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국은 남자를 좋아한다
w. 정국학개론
남녀 분반인 다른 반과는 다르게 사람 수가 맞지 않는 관계로 남녀 합반인 우리 반은 유난히 사랑이 피어오르는 반이었다. 오죽했으면 '사랑은 14반을 타고~' 라고, 우리 학교 전설로 내려오는 말이 있다. 3학년 14반은 오작교와 같은 곳이라고, 우리 학교 조상님들과 선배들은 그렇게 말했다. 물론 거기에 우리도 포함돼 있었다. 1학년, 2학년 동안 복도에서 남자만 봐도 사모하는 남정네를 만난 조선시대 아씨처럼 부끄러워 하며 교실로 들어가던 여학생들과 교무실을 가기 위해 굳이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길을 돌아 여자반을 기웃거리던 남학생들에게 3학년 14반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지금까지의 말은 다른 학생들에게 해당하는 말이었고, 앞서 말한 여학생들에 속하지 않은 나는 평범하게 남학생들과 마주칠 일따윈 전혀 없는 여자반에 걸리길 소원했었다. 남자를 지독히 싫어하는 것도, 남자에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단순히 이질적인 감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14반은 오작교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좌석 배치도 아주 너그러웠다. 물론 나 말고, 다른 여학생들과 남학생들에게 말이다.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여자가 옆에 있는 것보다 남자가 옆에 있는 게 더 편하고, 남자가 옆에 있을 때 더 눈치를 많이 보게 되고, 괜히 내 행동 하나하나가 거슬리지는 않을까 신경이 쓰이는 것.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여중에, 남녀 공학이었지만 1,2학년 내내 여자반이었고, 그래서 남자는 우리 아빠밖에 모르고 자라왔다. 오빠가 있는 것도, 남동생이 있는 것도 아닌 나는 내 또래의 남자애들과는 말도 한번 섞어본 적이 없는 아주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여자란 말이다.
14반에 걸린 것도 재수가 없었는데, 좌석 배치도 아주 재수가 없었다. 3학년이 됐으니 공부란 걸 해볼까, 하고 야심차게 새 노트를 사서 펼쳤는데 뭘 써야 할지 도통 감이 안 잡혀서 다시 덮어버린 찝찝한 기분이랄까. 공부하기에 아주 최악의 조건인 자리에 앉았다. 맨 끝 창가 자리. 햇빛 잘 들어서 잠은 오지, 안 그래도 눈이 안 좋아서 교탁에 서 있는 선생님 얼굴은 물론 칠판 글씨는 보이지도 않지, 거기다 더 최악인 건 내 짝이 전정국이었다는 것이다. 것도 전정국이 굳이 내 옆자리를 뽑은 조용한 남자애와 자리를 바꿨다는 것이다.
그래, 물론 나도 잘생긴 남자애 좋아한다. 고등학교 3학년이고, 19살이면 알 건 다 아는 나이다. 나도 잘생긴 남자애와 시내를 거닐며 교복 데이트도 해보고 싶고, 서로 아이스크림도 먹여주고 싶고, 이 남자가 내 남자다, 주변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고 싶고, 밤새 카톡도 하고 싶고, 암튼 욕심이란 욕심은 엄청난 19살 여자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안 그래도 부담스러운 옆자리, 더 부담스럽게 만들 일 있나. 안 그래도 부담스러운 남자애, 더 부담스럽게 만들 일이 있나.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 전정국이 옆에 있으면 안 그래도 안 되던 공부가 더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저런 잘생긴 얼굴을 두고 내가 아무렇지 않게 공부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계속 힐끗거리고, 힐끗거리다 보면 전정국이 눈치 채서 주변 친구들에게 시끄럽게 떠들어댈 수도 있는 노릇이고. 암튼 머리가 복잡했다. 자리를 바꾸려고 구걸할 정도로 내 성격이 두루두루 친한 편도 아니었다. 거기다 소문에 의하면 담임 선생님은 자리 바꾸는 걸 굉장히 귀찮아 해서 한 학기에 단 한 번, 그 기회가 주어진다고 했다. 그러니까 나는 1학기 동안 전정국과 함께 지내야 한다.
