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moving and screw bar.-
w. 그루잠
번외
1. Stupid mouth
꼭 브금 들어주세요.
아침인지 점심인지 모를 낮, 열린 창문과 걷힌 남색 커튼으로 햇빛이 들어왔다. 눈이 부셔 얼굴을 찡그리고 눈을 가렸다. 보드라운 남색 이불이 몸에 사뿐히 얹혀 느낌이 좋다. 이불에 더 파고 들어 이불을 껴안자 뭔가 너무 몸에 착착 붙고 부드러워서 잠이 확 깼다. 여기가 어딘가라고 생각한 내가 몇 초 뒤에 멍청하게 느껴졌고. 김태형의 방. 그리고 여긴 김태형의 집…? 좌절하며 어제 그 불순한 것들을 되짚어본다. 이 내가 누워있는 침대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하나 하나, 다 생각났다. 차라리 술이라도 먹고 저질렀으면 누구한테 책임을 물 수라도 있지. 맨정신에 한 짓이라 소리없이 비명을 질러대며 이불을 발로 차 올렸다. 힘없이 떠올라 펄럭인 이불 안으로 하얀 몸이 보였다. 알몸. 알몸이다. 식겁해서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돌돌 감았다. 푹신한 침대에 지나칠 정도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질감. 와. 자살할까. 우와. 내 21년 지켜온 긍지와 희망과 순수함(?)…. 사요나라.
이질적이지만 포근한 것에 그냥 늘어져서 얼굴을 부빈다. 그래도 옷이라도 입을까 생각해서 일어나 두리번거렸는데 어제 벌였던 난장판은 없었던 것처럼 깨끗하게 치워져있었다. 역시 깔끔한 성격 어디 안 가는 김태형. 그래서, 결국 내 옷은 방 안에서 볼 수가 없었다. 어떡하지. 그냥 털썩 침대 이불 위에 누워 아침을 느꼈다. 상쾌한 공기에 열린 창문. 산산하게 부는 바람. 따스한 태양의 열기는 춥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았다. 밤이 아니라 불을 켤 필요가 없는 이 방이 어제 자제히 볼 수 없었던 까닭으로 이제야 둘러보게 된다. 책장에는 가지런히 오색의 책들이 키대로 꽂혀있다. 창문의 블라인드는 걷혀져 정말 파란색인 하늘이 보였다. 구름 한 점 없는. 깔끔하게 단색의 원목으로 만들어진 책상이 창문쪽 벽에 붙어있었고 그 위엔 푸른 장미가 꽂힌 꽃병이 있었다. 뚫린 창문으로 다시 불어오는 스산한 바람. 조금은 춥게 느껴져 그의 손길이 닿았던 이불을 끌어당겼다. 여름에 상쾌한 공기란 오아시스같았다. 근데 그 오아시스가 김태형의 방. 제길, 한 번 눈 맞았다고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김태형 방에 내가 누워서 하루를 보내다니.
어제의 일에 대한 참회할 시간이 필요하다. 차라리 다시 잠에 드려고 했으나 잠이 다 달아나서 잠도 오지 않았다. 눈만 껌뻑이며 아침 새소리를 배경으로 귀만 쫑긋세웠다. 살짝 열린 방문 밖으로 보글보글 끓는 소리. 퍼지는 향긋한 원두냄새에 몸을 슬그머니 일으켰다. 김태형. 매너가 넘치고도 남을 이 남자가 내 옷을 안 남겨뒀을리가 없다. 이불을 돌돌 감싼 채로 깨끗한 바닥에 발을 디디자 발 밑으로 부드러운 소재가 느껴졌다.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바닥 밑에 있는 옷을 들어올렸다. 차분히 개어져있는 남자의 하얀 실크 와이셔츠. 옆엔 물컵과 분홍색 알약. 그에 노란 포스트잇이. 눈을 부비고 포스트잇을 떼어 본다.
- 우리집에서 네가 입을 만한 게 없네. 피임약이니까 일어나면 물이랑 삼켜.
피임약이라. 부끄럽게 만드는 벚꽃색의 약을 바로 입 안으로 넣었다. 물 한 컵 모두 마시고 제자리에 두었다. 간질거리는 무언가에 간지럽지도 않은 뒷목을 긁적였다. 포스트잇을 이불 위로 살포시 올리고 옷을 펼져서 입어보았다. 남자 거라서 그런지 엉덩이를 가리고도 남는다. 손 위로 덮히는 흰 셔츠 소매를 살짝 걷어 올리고 침대에서 일어섰다. 내가 있는 침대의 공간에서 일어난 균열을 정리한다. 이불을 활짝 펴 각을 맞춰 침대 커버를 덮었다. 언제 있었는지 모를 흰 베게도 제자리로. 속옷은 입지 못하고 꼬물꼬물 침대에 올라가 구겨진 부분까지 펴 정리했다. 워낙 꼼꼼해보이는 김태형때문에 내 집에서도 하지 않는 짓을 하네. 방문 가까이에 가 어떤지 침대와 방안을 조화를 보는데 괜찮다. 그렇게 지져분해 보이지 않는다. 만족스러워서 방문을 열려는 찰나 잠시 멈칫했다. 나가서 무슨 말을 하지. 거기다 시발 내 생각은 정리도 안 됐다! 방문 무거운 손잡이를 잡았다 놓았다 별 짓을 한다.
아오, 그냥 될 대로 돼라. 부들거리는 손으로 조금씩 문을 열어 거실로 나갔다. 아, 내가 이 집을 자세히 못본건가. 거실이 멀리 저 편에 있다. 긴 거리를 인지하지 못할 만큼 김태형이 나를 들고 굉장히 빨리 방을 찾아 들어왔단게 생각나니까 볼이 살짝 붉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환한 아침을 맞아 백색의 거실과 대각선인 이 방까지의 공백의 면적엔 부엌이 위치했다. 푸른색을 띄는 구리 쇠가 뼈대인 각진 유리 테이블. 그리고 똑같은 원재인 의자 등 부분에 빨간 원단의 카펫 느낌인 등받이를 두고 앉은 김태형. 빠른 타자를 치는 손길은 반듯한 메탈의 노트북 위로. 막 씻고 나왔는지 복숭아 향 비누 냄새가 은근했다. 찝찝한 몸을 어쩔 줄 몰라 그대로 서있으니 흰 목욕 가운을 입은 김태형이 커피 포트를 가지러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어정쩡하게 서있는 나와 눈이 마주친다. 뻣뻣해져서 엉덩이를 가리는 흰 셔츠 끝을 쭉쭉 아래로 내리고 있으니 피식 웃곤 부엌 안으로 들어갔다.
"앉아. 마실 거 줄게."
부엌에 들어간 김태형 뒷 모습을 보고 어색하게 테이블 쪽으로 걸어가 김태형이 앉았던 반대쪽. 차가운 쇠로 된 의자를 끌어내 앉았다. 유리 테이블 위로 손가락만 다닥, 닥 거렸다. 피아노 치듯. 그러다 노트북을 봤다. 뭘 쓰고 있었던건지 살짝 과열된 노트북. 내용을 볼 깡이 없어서 고개만 푹 숙이고 손가락만 꼼지락댔다.
키가 큰 김태형에 걸쳐진 목욕가운의 뒷모습을 볼 용기도 없었다. 허술한 가운 사이로 보이는 김태형의 단단한 살에 어제가 기억난다. 침대에서 했을 뿐만 아니라 벽 쪽으로 서서 내가 김태형에게 매달려서 그랬었다. 방 안 책상 위에서도 했고. 그 위 꽃병을 깨뜨리지 않았던게 용하다. 흔적이라곤 목에 붉은 표식. 내 안을 닦아냈는지 조금 축축하지만 흘러나오진 않았다. 휑한 아래에 다리를 꼭 붙혔다. 그러자 내 이마로 닿이는 차가운 유리. 올려다보니 커피 잔을 든 김태형. 오렌지 주스가 든 유리잔을 받아 들고 테이블 위로 올렸다. 그리고 한 번 홀짝이곤 다시 제자리 두었다. 시원한 감이 두 손바닥으로 퍼진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김태형을 마주하고 있다. 커피를 마시며 타자를 치는 김태형은 아무 것도 하지않고 테이블 유리만 빤히 보는 나를 힐끗 보았다. 그리고 노트북을 내 쪽으로 돌려 보여줬다. 눈을 올려 본 노트북 바탕에는 거의 ppt가 완성되어있었다. 몇 일을 걸려도 다 하지 못할 건데. 뚜렷해진 눈으로 김태형을 말 없이 바라보니 사과처럼 풋- 하고 웃는다. -미안. 개드립이다.-
"민윤기랑 정호석이랑 메세지로 연락했어. 그쪽에서는 의견이 이렇게 나왔는데 나도 괜찮다고 생각해서 살 좀 덧붙였고. 얼굴 맞대고 보지 않아도 연락만 해서 완성시키면 되니까. 네가 더 하고 싶은 부분은 채워넣어도 돼. 민윤기쪽에선 알아서 분량 만들어 온 댔거든. 발표 하루 전날에 만나서 연습하면 돼."
목소리가 목울대까지 차올랐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스크롤을 내리고 내용을 처음부터 자세히 확인해보고있으니 자리를 옮겨 내 옆자리에 앉은 김태형은 나만 보고있다. 뚫어지게 쳐다보지 못하고 모니터에 눈을 돌려 말했다.
"고칠 게 별로 없는 거 같아. 비평할 부분은 내가 더 적을게. 또 이 영화 관련해서 기사랑 네티즌 반응도 찾아보고…."
말이 끝났는데 피드백이 돌아오지 않아 고개를 돌려보니 턱을 괴고 사랑에 빠진 딸기마냥 녹아들게 바라보고 있으니 눈을 굴렸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들어가 찾고 있으니 자판 위로 올려진 내 손을 잡아온다. 화들짝 놀라 김태형을 쳐다보니 흐뭇한 표정으로 부시시한 긴 앞머리를 귀 뒤로 넘겨준다. 둥둥 내 심장이 어마무시하게, 무리하게 뛴다. 나, 얘를 싫어하는 거 맞니? 너무 싫어해서 심장이 난리치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잘 안다고. 너무 좋아해서 터져버릴 것 같단걸.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널 싫어하는 내 예전 모습을 떠올릴려고 노력하면서 김태형 손을 떨쳐내려고 했다. 하지만 깍지까지 껴가며 꼭 잡는 김태형에 할 말을 잃었다.
