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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공대생일 뿐이고.
교수님 세미나를 따라갔을 뿐이고.
한국에 없었을 뿐이고.
죄송할 뿐이고...
일단 글을 급히 업로드할 뿐이고.
지금도 정신이 없을 뿐이고.
(급히 사라진다.)
"백설공주를 발견한 난쟁이들은 그자리에 멈춰 놀란 탄성을 내뱉었습니다."
백현의 말에 민석이 눈치를 보다 크게 외쳤다.
"ㅇ..와! 얘들아 이것 좀 봐! 예..예쁜 여자가 울고 있어! 당신은 누구신가요?"
"흑흑..나는 백설공주에요. 나쁜 사람에게 쫒기고 있었어요."
"아니! 당신이 그 유명한 백설공주? 듣던대로 너무나 아름답군요! 저희와 함께 가실래요?"
"어머나..정말요? 감사합니다.."
민석이 억지 웃음으로 난쟁이1역할에 몰입할 동안 자리에 주저 앉아 가련한 백설공주를 연기하는 찬열을 떨떠름히 내려다보던 세훈과 준면은 대충 팔을 뻗어 찬열을 부축하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말이 난쟁이지 키가 184에 육박하는 오세훈과 그보다 더한 팀 내 최장신 박찬열 백설공주까지 일어서자 진짜로 난쟁이 역할에 충실하게 몸을 웅크리던 김민석과 김준면은 어색하게 백설공주를 올려다 봤다. 그 모습을 보던 변백현은 다시 해설을 이어갔다.
"그렇게 난쟁이들과 함께 살게 된 백설공주는 난쟁이들의 집안 일을 도우며 그들과 즐거운 생활을 했습니다. 빨래도 하고."
빨래도 하고. 말을 끊은 백현에 당황한 모두가 그를 쳐다봤지만 변백현은 요지부동으로 입을 다물고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연기 안하고 뭐해? 그제서야 백현의 의중을 눈치 챈 찬열이 대강 자리에 주저 앉아 민석이 재빨리 던져 준 걸레로 빨래하는 시늉을 했다.
"ㄹ..랄라라-즐거운 빨래-"
"설거지도 하고."
"음-룰루랄라-그릇도 깨끗이 씻어야지 음-"
"청소도 하고."
"아..저 씨발ㅅ...후...쓱싹쓱싹-난쟁이들이 돌아오기 전에 청소를 끝내자-랄라-"
실컷 박찬열을 농락한 변백현은 이제 경수에게 눈짓을 했다.
"같은 시간, 백설공주가 죽은 줄 안 왕비는 세상에서 누가 가장 아름다운지 거울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니?"
"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람은 도경수."
"..뭐?"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람은 도경수."
당황한 경수가 눈알을 굴릴 동안 민석은 눈을 부라리며 변백현에게 똑바로 말할 것을 종용했지만 백현은 어깨를 한번 들썩이더니 경수를 계속 쳐다볼 뿐이었다.
"ㄷ..도경수가 제일 예쁘다고? 그건 누..누구냐!"
"너잖아."
"아..아닌데...나..나는 왕빈데..."
"구라고."
"뭐?"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람은 백설공주."
뭔가 변백현에게 농락 당한 기분을 숨길 수 없었지만 경수는 연극을 끝내야만 한다는 책임감에 사로잡혀 다시 연기 혼을 불태웠다.
"아니 이런! 백설공주가 아직도 살아있단 말이야? 안되겠어. 내가 직접 처리하지."
곧 경수는 탁자에 마련된 검은 망토를 뒤집어 쓰고 사과가 든 바구니를 들었다.
"내가 만든 이 독사과를 먹으면 백설공주가 죽겠지? 그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다시 내가 될거야. 하하하."
마치 국어책을 읽는 것만 같은 도경수의 부끄러운 독백이 끝났다. 왜 항상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인걸까.
"독이 든 사과를 만든 왕비는 못된 마녀의 얼굴로 변장을 하고 그길로 백설공주가 살고 있는 난쟁이들의 오두막으로 찾아갔어요."
못된 마녀의 얼굴로 변장할 신기방기한 재간은 없었던 도경수는 그저 검은 망토를 이마까지 끌어내리고 찬열의 앞으로 가 있지도 않은 오두막 문을 두드리는 슬랩스틱을 선보였다.
"누구있나요? 맛있는 사과 사세요!"