" 안녕. "
한쪽 어깨에 가방을 걸치듯 매고 껄렁한 자세로 내 옆자리로 걸어오던 전정국이 자리에 앉아 대충 가방걸이에 가방을 걸어놓았다. 가방을 걸어놓는 전정국의 옆선을 힐끗 쳐다보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는 그 애의 모습에 나도 시선을 돌려 칠판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칠판에 정갈한 글씨로 적힌 담임 선생님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강제로 외우는 꼴이 됐다. 전정국은 엎드려서 자는 듯 했다. 다시 전정국 쪽으로 시선을 조심스럽게 옮기면. 맙소사.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던 그 애와 눈이 마주쳤다. 전정국을 몰래 쳐다보다 들킨 사람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물론 몰래 보려고 했던 건 사실이지만. 전정국이 내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그 애의 눈이 예쁘게 휘었다. 어버버, 아무 말도 못하고 입만 벌리고 있자, 전정국이 몸을 일으켜 내 쪽으로 완전히 돌려서는 턱을 괴고 내 얼굴을 탐색하듯이 훑었다.
훑었다는 표현이 정확했던 것일까, 그 애의 시선이 어디에서 어디로 옮겨가는지가 정확히 내 눈엔 보였다. 처음엔 내 눈, 그 다음에는 내 코, 내 입술. 입술에 그 애의 시선이 잠시 닿았을 때 오른손의 등으로 볼을 만졌다. 화끈거리는 얼굴만큼 내 얼굴을 뜨거울까, 우려한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전정국은 이내 다시 내 눈으로 올라와 눈을 맞췄다. 마주했다기 보단 맞췄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그 애의 눈은 다정했다. 그리고 직감했다. 안 그래도 불편한 전정국은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들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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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남중 나와서 친한 여자애 한 명도 없어. "
" 응… 그래? "
전정국은 생각보다 말이 굉장히 많았다. 아니, 전정국이 시끄러운 건 잘 알고 있었다. 1학년 입학 때부터 전정국의 소문은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왜? 잘생겼으니까. 피부가 좋다고 자부할 수 있는 어떤 여학생보다도 피부가 좋은데다 하얗기까지 했고, 올망졸망한 이목구비가 그 작은 얼굴에 적정한 위치에 배치돼 있어 잘생겼단 말이 아주 잘 어울리는 애였다. 그것뿐인가, 전정국이 축구하는 모습, 농구하는 모습, 그리고 가끔 더울 땐 윗통을 벗는 모습, 그리고 얼굴로도 부족한지 배에 탄탄하게 심어져 있는 복근까지 여자애들이 안 좋아할 요소가 하나도 없었다. 거기에 나도 포함되어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근데 전정국이 옆에서 혼잣말 하듯 나에게 말을 토해내고 있으니까 그냥 기분이 이상했다. 마치,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내 옆에서 말을 하는데 괜히 나 혼자 어색하고 부끄러운 느낌. 그 정도로 전정국은 혼자서 말하는 걸 잘했다. 나와 친해지고 싶다며 애써 돌려 말하는 것도 모른 척 하고 있는데 전정국은 포기할 줄을 몰랐다. 심지어 수업이 시작했는데도 말을 거는 건 끊임이 없었다. 몇 번 지적을 당하고 나서 좀 조용해졌나, 싶으면 삐뚤삐뚤한 또래 남자애 글씨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A4용지는 또 어디서 구해왔는지 하얀 A4용지가 전정국같다고 생각하며 전정국이 적어놓은 말을 보며 고민했다.
그러니까 나랑 친구해.