"생각해봤어?"
"뭘?"
"나 말이야."
"무슨 말하는지 모르겠다."
"나 어때."
"그냥… 좋은 친구라고 생각하는데."
이때까지 있었던 일을 얼버무리려고 하는 내 말에 묘하게 표정이 무너지는 김태형에 나까지 철렁했다. 무너진 표정을 보수공사한 김태형이 다시 웃으며 말했다. 애써 침착하게 말하는 듯.
"친구? 우리 친구 못 해. 내가 못 해. 처음엔 친구라도 되고 싶어서 접근했는데 안 될 거 같아. 모호하게 말하고 싶지 않고, 안 돼."
"……."
"침대에서만 사랑할려고 했는데 그게 안 돼. 그리고, 아무리 해도 감출 수가 없어."
침대에서도 하고 싶다. 침대말고 이렇게 마주보고도 좋아하고 싶어.
친구말고 남자로는 어때?
사망선고를 받은 마냥 마음이 쿵 했다. 나 역시 그렇게 간단명료하게 해답이 나온다면 바로 주변 기집애들같이 흥분해선 응이란 긍정의 대답을 여러번 뱉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태형에게 왠지 모르게 죄를 진 것 같고. 아니, 죄를 지었지. 김태형이 나한테 직접적으로 잘못을 한게 아닌데 -김태형이 원인이긴 했지만- 주변 사람들때문에 제일 미워했다. 거기다 과연, 내가 김태형이란 금목걸이를 걸치고 다닐 수 있을까. 이목을 끌겠지. 그리고 훔쳐가거나 파손시키려는 사람들에 의해 많은 시행착오, 상처를 받을 거다.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 귀한 물건을 착용할 만큼 내가 빛나지 않아서. 내가 아직 준비가 안 돼서. 그리고 그렇게 혐오하고 싫어하던 김태형을 내 맘 하나 바뀌었다고 받아주는건 내가 너무 파렴치한이었다.
이딴 시련은 하늘의 농간인가. 이때까지 쳐욕하고 놀러다니고 청분을 낭비한 그런 죄에 대한 형벌인듯. 안타깝게도 대상은 농간에 휩쓸려 미워한 대상에 대한 호감이 생겼다. 그를 좋아하는 여자들이나 쫄쫄 따라다니는 누군가들 중 한 명이 되게 생겼다. 그렇게 되긴 죽기보다 싫었는데. 내 준칙에 어긋나 이런 얼토당토 설명하지 못할 상황까지 왔다. 난 김태형을 질투했던 걸까. 아님 김태형을 좋아하는 애들을 질투한 걸까.
긴 변명이 많다. 결국엔 나도 김태형을 좋아하는구나. 모두가 좋아할 수 밖에 없었던 김태형을.
종결엔 미움이란 아스팔트를 뚫고 민들레 하나가 자랐구나.
이런 생각을 직접적으로 말해줄 수가 없었다. 하루 전까진 그를 극도로 미워했지만 지금 나는 내 말을 듣고 상처받을 것 같은 사람을 걱정한다. 마음의 변천과정은 어젯밤으로 정의되버렸다. 밤도 아니지만. 밤이 아닌 하루종일이었던걸. 어제 아래에서 올려다봤던 내 몸 위 김태형의 가까운 얼굴과 지금 내 앞의 남자의 얼굴이 오버랩됐다. 다른 건 없다. 나만 다를 뿐. 1년 반, 대학 생활 중 한 번도 김태형이 날 부정의 눈빛으로 본 걸 본 적이 없었다. 김태형은 오래전부터 나를 담아둔 것 같았다. 그리고 난 눈치채질 못했다.
저 멀리 발견하지 못했던 거실 밖 베란다의 탁자 위 직육면체의 보라색 어항 안 한 마리의 금붕어처럼.
위태로운 김태형은 내 대답을 길게 기다리지 않고 바로 내 뒷목을 잡아 입맞춤 했다. 지금 이 시간이 멈추고 온통 흰 소금인 바다 위에 누워 둘이서 달콤한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현실이라서 다행이고 한편으론 걱정이다. 이 이후 어떻게 정의를 내려하는 관계와 대답에 따라 내려지는 후폭풍에 덜컥 겁을 먹은 심장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뛰다 갑자기 서서 엎어졌다. 피가 났다. 내 가슴에 검보라 피멍이 생긴 느낌.
내가 이 정도인데 김태형은 어떨까.
어제와 달리 순수하게 너와 내 마음이 같아질거라 믿어란 의미의 행동이 끝나고 나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긴 뒷머리를 애정어리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집에 가지마. 나랑 있어줘."
"…그래."
내가 김태형을 욕했던 이유 중 하나. 어중간한 말로 사람들에게 일말의 희망 빛줄기를 보여준다는 것. 그렇게 해 설레게 했다는 것. 어장. 어쩔 수 없는 거 였구나. 네 절대적 위치때문에 밉보일 수 없어서 애매한 말을 했던 것이다. 그런 말을 내가 하고, 민들레같은 너에게 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어쩌면 네 어장에는 '나'란 붕어 하나 밖에 없었을 지도 모른다.
미안해. 속으로 나긋한 용서를 빌었다. 멍청한 입은 한 마디도 제대로된 말을 뱉지 못했다. 그래놓곤 염치없이 나를 안은 김태형을 팔로 감아 뽀송뽀송한 목욕가운을 느꼈다.
차가운 주스가 담긴 유리 잔의 겉표면에 수증기가 액화되어 송글송글 맽혔다. 그리고 주르륵 흘러내렸고 테이블 유리에 닿은 유리잔 밑부분에 투명한 동그란 원이 생겼다.
그걸 본 나는 청결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원초적인 현상인데 완벽한 유리잔에 물이 걸거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유리잔은 김태형이고 물은 나. 닦아낸다면 훨씬 완벽해질거다. 나는 내가 그에게 1초라도 늦기 전에 멀어져야한다고 생각했다. 나도 빠지기 전에. 김태형도 깊어지기 전에. 이미 깊어졌을 지도 모르지만.
어제 받지 못한 민윤기의 전화가 생각났지만 만인의 연인 김태형때문에 연락을 해야하는 것을 미룬다.
나는 끝까지 파렴치한이었다.
2. Sad mono drama.
그 남자의 속사정은 좀 깊고도 돈독했다. 아니지, 이건 너무 포장된 표현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재수없겠지만- 모두의 관심사인 나의 속사정은 불쌍하고 딱했다.
철두철미하게 감추고 완벽한 삶을 살던 나는 대학교 신입생 환영 OT에서 작은 돌맹이 하나를 발견했다. 요 작은 꼬맹이가 껄렁껄렁한 민윤기란 남자의 손에 들어갔고 둘은 퍽 잘 놀았다. 콘도를 잡아 밤새도록 노는 분위기는 술자리의 막판을 달리고 있었다. 고등학생 때보다 더 심하게 꼬이는 여자들에 속으로 꽁기했지만 거부해봤자 내게만 손해라 선배들이 따라주는 소주를 마셨다. 계속 관심을 보이는 여자들이 여기 저기, 내 얼굴과 몸을 만지기 시작했다. 평생 겪어왔던 일이라 익숙한 나는 그저 웃으며 손을 곱게 떼어냈다. 아, 선배 이러지 마세요. 왜, 태형이 여자 친구있어? 그건 아닌데….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두리번 거리는데 저 멀리서 남자 선배들의 게임에 참여한 돌맹이가 보였다. 맹하게 계속 집중을 분산시키는 민윤기라는 동기에게 정신이 팔려 계속 게임에 진다. 옆에서 내 팔을 잡고 매달리는 선배. 그저 술만 더 마시고 저 멀리 맨졸맨졸해 보이는 돌맹이를 주시했다. 벌칙으로 더러운 술을 바가지 통째로 마시는 돌맹이는 결국 핀트가 나갔고 눈에 초점이 없어졌다. 어어, 뒤로 넘어가는 돌맹이는 방바닥에 드러 누웠고 흰 티가 올라가 배 부분이 슬쩍 드러났다. 찹쌀떡같이 하얗고 탄탄한 배가 드러나자 슬며시 민윤기가 노출 부위 위로 자신의 청자켓을 덮었다. 계속 저 여자 엿먹이더니 그래도 매너는 있네. 술을 마시면서 돌맹이같이 딱딱해보이다 흐물거리는 여자애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자 여자들이 뭘 보냐고 치근덕댔다.
"태형아 쟤한테 관심있어?"
"…."
대답하지 못하고 괜히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조물거렸다. 관심? 내 취향은 아닌데 은근 시야가 그 쪽으로 잡혔다. 선배들이 흥이 나 민윤기한테 얼쑤얼쑤 우리 후배 노래 한 곡 뽑아봐! 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민윤기가 일어나 숟가락을 잡고 땡벌을 부른다. 아 이젠 지쳤써요 땡벌, 땡벌! 군대처럼 외치는 선배들이 잘 놀다 무언가에 화들짝 놀랐다. 쌔근쌔근 자는 것처럼 고요히 누워있던 돌맹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버럭 소리를 질렀다.
"누가 이딴 센스없는 선곡하래?!!!"
술에 완전히 꼴은 돌맹이의 발음이 꼬였다. 술주정. 꽤 차갑고 무섭게 보이던 여자애의 첫인상은 그렇게 귀신 봉창 두드리듯 허상이 됐다. 민윤기의 숟가락을 확 뺏어 막 랩을 쏼라거리는 여자가 걸걸한 제시 성대모사를 한다. 오 제시 쉑시-. 무릎 봘 무릎 봘, 빅 뿌뤠! 오- 후배 좀 놀 줄 아는데라며 웃으며 장단을 맞춰주는 선배들. 민윤기는 어이없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 웃었다. 그리고 장기자랑하는 것같이 꽤 귀여운 모습을 지켜보다 아이폰을 꺼내 촬영하기 시작했다. 어쩌다 한 남자 선배가 짖굳게 섹시한 춤 춰달라고 하는 바람에 비장한 표정을 하고 돌맹이가 바닥에 누웠다. 그리고 어디서 봤는지 남자들이나 하는 미국 춤을 춘다. 와 미친, 더티하다!라며 와하하 웃는 민윤기가 어깨를 들썩이며 꿋꿋이 촬영했다. 그 여자의 진지하고 웃긴 표정에 나도 모르게 풋하고 웃었다. 의아하게 바라보는 여자들에 아차 싶었다. 아무 잘못없이 술때문에 숨겨진 자아, 슈퍼 에고를 방출한 여자애를 향해 나쁜 눈길들이 집중됐다. 얼간이같은 모습이 웃기다고 찍기 시작하는 여자들을 보고 성급하게 말을 했다. SNS에 올릴거면 찍지 마세요. 그러자 뜨끔한 여자들이 휴대폰을 내렸다. 뻔하지. 매장시키거나 놀림거리로 만들거나. 남자 선배들한테도 한 마디씩 해야겠다싶었다. 그리고 민윤기에게도.
