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lyLove
; Special 01
질투의 화신
[Lovelylove; 러블리러브]는 배우 태형이와 기자 여주의 이야기입니다. 해당 회차는 태형이와 여자 주인공이 비밀 연애 중에 시상식에서 만나게 된 상황부터 진행됩니다. 앞선 작품을 보지 못하셨더라도 읽는데 불편함이 없게 노력했으니, 편하게 읽어주세요!
*
배우나 가수 그리고 희극인까지. 재작년부터 특정 직업군을 허문 채 진행된 모 케이블의 시상식은 올해도 가장 기대되는 연말 프로그램으로 손꼽혔다. 그만큼 각 분야의 내놓으라는 탑들이 모였고, 그에 따른 팬들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여주는 저를 따라온 신참을 챙기며, 이제 막 2층에 준비된 프레스룸에 들어온 참이었다. 눈에 익은 선배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다가, 여주와 곁의 신참을 보고는 벌써 선배가 된 거냐며 농담을 던졌다. 기자가 된 지도 벌써 햇수로 육 년차였다. 여주는 개구지게 웃으며, 제 곁의 후배를 선배들에게 보냈다. 가서 어떻게든 얼굴 박고 와. 후배는 여주의 말에 에? 하고 되물었지만, 여주는 제 장비와 후배의 장비까지 챙겨 세팅을 준비했다. 이 바닥에서 살아 남으려면 얼굴에 철판 까는 건 당연한 일이었기에 여주는 오늘만큼은 제 후배를 강하게 굴려볼 생각이었다.
혹시라도 중간에 인터넷이나 하드가 나가서 기사가 삭제되는 일이 없게 자동 저장 프로그램을 깔고 있을 때였다. 여주의 핸드폰에 '애인'이라는 두 글자가 떴다. 다들 각자의 업무와 친목 도모로 바쁜 와중이었음에도 괜히 주변의 눈치를 살핀 여주가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꼽고, 통화 버튼을 누르고 말했다. 여보세요. 그러자 이어폰 너머에서는 레드카펫에 들어서기 전까지 전화를 나눈 익숙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흘러왔다. 네. 여보입니다. 여주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지로 내리며, 프로그램에 문제라도 있는 것처럼 인상을 찌푸리고는 노트북 모니터에 얼굴을 묻었다. 흐흥. 뭐야.
"벌써 프레스룸 올라갔어?"
"응. 오늘 후배 데리고 와서, 선배들한테 인사도 시킬 겸."
"대기실 와서 얼굴이라도 보고 가지."
"어차피 난 여기서 얼굴 실컷 볼 수 있는데?"
"... 나는 못 보잖아."
"그건 그쪽 사정이죠. 저는 여기서 세시간 동안 잘난 얼굴 좀 보다가 가려구요."
"돈을 그렇게 날로 벌어도 되는 거야?"
태형은 제게 얼굴이라도 보여주고 갈 줄 알았던 기자 애인이 홀랑 프레스룸으로 가버린 것에 서운함도 잠깐, 기자석에서 제 얼굴을 실컷 보겠다는 애인의 당찬 포부에 큰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 채 웃음을 터뜨렸다. 메이크업 수정을 봐주던 스텝은 익숙하다는 듯이 잠시 대기실을 벗어났다. 소나기처럼 짧고 강하게 흠뻑 젖고 말 줄 알았던 제 배우의 연애가 소나기는 무슨. 그냥 소나무였다. 사시사철 푸르고 지조와 절개를 저버릴 줄 모르는 소나무.
이 바닥에서 그렇게 꼿꼿하고 건강한 연애를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걱정보다는 다행이라는 마음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연애 상대가 기자이니. 뭐 알아서 조심할 건 조심하니까. 태형이네 팀 식구들은 되려 고마울 뿐이었다. 태형은 보이지도 않으면서 그려지는 말간 얼굴을 떠올리며, 일침을 날렸다. 돈을 그렇게 날로 벌어도 되는 거야? 그러자 여주는 아이 같은 웃음 소리와 함께 말했다. 나 잘리면 자기가 돈 벌어야지, 뭐. 태형은 느닷없이 들어온 '자기'라는 호칭에 답지 않게 귀 끝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그렇지 않아도 같은 현장에서 전화를 주고 받는 것이 충분히 간지러웠는데. 2인칭 대명사가 아닌 '자기'라는 호칭. 아니, 애칭이라니. 태형은 답하는 것도 잊고 웃기만 할 뿐이었다. 대기실로 돌아온 메이크업 스텝은 태형에게 전화를 끊으라는 눈치를 주었고, 여주 역시 제 일을 해야 한다며 잠시 뒤에 보자고 달랬다.