교탁에서 열심히 설명하시는 선생님의 말을 한 귀로 흘려보내고 전정국의 말에 잠시 고민하는 듯 하면 전정국은 옆에서 손을 꼼지락대다, 답답했는지 왼손으로 내 어깨를 붙잡고 펜을 헐렁하게 잡고 있던 내 오른손 위에 자신의 오른손을 올려 자기 글씨체처럼 삐뚤하게 글을 적었다. 말이 글이지, 결국 자기가 원하는 답을 내놓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나랑 친구해.
그래.
스킨십이 원래 이렇게 자유로운 앤가. 내 어깨에 잠시 닿았던 전정국의 왼손과, 내 오른손에 닿았던 전정국의 오른손은 어느새 저 멀리 A4용지를 가져가 반으로 접고 있었다. 그 애와 눈만 맞춰도 화끈거렸는데, 지금은 오죽할까. 갑자기 확 올라오는 부끄러움에, 혹시나 얼굴이 빨개졌을까 손으로 얼굴을 감싸는데 옆에서 전정국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 애를 볼 자신이 없어 눈을 내리고 머릿속엔 들어오지도 않는 책을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그 애가 옆에서 실실 웃는게 느껴진다. 멍청한 게,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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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은 친화력이 좋았다. 하지만 남자라는 면에서 내가 전정국을 편하게 대할 일은 절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짝이었지만 전정국을 조금 멀리 했다. 같이 밥 먹자는 전정국의 말을 무시하고 2학년 때 친한, 지금은 다른 반인 친구와 점심 시간을 함께 했고, 같이 하교하자던 전정국의 말을 뒤로 하고 야자가 끝나자마자 뛰쳐나가 먼저 버스를 타고 냉큼 하교했다. 피하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중간고사가 끝나고서도 반복되자, 그 애는 슬슬 나에게 싫증이 난 것 같았다. 수업 시간에도 줄기차게 말을 걸어서 나를 귀찮게 하던 애가 쉬는 시간에는 잠을 자거나 친구들과 놀러 나갔다. 나와 짝이 된 후에는 가만히 자리에만 앉아있던 애가 점심 시간이 되면 점심을 먹기도 전에 운동장으로 달려 나갔다. 초반에 다른 친구들은 얼씬도 못하게 전정국이 울타리를 쳐놓던 바람에 중간고사가 끝나기까지 제대로 말이라도 해본 친구가 없던 나와 다르게 전정국은 급속도로 반 애들과 친해졌다. 물론 여자와 친해지지는 않았다. 남중을 나와, 여자가 어색하다던 그 애의 말을 믿지 않았는데, 정말인 것 같았다.
빨리 방학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친한 친구도 없고, 공부도 안 돼고. 무엇보다도 방학이 끝나고 나면 자리가 바뀔 거니까, 그걸 너무도 바라고 있었다. 이제 전정국은 나에게 말도 걸지 않았다. 인사조차도 하지 않았다. 가끔 눈인사 정도는 하던 나 역시 그 애를 철저히 무시했다. 처음에는 그저 어색하고 불편했을 뿐인데, 지금은 더 어색하고 더 불편했다. 그래서 등교하다 버스 안에서 전정국을 마주쳐도, 그 애가 나를 알아보고서 먼저 모른 척 할까 두려워 고개를 숙였고, 점심시간에 전정국이 운동장에서 뛰는 모습은 당연히 보지 못했다. 다행이었던 건 전정국이 쉬는 시간 내내 반을 벗어나 있었고, 수업 시간 종이 치고 나서 선생님이 오기 바로 직전에 반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혹시 나를 의식하고 그런 것일까, 잠시 고민은 했었지만 한 번은 화장실에 갔을 때 지나가면서 녀석을 본 바로는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다른 반에도 친구들이 많았을 뿐.
