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족들
w.눈부셔
백현은 다리는 길고 얼굴은 작은 모델 같은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자신보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고 그리 믿고 몇백년을 살아온 백현이었는데, 솔직히 쟤는 정말로 잘생겼다. 그에 괜히 자존심이 꿀려 흘끗 째려보니, 녀석이 고개를 갸웃한다. 그리고 어금니를 물고 눈을 가늘게 떠서 똑같이 째려본다. 어쭈, 너 지금 나 째려보는거?
"백현아, 앞으로 안와?"
줄어든 줄에 앞서 가있는 같은반 애들이 한창 눈 싸움 중인 백현을 불렀다. 눈 깜박하면 지는거라고 그 상태로 급우들의 옆에 가서 선 백현은 점점 아파오는 눈을 참지 못하고
감아버린다. 젠장... 졌어..! 백현이 짜증스럽게 눈을 마구 비볐다.
"야, 저 선배들 너 자꾸 째려보는데?"
"헐. 박찬열 무리 아님? 맞네, 저기 박찬열 선배네!"
"박찬열? 설마 그 박찬열?"
호들갑스럽게 전설적인 소문의 박찬열 어쩌구 저쩌구 하는 같은 반 놈들에 다시 뒤를 돌아보니 저를 아직도 불 타는듯한 눈으로 쳐다보는 놈이 보였다. 뭐야, 눈싸움 끝난거 아니였어? 내가 져줬으면 황송한줄 알아야지 인간 주제에 어딜 꼬라봐? 확..! ....어라. 저 녀석의 옆에 있는 녀석들 전부 마족이잖아? 그러고보니 쟤는 뭔데 이상하게 아무 기운도 안 느껴지는거지? 백현은 저를 멍하니 쳐다보는 옆의 쩌리들과 찬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백현아, 얼른 눈 깔아!"
"맞아! 저 선배들 소문 장난 아니야. 저기 찬열 선배가 조폭 아들이란 말이 있어. 잘못 걸리면 우리 정도야 한방에 훅간다."
"아니야. 대기업 후계자란 말이 있던데? 그래서 까딱했다간 쥐도 새도 없이 사라질수 있다고."
"아, 그래서 선생님들도 쉽게 못 다가가는거야?"
"내가 듣기론 박찬열 선배 무리 전부 소녀시대랑 같은 소속사 연습생이랬는데? 아는 선배가 그렇게 말해준것 같음."
"진짜? 어쩐지 외모가 장난 없더라."
뭔 소문들이 이따구야... 인터넷 소설 쓰냐? 말도 안되는 소문들의 나열에 백현이 어색하게 웃음을 짓는다. 하하, 그러니? 백현은 다시 마족 무리들을 쳐다보았다. 기운으로 봐선 보통 마족들도 아니고 저와 비슷한 급의 기운을 가진 마족들이니 저쪽에서도 저를 알아보고 저리 바보 같은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이니라. 그럼 저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은 박찬열이란 녀석은 뭐지?
경수는 긴장한 상태로 처음 보는것만 같은 진지한 표정의 찬열과 저희를 미묘하게 바라보는 백현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줄이 줄어들어도 아무런 미동이 없는 찬열과 경수의 무리에는 미묘한 공기가 맴돌고 있었다. 새로운 기운의 마족의 등장이니 그럴만두~하지.
"형."
종인이 경수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쟤 혹시... 그 마족 맞지?"
"...몰라, 나는 몰라."
"흠, 별로 안예쁜데."
".뭐?"
"아니야."
종인이 경수의 볼을 검지손가락으로 꾹 찌른다. 경수는 그런 종인의 손가락을 귀찮다는듯 잡고는 진지한 마왕 찬열을 올려보았다. 맙소사, 태어난지 사백년만에 처음 나온것 같은 박찬열의 마왕 포스다. 덜덜. 뭔 일 날것 같아. 어쩌지? 막아야 하나? 경수가 아랫 입술을 질겅질겅 물자 종인이 제 손가락을 물린다. 우쭈쭈, 우리 애기. 눈 똥그랗게 된 것봐. 절라 귀여워.
"...."
경수는 찬열이 긴다리를 움직이자 종인의 손가락을 문채로 숨을 죽이곤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박찬열... 뭔짓을 하려고... 제발 일만 내지마... 제에발.. 뚜벅뚜벅. 얼마 안떨어져 있는 백현의 앞에 멈춰선 찬열은 저를 올려다 보는 흰둥이를 내려다보았다. 항상 소란스러웠던 급식실이 언제부터였는지 조용했다.
