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네가 내 여자였다면. 네가 이홍빈보다 나를 먼저 만났으면 어땠을까.
쓸데없는 상상을 자꾸 그려냈다. 그리고 항상 마지막은 눈물 머금은 가슴앓이로 끝이 났다. 서서히 잊혀지겠지, 다른 여자 만나겠지 내 자신을 위로하지만 너는 자꾸 내 머릿속을 해맑게 뛰어다녔다. 얄밉게.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네가 나를 처음 만나러 온 날이. 처음엔 미친여자인 줄 알았다.
대뜸 전화해서는 나를 만나러 온다 하지 않겠나, 그 다음 날 정말로 찾아와서 죽은 이홍빈이 어디있냐고 애타게 찾질 않나.
그 땐, 정말 네가 싫었고 이홍빈에게 집착하는 모습이 너무 불쾌했다. 아, 그 땐 이홍빈 친구로써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너를 좋아하는 한 남자로써 그 모습이 짜증났다. 왜 옆에 있는 날 못 보나, 내가 남자로써 그렇게 매력이 없나 싶어서 한창 다이어트까지 한 적이 있다.
이홍빈에겐 미안하지만 너와 한창 이홍빈의 흔적을 찾아다니던 그 때, 네 기억 속에서 이홍빈이란 사람을 완전히 지우고 싶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내가 차지하고 나란 사람의 흔적을 찾아주길 나란 사람의 모든 것을 알아주길 간절히 바랬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이홍빈이 너와 더불어 정말 얄미웠었다. 얼마나 대단한 매력을 가지고 있길래, 너를 얼마나 단단히 꼬셔버렸길래 네가 이리도 이홍빈에게 목매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다 네가 이홍빈이 꿈에 나온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을 땐, 내심 안심했을지도 모른다. 네가 이홍빈을 곧 잊을 수 있겠구나 못된 생각이 가득했다.
네 곁에선 티 내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모른다. 일부러 더 틱틱대고 더 퉁명스러운 말투를 사용했다.
너에게 최대한 관심없는 척 하기 위해. 내 전략은 딱 들어맞았는지 넌 나를 그저 친한친구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이걸 기뻐해야 하는지, 슬퍼해야 하는지 그 때 감정은 정말 복잡미묘했다.
네가 처음 여자로 느껴지기 시작한 건 너를 만나고 한달 정도 됐을 때 일까? 이홍빈 때문에 또 서럽게 펑펑 우는 너를 보고 처음으로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리게 떨리고 있는 네 어깨를 껴안아주고 싶었고 우느라 엉망이 된 네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싶었다.
그땐 미친 듯이 부정했다. 이러면 죽어서 이홍빈 얼굴 어떻게 보냐고, 남자가 의리가 있어야지 이러면 안된다고 그냥 요즘 외로워서 순간 떨렸나 하고 넘겼다.
하지만 그 뒤부터 만날 때마다 점점 밝아지는 네가 새롭고 눈부셨다. 세상에 점점 환하게 웃음짓는 네가 너무 예뻤고 당장이라도 너를 안고 싶었다.
그게 전부 이홍빈 덕분이라는 걸 알고나자 이홍빈이 고맙기도 하고 질투가 나기도 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였어도 너를 저렇게 변화시킬 수 있었을까, 네가 좋아하던 사람이 나였으면 네가 이렇게 변할 수 있었을까. 그러다 결국 아니다라는 결론에 이르렀을 때 내 자신이 그렇게 한심할 수 없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그 날은 망할 차학연이 무슨 꿍꿍이인지 시내에서부터 우리를 계속 쫓아오길래 너를 집까지 데려다 줬다.
네가 빌라 안으로 들어가고 엘리베이터가 고장나 계단으로 한층한층 올라갈때마다 불이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한참을 네가 집 안까지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네 집 주위를 맴돌았다. 그 낯간지러운 짓을 내가 하게 될 줄 몰랐다.
그렇게 몇 분정도 지났을까 서서히 집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고막을 찢는 네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온몸에 털이 곤두서고 이성의 고삐가 풀린 느낌이었다. 도대체 네게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어떤 미친놈이 네게 해코지를 하려는 걸까 두려운 마음에 물불 가리지 않고 무작정 뛰어올라갔다.
그 곳엔 나조차 한번도 안지 못한 너를 차학연이 안고 있었다. 겨우 참았다. 폭발하려는 이성을 천천히 누르고 겁에 질린 너를 내 뒤에 숨겼다.
괜찮아.괜찮아.
평소와는 다른 따듯한 목소리로 너를 달랬다. 미친 차학연은 너를 다시 데려가려 하고 나는 필사적으로 막았다.
손대지마.
** 팬북에 포함될 세번째 외전이예요.
두번째 외전의 뒷이야기는 팬북에서 확인하실수 있고요. 이 외전의 뒷이야기도 팬북에서..ㅎ..(상술)
열심히 제작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