가장 난감한 적은, 전정국이 숙제를 제출하지 않고는 자리에도 없어서 실장이 나에게 말을 대신 전달해달라고 했을 때였다. 전정국과 어쩌다 눈만 마주쳐도 피하는 사이에 말까지 하라니, 것도 먼저 무시한 내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실장이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어 알았다며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그리고 전정국이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수업 시간에 딱 맞춰서 들어왔을 때 나는 어떻게 말을 전해야 하나 고민을 했었다. 어떻게 하면 어색하지도, 불편하지도 않게 그 애에게 말을 전할까. 짝사랑 상대에게 어떻게 하면 연애 편지를 통해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처럼 수업 시간이 30분이 지나도록 고민을 했지만 그 애의 반응이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수업 시간이 끝나기 10분 전, 선생님이 한창 수업에 열정을 쏟아붓고 있을 때, 그리고 내가 다리를 달달 떨며 전정국을 힐끔거리고 있을 쯤, 전정국은 서랍에서 A4용지를 꺼냈다.
그러니까 나랑 친구해.
그래.
왜.
전정국은 반으로 접힌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는 A4용지를 나에게 들이밀었다. 같은 A4용지였다. 그때와 같은. 잠시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전정국을 좋아한 것도, 전정국과 친해지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동안 친구가 없어서 내가 많이 외로웠던 건가. 아님, 괜히 몇 달 전 기억 속의 전정국이 너무 다정해서였을까. 그것도 아님, 내가 전정국을 좋아하는 걸까.
머리가 하얘졌다. 달달 떨리는 손으로 A4용지에 손을 올리고 잠시 머뭇거리고 있으면, 그때와 별반 다를 바가 없는 내 모습에 전정국은 힐끔거리던 걸 그만두고 이제는 아예 턱을 괴고 내 쪽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가슴이 아려왔다. 어떤 드라마를 보고, 어떤 영화를 보든 난 그 어떤 사람보다도 감수성이 풍부했고, 눈물을 자주 흘렸고, 그 드라마 혹은 영화의 주인공보다도 내가 더 아파했다. 그래서 그런가, 이유도 모른 채 가슴이 아려오니 기분이 묘했고, 울컥하는 게 짜증이 났다. 그렇게 수업 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리고, 금방이라도 나갈 줄만 알았던 전정국은 그렇게 오랫동안 나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의 내 일을 사과해야 하는 걸까. 역시 내가 사과해야 하는 게 맞겠지. 이제 실장이 전해달라는 말같은 건 떠오르지 않았다. 이미 예전부터 마음 속에선 전정국에게 미안하단 말을 전하고 싶다는 응어리가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아픈 게 맞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 뭐야. 김아미 아직 안 전해줬어? 전정국 너 수학 숙제 제출해야 해. 했어? "
" 아, 어. 미안. 지금 낼게. "
" 난 또 네가 안 했을 줄 알고 미리 말해달라고 했는데. 다행이네. "
책상 앞에 잠시 머물렀던 실장이 전정국이 건네준 수학 노트를 들고 걸음을 옮겼고, 이어 나오는 전정국의 말에 펜을 세게 움켜쥐고 있던 손에 잠시 힘이 풀렸다.
" 아, 말하려던 게 수학 숙제? "
" ……. "
" 그럼 됐네, 이제. "
그게 아닌데. 전정국은 내 손 밑에 있던 A4용지를 다시 가져갔다. 반으로 다시 접어 서랍에 넣으려는가 싶던 그 애는 자리에서 일어나 뒷문으로 나가기 바로 직전 쓰레기통에 A4용지를 버린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그리고 아까보다도 더 가슴이 아팠다. 내가 잘못했다.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만 딱 적으면 끝났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 애가 먼저 시작한 이야기를 내가 끝내버렸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건 나였는데도 그 기회를 놓쳐버렸고 그 애에 의해 끝나버렸다. 내가 잘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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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전정국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눈치가 빠른 전정국은 내가 늘 자기를 보고있다는 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굳이 아는 척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전정국을 피하기에 급급했던 나는 등교 시간에도, 수업 시간에도, 점심 시간에도, 하교 시간에도 늘 전정국을 생각하고 찾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렇게 피하고 싶을 땐 눈에 밟히던 애가, 찾으려고 하니 달아나듯 사라져버렸다. 등교 시간 버스에서도, 점심 시간 운동장에서도, 하교 시간 학교를 나서는 길에도 전정국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수업 시간에서만 내 옆에 앉아 샤프를 잡고 무언가를 끄적이기도 하고, 졸기도 하고, 가끔 혼도 나고, 다른 친구와 눈짓으로 장난도 쳤다. 그 애는 이미 나에게 관심을 끈지 오래인 것 같았다.
