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족들 w.눈부셔 사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얼굴만 살짝 들어내는 검은색 천을 두르고 있었다. 폭풍우 치는 갈대밭을 달리는 사내의 모습은 그 속도가 굉장히 빨라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뭐가 지나갔나 싶을 정도로 순식간이었다. 그렇게 긴 갈대밭을 단숨에 지나친 사내는 그 끝에 위치한 거대한 성 앞에 멈추어섰다.
[암호를 대주세요!♡] 성의 대문에서 스르릉거리며 푸른빛과 함께 나타난 소녀가 깜찍하게 말했다. 소녀는 몸이 투명했으며 전체적으로 푸른 빛을 띄고 있었고 머리를 양갈래로 묶고 있었다. "암호? 나 알잖아 써니." [찬열님꼐서 얼굴을 알아도 암호를 대지 않으면 들여보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당!♡] 박찬열 사이코 새끼...경수는 구겨지는 제 이마에 손을 얹었다. 지난번 그 박찬열 사이코 새끼까 성으로 들어오고 싶다면 김치 스파게티를 제게 대령해야 한다고 대문 앞에서 요리를 시켰던 일을 상기했다. 그때는 무슨 요리대회라도 하는듯 셋팅 된 성 앞에 수많은 마족들이 하나 같이 똑같은 꽃무늬 앞치마를 입고 멘붕에 빠졌던일이 생각이 났다. 물론 지금의 경우는 그때에 비해 약과지만... 경수는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절실한 표정으로 써니를 쳐다보았다.
"그냥 들여보내주면 안돼?" [안돼요~ 암호를 말해주세요♡] "나 진짜 화장실 급하단 말야!"
그건 네 사정이고요. 라는듯 싱긋 웃고있는 써니의 표정은 단호했다. 경수는 정말 진땀이 났다. 1시간이나 참았다고!
[경수님 암호를 대주세요♡] "몰라!!!" [그렇다면 찬열님께 영상 편지를 보내시겠습니까?♡] "그건 또 뭐야!" [찬열님께 영상 편지를 남겨주세요.♡ 삐소리 후 녹화가 시작됩니다.♡]
써니의 눈이 파랗게 빛나더니 경수를 비춰졌다. 그리곤 이내 정말로 삐소리가 난다.
"박찬열 이 사이코 새끼야!!!!" [전달 되었습니다.♡ 안녕히가십쇼!♡]
써니가 씽긋 웃으며 경수를 향해 90도 인사를 했다. 그리곤 스르릉 빛을 내더니 나타날때처럼 문으로 들어갔다. 박찬열 개새끼!! 경수는 속으로 온갖 욕을 하며 재빨리 갈대밭 사이로 들어갔다. 될대로 되라! 경수는 갈대밭에 노상방뇨를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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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가 왔지만 대문 앞에 죽치고 있는 경수는 하나도 젖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그가 있는 곳은 비가 내리지 않는듯 했다. 그때 누군가가 성의 앞에 갑자기 나타났다. 순간이동. 그것은 종인이었다.
"형 뭐해? 안들어가고." "종인아!! 써니가 막 암호를 대라잖아!! 난 그딴거 모르는데!" "아, 형 또 카톡 안봤지." "카톡?"
경수의 동그란 눈의 눈동자가 설마...라는 듯 흔들렸다. 그럴리가..
"암호 걸어뒀다고 알아두랬는데."
종인이 경수를 향해 피식 웃고 제 앞에 나타난 써니와 인사를 나눴다. 뭐야 방금 저거 나 비웃는 거? 그런거 따질 시간 없이 경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알림을 꺼두었던 카톡을 켰다.
'도경수 우리집 암호 걸어둠 써니한테 열려라참깨구리~ 하면 됨ㅋ'
이런 미...친.... 경수의 표정이 심하게 구겨졌다. 그 사이 종인은 그런 경수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고는 열려라참깨구리~ 하고는 써니가 열어준 문으로 들어가버린다. 경수도 열린문 틈새로 따라 들어가려는데 상냥하게 웃고있는 써니가 막는다.
[경수님 동반입장, 안돼요~♡ 암호를 대주세요!♡]
언젠가 이 써니 시스템을 없애버리리라.. 경수는 으득 이를 갈았다.