얼렁뚱땅 넘어간 사건에 이어 애정공세를 하는 여자들에 웃음을 파는게 익숙했다. 점점 줄어드는 사람들에 술 한 잔을 원샷하고 일어났다. 쓰다. 처음마시는 술은 아니지만 역시 술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저 멀리선 이제 잠들었는지 하나 둘 씩 방으로 들어갔다. 저 쪽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건 바닥에 엎어져서 자는 돌맹이와 옆에서 벽에 기대 게임을 하는 민윤기. 여자들도 잠이 오는지 태형아 피곤해? 우리 먼저 잘게. 내일 보자라며 방으로 들어갔다. 어떤 한 여자는 같이 자자며 찡찡 거렸지만 공손히 거부의사를 표하고 민윤기 쪽으로 자릴 옮겼다. 내가 갑자기 그들 근처로 와 앉아서 티비를 보니 민윤기가 힐끔 나를 본다. 아니꼬왔던건지 내가 앉은 방석을 홱 뺐다. 휘청거리고 내 기분이 상하는 건 자기 관심 외인지 뭘 바삐 일을 한다. 어이가 없어 쳐다보고 있으니 왠 벽. 방석으로 벽을 쌓는다. 벽인 줄 알았더니 3단 방석들을 5로 쌓아놓고 1인용 침대처럼 만든 후 만신창이인 돌맹이를 들어올려 눕혔다. 그리고 반듯하게 눕혀진 여자가 덥다고 배를 깠다. 뽀얀 살을 보고 남사스러워 큼큼 거리자 민윤기가 뭘 봐?라며 자기 청자켓을 덮어줬다. 더워도 참아. 자는데 훈계하는 모습에 오누이같아 조금 훈훈해 보였다. 이 둘이 처음 만났을때 어색한 새싹이 돋은 걸 봤었다. 하루만에 술 마시고 동고동락하는 친구가 되어 은근 챙겨주는 민윤기. 난데없이 둘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으니 이상했다. 혹시 내가 이 들 사이에 끼고 싶어서 관심을 둔게 아닌가 싶었다. 뭔가 싶어서 고민을 하는데 옆에 꿋꿋이 남아 뿅뿅거리며 게임을 하는 민윤기가 나보고 저리가라고 손을 휘져었다.
"왜?"
"너 얘 하루 종일 쳐다보는데 수상하거든."
"난 그냥 본건데. 이상한 의도로 본 거 아니야."
"애 가지고 뭐 해보겠다는 생각하지마라. 지기빈다."
서울 남자새끼들은 믿을 게 못 되는 거 같네. 선배고 동기고 다 좆같게 얘 다리만 쳐다봐삿고. 다시는 이 새끼 반바지 못 입게 해야지. 앙증맞은 게임 효과음이 들리며 인상을 지은 민윤기의 손짓이 빨라졌다. 졸지에 이 돌맹이를 노리는 남정네로 몰렸다는 거에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이런 여자애를? 왜? 거기다 내가 오늘 얘만 보고 있었다고? 생각해보니 어느샌가 내 하루 일과 중 돌맹이가 끼었었다. 무의식중에 이 쪽으로 관심을 뒀었나. 점점 이상해지는 기분에 자리를 떴다. 날 쳐다도 안 보는 민윤기는 게임에 몰두했었다. 문을 열고 나와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쎄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건물을 벗어났다. 지리도 모르는 곳을 헤집고 다니며 편의점을 찾아 들어갔다. 숙취음료를 하나 꺼내 계산대에 가려는 찰나 돌맹이가 생각났다. 뭔가 가슴 부근이 가려웠다. 살이 가려운게 아니고 몽글몽글한게. 하나밖에 남지 않은 정열대에 마지막 하나까지 꺼냈다. 이로써 두 개. 계산대에 올려놓고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데 알바생인 여자가 뜬금없이 전화번호를 묻는다. 휴대폰이 없다는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니 머쓱해진 여자는 계산기로 바코드를 찍었다.
두 병을 들고 나오니 왠 돌맹이가 민윤기의 청자켓을 머리에 이고 슬리퍼를 질질 끌고 나와서 길을 헤매고 있다. 가까이 걸어가 왜 여기있어?라 물으니 속… 속 아파요. 아직도 술취한건지 몽롱한 목소리. 눈은 뜨지도 못하고 퉁퉁 부운게 귀여운 마시마로 같았다. 나도 모르게 픽하고 웃고 있는 내 모습에 얼굴을 굳혔다. 뭐야. 나 왜이러지. 술에 잘 취하지 않는데 술에 취한 듯이 자제가 안 됐다. 비틀비틀거리며 반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아 걸어오더니 내 어깨에 얼굴을 푹 묻고 웅얼거렸다. 속 아프다니까. 당황해서 여자애를 떨쳐내려고 하니 아예 내 품에 폭 안겨서 얼굴을 묻었다.
"선배, 가만히 있어줄래요? 진짜 추워서 그래요. 속도 아프고. 잠시만 이러고 있을게."
나를 학과 선배로 아는지 잠깐 심통이 났다. 나 너 선배아니고 같은 학년인데. 나인지 모르고 파고들어 부비적거리는 말랑한 볼살이 느껴졌다. 평소같으면 왜 이러세요! 바로 떼어내고 거리를 뒀을 테지만 가만히 있었다. 몽실몽실한 강아지같아. 이상해. 마음이 싱숭생숭한게 이상했다. 적신호가 떴지만 그대로 직진하는 느낌. 오래동안 그 상태로 있다 서서 내게 기대 잠이 든 여자애가 스르르 쓰러졌다. 황급히 머리라도 땅에 박을까 허리를 감싸안았다. 놀랜 가슴 추스리며 여자애를 내 등에 올려 어부바했다. 생각보다 가볍네. 그대로 쭉 푸른 새벽 길을 느리게 걸어와 건물 안으로 돌아왔다. 문을 열고 조용히 들어와 게임을 하다 잠든 민윤기 옆 방석 침대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여자애 손에 비밀스러운 숙취음료를 쥐어줬다. 뚜껑에 네임펜으로 민윤기 먹지마라고 적어놓는건 까먹지 않고. 민윤기 반대편에 쭈구려앉아 떡이 된 탄소를 관찰했다. 그래, 무의식적으로 이름도 기억하고 있네. 검은 단발 앞머리를 정리해주고 조심스레 아기같이 부드러운 흰 볼을 쿡 찔러봤다. 내 가슴에 문질렀던 그 흰 볼이 맞는 모양. 이때까지 빈 마음에 억지로 파고 들려고 했던 여자들관 달랐다. 짝이 맞지 않은 열쇠를 주워 열쇠 구멍에 후벼넣는 나는 회의감이 들었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들꽃이라도 보면 볼 수록 예쁘고 향기로웠다.
마음이 가려운게 아니고 간질거렸다가 맞는 표현일까.
못생긴 돌맹이가 내 마음에 박혔나보다. 특별하지도 않으면서 특별하게 만드는 돌맹이의 위력에 빠졌나보다. 마치 해리포터의 마법사의 돌 같았다. 왜 마법사의 돌이라면, 이 돌을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 돌의 가치가 달라졌기때문이다. 너는 내게 특별한 돌맹이가 되었다. 가지고픈, 아끼고픈.
새벽까지 곁을 지키다 6시에 화장실로 들어가 씻었다. 아무도 씻지 않은 사람들 속에서 나만 청결했다. 그대신 여자애는 그 중에서 빼주고. 뇌리에 쏙 박힌 너는 맨 마지막에 일어나 씻지도 못했다. 민윤기와 함께 싱크대에서 고양이 세수를 하곤 했지. 혼자 키득거리고 남들이 쳐다보면 정색을 했다.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길, 맨 뒷자리에 앉아 중간 좌석에 앉은 민윤기와 네 뒷모습만 꾸준히 쳐다봤다. 그리고 옆의 여자들은 그걸 못마땅해 했고. 그럴 때마다 기분을 풀어주는게 어쩔 수 없는 내 몫이었다. 내 마음때문에 내 이미지가 무너지는 건 용서치 못했다. 몇시간 후 도착하고 해산하는 사람들. 여자들은 끈질기게 밥 한 끼 먹자며 따라붙었고 나는 그 길로 너를 보지 못했다.
강의 시간표를 따라 첫날 수업을 들으러가자 그 입구에서 서성거리는 너를 볼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밝게 인사하려고 했으나 날 발견한 돌맹이의 표정은 썩은 사과마냥 타들어갔다. 못볼거라도 본 듯 휙 고개를 돌린 너는 민윤기에게 전화하고 강의실로 들어가 뒤의 맨 끝자리에 책을 둔 후 자리에 앉아 엎드렸다. 뒤에 나를 따라왔던 여자들이 같이 앉자며 투덜거렸다. 그렇게 내 자리를 의도치 않게 눈에 제일 잘 띄는 가운데 자리가 됐다. 시끄럽고 난잡한 자리. 남자들도 내 주위에 와글와글 모여 노가리나 깠다. 실없는 웃음을 흘리고 자신에 대한 마음을 알아달라는 행위나 말이 오갈 때 마다 중의적인 말로 요리조리 빠져나갔다. 피곤한 나머지 첫강의부터 졸 뻔 했다. 신경쓰이는 뒷자리의 넌 엎드려 자고 있었다. 그 옆자리에는 민윤기. 또 반바지를 입고 온 네 다리가 휑하니 들어났다. 민윤기는 나와 눈이 마주치고 바로 눈을 돌려 강의에 집중했다. 탄소 몫까지 열심히 하는 민윤기를 보고 내 눈 밑이 어두워졌다. 네 옆자리에 내가 앉아있었으면. 내가 많은 걸 포기하고 그쪽으로 다가설 수 있다면.