전정국을 쫓고 있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대체 왜 내가 전정국을 찾고 있을까, 내가 왜 전정국을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하는 수업 시간 이외의 시간에도 전정국을 생각하고 있을까, 왜 말을 걸어오는 반 친구들의 얼굴을 보며 전정국을 떠올리는 걸까, 왜 밤새 내일의 전정국의 모습을 그려보는 걸까, 많은 고민 끝에 내린 생각은 단순했다. 알고 싶지도, 인정하고 싶지도 않은 사실이었다. 그동안의 전정국을 나는 좋아한다. 나에게 말을 걸었을 때부터 이미 전정국을 좋아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 좋아하는 마음에 그 애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내 모습이 부끄러워 그 애를 피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
인정하고 나니, 후련했지만 인정해버리니, 부끄러웠다. 그 애를 볼 때마다 얼굴이 빨개졌고, 눈을 감아도 그 애가 보였고, 귀를 막아도 그 애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짜증이 났다. 설렐 수 있는 타이밍이 왜 하필 지금인 건지, 왜 바보같이 나는 지금에서야 그 애를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는지, 내가 정말 한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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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문이 들려왔다. 전정국이 남자를 좋아한다는 소문이었다. 전정국이 다른 학교 남자애에게 고백했다가 차였다는 말도 있었고, 남자와 모텔을 드나들었다는 말도 있었고, 게이바에 들어갔다는 말도 있었다. 아무튼 소문은 많았다. 그리고 그 소문은 모두 전정국이 남자를 좋아한다는 걸 가리켰다. 그리고 그 소문이 퍼지고 난 다음날부터 전정국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왜? 당당하다면 학교에 나왔겠지. 진짜 전정국이 남자를 좋아하는 걸까. 전정국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사람이라면 궁금해 할 것들이 마음 속에서 퐁퐁 솟아났고, 나는 그 호기심에 다른 애들의 소문에 귀를 키웠다.
" 어쩐지. 전정국 여자애들한테 말 한 마디도 안 걸었잖아. "
" 야, 왜. 그래도 아미한테는 걸었었어. "
그리고 나처럼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은 내게로 달려들었다. 나는 너희가 달려들 정도로 많은 걸 알지 못하는 사람인데 말이다. 애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에게 어떠한 해답을 바라는 듯 쳐다보았고, 나는 아무런 해답을 가지지 못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전정국과 아무 사이가 아니었지만, 물론 그 애들도 그것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지만, 동조를 바라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전정국을 좋아하지만, 그 애들의 의견과 반대되는 의견을 내놓고, 그 애들에게 미움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 나랑도 별 말 안 했어. 그냥 숙제 얘기 정도… "
" 거봐, 게이 맞다니까? "
" 으, 진짠가? 더러워. "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전정국과 나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고작해야 숙제 얘기, 맞는 말이었다. 정말 맞는 말이었지만 그 말을 하면서도 무언가가 가슴을 콕콕 찌르는 게,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건 비단 지금뿐만이 아니었고, 전정국이 아무 말도 없이 어느 순간 전학을 가버린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전정국은 남자를 좋아한다
글을 읽어주실 분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혹시나 해서 설명을 위해 간략하게 남겨요.
우선 나름 긴 글에, 대화도 별로 없이 설명만 늘어뜨린 글 꾹 참고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이 글은 프롤로그였구요, 이 이상으로 고등학교 시절의 얘기는 나오지 않아요.
정국이와 여주의 과거 얘기에서 그치고, 그 이후 20살부터의 얘기 또는 그 이상부터의 얘기가 시작됩니다.
진행속도가 너무 빨라서 당황하셨을까 봐 미리 말씀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