태형은 그렇게 아쉬운 전화 통화를 마치고, 남은 메이크업을 수정했다. 얼굴 위로 오가는 극세사 붓들의 터치보다 '자기'라는 단어 하나가 몇 배는 더 간지러웠다. 만난 지 3년이 넘어가는 데도 이렇게 좋은 걸 보면, 저도 참 답이 없다고 생각하는 태형이었다.
*
1층 준비된 자리에 연예인들이 들어서자, 팬들의 웅성거림은 금세 환호소리로 바뀌었다. 신입 기자는 상상을 뛰어넘는 소리에 놀란 듯, 덩치에 맞지 않게 화들짝 놀라며 여주의 오른팔을 부여잡았다. 선배. 모든 현장이 이래요? 제 곁의 신입이 현장까지 처음일 줄은 몰랐던 여주가 팔을 잡고 늘어지는 신입의 모습에서 제 첫 현장을 떠올렸다. 인기 남자 아이돌 그룹의 컴백쇼였는데. 그때의 저도 팬들의 응원법에 사람 목에서 저런 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여주는 그때 선배가 제게 해준 것처럼 신입의 귀를 두 손으로 덮어주었다. 그리고 손을 떼며 말했다. 처음에만 좀 아프지, 시간 지나면 적응 될 거야. 그리고 절대 인상 찌푸리면서 귀 막으면 안 된다. 팬들이 그런 거 싫어해.
신입은 현장에서 더욱 선배다워 보이는 여주의 모습에 감동이라도 받은 듯,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여주와 신입이 나름 저들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동안, 좀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환호성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었다. 후배의 머리를 가볍게 헝클인 여주가 뒤늦게 환호성의 근원지를 찾아 고개를 내렸다. 그리고 미처 자리에 앉지도 않은 채로 기자석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불퉁한 표정의 제 애인과 눈이 마주쳤다. 태형은 제가 눈으로 보고 있는 장면이 자꾸만 여러 개로 갈라져서, 미간을 찌푸린 채 프레스룸 속 다정한 한 쌍을 바라보았다. 팬들에게 인사를 마치자마자 제 애인을 찾겠다고, 프레스 룸을 면밀하게 살폈는데. 보이는 풍경이 썩 마음에 안 들었다. 1층과 2층의 거리 탓에 초점이 흔들렸다가 맞춰지기가 여러 번 반복되는 동안, 속도 없는 태형의 애인은 순진무구한 후배에게 귓속말로 무어라 말까지 전해주었고. 여주보다 못해도 1.5배는 큰 덩치를 가진 신입은 주인만 바라보는 리트리버마냥 고개를 끄덕이며 충성을 바쳤다.
태형은 레드카펫 때의 캐쥬얼한 네이비 색 수트와는 또 다른 댄디한 검정 색의 수트를 갖춰 입었다. 레드카펫의 태형은 조금 더 어린 티가 났는데, 지금 눈 앞의 태형은 어른 남자 향기가 물씬 났다. 태형의 팬들은 필시 오늘 날짜를 관에 써달라고 할 것이었다. 매일이 레전드인 남자에게 오늘이 감히 진정한 레전드라고 말 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여주는 단순히 태형이 저를 찾아서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를 보는 표정이 무언가 비뚤어졌다는 것을 알고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혹시 이 신입과의 스킨쉽 아닌 스킨쉽 때문에 그러는 건가. 저렇게 근사한 어른 남자처럼 있으면서. 태형보다 태형을 잘 읽는 여주는 일부러 모른다는 듯이 태형에게 향해 있던 고개를 다시 신입에게 돌리고는 조금 전에도 말했던 주의사항을 다시 한 번 속삭였다.
여심은 물론이고 남심까지 사로 잡은 태형 위에는 그런 태형을 잘, 아주 잘 다루는 애인이 있었다. 프레스룸으로 올라갈 기세인 태형을 불안하게 바라보던 매니저가 1층에 진입하기 전에 시상식 관계자가 태형에게 다가갔다. 혹시나 자리를 몰라 못 앉는 걸까봐. 아주 친절하게. 태형은 그런 관계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후, 제 이름이 올라가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수많은 시선이 제게 붙어 있음에도 딱 하나의 시선이 제게 붙어 있지 않다는 생각에 넓은 어깨가 잔뜩 굽은 채였다.