나는 수업이 끝나고 아직도 자고 있어 널 깨울려는 민윤기 앞에 섰다. 용건이 뭐냐고 심드렁하게 물어보는 민윤기. 잘 부탁한다고 말하며 내가 여분으로 들고왔던 회색 후드 집업을 넘겨줬다. 무슨 의미인지 알아들었는지 못알아들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대로 뒤를 돌아 강의실을 나섰다. 또 좀비처럼 모여드는 사람들에 억지 웃음을 지었다. 연예인이 아니지만 그들같은 부담을 얹고 다녀야했다.
대학교 안 컴퍼스를 돌아다니며 강의실을 찾아다니다 또 만난 탄소. 허리춤에 내 옷이 묶여져있었다. 씁쓸하게 웃은 나는 용기내어 탄소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아 또 같은 강의야?라는 듯 표정에서 혐오감을 읽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모든 게 무너져내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아, 넌 날 싫어하는 구나.
똑같은 레파토리가 반복되었다. 학기가 바뀌어도 탄소는 나와 거의 시간표가 일치했다. 우연의 일치인 건지 신이 내린 찬스인건지.
어째서인지 나는 강의에 집중하지 못하고 근육에 엉겨붙은 젖산을 풀 듯 오랫동안 뇌를 주무르며 생각했다.
내가 왜 싫지? 다들 나한테 잘보일려고 그렇게 애쓰는데. 다 날 좋아하는 추세인제 왜 너만 그런거지?
그 답은 1년 후 과대에게 들을 수 있었다.
어쩌다 동아리 일로 과대와 함께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나와 동갑인 정호석은 과대에 자진 나섰고 그 결과 눈 밑이 시커매졌다. 뒷풀이로 둘이서 포장마차에 들어가 술 한 잔을 했다. 유리잔 안 액체를 아끼듯 조금씩 먹었다. 그리고 한 모금에 탄소 생각 한 번. 아무리 해도 진전이 없다. 말을 걸 타이밍이며 가까워질 헤프닝하며. 전혀 만들어 낼 구석없는 대학 생활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여름에서 반년 후 들어온 신입생들에 내 허리나 팔을 얼싸 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럴때마다 생각나는 단호하고 털털하며 피스타치오같이 시원한 색깔의 돌맹이. 한숨을 푹푹 여러번 텀을 나눠 쉬니 우동국물을 떠 먹던 과대는 이제서야 조용한 분위기를 깨뜨렸다.
"김태형, 너 혹시 탄소알아?"
"당연히 알지. 내가 좋아하는데."
"what the…?!!!"
벌떡 일어나 숟가락을 떨구고 입을 틀어막은 정호석. 주위 사람들이 소란에 잠시 관심 집중했다가 고개를 돌린다. 저 멀리 테이블에 앉은 여자 무리가 날 빤히 쳐다보는데 애써 모른 척 했다. 지금은 내가 너무 힘들다. 지치고 견디지 못하겠다. 한참 놀란듯 그 자리에서 굳은 정호석은 날아간 의자를 주워 와 똑바로 앉았다. 아무렇지 않게 피곤한 얼굴로 술 한 모금을 마시는데 과대가 남색 비니를 고쳐쓰더니 진지하게 말했다.
"야 임마, 걔 너 장난아니게 싫어해."
"알아."
"알면서?! 왠줄 알긴 해? 나 아니면 너 아무것도 모를거다 진짜."
"…뭔데?"
"궁금하면 다음 과제 나랑 하기로 도장찍어 임마. 도장찍으면 도와줄게. 나 이번 학기 학점은 꼭 살려내야함."
하나의 거래를 하자는 정호석의 제안. 노력없이 저 여자가 내 것이 되길 바라는 요행따위 바라지도 않았다. 피식 웃으며 알았다며 고개를 작게 끄덕이니 흥분한 정호석은 무르지마라면서 외쳤다. 또 쳐다보는 사람들. 신경도 안 쓰고 작정을 했는지 품 안에서 수첩을 꺼내 뭔갈 쓰더니 내 앞으로 내밀었다.
-탄소와 자연스러운 만남을 중개하는 -이 과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써 과의 일원이자 학교 간판인 김태형과 계약을 한다.
이 계약서의 목적은 정호석은 김태형에게 심혈을 기울여 도와줄 것을 맹세하는 대신 김태형은 정호석의 성적을 책임져야한다는 것이다.
1. 이때까지 개인별 과제 제출이었으니 단체로 뭔 갈 할 것 같다. 그러니 수업시간에 감히 올 생각 마라.
2. 민윤기는 우리의 계약은 털끝만도 생각 못하고 있으니 몰래 일을 진행하기로 한다.
3. 심기를 건드리지 않길. 민윤기랑 성격이 거의 비슷한 부분을 유의해라. 민윤기는 여자 이상으로 하지 않으니 걱정말고.
4. 민윤기는 내가 구워삶겠다. 더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물어보고 나에게 캘 만큼 캐내라. 이번 계기로 친분이라도 쌓길 바란다 제군.
이 이상 조건으로 마음에 든다면 대가로 과의 대표 정호석과 다음 과제를 하게 된다. 김태형은 이 곳에서 서명 혹은 도장을 찍길 바란다.
[ ]
뭐야 이게. 퍽이나 웃겼다. 뭐이리 복잡해. 내 목적은 좋은 감정을 쌓는 거 였는데. 초석은 허술하게, 벌써 연인단계로 인도하려는 정호석이 웃겼다. 볼펜을 꺼내 싸인을 해주니 받아들고 아싸하는 정호석이 홍삼같았다. 술때문에 얼굴이 붉어가지곤. 공증이라도 받아내야 효력이 있을텐데 쯧쯔 혀를 찬 나는 술 한 잔을 모조리 마셨다. 크. 쓰다. 역시 싼 술은 내 취향이 아니다. 차라리 와인이지. 모양빠지게 술마시고 취한 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지만 이런 자리는 허다했다. 수준이 낮아져서 이젠 아무렇지도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탄소때문에 술을 마신다. 헤헤거리는 정호석에게 그래서 걔가 왜 날 싫어하는데?라고 툭 물음을 던지니 아 맞다! 아줌마처럼 정호석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이런 걸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일단 난 너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라고 먼저 말한다?"
"아 얼른 말 해. 왜이리 꿈들여."
"알았어. 평소와 다르게 급하기는."
"나한텐 중요한 일인거 알잖아."
"정말 많이 좋아하나 보네.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취향 특이하네. 눈 진짜 낮다 키킥. 아 왜 째려봐 미안. 미안하다고. 그냥 신기해서. 그래 예쁘다. 됐냐? 애가 민낯으로만 다니니까 그냥 남자같이 편해서 그렇지. 그렇게 보지말라고. 아 미안하다고~. 어쨌든, 네가 어장 관리하는 것처럼 보이고 널 좋아하는 주변 사람들때문에 피해를 봐서 정말 스트레스 받았나봐."
"…."
"막 그 년들이 하루종일 김태형 소리밖에 안 한다면서. 지가 스타인 건 알겠는데 팬 서비스 적당히 하지 아주 그냥 내 귀에 못이 박히겠다라고 그러더라. 술 마시다가 뭘 계속 분풀이를 하는데 그래서 자기한테 여자인 친구도 없고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없어서 화난대. 근데 자기만 너 싫어해서 이상한 사람되는게 싫어서 말 못하는데 너무 쪽팔리고 싫단다. 뭐, 더 이유는 있겠지만! 못 말해주는 속사정이 있겠지? 야, 너도 난감하겠다. 이걸 어떻게 해결하냐? 싸그리 바꾸려고 하면 너 이미지 추락이야. 인지도 확 낮아질걸."
어장 관리? 난 분명히 연예인이 아니다. 내가 되고 싶어서 된 자리도 아니고 내가 올라간 자리에 맞게끔 행동하고 조심했을 뿐인데 어장 관리라니. 뻑뻑한 눈을 감고 지긋이 눌렀다. 내 생각보다 넌 나를 심각하게 많이 싫어하는 것 같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 이렇게 갑자기 닥친 문제에 피곤함이 한층 덮쳤다. 저기 테이블에서 일어난 여자 무리 중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와 전화번호를 물었다. 익숙한 거짓말. 저 휴대폰 없어요. 끈질긴 여자가 그럼 제 전화번호라도…!라며 일어서는 나를 붙잡자 난생에 처음으로 손을 신경질적으로 뿌리쳤다. 당황한 정호석이 어쩔 줄 모르고 있자 거두절미하고 다음에 더 이야기하자고 일어난 술자리.
집에 와서 씻고 침대에 누웠지만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넓은 침대 위에 누워 남색 이불을 덮었다. 쓸쓸해. 요란스러운 낮과는 달리 빈 옆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정작 원하는 건 하난데 그 하나에 붙는 조건들이 너무나 많다. 돌맹이 하나 가져보겠다고 내가 아래로 내려가야한다니 혼란스럽다. 어느걸 포기해야 내가 원하는 길을 갈 수 있을까.
뿌옇게 블러를 친 것처럼 눈 앞이 흐려졌고 눈을 감았다. 부담스러워.
다음 날부터 나는 피곤함을 티내고 다녔다. 무기력함. 내가 아프다고 생각한건지 걱정해주는 사람들은 오늘만큼은 뒤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과방 소파에 누워 오늘 일과가 끝나 낮잠을 자려고 했는데 정호석이 다급하게 들어와 내 얼굴을 잡고 흔들었다. 정신 차리라고.
그리고 탄소에게 관심이 있어보이는 한 남자가 나타났다고 했다. 전정국이라고 문학창작과 1학년. 그리고 소개팅을 주선하는 사람을 찾아다니고 있다고 한다.
정호석이 대견하게 폰으로 전정국이란 남자의 사진을 보여줬다. 인정하기 싫지만 남자답게 잘생기고 풋풋한게 혈기 왕성하게 보였다. 엎친데 덮친 격. 잠이 확 달아나 벌떡 일어났다. 저번에 탄소가 노출이 심한 옷을 처음 입고 화장기 있는 얼굴로 나타나 대학교를 누비고 다닌 적이 있었다. 그걸 내가 보고 민윤기한테 헐레벌떡 어찌어찌 연락해 단속하라고 했다. 그래서 이 잡듯이 탄소를 잡아다 얼굴을 씻기고 입힌 민윤기는 내게 고맙다고 연락했다. 고맙긴 무슨. 내가 다 고마웠다. 그 때, 신입생의 마음에 불을 지폈는지 그 전정국이 반년동안 좋아했다면서 탄소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그러다 친분이 있는 무용과 여자를 통해 소개팅을 열려고 했다고? 수준 떨어진다고 욕을 하지 않는 나는 말 그대로 '빡' 쳐서 비속어를 뱉었다. 씨발, 전정국 어딨어?
