아한 심경에 빠져 있었다.이상하게, 낯이 익다.그 생김새도, 특유의 분위기도.그러면서도 새로운 것이, 여태껏 만나본 사람이 아닌 것은 자명했다. 그런데 왜?생소하면서도 새롭고, 그러면서도 낯이 익다. 이상한 일이다.종인의 의문감은 한동안 계속 사라지지 않았다.그저 박찬열, 이름마저 묘한 그것을 곱씹기만 했다.+ㅎㅎ이제급..전개일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