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족들
w. 눈부셔
크리스는 백현을 근처 남고로 보내고 싶었다. 아님 여장을 시켜서라도 여고로 보내던가. 공학은 죽어도 보내기 싫었다. 그곳에는 찬열이 다니고 있음을 아니깐. 이쪽 세상에선 병신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찬열이 제 백현을 노리고 있는 것도 알았다. 예전부터 쭈욱 제게 소식을 전해주던 루한이 버릇처럼 말해주었기 때문에 더 각인된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백현이 찬열은 만나는 것은 역대 마왕들이 그랬던 것처럼 순례적인 것이기에 아예 못 만나게 할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도 크리스는 그들이 백현을 쉽게 찾아내는 것이 싫었다. 제가 갓난 아기 마족 때부터 금이야 옥이야 키운 백현이를 감히? 안돼안돼. 하지만 백현이 남고는 싫다고 바락바락 우기는 바람에 크리스는 하는 수 없이 근처 공학으로 전학 수송을 밟아야 했다. 이것도 하늘에서 정해준 운명이란 것인가.
"아빠!!!!!"
쇼파에 누워 티비를 보고 있는 크리스에게 백현이 제 방에서 다다다닥 달려나왔다. 크리스가 퇴근하자마자 함께 산 교복을 입고 아주 신이 난것 같았다.
"나 어때? 간지나? 응?"
아이돌 교복 모델 뺨치는 백현의 다양한 포즈에 크리스는 제가 보고 있던 티비 프로그램이 가려지자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비켜봐 티비 안보이잖아."
"지금 티비가 문제야? 아빠 아들 어떠냐고!"
"이연희 나오는거 안보여? 계속 그렇게 서있고 싶으면 옆으로라도 비켜!"
"싫어! 안 비켜줄건데?! 메롱~!"
심술이 난 백현이 크리스의 앞에서 엉덩이 실룩실룩 거리며 티비를 보는 것을 방해하자 크리스는 썩은 표정으로 머리 방향을 반대쪽으로 돌아 눕는다.
"바보냐? 이렇게 보면 됨."
"바보야? 이렇게 또 가리면 됨."
다시금 크리스의 시야를 가린 백현이 당당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누구 아들인진 몰라도 정말 얄밉다.
"아빠. 나 어.때.?"
".... 이 세상에 너처럼 귀엽고 깜찍하면서도 잘생긴 녀석은 없을거야. 내 아들 짱."
억지 웃음을 지어내곤 무미건조한, 어딘가 기계적으로 외워 말하는 것 같은 크리스의 대답에 약간 찝찝함을 느낀 백현이지만 이정도에 만족하기로 했다.
"나도 알아. 그럼 이연희 마음껏 봐!"
선심 써주듯 새침하게 다시 제방으로 들어가는 백현의 뒷모습에 크리스는 한숨을 쉬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변백현이 최강이다 진짜.
-
빛의 마족이라는 백현의 속성 때문인지 아니면 변백현이란 마족 자체가 그런것인지, 백현은 어디에 내놔도 빛이 나는 아이였다. 그래서 백현은 살면서 여러모로 봉변을 많이 당했다. 그때마다 성격 좋지 못한 백현이 능력을 마구 날려 녀석들을 처치하긴 했지만... 크리스는 늘 제 아들이 걱정이 되었다. 학교의 정문 앞에 데려다 주면서 크리스는 마법은 절대 안되고 네 능력을 쓰는 것도 절대 안된다며 신신 당부를 했다. 이제 막 200살이 된 이 마족은 얼마전 마지막 성장을 위한 수면을 깨고 나온 만큼 아직 어렸다.
"다녀와."
"응, 아빠 잘가~."
크리스의 차에 내려서 등교하는 학생들 틈에 섞여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백현의 뒷모습을 본 크리스는 어제 준면으로부터 알아낸 종대의 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내아들좀잘부탁'
조수석에 핸드폰을 던져놓고 운전대를 잡고 회사로 향하는 크리스에게 종대의 답장이 도착했다.
'ㄴㄱ'
-
찬열은 언제나 그렇듯 (어제 제외) 선생님이 들어오기 3분전에 등교를 했다. 그리곤 어제 아침에 이야기를 나눴던 여자아이들에게 언제나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얘들아, 너희가 어제 말해줬던 햄버거집. 그거 내가 아는 형이 하는 만두집이더라."