정호석이 버벅거리며 커피점 주소를 불자 부리나케 무작정 달려나갔다. 뒤에서 야 임마 짐은 챙기고 가야지!라고 외치는 정호석. 신경쓰지않고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내 체면은 무슨. 지금 내 첫사랑 아무 것도 못하고 뺏기게 생겼는데. 최소 진시황릉을 한 바퀴한 길이를 뛰어서 땀을 흘리며 커피점 문을 쾅 열었다. 미친 사람처럼 눈에 불을 켜고 전정국의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찾기 위해서 두리번 거렸다. 저 구석에 분위기 좋은 곳에 앉아서 어떤 여자와 이야길 하고 있는 전정국. 레이더에 포착됐다. 나는 최대한 페이스를 지키며 땀을 닦고 천천히 그 자리로 걸어갔다. 그리고 멈춘 자리. 전정국과 무용과 선배라던 여자가 나를 동시에 올려다 봤다. 본의 아니게 유명한 나를 아는듯 전정국이 알은체를 했다.
"김태형 선배?"
"초면에 미안한데, 탄소 건드리지마."
"선배가 탄소 선배 남자친구 아니잖아요."
비웃는 듯이 말하는 전정국에 주먹이 쥐어졌다. 그래, 아닌데. 아닌데 말야. 애처럼 욕심을 부리는 아이같게 느껴져 나 자신이 초라해보였다. 소개팅을 주선할 때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촉박했다. 입술에 침을 바르고 왜곡된 소문이지만 민윤기를 팔았다.
"걔랑 민윤기 사귄다. 그니까 눈독들이다 민윤기한테 끌려가기 전에 그만둬."
1학년부터 성질이 장난아닌 막가파라 소문난 민윤기를 써먹게 되다니.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지만 이 정도면 위협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찌질하다. 난 누구 위에서 내려다보던 사람이었는데 한 계단을 내려온 느낌. 지방에서 올라와 짖궂고 어쩔땐 꽤 재밌는 친구지만 탄소 앞에선 남처럼 행동했다. 문자로 너의 안부를 물어보기도 했지만. 흰 셔츠의 맨 위 단추를 풀고 답답함을 환기시켰다. 어버버거리는 전정국도 무시무시한 민윤기가 무서웠나. 가끔씩 나도 눈치를 보는 민윤기는 항상 예상 외 반응으로 내 심장을 덜컹거렸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도 맞춘 민윤기는 두고 보겠다고 했었다. 어떤 의미로 두고 보겠다한건지 아직도 이해 안 간다. 찍힌 건지 뭔지. 동공에 지진이 난 전정국에게 인위적인 웃음을 보이며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러니까, 넘보지마라. 놀랜 가슴 추스리고 카페를 나오니 쨍쨍한 날씨. 덥다. 이렇게 쉽게 해결될 거였으면서 정호석은 왜 호들갑을 떨었을까. 설마 날 골릴려고? 셔츠 소매를 걷어올리고 허리춤에 손을 올렸다. 장난기가 다분한 걔라면 그러고도 남다. 젖은 갈색 앞머리를 털며 정호석에게 전활 할려고 바지 주머니를 뒤졌는데 아뿔싸 과방에 폰을 놓고 온 거 같다. 되는 일이 없어서 신경질적으로 뒷머리를 털었다. 이왕 컴퍼스를 나온김에 동아리에서 필요한 소잿거리를 찾으러 이글거리는 거리를 나섰다.
"태형아!"
전정국과 같이 있던 여자가 나를 쫓아와 바로 팔짱을 낀다. 무용과랬나. 한숨이 푹 나왔다. 또 시련은 시작이다. 저기 선배, 저 오늘 피곤해서 혼자 두실래요? 완곡히 청해봤자 우리 너무 오랜만인데…. 애처럼 징징대며 가슴을 내 팔에 부비는 여자에 미간이 좁아졌다. 이 짐덩어리를 이고 아무 곳이나 들쑤시고 다녔다. 심지어 호텔에 가서 방도 관찰하고 나오고 심심한 여자는 내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녔다. 할 일 없나. 호텔 룸에서 가구들을 보고 수첩에 메모중이었는데 뒤에서 볼멘 소리가 들렸다.
"태형이는 차 없어?"
"있는데 안 끌고 다닙니다. 다들 태워달라고 하니까 그러다 사고날까봐요."
"태형이 미래 여자친구는 좋겠다. 이렇게 좋은 남자두고 지금 뭐 할까?"
"관심 없습니다."
대화의 맥을 끊어버리고 내 할 일만 하니 갑자기 뒤에서 허리를 감싸오는 선배. 태형아, 그만 일하고 누나랑 놀래? 누나 몸 예쁜데. 적당히 화나야 말이지 이젠 대답없이 팔을 떼어 밀쳐내고 호텔 방을 나갔다. 그러자 자존심 상했는지 조용히 따라붙어 팔짱을 낀다. 아- 정말 내 상태를 파악못하는 여자다. 역겨울 정도로 피가 거꾸로 솓았다. 호텔을 나가자 저 멀리서 후리한 차림의 탄소가 가득 찬 흰 봉투를 들고 깡총깡총 길을 가고 있었다. 맙소사. 이 상황은 오해를 살 만 했다. 안면근육이 굳어 정서가 조절이 안 됐다. 얼어붙은 내 옆에서 눈치를 보던 여자는 어 탄소야!라며 아는 척 했다. 둘이 아는 사이인건지. 그리고 나를 본 탄소는 역시나 입꼬리 한 쪽이 들썩였다. 진저리 난다라는 표정에서 옆 아는 사람을 보고 확 표정이 바뀐 탄소는 우리가 나온 건물을 보게 됐다. 젠장. 인사도 안 하는 우리 사이에 어떻게 변명을 하지.
탄소는 이 여자가 임기응변으로 여차저차 하는 변명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아무 말도 묻지 않고 나를 향해 비웃음만 보여주고 가던 길을 갔다. 절망. 또 절망. 절망 속에 또 절망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가뜩이나 안 좋은 사이, 오해만 만들었다. 탄소에게 나는 이미 뒤가 더러운 남자라고 찍혔을거다. 더 이상 접점이나 가까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앞이 캄캄해 졌다. 탄소가 내 눈에서 보여지지 않을 만큼 멀어지자 여자를 떨쳐냈다. 그리고 외부 사람에게 처음으로 화를 냈다. 참던 게 폭발할 걸 참느라 어깨가 떨렸다.
"다시는 연락 하시지 말고 가까이 오지마세요."
말이 끝나자 마자 뒤돌아 택시를 잡아 타고 도망쳤다. 백미러로 보이는 여자의 얼빠진 모습.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스트레스가 가득 찬 온 몸이 뜨겁다. 이딴 일로 우는 건 정말 싫은데 너무 화가 나서 울었다. 택시 기사님이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셨지만 입을 열면 소리가 나올까봐. 어김없이 흐르는 뜨거운 눈물만 벅벅 닦았다.
사람을 좋아하는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이후 1학기 동안 빈번하게 정호석을 불러내 내 취향이 아닌 술을 마시고 진상을 부렸다. 벌써 1학년이 끝나고 뒷풀이에서 빠진 정호석과 나는 눈이 내리는 밖을 감상하며 마주보고 앉아 술병을 깠다. 멀쩡한 모습을 보여주는 건 학교 관련된 사람들이 있을 때고, 편한 사람과 있을 땐 풀어질 때다. 이 맘때 서울엔 눈이 폭수같이 쏟아졌다. 오늘도 그 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오늘은 잘 취하는 편이 아닌데 취할려고 5병 정도는 혼자 마신 것 같다. 옆에 있는 한 병도 추가하면 7병. 또 스트레이트이냐며 안쓰럽게 보는 정호석은 울리는 전화를 받으며 내 등을 쓸었다. 볼만 붉어져 몇 잔을 연달아 마셨다. 어 알았어. 있다봐. 폰을 집어넣은 정호석이 내게 물을 먹였다. 야 야, 정신차려. 여기 민윤기랑 탄소 오기로 했어. 이런 모습 보여줄거야? 이때까지 하늘에서 빛나던 새끼가 꼬라지가 이게 뭐야. 그와중에 탄소가 온다는 소릴 듣고 술기운이 달아났다. 그리고 휘청거렸지만 빠르게 내 물건들을 챙겨 바로 튀셨다. 임마 어디가! 탄소 안 보고 갈꺼야? 라는 정호석이 날 따라 미끄러운 주점의 계단을 내려왔었다. 그리고 마주쳤다. 누구를? 너말고 민윤기를. 다행스럽게도 민윤기였다. 흰 보송보송한 털이 모자에 달린 패딩을 입은 민윤기가 우산을 접었다. 안심도 잠시 네가 금방이라도 나타날까봐 겁이 났다. 술냄새가 나한테서 나는지 정색을 한 민윤기가 코를 막았다. 주춤한 나는 민윤기에게 인사할 새도 없이 도망치려고 했다. 그러니 내 팔을 붙잡는 민윤기가 나를 끌었다. 걔 안 보고 갈 거가? 3인칭을 지칭하는 단어가 나오자 아연질색을 하고 민윤기의 팔을 떨쳤다. 내 행동에 티나게 당황한 민윤기가 말을 버벅였고 정호석은 더 이상 날 쫓지 않고 틀렸다는 듯 고개만 내저었다. 저… 저 새끼 왜 저래?
"그런 일이 있네요만."
"무슨 그런 일? 나한테 숨기는 거 있나? 이미 들킬 거 들켰는데. 아는 사람 우리 둘 뿐이잖아. 뭔 일인데?"
"또 탄소한테 안 좋은 꼴 보여서 찍혔다더라."
" 또? "
폭설을 다 맞고 집에 기어들어가 씻지도 않고 멍하게 침대 위에 누워서 천장만 봤다. 이렇게 하다간 죽도 밥도 안 되겠단 생각이 든 건 잠들기 직전. 외면은 누가봐도 부러울 정도지만 내면만 대쉬도 못하는 찌질이로 남기 싫었다. 어떻게든 다시 만난다면. 아니, 만나지 못해도 내가 직접 다가갈거다. 꼼짝 못하게 내 공간에 가둬야지. 한 순간에 앞과 뒤가 다른 찌질이로 타락한 나는 기회만 주구장창 누리고 시간 날 때마다 정호석을 불러내 술이 아닌 커피로 괴롭혔다. 카페로 말이다.