"열려라참깨구리!!!!!" [문이 열렸습니다.♡ 찬열님의 저택에 오신걸 환영해요~♡]
드디어 이 징그럽게 거대한 성의 문이 열렸다.
경수는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화창한 하늘 아래 성의 하녀들이 넓은 성의 마당에 집합해서 딱 달라 붙은 옷을 입고는 요가를 섹시하게 하고 있는 모습을 볼수 있었다. 이것 역시 사이코 찬열의 취향이었다. 경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땅을 접는 축지법을 써서 성의 안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모두가 모여있을 식당으로 향하며 경수는 지난번 찬열이 하녀들에게 스마트 회사의 교복을 입히고 성의 마당에 집합을 시킨뒤 그 앞에서 고등학교 축제 마냥 귀 터지는 기타연주를 한것을 생각해냈다. 찬열은 제 기타 연주에 항상 심취하곤했다. 박찬열은 정말 언제나 병신 같다.
"도경수 꼴지! 축하드립니다~! 벌금 팔만원에 당첨되셨습니다!"
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둥근 테이블에 앉아있는 여덟명의 머리가 보였다. 해맑게 웃으며 제게 손을 내미는 민석을 보고 경수는 속에서 분통이 터지는 것을 느꼈다. 이것들은 내가 저 문앞에서 당하는 꼴을 낄낄 웃으며 지켜봤겠지! 경수는 아악 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헐. 경수형 미쳤나봐." "경수야 정신차려! 팔만원은 주고 미쳐야지!"
경수는 제 어깨를 흔드는 민석의 손을 뿌리치고 제 자리로 가서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팔만원을 꺼냈다. 아, 이거 내가 어떻게 알바한건데...
"오케이. 자, 다들 만원씩 받아."
경수는 민석의 손에서 나눠지는 제 팔만원을 보고 눈물을 삼킨다. 다들 분명 내가 카톡 안본다는거 알고 다 짠게 분명함!! 경수의 입이 삐쭉 나왔다. 그 모습을 옆자리에서 팔을 괴고 가만 경수를 지켜보던 종인이 보고는 피시식 웃으며 경수의 삐죽나온 입술에 제가 싫어하는 방울토마토를 밀어넣었다. 경수는 아무생각 없이 방울토마토를 쩝쩝 씹으며 자리에서 일어서서 제게 주목하라는 찬열을 바라보았다.
"주목! 주목! 마왕 박찬열님 말씀하실게요!" 그래 믿기지 않겠지만 박찬열은 마족 중에서도 가장 으뜸이라는 마왕이다. 그리고 역시 믿기지 않겠지만 이곳에 모인 아홉명의 마족들은 모두 각각 속성에서 서열 1위에 위치해 있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이들이고. 시계 방향으로 앉아있는 순서대로 이 마족들을 설명하자면 불의 마족 마왕 박찬열, 얼음의 마족 김민석, 꿈의 마족 루한, 바람의 마족 오세훈, 치료의 마족 레이, 물의 마족 김준면, 번개의 마족 김종대, 대지의 마족 도경수, 공간의 마족 김종인. "멸족 되었던 빛의 마족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어!" "빛의 마족이?" "하나 남은 후손을 드레곤이 키우고 있다고 하더라고!" "대박. 성질 더러운 드래곤들이 왠일이래?" "정보원에 의하면 그들은 한국에 있데 우리 주위에 있나봄!! 그러니깐 내일부터 우리가 해야할 일은 빛의 마족을 찾는거야."
찬열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그렇지만 모두들 반응이 시큰둥한게 영 귀찮은 티를 팍팍내고 있었다. 아예 음식을 먹으며 딴짓하는 놈들이 있거나, "학원 가야 하는데.." "나는 회사가야하는데." "나 내일 출장." "내일 토요일이지? 무도 봐야함." 이렇게 핑계거리를 대고 있었다. 찬열은 그들의 의견을 싸그리 무시한채 박수를 짝짝 두번 쳤다. "그럼 모두들 수고하자고!!"
찬열은 아름답기로 전해 내려오는 빛의 마족이 정말 기대가 되었다. 내 반려여, 좀만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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