찬열은 아직까지 그 큰 덩치를 쭈그리고 앉아 하던 집안일 코스프레를 멈추고 일어섰다. 두 사람의 키차이가 지나치게 극명해 독사과를 준비한 왕비가 더욱 가련해 보이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일어났다.
"어머. 누구세요?"
"예쁜 아가씨. 이 사과 한번 먹어봐요."
"어머나 세상에나-저 주시는 거에요?"
"그럼요-어서 한번 먹어봐요."
경수가 내민 사과를 한입 베어 먹은 찬열은 몇번 씹다가 가슴을 부여잡고 주저 앉았다. 연기에 몰입한 찬열이 그길로 섬세하게 눈꺼풀을 떨며 눈을 감으려는데 백현의 해설이 갑자기 들려왔다.
"독사과를 먹은 백설공주는 고통스럽게도 바로 죽지 않고 발작을 했습니다."
그말에 찬열은 가련히 감으려던 눈을 다시 번쩍 뜨고 두손으로 목을 움켜쥔 채 거실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아이고 나죽네-저 여자가 사람 죽이네-"
공주 치마를 입고 그 장신을 휘둘러 가며 바닥을 구르는 찬열때문에 할 일이 없어 망부석으로 관람하던 난쟁이 셋은 흠칫하며 몸을 뒤로 움직였다. 찬열의 머리에 앙증맞게 자리잡고 있던 빨간 머리띠는 이미 소파에 앉은 타오의 발치까지 굴러간지 오래였다.
"끊이지 않는 고통으로 백설공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치 춤을 추듯이 몸부림쳤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입술을 깨물고 화를 참은 찬열이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바로 엑소의 웅장한 데뷔곡 마마랄까. 아직도 세상을 용서하지 못한 작곡가가 저희에게 준 희망의 메세지를 담은 노래. 죽고 죽이고. 싸우고 외치고. 이건 전쟁이 아니야.
아니야. 이건 전쟁이 맞아. 춤을 추면서도 찬열은 변백현과 저의 이 악연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곱씹었다.
그리고 모두는 생각했다.
도대체 이 연극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그리고 마침내 백설공주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숨을 거두었어요."
격렬한 춤사위로 인해 땀으로 범벅이 된 찬열은 그제서야 바닥에 몸을 뉘일 수 있었다. 얼굴에 한가득 땀을 달고 앞머리가 지저분하게 엉킨 채 눈을 감고 있는 찬열은 독사과를먹고 잠든 가녀린 백설공주가 아닌 격한 노동에 잠시 정신을 읽은 노동자와 같은 행색을 하고 있었다. 한편, 찬열의 거친 춤(이라 쓰고 몸부림이라 읽는다.)을 그저 입을 벌린 채 구경하던 경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망토를 벗었다.
"이제 백설공주도 죽었으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나겠지? 아-신난다-"
발랄한 외침을 뒤로 하고 엉덩이를 씰룩대며 뒤돌아 걸어가는 경수의 모습을 넋놓고 구경하던 백현은 민석의 성화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난쟁이들은 그런 백설공주를 발견하고 깊은 슬픔에 빠졌습니다."
꽤 오랜시간동안 망부석으로 서있던 셋은 바닥에 널부러진 찬열의 곁에 옹기종기 주저앉았다.
"아-이런. 이게 무슨일이야! 사..랑스러운 백설공주가 죽다니!"
"그러게여. 개슬퍼여."
"ㅁ..맞아..슬퍼."
그리고 드디어.
변백현의 차례가 왔다. 다시 해설 바통을 이어받은 민석은 점점 구렁텅이로 빠져가는 이 연극을 살리고자 최대한 감정을 이입해 말했다.
"그때 마침, 그길을 지나가던 이웃나라 왕자가 그런 백설공주를 발견하고는 첫눈에 반해 달려왔습니다."
유희왕 칼을 차고 찬열의 앞으로 다가온 백현은 땀이 잔뜩 난 찬열의 이마엔 차마 손을 못대고 그저 기계처럼 입만 움직였다.
"아니. 이렇게 아름다운...소..녀가 있다니..눈을 떠보시오."
"하지만, 이미 왕비의 독사과를 먹고 숨을 거둔 백설공주는 아무 말이 없었어요. 안타까운 마음에 왕자는 백설공주에게 작별의 입맞춤을 했습니다."
"...."
"입맞춤을 했습니다."
"......"
"...입맞춤을 했다고요."
"....."
