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그 불완전한 나이.
08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눈을 떴을 땐 이미 세 시간이나 훌쩍 지나있는 상태였다. 허무하게 지난 시간에 놀라서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까 책상에 잠깐 엎드린다는 게… 아, 바보. 자책을 하면서 내 머리를 주먹으로 퍽, 퍽 치는데 순간 휴대폰이 반짝하며 빛났다. 뭐지? 싶어 잠금을 푸는데 부재중이며, 문자며 엄청나게 쌓여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헐 이게 다 뭐야…. 그 많고 많은 연락의 주인공은 단 한 명이었다.
[야. 너 화 풀린 거 맞지?]
[잠깐 나와 봐. 할 말 있어.]
[뭐야. 왜 연락이 안돼. 아직도 화 났어?]
[김여주. 나 안 볼 거야?]
[화 많이 났나보네.]
[화 풀리면 나와. 휴게실에 있을테니까.]
[기다릴게.]
[보고싶다.]
발신자에 적혀있는 이름 세 글자. '김민규'. 방금 온 [보고싶다.] 라는 문자를 본 순간, 연락이 안되던 나를 걱정했을 김민규가 떠올라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바로 휴게실로 달려갔다. 휴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를 본 김민규는 이제 왔냐며 씨익 웃었다. 세 시간동안 연락도 안되는 나를 초조하게 기다렸을 김민규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차마 옆에 앉지 못하고 쭈뼛대고 있자, 김민규가 거기 서서 뭐하냐며 내 손목을 잡고 제 옆자리에 나를 앉혔다.
"…미안해. 내가 너무 늦었지."
"아니야. 이제 화 좀 풀렸고?"
화는 아-까전에 풀렸었는데…. 차마 자느라 네 연락을 못 봤다고 말하기가 너무 민망해서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김민규는 그제서야 안심이 된다는 목소리로 '다행이다….' 하고 말했다.
"우리 몬난이. 가뜩이나 못생긴 얼굴, 더 못생겨지면 안되는데."
"뭐라고?"
"얼마나 운 거야, 대체."
"어?"
눈 퉁퉁 부었잖아. 내 눈두덩이를 톡, 톡 치며 말하는 김민규의 표정이 조금 씁쓸해 보였다. 아까 독서실에 들어오기 전, 눈물이 고여있던 나를 알아챘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막 연락한 거였구나…. 내가 신경이 쓰여서. 그나저나… 이거 울어서 눈 부은 거 아닌데. 민망해서 차마 김민규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바닥만 쳐다보고 있자, '아깐 내가 미안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하며 김민규는 나지막이 말했다. 진짜 그런 거 아닌데…. 자다 일어났다는 건 절대, 절대로 얘기하면 안되겠다. 미안함과 민망함에 점점 고개가 내려가자 김민규가 내 볼을 잡고 자기와 눈을 마주치게 했다.
"이제 나 좀 보지?"
"아, 알았어. 이거 놔."
갑작스런 김민규의 행동에 놀라 그의 손을 뿌리치고는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니 얼굴 봤으니까 됐다.' 말을 마친 김민규는 끄으- 앓는 소리를 내면서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어우. 계속 앉아있었더니 몸이 뻐근하네.
"나 나가서 한바퀴만 돌고 올게."
"나도 같이 가."
"밖에 추워. 넌 여기 있어."
"아, 싫어. 같이 가."
여기 답답하단 말이야. 나도 나갔다 올래. 내 말에 김민규는 제가 입고 있던 후드집업을 벗어 내게 건넸다. 야. 이걸 왜 나한테 줘.
"이거 안 입으면 너랑 안 가."
"그럼 너는?"
"난 아까 계속 히터바람 쐬고 있어서 그런지 더워."
"야. 니가 아까 니 입으로 밖에 춥다고 했잖아! 다시 가져가."
"쓰읍. 그냥 줄 때 입어라."
너는 어떡하고!! 떽떽대는 내 말에 아랑곳하지도 않고 김민규는 억지로 옷을 입히더니 지퍼까지 쫘악 올려 잠그고는 뿌듯한 얼굴로 됐다, 하며 웃었다. 하여튼 고집은…. 내가 졌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는 모습이 김민규는 되게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가자! 내게 어깨동무를 하며 문을 향해 손짓하는 김민규를 보니 웃음이 피식 새어나왔다. 그래. 나가자.
