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랑
; 본인의 이름으로 치환해주세요! 작품을 읽으실 때, 더욱 집중하실 수 있을 거예요.
나름 이름이 중요한 요소니, 부탁드릴게요 ㅎㅎ
01. 화분
선생님이 화분 하나씩 키우래.
대뜸 등 뒤에서 투박한 손 하나가 나타났다. 손에는 작은 다육 식물 화분이 들려 있었고, 그 화분을 들고 있는 건 반장이었다. 얘는 여전하네. 반장의 잘 다려진 하복 셔츠 위, 마지막 단추가 덜렁거렸다. 완벽한 것 같으면서 꼭 빈틈이 하나씩 있단 말이야. 신경 쓰이게.
"고마워."
"응, 몸은 괜찮아?"
"나야. 뭐, 자주 이렇잖아. 그런데."
"응?"
너 단추 떨어지겠다. 그제서야 제 단추 상태를 알아챈 반장은 저답지 않게. 한편으로는 또 저답게 허둥지둥. 그러다가 '탁'하고 기어코 단추를 떼어먹는다. 이, 이게 왜. 나와 단추를 번갈아보던 반장은 그렇게 황급히 교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화분을 책상 위로 올려두고는 그 옆에 같이 고개를 묻었다. 울퉁불퉁 넓은 잎이 멋대로 뻗은 식물이었다. 뭐 이렇게 생겼냐. 웃음이 났다.
02. 약
언제 죽어도 이상할 정도로 몸이 나쁜 건 아니다. 그냥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해서, 잔병을 잘 달고 다닐 뿐이다. 때문에 기침 한 번만 해도 학교를 빠지는 일이 빈번했고, 다른 친구들보다 출석부에 병결이 많다. 그게 다다. 이번에는 폐렴으로 이주일정도 입원했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동안 담임 선생님은 무슨 바람이 분 건지, 제 사비로 화분을 사서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고 한다. 겨울방학 전까지 무사히 잘 키우는 게 숙제라며. 창가와 사물함 뒤에는 아이들의 다육 식물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제법 자란 것도 보였고, 벌써 죽은 것도 보였다. 나는 내 화분의 위치를 고민하다, 혼자 덩그러니 놓인 화분 옆을 선택했다. 외로운 화분 하나의 주인은 반장이었다. '김남준' 네임 스티커에 단정하게도 적은 이름과 이름 위 작은 하트가 무색하게도, 화분 속 식물은 벌써 빛 바랜 색을 보였다. 공부 빼고 잘하는 게 없다는 소문이 괜히 난 게 아니었다. 아이들은 또 '남준의 법칙'을 이야기하며, 제 화분을 살리기 위해 최대한 멀어졌겠지. 이 화분으로부터. 그때 반장은 무슨 표정이었을까. 또 아니라며 커다란 손을 휘휘 저었을까. 아니면 잘 정돈된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을까. 그 표정이 궁금했다.
"거기 두지 말지."
김남준이었다. 반장은 제 셔츠 끝을 만지막거리며 말했다. 거기 뒀다가 죽으면 어떻게 해. 이거 수행평가래. 자신조차 제 법칙을 믿는 모양이었다.
"안 죽어. 내가 잘 키우면 돼."
"그래도 내꺼 봐봐. 벌써 저래."
"너꺼랑 내꺼랑 똑같은 거야?"
"응."
화분을 둘 때 어쩐지 투박한 잎이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같은 종이었나보다. 나는 기어들어가는 반장의 목소리가 웃기면서도 괜시리 간지러워서, 거의 다 죽어가는 반장의 화분으로 고개를 돌렸다. 야, 화분. 눈치없이 왜 넌 죽어가냐. 저 덩치 큰 애가 어깨 접고 저렇게 슬퍼하는데. 나는 차마 입밖으로 뱉지 못할 말을 화분에 쏘고는 색 잃은 잎 하나를 툭치고 말했다. 어디서 봤는데 식물들도 예쁜 말, 좋은 말 해주면 잘 자란대.
"그러니까 물 그만 주고, 예쁜 말 많이 해."
"..."
"반장 네 화분 밑에만 물이 흥건하다. 흥건해."
"... 아."
"나 약 먹어야 되는데, 이 물로 마셔도 되겠어."
"그, 그건 아닌데."
빨개진 귀가 자꾸만 놀리고 싶게 만든다. 진짜. 나는 주머니 속 약봉투를 손에 꼭 쥔 채로 반장 옆을 지나쳤다. 더운 기운이 끼쳤다. 누구의 온도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반장이 내 얇은 가디건 소매를 살짝 잡아 당겼다. 그리고 작게 포장된 곰돌이 젤리를 손에 쥐어주었다. 약 먹고 쓰면 먹어. 다정한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는 게, 이렇게까지 귀여울 일은 아니지 않나. 나는 불확실하지만 형태가 보이는 그 마음을 놀리고 싶어졌다. 안 쓰면? 먹지마? 내 물음에 반장이 빨간 귀를 두 손으로 만지작거리고는 아무 대답을 못한다. 귀엽게. 나는 고개를 숙여 살풋 웃음을 감추고는 복도 정수기로 향했다. 원래 저 정도로 귀엽지는 않았는데.