"정말? 우린 맥도날드인줄 알았는데. 미안, 찬열아"
"아니야. 만두 맛있게 먹었으니깐 괜찮아."
"맛있었어?"
"응, 너희도 가봐."
박찬열 쟤는 여자애들하고 대화할때 진짜 멀쩡해진다. 질린듯한 표정을 하고있던 경수는 어느새 교실로 들어와 주번인 저를 부르는 담임 박정수에게로 달려갔다.
"교무실에 가정통신문 좀 가져올래?"
선생님... 그건 제발 선생님이 오시면서 가져다주심 안될까요? 4층 오르락 내리기 힘들어 죽어요... 라는 말을 하고 싶은 맘이 굴뚝 같았지만 경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곤 교실을 나섰다. 아무도 안보면 축지법을 쓸텐데. 터벅터벅 1층의 교무실로 내려간 경수는 어떤 새하얀 학생이 종대와 다른 선생님과 함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수 있었다. 쟤 되게 하얗다. 빛이 나는것 같기도 했다. 바가지 같은 일자 앞머리 덕인지 강아지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럼 백현아 반으로 갈까?"
"네! 되게 떨려요."
흐흐. 웃는 모양이 진짜 개가 웃는거랑 흡사했다. 헥헥 거릴때 입꼬리 올리고 있는 그 표정! 그나저나 전학생인가... 경수는 고개를 갸웃하며 문 옆의 가정통신함 앞에 서서 종이 뭉치를 꺼냈다. 와나, 뭐가 이렇게 많아. 아 무거워. 안그래도 아침에 저기압인 경수의 마음이 꽁낏해졌다.
"일학년 팔반이 워낙 얌전하고 순한 애들이라 잘 해줄거야."
"아, 그럼 안심이 좀 되는것 같기두 하구~. 엇, 죄송합니다!"
전학생과 종이 뭉치에 낑낑 대던 경수가 살짝 어깨가 부딪혔다. 경수는 사과를 하고 제 선생을 따라나가는 전학생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헐, 방금 무슨 기운이 느껴졌는데...
"마족...?"
분명 마족의 기운이었지만 익숙하지 않은 종류였다.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약간의 이질적인 느낌. 심각한 표정으로 서있던 경수의 어깨를 누군가 툭툭 쳤다. 종대였다.
"네가 생각한게 맞아."
내가 생각한것?
"저 아무 생각도 안했는데요?"
그냥 특이한 마족이네... 라고만 생각했는데. 아... 멋진척하려던 종대는 멋쩍은듯 제 머리를 긁적였다.
-
찬열은 학교 정문을 들어설 때부터 무엇가 이질적이지만 저를 끌어당기는 그런 묘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의외의 모습이지만 입학 할때부터 학교 안의 모든 기운을 장악하여 감지하던 찬열이었다. 이 학교 안의 마족이란 저와 경수, 종인, 세훈, 종대 뿐일 텐데. 분명 마족의 기운이다! 그것도 제가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성스러운 마족의 기운이란! 성스럽다는 것은 분명 마족에겐 이질적이고 더러운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것인데 지금 이 성스럽다는 느낌은 마족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마음에 들고 기분이 좋아 계속 느끼고 싶게 하였다.
"경수야!"
"왜?"
종대에게 백현에 대해 설명을 듣고온 경수는 찬열에게 쭈뼛쭈뼛 다가갔다. 종대는 백현이 빛의 마족인걸 절대 네버 에버 찬열에게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지 스스로 찾게 하라며. 아님 저는 드래곤에 깔려 죽는다며. 하지만 경수는 거짓말을 하면 얼굴에 다 들어나서는 결국엔 진실을 토하는 타입이었으니, 자신이 없었다. 마족 맞아?
"나 지금 기분이 되게... 성스러워!"
"....?"
뭐래.
"막, 되게, 성당 가고 싶은 느낌이다?"
"?! ?????"
마왕님...?!
"찬열아, 미쳤어?"
"아니? 나 기분이 성스럽다니까? 오늘 학교 등교하니깐 새로운 기운이 느껴지면서~ 좋아. 기분이 왜케 좋지. 무언가... 가까이 있는 느낌?"
헐. 얘 눈치 챘나?