이렇게 우리는 우리가 언제 싸웠냐는 듯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밤공기가 제법 찼다. 괜히 김민규 감기 걸리는 건 아닌가 싶어 후드집업을 벗어주려고 해도 김민규는 하나도 안 춥다며 오히려 내게 화를 냈다. 안 춥기는 개뿔. 입김은 계속 나오면서. 이대로 밖에 계속 있다가는 김민규가 감기에 걸릴 것만 같아서 근처 편의점에 들어갔다. 원래는 배가 하나도 안 고팠는데 편의점에 들어가 음식을 보는 순간 배가 꼬르륵 고파왔다. 그건 나 뿐만 아니라 김민규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돈 안 가져왔나…. 혹시라도 돈이 있지 않을까 주머니를 막 뒤지는데 정말 운이 좋게도 교복 주머니에서 오천원이 나왔다. 헐. 대박.
"야. 이 누나가 쏜다. 먹고 싶은 거 있음 골라봐."
"헐. 누나. 진짜 사랑해요."
김민규랑 나는 컵라면을 하나씩 집어 들었다. 점심에 라면을 먹었던 게 걸리긴 하지만, 뭐 라면은 언제 먹어도 옳으니까. 고럼. 말도 안되는 합리화를 하면서 우리는 라면을 사 들고는 얼른 물을 부었다. 물을 부어서 따뜻한 컵라면에 손을 대고 손을 녹이면서, 라면이 익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까 문자로 내게 할말이 있다던 김민규가 떠올랐다.
"아, 근데 할 말 있다며. 뭐야?"
"…어?"
"아까 문자로 그랬잖아."
"…아."
"뭔데?"
"…아니야. 나중에 이야기 해줄게."
"아, 뭐야. 장난? 지금 얘기해줘."
"지금 말고. 나중에."
아까는 웃으면서 잘만 말하더니 내가 할 말이 뭐냐고 하자 김민규의 얼굴이 차차 굳어졌다. 되게 난감한 기색이 역력하면서. 뭐야. 그럴거면 얘기를 하질 말지, 사람 궁금하게…. 내가 툴툴대며 얘기하자 김민규는 미안하다며, 나중에 진짜 꼭 얘기해 주겠다고 했다. 조금 궁금하다가도 지금 당장 말 못하는 것도 무슨 사연이 있겠지, 싶어 나는 알겠다고 했다. 어차피 김민규는 내게 때가 되면 말을 해줄 것이다. 우리 사이에 비밀이라곤 없었으니까.
"아. 한 가지 힌트를 주자면."
"응?"
"너무 믿지 말라고."
"…? 뭘?"
"끝. 오늘은 여기까지."
아, 뭐야. 진짜! 그게 더 궁금하잖아! 내가 버럭 화를 내면서 막 김민규의 어깨를 퍽, 퍽 치자 김민규는 아, 아파! 하면서 한 손으로 제 어깨를 감싸다가 라면 익었으니까 빨리 먹으라며 내 라면 껍데기를 벗겨주었다. 진짜 나중에 얘기했는데 별 거 아니기만 해봐라. 내가 주먹을 들어 보이며 말하자 김민규는 진정하라며 내게서 한 발자국씩 뒤로 가기 시작했다. 다시 안 오냐. 내 말에 김민규는 미안. 하고는 다시 내 옆자리로 돌아왔다. 대체 뭘까. 아, 근데 뭐 그렇게 심각한 거겠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나는 이내 대수롭지 않게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
그 아이의 말을 들을 걸. 내가 그 아이의 말을 귀담아 들었더라면,
그때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만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이렇게 후회하지도 않았을 텐데.
**
"안녕."
오늘도 학교에 가니 전원우가 먼저 와 있었다. 항상 나보다 일찍 오는 이 아이는 공부를 하다가도 내가 오면 씨익 웃으면서 인사를 해주는데 와…. 그때마다 심장이 남아나질 않는 것 같다. 어, 어. 안녕! 오늘도 그의 인사로 인해 격렬하게 뛰는 심장박동 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어제 독서실 왔었어?"