색색의 작은 알약은 참 예쁘다. 맛이 없어서 그렇지. 현대 의학 기술이 이렇게까지 발전했는데, 약이 이렇게까지 맛이 없는 건 21세기 답지 않다. 나는 마지막 알약을 집으며 생각했다. 혀에 조금이라도 오래 머무는 순간, 그 떫은 맛이 금방 퍼지니까. 그 작은 게 목에 걸리면 잠드는 순간까지도 신경 쓰이니까. 알약을 입에 넣고는 고개를 젖혔다. 당황한 반장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안 써도 먹으라고. 반장은 그 말을 끝으로 제 친구들 무리로 뛰어갔고. 나는
큰일났다. 그 작은 알약 하나가 목에 턱하니 걸려버렸다. 떫은 맛과 이 불편함을 종일 가지고 있어야 했다. 알약과 함께 붉은 귀, 단단한 덩치, 커다란 손. 귀여운 보조개. 같은 것들이 함께 걸려버렸다. 나는 한참을 정수기 앞에 서 있었다.
03. 예쁜 말
반장을 좋아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반장은 인기가 많고, 누구에게나 친절했으니까. 사귀면 딱 피곤할 타입이었다. 학교에 반장과 사귀어 본 아이는 없다. 몰래 연애를 했을 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공공연하게 아는 바로는 반장은 연애를 한 적이 없다. 아이들의 고백도 공부 이야기를 하며, 뻥뻥. 차댔으니까. 그래서 좋아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때문에 병원에 있는 동안 숙제를 알려주는 메세지와 필기를 보여주는 메일에도 '친절'이라고 '마음'이 아니라고 무수히 생각했다. 필기를 보여주느라 잡은 공책 끝 바짝 깍은 엄지 손톱은 쳐다도 보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내 노력을 이렇게. 한순간에 작은 화분 하나와 작은 알약 하나 그리고 작은 곰젤리 하나가 힘을 합쳐 무너트렸다.
지금부터 수업에 집중해도 다른 아이들보다 부족할 텐데. 마음이 자꾸 붕 떠서, 반장에게로 향했다. 오후 수업을 어떻게 보냈는 지도 모르게 학교가 끝나버렸고, 친구들은 내게서 열이 난다며 담임 선생님께 달려갔다. 그 덕분에 내 청소 당번은 반장에게 돌아갔다. 또 반장. 반장. 쟤는 왜 대체 반장이라서 자꾸 내가 빚을 지게 하냐고. 억울한 마음에 동네를 몇 바퀴 돌았다. 놀이터에 앉아 구름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신발로 모래를 파다가. 문득 화분이 생각났다. 아, 집으로 가져올 걸. 반장 것도. 엄마의 취미 덕에 집에 가득한 식물 영양제 같은 거라도 꽂아볼 심산이었다. 제 화분만 죽어 부루퉁한 그 말랑한 얼굴이 구름에 겹쳐보여서. 야자를 하는 친구들은 전부 석식을 먹으러 내려갔을 시간이었다. 나는 학교로 걸음을 옮겼다.
예상대로 반 아이들은 학식을 먹으러 내려갔다. 하지만 사물함 뒤 화분 앞에 반장이 있었다. 사물함에 기대어 말하는 남준의 뒷모습이 보였다. 빳빳해진 셔츠가 반장의 큰 등을 계속해서 보게 만들었다. 미쳤나봐. 나. 나는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 싶어, 조용히 계단으로. 그렇게 집으로. 가려 했는데.
곰젤리 같은 목소리가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야, 왜 너만 죽냐아.
일부러 두 개만 있는 거 가지고 온 건데. 죽으면 안 되지. 짜식아.
옆에 짝꿍도 있구만. 좀 살아봐. 응?
너무 신경을 안 써줘서 그래? 앞으로 잘 할게. 제발.
예쁜 말도 하루에 한 번, 아니 열 번씩 해줄게.
살아주라. 부탁할게.
김여주, 김여주, 김여주, 김여주, 김여주, 김여주, 김여주, 김여주, 김여주, 김여주.
자, 오늘 예쁜 말. 열 번.
반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침이 나왔다. 목에 걸린 알약때문이었다.
FIN
안녕하세요. 겨울입니다!
다들 잘 지내셨나요?! 너무 오랜만이라 어색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그래요 ㅎㅎ
코로나 때문에 다들 외출도 못하시고 답답하실 텐데, 제 글이 조금이나마 여름 내음과 설렘을 전해주었으면 좋겠어요.
멤버들을 단편으로 찾아올게요. 건강히 지내요. 우리! 몸 건강히, 마음 건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