그러다 초심을 잃고 새 학년이 시작되고 요 봄부터해서 여름의 몇 주는 내 기분의 상하 그래프는 오락가락 롤러코스터를 탔다. 다시 낙담하는 마음으로 돌아와 시무룩해선 정호석과 한강에서 캔 맥주 뚜껑를 땄다. 어느새 강에 뛰어들면 정신을 차릴까란 생각도 했었다. 가로등 밑 잔디밭에 남자 두 명이 앉아 궁상떨었다. 정호석은 요즘 운동을 한다며 맥주를 마시길 거부했지만 억지로 거품을 먹였다. 헛웃음이 나온 정호석은 결국 마셨다. 그리고 내게 장난식으로 말했다.
"계약서 하나썼더니 나 막굴린다? 그래, 요즘 진전은 어때?"
말도 못 걸었지 뭐. 고개를 푹 숙이고 무릎 사이에 파묻으니 내 어깨위로 두들김이 느껴졌다. 솔직히 그럴 줄 알았다. 내가 걔랑 술 자주 먹잖아. 듣는 내용이 변하는 게 있겠냐? 다 거기서 거기지 뭐. 임마 여자가 걔 뿐이냐. 왜 파도 수맥도 없는 우물을 파고 있어. 눈만 빼꼼 빼 형광빛이 물결이 파고 하류로 내려가는 모습을 봤다. 점점 싸늘해지는 밤. 휴대폰 액정을 두드리다 벌떡 일어선 정호석이 엉덩이를 털었다. 얌마, 가자. 뜬금없이 일어나 나를 재촉하는 호석이에 느적느적 일어났다. 어딜? 멍하고 생기없는 눈으로 쳐다보니 마지막으로 동기부여나 하러 가자며 힘빠진 내 팔을 질질 끌었다. 정신없이 오만색의 불빛이 번쩍거리는 술집 거리. 그냥 질질 끌려갔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한참 빠르게 걷고 도착한 곳은 노란색과 빨간색의 네온사인이 달린 2층의 주점. 문을 열고 들어가는 정호석 뒤를 따라 무거운 발걸음을 움직였다.
저 안으로 보이는 구석 자리. 그 자리에 앉은 민윤기는 내츄럴하게 흰 티에 청바지 하나만 걸치고 있었다. 요란하고 화려한 팔찌가 들어올려지는 민윤기 손에 흔들렸다. 찰랑찰랑 거리는 민윤기 손을 보고 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1년동안 참 조용히 학우생활한 민윤기와는 그래도 나름 편안한 사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다만 그의 친구, 그녀를 제외하고 셋이서 나름 관계를 만들었다. 변함없이 매정한 민윤기는 다시 폰으로 얼굴을 돌려 게임을 했다. 무심한 민윤기지만 쌩쌩한 정호석은 방방 뛰며 합석했다. 정호석은 당연히 민윤기 옆 바깥쪽 의자를 빼내 앉았고 남은 자리는 술에 골아 떨어진 여자의 옆. 여자는 식탁에 엎드려 쿨쿨 자고 있었다. 그 여자가 단번에 누군지 알아차리고 온 몸이 굳었다. 뻣뻣하게 굳은 몸을 천천히 출구쪽으로 돌렸다. 저번과 똑같이 뒤돌아 도망치려는 내 앞 길을 막은 민윤기의 말에 우뚝 섰다.
"얘 얼굴이라도 보고 가. 안 그래도 인사불성이라서 너인지도 못 알아볼걸. 일 년 반 동안 뭐했냐? 존나, 보는 내가 안쓰러워서 뒤지겠다."
정호석이 마지막으로 동기부여를 하자며 온 곳엔 내 걱정 덩어리이자 근본인 돌맹이가 있었다. 그리고 돌맹이 보호자. 정호석도 이번엔 봐주지 않겠다며 나를 억지로 끌어앉혔다. 어정쩡하게 앉은 나는 술판만 뚫어져라봤다. 심장이 고요하게 북소릴 냈다. 마음 고생에 지친 줄 알았는데 주인 몸 상태를 반해서 천천히 뛰지 않는 심장. 몸은 노역이라도 한 사람처럼 피곤하고 무거웠다. 술을 마시러 온 건지 입방정을 떨러 온건지. 방아깨비같이 입을 나불거리는 정호석은 열 마디 중에 한 번 오는 민윤기의 대답에 키득거리며 땅콩을 집어 먹었다. 나는 없는 사람처럼 앉아서 식탁에 흘려져 고인 노란 물만 쳐다보고있었다. 그 액체에 비친 내 얼굴은 내가 봐도 지독하게 잘생겼고 도화적이었다. 재수없다. 날이 갈수록 내 삶엔 없을 것만 같았던 의기소침이란 단어가 한지 위 먹물퍼지듯 퍼져갔다. 떡을 줘도 못 먹는 나는 1시간째 쥐나도록 같은 자세로 같은 곳만 보고 있었다.
정욕이니 식욕이니 무슨 욕구나 의욕이 불끈거릴 나이에 삼십대 후반을 달리는 중년처럼 허무했다. 의외로 전정국은 끈질겼고 나는 그걸 떼어내느라 발이 닳도록 뛰어다녔다. 지치고도 남는 하루. 거기다 확인사살시키는 게 다름없는 지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 시울만 붉어졌다. 감히 옆모습이라도 쳐다보기가 힘든 나는 남들이 쉽게 볼 수 없는 또 찌질이 버전으로 돌아갔다. 항상 얘와 관련된 일에선 자신감이 급추락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걸 본 민윤기는 자기가 한숨을 쉬어대며 맥주병 안 액체를 들이마셨다. 그리고 여자 등짝을 퍽퍽 때리며 깨우는 민윤기. 야, 일어나! 약한 손찌검에 기겁해서 흘러내릴 뻔한 눈물이 쏙 들어갔다. 그게 평상시인지 끄응…. 신음소리를 내며 일어난 여자는 머리가 아픈지 관자놀이를 짚었다. 여자의 반대편쪽으로 슬금슬금 몸을 옮길려고 하자 행동을 막는 정호석의 긴 다리. 안절부절거리는 나를 발견한 미간을 찡그린 여자가 나를 한참 주시했다. 그리고 딸꾹질을 하며 내 얼굴을 삿대질을 한다.
"와, 이 새끼 김태형 아냐? 니 새끼 잘 만났다."
"……."
"너 벙어리야? 왜 말을 못 해? 이 얄미운 새끼."
"아… 아니."
"너 뭔데 그렇게 잘났는데. 잘생기면 피해줘도 되냐?"
"……."
거칠게 말하는 돌맹이에 입만 뻐끔거렸다. 눈으로 민윤기에게 SOS를 했는데 그냥 받아달라는 듯 얼버무리고 나를 아예 외면한다. 정호석도 눈썹을 꿈틀거리기만 하고 잠잠히 지켜보기만 한다. 니들이 이러고도 친구냐. 사자 우리에 나를 잡아먹으라고 던지고 문을 잠근 놈들 같으니라고. 가까이오면서 몰아부치는 너에 옆자리로 피할려고 하면 정호석의 발이 아래서 막고 있다. 젠장.
"난 네가 진~짜 진짜 옘병할 정도로 싫어. 시발, 알아? 알고도 그래? 눈치를 좆같이 팔아먹었냐?"
정호석이 내게 했던 말을 전제하에 부가적인 내용까지 첨가해서 내가 싫은 이유를 읊는다. 메인 요리인 나를 씹는 말에 서비스로 안주처럼 붙어오는 비속어까지 들었다. 입술까지 하얘져서 식은땀을 흘렸다. 얼굴 가까이 다가오며 몰아 붙혀져 반쯤 상체가 뒤로 눕혀졌다. 간신히 팔로 몸을 받치는 상태지만. 정호석이 전달해준 것보다 네 입으로 들은 소리는 굉장히 정신적 충격이 컸다. 눈 앞에 삐 소리가 지나가는 것처럼 반쯤 정신을 놓고 있었다. 난 어디. 난 누구…. 갑자기 확 멱살을 잡은 네가 끌어올리고 흐리멍텅한 눈을 마주한다.
"그래도 존나 잘생겼네. 그 입술에 몇 명 다녀갔냐? 이거까지 합치면 한 삼천 명 되는 거 아냐? 그 삼천 명 내가 달성해본다. 어때? 졸라 싫지? 한 번 너도 당해봐."
제정신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불경을 외우던 중 내 입술에 뭔가 말캉한게 닿았다. 그리고 침이 섞였다. 눈이 주체할 수 없이 커진 건 나 말고도 흥미진진하게 보던 정호석이나 게임하는 척 다 보고 있던 민윤기도 마찬가지. 얼마나 놀랐는지 민윤기가 발치에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분명 액정 깨지는 소리도 났는데 아무도 아래를 볼 생각을 못 했다. 지금 중요한 건 눕기 직전인 내 위로 올라와 입을 맞춘 너와 저지도 못하고 언 나. 입 안을 휘영하고 다니는 혀가 내 혀를 찾아왔고 마구 비볐다.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볼을 감싸 좋아한다는 감정을 실어 달콤한 키스를 했다. 꼭 네가 알아주기를. 그럴 일은 만무하지만. 술맛이 섞이고 혀의 도톰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네게도 느껴지길. 놀란 정호석이 쩍 벌려진 입을 손으로 가렸다. 민윤기는 초창기엔 얕게 신경쓰더니 이젠 눈을 떼지 못하고 헉한 표정으로 봤다. 고개를 틀어가며 진한 키스가 한창이다 네가 입술을 떼었다. 하지만 내 바람은 빗나가고 술에 헤어나오지 못한 너는 헤롱거리며 비꼬다 내 가슴 위로 쓰러졌다.
김태형 이제 의자왕이네, 씨발.