*
태형의 자리에는 이번 하반기 드라마를 함께 찍은 배우들이 함께했다. 남준은 태형 드라마에서 OST 제작을 맡았는데, 아직까지도 상위권을 유지 중이라. 올해의 OST상이 확정인 것과 다름없었다. 또 이 테이블에서 태형과 여주의 연애를 알고 있는 - 당사자를 제외한-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여주를 등지고 앉게 된 태형은 자꾸만 시선이 뒤로 향하는 걸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려 했지만, 그 노력은 애달프게도 남준의 눈에 쉽게 들어왔다. 남준은 이러다 기사가 나도 제일 먼저 나겠다 싶어, 테이블 아래로 태형의 다리를 찼다. 졸지에 정강이를 맞은 태형은 왜 때리냐며 잘난 얼굴을 구겼지만, 남준의 눈빛을 읽고는 아차 싶었다. 그래. 보는 눈이 몇 개인데. 티가 나도 나겠다. 싶은 거였다. 태형은 프로답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정말로 시상식에만 집중하겠다는 의미로 마치 항복을 하는 것처럼. 두 손을 어깨 높이로 들어보였다. 그런 태형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자 팬들의 환호가 높아졌고, 태형은 그 환호에 보답하고자 그대로 커다란 하트를 그려냈다. 이 순간만큼은 정말로 팬들에게만 보내는 것이었다. 메인 엠씨들이 자리를 찾아 서고, 본격적으로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여주는 제 남자의 비지니스를 현장에서 보는 것이 꽤 오랜만이라 잠시 본분을 잊고 있었다. 남자가 섹시한 순간의 당연 일 위는 일에 집중했을 때지 않나.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사람이 제대로 갖춰 입고 예쁜 짓을 골라 하는데. 반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여주는 그렇게 또 한 번 반했다. 하지만 반한 것도 잠시 마음이 헛헛했다. 여주는 머리 위의 하트로 질투를 할 만큼 속 좁은 공인의 애인이 아니었다.
다만 선배 기자가 알려준 찌라시 하나가 거슬릴 뿐이었다. 이번 하반기에서 태형과 호흡을 맞춘 서브 여자 주인공이 제 남자에게 호감을 표출하고 있다는 것. 그것도 그냥이 아니라 아주 마구마구 표출해서, 관계자 중 모르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오늘 이곳에서 수상소감으로 사랑 고백을 해도 놀라지 않을 거라고 하겠는가. 여주는 저도 모르게 자꾸만 두 사람을 묶어서 바라보게 되었다. 서브 여자 주인공의 옆모습은 보이는 반면, 태형의 모습은 넓직한 뒷태 뿐이라. 더욱 마음이 탔다. 여주가 머리를 질끈 묶는 것을 지켜본 후배는 제 물병을 따서, 여주에게 건넸다. 그리고 그 순간 정말 우연히도 팬석을 비추던 카메라가 여주와 후배를 스쳐지나갔고. 태형의 눈에는 그 순간이 누군가 캡쳐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앵글이 다른 곳으로 넘어간 건 보이지도 않았다. 올해의 뉴스타상을 수상한 여자 아이돌 멤버와 신인 개그맨이 수상소감을 무어라 하는 지는 들리지도 않았다. 사람이 사랑에 미치면 약도 없다고. 태형은 신인들의 수상소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고장이라도 난 사람처럼 박수를 쳤다. 짝, 짝, 짝. 기계처럼. 그 모습을 목격한 신인 개그맨이 '아. 김태형 선배님께서 제 수상소감을 그만 듣고 싶어하시는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라는 장난스러운 멘트를 치기 전까지. 좀처럼 당황하는 법이 없는 태형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사레를 치며, 연신 죄송하다는 의미로 고개를 숙였다. 태형만 빼고 현장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 후로도 갖은 상의 수상이 진행되고, 태형은 부러 제가 앵글에 들어올 타이밍 즈음. 테이블 위의 물을 따서 옆자리 동료에게 전해주었다. 그 순간 태형에게 옆자리 동료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주에게는 그게 가장 중요했다. 그리고 그 동료가 찌라시 속 그 서브 여자 주인공이라는 게, 여주의 모난 마음에 제대로 불을 붙였다.
시상식이 본격적으로 연애의 전쟁터가 된 시발점이었다.
*
겨울입니다. 오랜만의 러블리러브네요. 아이들은 여러분의 마음 속에서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겠죠?! ㅎㅎ 빠른 시일 내에 그 다음 스페셜 편으로 인사 드릴게요! 건강 유의하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