"...."
"...."
"...."
"너.."
의외의 낮은 목소리가 백현의 귓가를 울렸다.
"교회 다녀?"
-
6시가 되자마자 행복한 마음으로 퇴근을 하려던 크리스는 막무가내로 제 자동차의 뒷자리를 차지한 준면을 어이없게 바라보았다.
"뭐냐?"
"네 차가 좋아보이길래. 친구 좋다는게 뭐겠냐?"
"그래서 태워다 달라고?"
"내가 오늘은 일부러 차를 안타고 왔거든."
씨익 웃어보이며 브이를 해보이는 준면에 크리스가 면상에 한대 날리고 싶은걸 참고는 운전석에 안전벨트를 찼다.
"사실은 원래 오늘 너네 집까지 가서 빛의 마족 좀 볼라고 했더만, 찬열이랑 이미 만났다길래 소용 없어졌지 뭐야."
"뭐? 백현이가 마왕이랑 만났다고?"
"엉, 아까 오세훈이 카톡으로 생중계 날렸는데. 아, 오세훈은 바람의 마족."
백현과 찬열이 금방 만나겠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만나다니.. 크리스는 괜시리 짜증이 나서 엑셀을 마구 밟으며 지나가는 차들한테 클락션을 빵빵빵 울려댔다. 알 유 크레이지? 준면은 크리스륵 준퍽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다른 차들은 BMW라서 대들지도 못하고 피해만 다닐뿐이다. 이런 미친...
"야, 좀 빠른거 같은데 좀 천천히 가는게 어때..?"
"....."
"이봐. 크리스? 나의 절친한 친구 크리스? 멋쟁이 드래곤 크리스씨? 크리스! 크리스!! 야야!! 속도 좀 줄이라고!! 아이고, 마족 죽겠네!!"
"시끄러."
앞만 보고 달리는 크리스에 뒷자석 손잡이를 꽉잡은 준면은 앵그리버드에 나오는 노란색 새를 본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바보 멍청이 마족한테 내 아들을 넘겨야한다니 이건 이해가 안돼!"
"뭐?!"
"내 이쁘고 똘똘하고 귀여운 아들이 바보멍청이의 반려? 오마이갓! 상식적으로 둘은 어울리지 않아!"
"너 지금 네 아들 때문에 그러는 거야?"
"마이썬! 아들!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어? 역대 최악의 마왕과...! 오, 신이시여!"
"야, 나 어제 먹은 만두가 올라 올것 같은데...!! 오우으악 바보 멍청이 마왕은 네 아들이 빛의 마족인것도 눈치 못챘던데 뭘 그리... 야야!! 빨간불이다!!"
타이어와 아스팔트의 마찰소리가 거리를 울렸다. 퇴근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한적한 거리라서 다행이다. 사고 안난게 어디야. 휴, 준면은 얼굴에 흐르는 땀을 소매로 닦았다.
"김준면."
"?"
"마왕 바보냐?"
.... ㅇㅇ.
-
경수와 종인은 찬열과 백현의 뒤를 미행하고 있었다. 아, 정확히 말하자면 경수를 따라온 종인과 찬열에게 끌려온 백현이었다.
"형, 우리 뭐하는 거야?"
"미행."
"왜?"
"박찬열이 이상한짓하면 막아야지."
종인은 빨대로 콜라를 쭉 빨아마셨다. 예전부터 경수는 제 주군 찬열의 오른팔로써의 역할을 하는데 충실했다. 어찌보면 엄마 같기도 했다. 한때는 그런 경수의 관심을 받는 찬열이 부러웠지만 지금은 뭐 그러려니하고 이해를 한다. 하도 찬열이 마왕답지 못하니깐. 찬열이 가기 싫다는 백현을 방긋방긋한 얼굴로 끌고온 곳은 민석의 만두집이었다. 종인은 동글동글한 눈으로 찬열을 흘끗흘끗 쳐다보고 있는 경수를 비스듬히 기울어진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언제봐도 마족 도경수는 흥미로워.
"여긴 왜 데려온거야. 나 갈래."
"여기 만두 진짜 맛있어. 한번 먹어봐!"
"여기 만두집이야?"
"응, 민석이형이 하는데."
"민석이 형은 또 누구야."