마지막 뒷처리는 민윤기와 정호석에게 맡기고 나왔다. 민윤기는 널 일으켜 세운 후 낮게 말했다. 쟤 어차피 술취해도 뭔 짓 했는지 기억 전혀 못하니까 안심해. 넌 괜찮냐? 대답을 하지 못했다. 혼자 있고 싶다고 너를 민윤기에게 넘겨준 후 주점을 빠져나와 조용한 공원으로 갔다. 삐그덕거리는 나무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앉아만 있는 채로 새벽까지 있었다. 밤은 깊었다. 후련함? 그딴 거 따위 없었다. 회색 후드집업 모자를 쓰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초점없는 눈으로 복도에 불이 커졌다 꺼졌다하는 아파트를 봤다. 드디어 모든 불이 꺼졌을 때. 마른 눈에서 작은 물줄기가 떨어졌다. 명멸하는 가로등 밑에서 혼자 처참하게 푸는 게 나았다. 꼴볼견이라서. 좋아하는 감정때문에 이렇게 무너지는 게 싫었는데 결국 나 혼자 상처받고 그런 뻔한 내용이었다. 내 첫사랑만은 다를 거라 생각했는데.
모든 걸 좋아했었다. 작년 여름 아침에 꼭 강의에 늦으면 스크류 바를 입에 물고 죄송합니다라 말하며 총총 뛰어들어가는 모습도. 민윤기가 꼭 긴 바지만 입게 해서 사계절 내내 1년간 반 바지 한 번 못입은 너를. 겨울에 눈꽃송이같이 하얀 니트에 털이 살짝 풀린 까만 색의 목도리를 하고 과방에서 고구마를 까먹던 너도.
눈이 심하게 쏟아지던 날, 투명 우산을 쓴 네가 조심조심 길을 걸어갔었다. 아기자기한 소품을 파는 가게에서 노란 조명이 새어나왔고 그 가게 앞에서. 사람들이 많이 걸어다녀 반들반들해진 눈발판을 밟아 넘어졌었는데 사람들이 엎어진 너를 치고 모른 채 지나갔다. 빨갛게 얼어붙은 손을 마구잡이로 밟고. 책들이 품에서 쏟아져서 물에 젖고 우산은 부숴졌었다. 마침 반대편에서 오던 민윤기가 사람들 사이를 치고 달려와 도와준 게 다행이었다. 웃는 얼굴로 머리에 눈이 쌓이는 것도 모르고 책을 줍던 너는 또 뒤로 넘어졌다. 잘못하면 뇌진탕일 수도 있는데 가까이 갈 수 없었던 나는 애꿎은 손만 피날 듯이 꽉 쥐었다. 그 때 뒤에서 몰래 따라가 지켜보다 손을 뻗어 일으켜주지 못한 게 마음에 깊이 남았었다.
남들 눈에는 빛나서 눈에 띄지만 네 앞에선 나는 그림자가 되어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눈물 몇 방울 떨어뜨리고 허탈하게 앉아 눈사람처럼 가만히 있다 동이 틀 때 자리를 떴다. 여름인 것치곤 새벽이 추웠다. 정호석이 말했던 동기부여는 정확한 의미를 가졌다. 내가 널 좋아한 이유는 친구라도 되고 싶어서 일거야. 그렇지? 주위도 아무도 없었지만 나는 확신이 안 선 마음이 초조해서 걸음을 빨리했다. 의미없이 집으로 가는 먼 길을 계속 걷고 걸었다.
아마 내가 기억하고 있는 네 모습과 네 그대로의 모습은 다른 것 같다. 최소한 그랬으면 좋겠다. 내 눈이 삐었다고 후엔 웃으며 기억할 수 있게. 꼭 후회없는 추억으로 남길 수 있게.
어젯밤 큰 소동 이후 다음날, 오늘. 남 교수가 과제를 내 준다고 했다. 고대해왔던 계약서의 끝을 보는 마지막 날이다. 쉽게 말하자면 이번 일로 인해서 내가 마음을 정리해야 할 때가 오고 있다는 것이다. 기다림과 아픔의 끝의 결말이 가까이 오고 있었다. 회복한 몸 상태는 혈색도 좋게 만들었다. 힘들었던걸 다 떨치고 내 마음대로. 원래 나 자신 그대로를 보여주기 위해 긴장감을 놓는다. 그리고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그저 친구라도 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살게. 이것만으로도 나는 족하다고 생각했다. 정리의 끝은 아름다웠길 바란다.
물들인 갈색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실크소재의 흰 셔츠에 발목을 드러내는 검은 정장바지를 입었다. 핏 좋게 시접이 접힌 바지는 편했다. 알이 큰 메탈 시계를 찬 후 거울을 보고 삐져나온 머리카락 한 가닥을 가라앉혔다. 또각거리는 소리가 나는 고동빛 유광의 구두를 신고 전공책을 챙겼다. 집을 나와 묵혀놨다 몇 일 전 세차시키고 연료도 꽉 채워준 그렌저의 시동을 걸었다. 누가 보면 소개팅이라도 나가는 줄 알겠다. 하지만 정말 소개팅이라면 이 대학교가 떠들석하게 될 거다. 도대체 누가 김태형이랑 소개팅하냐고. 소문이 일사천리로 날 걸. 생각만으로도 어이없어 웃겨 코웃음을 치고 부드럽게 차를 몰았다.
"왠 일이야? 태형이 운전하는 거 처음 본다."
"완전 섹시하다. 나도 언제 태워줘, 응?"
"와 김태형. 차도 있냐. 역시 완벽하다니까."
주차장에 와 차에서 내리고 나니 졸졸 따라오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뭉쳐 내가 가는 길마다 몰려다녔다. 계속되는 과찬에 뒷목을 만졌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남들의 정상에 서있는 나를 넌 좋아하지 않는다라 생각하니 또 기분의 꺾은선 그래프는 급추락했다. 내가 지구 밖 별이 아닌 보통의 존재가 된다면 적응할 수 있을까? 내 대답은 '아니'이다.
연애선과 인기도. 두 개의 떡을 들고 있는 나는 어느 하나도 버릴 수 없어서 지금까지 먼 길을 돌아왔다.
나는 뭘 바라서 대학 생활 거의 반을 너를 향해 노력을 쏟아부은 걸까. 너는 알아봐주지도 않는데.
강의실로 들어가니 또 구석에 민윤기가 앉아서 박카스를 마시고 있었다. 탄소는 왔는지 신경쓰여 기웃거리며 민윤기를 보는데 시야를 가리는 남자 선배들에 마음의 표정만이 썩었다. 하지만 습관이라 안면에 웃는 상으로 철벽을 쳤다. 습관이 무섭지. 나중에 들어온 탄소를 신경쓰지도 않는 사람들. 나는 탄소를 보지 않고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지만 나를 정말 싫다는 눈빛으로 보는 탄소가 느껴졌다. 그래도 어쩌랴. 이제만큼은 내 길대로 가서 너를 놀래켜줄 차례다. 네가 몰랐던 나를 알려줄거다. 사람들이 날 사랑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이라고.
그리고 조금만. 조금이라도 같이 있고 싶다. 맨정신과 우리 둘만의 공간은 필수로. 어찌해 볼 생각은 없었다. 그냥 내 마음대로 너를 괴롭혔을 뿐. 그리고 마음을 흔들었다.
감히 올 생각도 못해봤던 강의실 네 옆자리도 먼저 찾아갔고, 네 입 안에 들어갔던 스트류 바 맛도 같이 느껴봤다. 궁금했으니까. 오로지 네가 뭘 겪었고 뭘 생각했는지 궁금했다. 너도 나처럼 날 궁금해하길 바라. 관심이 없어도 생기길 바라. 난 네게 지금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어. 봐달라고. 제발 좋아해달라고. 외양은 굥고롭게도 널 놀리고 달래는 사람일지라도 속은 불타서 썩어들어가 황폐한걸.
이미 과제를 같이 할 걸 알고있었던 정호석도 마지막 도움을 줬다. 민윤기도 눈치껏 바턴을 넘겨줬고. 이 과제를 할 조는 이미 1년 전 부터 결성되어있었다. 장난식으로 시작한 계약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스케일이 커졌다. 계약서에 사실 민윤기도 싸인을 했다. 그 별 거 없던 계약서에 왜 민윤기도 서명했냐고 나도 궁금해서 물어봤었다. 대답은 내가 좋아하는 단어인 청결을 쓸 만했다.
'나 혼자 걔 관리하기 힘들어서. 내가 널 1년 동안 지켜봤는데 너 정도면 뭐… 괜찮지 않나- 싶더라. 그대신 들고 튀면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 조져버릴거다. 알았나?'
민윤기의 특유의 표정으로 글자를 빈 칸에 무지막지하게 써내렸었다. 추가 사항으로. 그리고 쓰곤 씨익 웃으며 계약서를 정호석 얼굴에 탁 붙혔다. 그에 바로 반응이 오는 정호석의 징징댐에 민윤기가 시끄럽다면서 입에 쌈을 꽉 넣어줬다. 눈을 흘기며 어쩔 수 없이 먹는 양 우걱우걱 먹는 정호석은 아래로 떨어진 계약서를 곱게 접어 코트 품에 넣었다. 나중에 음식점에서 헤어질 때 정호석한테서 계약서를 받곤 천천히 수정된 부분을 읽고 슬쩍 웃음을 지었다. 가족만 아니지, 누가 돌맹이 오래비 아니랄까봐.
-도와주는 대신, 울리지 않기. 친동생처럼 잘 보살펴주고 매일 관심가져주기.
그렇게만 한다면 나 민윤기는 선머슴 앞에서만 찌질한 벤츠남 김태형을 능력껏 도와주겠음.
과제 팀에 대해서 너와 실랑이가 끝나고 너는 일어서서 강의실을 나갈려고 했다. 문 앞에까지 왔음에도 불구하고 손잡이를 잡는 걸 주저하던 너는 내게 물어봤지.
왜 입 가에 묻을 걸 핥아먹었냐고. 정말 말 그대로 궁금했으니까. 난 네가 궁금해서 알고싶었어. 뒷말을 삼키고 씨익 웃었다. 넌 내 마음을 모를 거다. 연탄재가 이미 풀풀 휘날리고 있었다. 난 이번 과제가 끝나면 마음에서 결정할 거다. 차 안에 연탄 연기를 피워놓고 좋아하다는 의미의 마음을 넣어 문을 닫아 자살시킬건지. 아프단 비명을 들을 지도 모르지. 잠잠히 죽을지도 몰라. 그건 지금 너에게 달렸어.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을거야. 맹세해. 난 과제를 하는 동안 너에게 좋아하는 감정을 쏟아부을 거야. 다 붓다 보면 남는 게 없었으면 좋겠어. 웃는 얼굴 뒤로 참혹한 마음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넌 죽어도 내 마음을 모를 거야. 너보다 먼저 강의실에서 나오자 오늘따라 유난히 여자들이 더 꺅꺅거렸다. 평소대로와 같이 그들과 한 무리가 되어 강의 건물을 나갔다. 너도 한 번쯤은 내게 미움말고 들꽃을 바라보길 바라. 조그만해도 괜찮으니 네 마음에 내가 피길 바라.