로봇마냥 굳어 찬열의 얼굴로 단 1센치도 가까워지지 않는 백현의 모습에 민석이 마지막 구절을 반복했지만 자리에 누워 눈가에 주름이 오백개가 생기도록 눈을 꼭 감고 몸을 떨어대는 찬열과 몸이 꼿꼿하게 굳은 백현의 모습은 애절한 사랑을 하는 공주와 왕자가 아닌 사채빚에 시달리다 장기매매로 끌려온 빚쟁이와 사채업자가 차라리 어울릴 모양새였다.
하지만 이 연극이 끝나려면 어쩔 수 없다. 백현은 억만년을 단위로 사는 사람마냥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눈을 감은 채 변백현의 몸뚱이가 얼만큼 제게 가까워지는지 모르는 박찬열의 주먹은 이제 피가 안통해 하얗다 못해 보라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연극을 한 시간만큼이 지나서야 거의 찬열의 얼굴 가까이에 다가간 백현은 콧잔등에 땀이 맺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주문을 외웠다.
이건 박찬열의 입술이 아니다. 이건 도경수의..아니..존나 내가 도경수 입술을 어디다가 비교를 해 부정타게. 그래. 이건 돌이다. 존나 물렁한 돌. 돌이야 변백현..돌.
찬열과 백현의 입술이 거의 닿을듯 말듯한 순간, 방안의 모두가 침을 삼키고 긴장한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진짜 대박감. 아이돌 은퇴할때까지 두고두고 놀림감으로 쓰일 희대의 짤이 탄생할 그 순간.
"안돼!!!"
어디서 튀어나온 도경수.
"어디서 딴놈한테 입술을 들이대!!!"
바닥에 찬열처럼 대자로 엎어진 변백현.
"껴안는것도 아니고 입술을 비벼?"
그대로 변백현의 위에 올라타 셔츠 깃을 붙잡고 키스를 하는 도경수.
어디로 향할지 모르던 이 연극의 끝은 고칼로리 버터범벅 도경수의 불같은 질투로 끝이 났다.
시작은 아이의 정서발달을 위한 어린이 동화였지만 끝은 치정로맨스가 돼버린 연극이 끝나고 아직도 뚱한 도경수의 옆에 찰싹 붙어있는건 자칭 타칭 대세 국민오빠 변백현.
"우리 도경수. 아직도 삐졌어?"
"됐어. 저리가."
"박찬열이 백설공주 됐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으면서."
"난 니가 가짜로 시늉만 할 줄 알았지 진짜로 할 줄은 몰랐거든?"
"그래서 질투났어 우리 도경수?"
"너는 내가 세훈이랑 껴안고 있었을때 죽여버린다고 그렇게 화냈으면서! 어떻게 내앞에서 찬열이랑 키스를 할 수가 있어? 어?"
"키스라니. 그게 어떻게 키스야. 그리고 내가 그새끼랑 언제 키스했어. 난 박찬열 몸에 손하나 안갖다 댔어. 우리 도경수랑 키스 했지 오빠는."
"아무튼 찬열이 입술에 닿을 뻔 했잖아! 입에다가 하면 키스지 뭐야!"
"그런거야?"
"그런거지! 볼에다가 하면 뽀뽀. 입에다가 하면 키스!"
"아...오빠가 진짜 죽을 죄를 지었네. 우리 도경수한테."
"주..죽을 죄까지는 아니고.."
"우리 도경수 오세훈이랑 껴안았을때 오빠가 뭐해줬지?"
"뭐?"
"오빠가 그때 뭐 해줬잖아. 우리 도경수 다시 깨끗해지라고."
"....."
"소독해줬지? 그것도 존나 많이."
"....."
"우리 도경수말대로 오빠가 오늘 오염이 방사능 수준으로 됐으니까 소독이 절실하네."
"......"
"어디가 좋을까."
"ㅁ..뭐가?"
"방사능 소독. 어디서 할까 경수야."
"...뭘 어디서 해."
"....여기서 해? 아들이 볼수도 있잖아."
뚱한 얼굴로 저를 보는 도경수. 속을 알 수 없는 도경수.
"....장에서..하자."
"뭐? 어디?"
"ㅊ..장."
"잘 안들린다 경수야. "
아 진짜 장.하면 척하면 척이지.
"주차장."
"...어?"
"주차장 너 차안에서."
"......"
"거기서 하자고."
반전매력을 빼면 도경수가 아니지.
오늘은 주차장에서 어떤거 하게 경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