"근데 뭐가 가까이 있지? 뭐라고 설명 해야할지 모르겠어. 생소하네.. 음, 오늘 점심에 혹시 햄버거 나옴?"
.... 눈치는 무슨. 이 감만 좋은 둔탱이 곰탱이가...어휴. 경수는 새가슴을 진정시키곤 어제 만두를 맛있다며 그렇게 쳐먹고도 아직 햄버거에 미련을 못버린 찬열의 순수한.. 눈을 마주했다.
"찬열아."
"응?"
"넌 좀."
"응."
정신병원에 가봐야 하는 건 아닐까? 머리 나이가 좀 떨어진다던지... 그런거 검사 받아보는것도 좋은 방법 일지도 몰라. 뒷말을 삼키는 경수에 찬열이 뭔데~뭔데~ 하며 캐물다가 제게 바나나 우유를 건내며 여자 급우들이 말을 걸어오자 금새 멋있는척을 하며 젊잖게 대화를 나눈다. 진짜, 대체 뭘까, 얘는? 박찬열 머릿속은 정말, 알다가도 헷갈리게 만든다.
-
"중국에서 살다온 변백현이라고 해!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겠지만 앞으로 잘 부탁해!"
특출나게 잘생기거나 이쁘게 생긴 외모가 아닌 백현이지만 백현에게선 설명할수 없는 빛이 났기에 하루종일 그의 주위에 백현과 친해지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아오, 이거 일일이 웃어주는것도 오랜만이라 졸라 힘드네. 얼굴 근육에 경련 일어나겠네. 이중적인면이 다분한 백현의 속마음은 모른채, 백구 전학생이라고 소문을 듣고 어디 얼굴 한번 보자며 눈을 번뜩이는 아이들은 백현이 점심시간에 급식실에 도착했을때 백현을 참 난감하게 했다.
"헐, 존나 이쁨."
"피부 봐. 쩐다. 뭐 발랐나?"
"으, 나 눈부신것 같아. 내눈."
"친해지고 싶어.."
"진심 쓰담쓰담 해주고 싶다. 개 같아."
뭐? 개 같아? 마족 변백현 역시 귀가 밝았다. 저를 보고 술렁이는 아이들에게 제발 닥치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저의 알흠다운 이미지를 위해 꾹 참았다.
"아~, 성스럽다~."
"박찬열. 제발 좀 닥쳐."
오늘 하루종일 성스럽다는 드립을 치는 찬열 때문에 미칠것 같은 경수는 종인의 전용 팔걸이로써 종인의 겨드랑이에 껴서 급식실로 들어섰다. 그리곤 제 앞에 같은반 아이들과 줄을 서있는 백현을 보고 안그래도 굴러나올것 같은 눈을 더 크게 뜨고 요리조리 굴려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백현도 무언가 저와 동질의 기운을 느꼈는지 이리저리 고개를 갸웃 거리다 경수와 눈이 마주쳤다. 헙.
"형 왜 그래?"
"응? 뭐가?"
"왜 자꾸 눈치봐?"
"아. 아냐!"
"근데 뭔가 오늘 급식실 기운 이상하지 않냐? 다른 기운 느껴짐."
세훈의 말에 여직 백현과 시선을 마주하고 있던 경수의 표정이 미묘하게 찌푸려진다. 으, 이런! 벌써 알아채면 안되는데?! 그에 이상함을 느낀 종인이 허리를 숙여 경수의 시선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그리곤 백현을 바라봤다. .....어라?
"쟤."
"뭐야?"
종인의 말을 잘라 먹고 세훈이 끼어든다. 세훈도 아마 백현을 본 모양이다.
"너희 뭐해? 나란히 셋이서 뭘 그리 봐?"
평소에 눈치 없던 그 둔탱이 곰탱이 놈이 잘도 이상한걸 느낀다! 경수의 표정이 울상이 되간다. 입모양이 교집합의 그 기호 마냥 위로 휘어진다.
".....?"
찬열과 백현의 시선이 마주했다.
눈부셔 |
백현이 등장함과 동시에 드뎌 찬열이와 만났군요! 저는 일주일동안 글을 못쓸 예정입니다 ㅠ 다다음주에 6편으로 찾아뵐게요 항상 감사드립니당~ (독자님들 암호닉좀....S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