"여기 사장."
"...그래, 민석이형이 여길 하니깐 여기 사장이겠지."
아까부터 멀쩡하게 생긴것과는 다르게 어딘가 비어보이는듯한 찬열의 행동에 백현은 알게 모르게 말려들고 있었다. 얘 대체 뭐지?
"엑소엠 만두 나왔습니다."
"땡큐, 이쁜 누나."
알바 정수정은 어제 보았던 조금 모자른 아이가 또 오자 반가운 마음으로 서빙을 나왔다. 오늘은 하얗고 강아지 같은 애와 함께 왔다. 조금 모자라도 잘생긴 얼굴덕에 친구도 있나보다. 어떻게 얘 주위는 다들 생겨먹은게 다 일반적이지가 않다.
"백현이 너 진짜 교회 안다녀?"
"...안다닌다고."
아까 급식실에서부터 자꾸 교회 다니냐고 묻는 찬열에 진절머리가 난 백현이다. 마족이 무슨 교회냐고!
"분명 너한테서 이 느낌이 나는게 맞는데."
"뭐? 무슨 느낌?"
"성스러운 느낌!"
백현은 꽤나 맛있는 만두를 씹어먹으며 찬열을 바라보았다. 내 기운이 느껴진다면 찬열은 분명 저보다 힘이 쎈 마족일것이였다. 성인 마족이 되면서까지 저보다 쎈 마족을 보지 못했던 백현은 찬열이 누구인이 정말 궁금해졌다.
"내 기운이 느껴져?"
"응. 이런 기운은 처음이야."
당연하지! 난 하나 밖에 안남은 빛의 마족이니까! 라고 말하려던 백현은 만두와 함께 삼켜버렸다. 아빠가 아무한테도 내입으로 먼저 빛의 마족이라고 말하지 말라했어.
"정말 좋아."
"뭐가?"
"백현이가."
"컥!"
찬열의 말에 만두 먹다가 사레 들린 백현이 얼굴이 시뻘게 져서는 찬열을 바라보았다. 절대로 수줍어서 빨개진 것이 아님! 얜 무슨 말을 이렇게 뜬금 없이해? 물을 벌컥벌컥 들이 마신다.
"이런 성스러운 느낌은 처음이야. 신기해."
"그래서, 내가 좋다고?"
"어."
씨익 웃는 찬열. 그게 정말 잘생겼다고 느낀 백현은 잠시 벙쪄 있다가 문뜩 크리스가 가끔 저를 보다 화를 내며 중얼거리는 말이 떠올렸다.
'젠장! 내 이쁜 아들을 그 바보 멍청이 마왕 자식한테 넘겨야 한다니!!'
......? 얘가? 에이. 말도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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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루한은 세훈과 함께 몇년 전부터 스케줄 수첩에 적혀있던 약속 장소로 향했다. 세훈은 조수석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루한을 바라보았다.
"형, 우리 어디가요?"
"잊혀질 쯤 하면 나타나는 놈 만나러."
잊혀질 쯤 하면 나타나는 놈? 세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게 누구지? 그런 세훈에 루한이 귀엽다는듯 웃었다.
"너도 기억이 안나면 다른 녀석들은 아예 모를 정도겠다."
"누군데요?"
"잘 생각해봐. 우리가 잊고 있던 멤버."
루한은 세훈의 부드러운 생머리를 쓰다듬었다. 차는 고속도로를 들어섰다. 세훈은 루한이 꽤나 먼곳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 내일 학교 가는 날인데. 혹시 안가도 되려나? 제발. 출석률 따위 신경 안쓰는 고딩 세훈은 간절했다. 이쯤이면 멀지 않은 약속 장소에 거의 다온것 같다. 한적하고 잔잔한 파도가 치는 해변. 그 앞에 차를 대고 루한과 세훈이 내렸다.
"왠 바다에요? 여기서 만나?"
"아직도 모르겠어?"
루한이 세훈의 눈을 마주했다. 고개를 갸웃했던 세훈이 그제야 아! 하며 작은 미소를 띄었다.
"타오?"
세훈과 루한은 저 멀리서 해변을 거닐며 걸어오는 작은 인영을 보았다.
~눈부셔~ |
휴가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저번편에 댓글을 달아주신 치즈님! 됴르르님! 브라보님! 순심님!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다른 독자님들도 항상 감사드려요~ 다음 편에서 뵙겠씁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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