"어? 어. 갔었는데?"
"음…. 그럼 타아밍이 안 맞았나보다."
"무슨?"
"나 시간 날 때마다 휴게실 갔었거든."
혹시라도 너 만날까 싶어서. 내 눈을 바라보면서 그런 말을 하는데 진짜 얘는 나를 죽이려고 그러나….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게 느껴져 나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미쳤나봐, 진짜. 진정해. 김여주. 속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는데 전원우가 '뭐해?' 하는 소리가 들려 다시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그래서 말인데."
"응?"
"번호 좀 알려줘."
연락하면 더 만나기 쉬울 거 아냐. 그러면서 휴대폰을 건네는데 와… 나 지금 전원우한테 번호 따이는 거? 번호를 물어보고 싶어도 관심 있어 보일까 봐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었는데….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하나하나 누르곤 휴대폰을 다시 전원우에게 돌려주었다. 휴대폰을 돌려 받은 전원우는 자판을 틱, 틱 치더니 내게 휴대폰을 보라며 눈짓했다.
[안녕. 김여주.]
[010-XXXX-XXXX. 내 번호. 저장해.]
이게 전원우 번호구나…. 나는 얼른 그 번호를 입력하곤 빠르게 저장을 했다. 지금 저장 안 한다고 번호가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저장을 해놓고 좋다고 헤헤 거리고 있는데 휴대폰으로 뭘 보던 전원우가 픽 웃는 게 보였다. 뭐야. 왜 웃지? 하는 순간 전원우한테 연락이 또 왔다. 얘는 옆에 있는데 왜 계속 톡을….
[프사 이쁘네.]
아. 헐. 맞다. 카카오톡 프사 내 사진이지…! 그거 진짜 사기처럼 나와서 김민규도 거짓말도 정도껏 치라고 했던 사진인데…. 아. 망했다. 실물이랑 완전 다를텐데. 전원우가 뭔 생각을 할까.
"아니… 이건. 그 뭐냐. 실물이랑 너무 달라서 놀랐겠지만…. 나도 진짜 나처럼 안 나왔다는 걸 알거든."
너무 당황해서 내가 뭔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횡설수설하고 있는데, 그런 내 모습을 한참 쳐다보던 전원우가 내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예뻐. 너."
"…어?"
"예쁘다고. 사진보다 훨씬."
엄마. 나 아무래도 전원우한테 단단히 빠진 것 같아요.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입니다..ㅠㅠ
금요일마다 쓰겠다고 해놓고 지킨 적은 얼마 없네요.. 면목이 없습니다.
독방에서 추천받고 보러오셨다는 분들이 계셔서 뭔가 싶어 독방에 갔었는데
진짜 너무 기뻤던 거 있죠ㅠㅠㅠ 제 글이 막 언급되기도 하고
어떤 분은 세븐틴인생글이 될 것 같다는 정말 과분한 칭찬도 해주시구요ㅠㅠㅠㅠ
몇 번씩 제 글이 언급되는 걸 보면서 저는 정말 너무나도 행복했답니다..ㅠㅠ
그래서 정말 몇 번이고 업뎃을 하고 싶었지만,
개인적인 사정도 있었고, 바쁘기도 했고 최근에 이래저래 신경 쓸 일이 많았어요.
그래서 연재가 원활하지 않을 수도 있다.. 라고 공지를 올리려고 했는데
그래도 이 글을 기다리시는 독자님들께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이렇게 새벽에라도 글을 한 편 올리게 되었습니다.
정상적인 연재는 11월달부터 가능할 것 같아요.
최소 10편은 쓰고 잠시 멈추고 싶었지만 그게 마음대로 잘 되지가 않네요...
연재는 중단하지 않습니다! 11월에 돌아오도록 할게요.
염치가 없지만 그때까지 기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ㅠㅠ
암호닉 : 일공공사님, 찐빵님, 지유님, 햇살님, 다이제님, 자두님, 치킨님.
그리고 댓글 달아주시고, 읽어주셨던 독자님들. 정말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항상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