아무도 모르게 달콤쌉쌀한 미소를 짓고 손에 쥔 차 키를 만지작거렸다.
3. Ending.
발표가 끝났다. 발표역을 맡은 김태형과 나. 나는 김태형과 아주 멀단 사실을 승복했다. 내가 아무 생각하지 않고 오직 발표에만 집중해 내 분량의 발표를 끝낸 후 김태형에게 순서를 넘겨주었다. 그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저 멀리 사람들이 김태형만 집중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김태형 억양, 말투 하나하나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까맣게 보이고 어지러움이 뇌 속을 타고 다녔다. 한 번도 이런 적 없는데. 마치 유명인사들이 받을 만한 눈빛들을 간접적으로 느끼고 있는 느낌. 카메라 공포증이 왜 생기는지 알 것만 같았다.
마지막으로 남 교수는 김태형을 총애하는 걸 자알 알 수 있었다. 특유의 풀이방법이 좋다면서. 꾸준히 이렇게만 간다면 영화사에서나 평론쪽, 아니면 방송국 쪽에서 러브콜일도 모르겠다라고. 웃으면서 칭찬하는 모습이 낯설었다. 남 교수는 인색이라면 제일가는 교수들 중 한 명인데. 남 교수가 잘 했다면서 이만 수업을 마친다고 하고 먼저 자리를 나갔다. 강의실 안에서 과제물 발표가 끝난 후 모두들 김태형을 찾아들었다. 사람들에 치여 밀려난 나는 뒷걸음쳤다. 등 뒤로 강의실 문이 닫자 꽁무니 빠지게 달아났다. 나를 찾는 김태형의 모습이란 사람들에 가려져 볼 수 없었다.
그래. 이렇게 멀어지는 거야. 난 그런 것들을 감당할 힘이 없기에.
예전에 스타더스트라는 영화를 봤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별은 아름다운 여자가 되어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았다. 그리고 그 별과 사랑에 빠진 이계의 젊은이는 별을 지키려고 했다. 별은 누구에게나 주의를 끌었고 아름다움을 가졌다. 하지만 목수인 젊은이에겐 너무 과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젊은이는 별을 다른 검사들에게 뺏기고 마녀들에게도 죽을 위기에도 처했었다. 칼도 갑옷도 싸우는 방법을 몰라서. 능력이 없어서. 지킬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내가 그렇다. 나는 지킬 방법도 모르고 가지는 방법도 모른다. 그리고 너무 과분했다. 내게 김태형이란, 별이다.
숫자로 말하자면 짧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길었다. 과제를 핑계로 같은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동안 애정결핍에 걸린 사람처럼 많이 안았었다. 침대가 아닌 공간에서도 좋은 감정이란 감정을 흘려서 단 내가 났다. 내가 했던 짓을 생각해서 멀어져서 보는 게 제일 좋은 엔딩이란 걸 알면서도 그 집에서 나오질 못했다. 그에 대해 알면 알수록 밖으로 나오기 싫었다. 꼭 옷은 종류대로 정리해서 걸고 개는 사람. 여름에는 흰 셔츠를 입는 걸 좋아했다. 집 안에선 편하게 슬랙스를 입는 추세였고. 반바지는 나도 못 입으니까 자신도 안 입겠다고 선포를 했다. 여름에 그가 항상 강의실에 들어올 땐 책을 가죽 크로스백에 넣고 온다던지, 오른 손에 외제 은색 샤프와 책을 들고 들어왔었다. 어느 겨울날 눈이 펑펑 내릴 땐 농도짙은 파란 물감으로 색칠한 것처럼 푸른 우산을 쓰고 남색 꽈배기 문양의 목도리를 하고 다녔다. 목도리를 하지 않았을 땐 성난 먹구름같은 검회색 긴 코트와 안에 검정 목 폴라티를 입었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내가 해준 볶음밥. 재료를 사러가기에 김태형과 떨어지고 싶지 않아서 집에 있는 재료를 조금 꺼냈다. 너무나 간단해서 무안했지만 내 예상외의 반응. 먹은 볶음밥 중에서 제일 맛있었다며 너무나 좋아해줬다. 고맙다고 하는 김태형의 말에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날 뻔했다. 왜인지 모르겠다. 그냥 그 말에 짙은 향수가 느껴지고, 탄 내가 났다. 그가 해줬던 맛있었던 해물 토마토 파스타. 정말로 맛있었다. 이것밖에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는 김태형의 말에 결국 먹다가 눈물이 흘렀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넓은 접시의 가장자리에 툭툭 떨어져서 맺혔다. 왜 우냐고 화들짝 놀란 김태형이 나를 뒤에서 안아줬다. 별로 맛없냐고 물어보는 김태형의 주눅 든 말에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면서 도리질을 했다. 조금있을 작별을 너무 급히 느껴서 눈물샘이 참지 못했다. 것보다 미안했다. 미워해서 너무 미안했다. 내게 휴양지와 같았던 김태형은 오늘 아침에 내 머릴 말려주면서 내가 처음 우리집에 왔었던 차림의 옷을 내게 주었다.
'난 원피스가 좋은데, 누가 너 지켜달래서 말이야. 꼭 반바지는 긴 바지로 갈아입고 가자.'
아슬아슬했다. 무너질 것 같이 보이지만 사랑을 담아 말하는 그는 내 정수리에 눈을 감고 입을 맞췄다. 나도 눈을 감았다. 나는 김태형의 집을 그와 같이 나오기 전, 그 때까지 혼란스러운 마음에 김태형을 먼저 걱정해줬다. 그리고 나올때야 알았다. 민윤기한테 연락했어야했는데. 김태형과만 연락을 한 민윤기는 아까 급하게 만나 나랑 말도 못해보고 바로 발표로 들어갔고. 지금 신데렐라처럼 복잡미묘한 감정란 유리구두를 떨어뜨리고 도망가는 내 뒤를 쫓아 나를 돌려세웠다. 민윤기. 아이스크림 색깔의 머리카락이 막 휘날릴 정도로 뛰어온 민윤기는 맨 먼저 내 바지부터 확인했다. 긴 바지 잘 입었네. 김태형이 반바지 입힐 줄 알았는데. 내 기대에 잘 응해주네. 역시…. 헉헉 거리며 말을 끊어서 하는 민윤기는 짐짓 화난 표정으로 바뀌었다.
"너 왜 도망 가."
"뭐가."
"딱 누가 봐도 도망가는 눈치잖아. 내가 널 얼마나 잘 아는데."
"…잘 알면 지금 나 건드리지 마. 조금만 건드려도 터질 것 같으니까."
"어쭈? 입술에 뭐 바른거 아냐? 뭐, 그거만 봐줄게. 눈에 뭐 칠하기만 해봐. 바로 씻겨버릴거니까."
"네가 뭔데 내 화장하는 거 까지 신경 써? 너 나 좋아해? 이해가 안 된다. 왜 그리 집착하는 건데?"
"내가 이 말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우정도 사랑의 일종이란거 알아?"
"…뭐?"
평소엔 막 욕도 섞어가며 말할 민윤기지만 오늘만은 조금 많이 진지했다. 우정도 사랑의 일종이라 말하는 놈에 살짝 흔들렸다. 이 와중에 안 어울리게 개소릴 하는 건지. 약간 웨이브진 머리를 마구잡이로 헝클이면서 인상을 짓는 놈은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김태형, 너 진짜 많이 좋아해. 니가 생각 못할 만큼."
"그 전에 우정이 사랑의 일종이란 거 무슨 소린데."
"…후, 말 그대로야. 니도 안다이가. 내가 많이 아끼는 거. 친오빠의 마음으로. 이성이 아니고 정말 친구로써. 이성끼리 친구는 없다고 하는데, 아니. 있을 수 있어. 나도 처음에 내가 너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더라고. 누가 너랑 논다는 소리들으면 나도 모르게 질투느끼고 데려갔는데. 그냥 네가 걱정돼서 그랬던 거지."
내 여동생도 니 같았거든. 쪼매나서 뽈뽈 거리는데 가시나가 기는 겁나 세요. 입도 험해가지고 고칠려고 나도 욕 끊고 그랬는데 지금은 아니지. 니처럼 여름엔 아이스크림 달고 살았다. 근데 고 조막디한게, 내 눈 앞에서 요절했거든. 사춘기 접어들어서 많이 싸우고 그랬는데 나 진짜 싫다면서. 옛날엔 엄마 몰래 피방도 데리고 가서 서든도 하고 그랬는데. 남자 친구 잘못 만나서 뻣나갔었지. 그거 바로 잡는다고 없는 아빠 역을 자청했는데. 길거리에서 언쟁벌이다가 내가 정말 싫다고 외치고 맞기 싫어서 도망가던 내 동생이, 그만 도로에서 치였, 어. 너같으면 내 옛 동생닮은 애한테 이성같은 느낌가지겠냐. 전혀. 나때문에 죽었는데. 난 네가 잘 되기만 하면 돼. 너같은 친구만나게 돼서 너무 고맙고 재밌었다. 하지만 너가 또 그른 생각하는 거를 내가 잡아줘야된다고 생각했어. 너무 주입식적으로 강요해서 몇 년 전 같은 일 겪고 싶지 않았는데. 난 네가 좋은 사람 만나서 연애도 하고 그랬음 좋겠다. 너무 사람 미워하지도 말고. 용모 같은거 간섭하는 거 그냥 오래비같은 마음으로 봐주면 안되냐.
길게 이어진 민윤기의 말이 맑은 여름날의 공기를 떠다녔다. 처음 듣게 된 민윤기 동생 얘기. 무거운 주제에 숙연해졌다. 민윤기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이 멍청한 입은 김태형 집으로 간 뒤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렵다. 많이 어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민윤기가 내 어깨를 놔줬다. 금붕어처럼 뻐끔거리던 내 입에서 드디어 말이 나왔다.
"…그럼 어떡해. 무서운데. 나 사실 너무 염치가 없어서 김태형 못보겠어. 걔도 생각날 거 아냐. 내가 김태형 얼마나 싫어했는데. 뒷담도 정말 많이 했잖아."
"앞담도 했었지."
"내가 언제?"
"니가 술 취해서 기억을 못하는데, 김태형이랑 정호석. 방학에 우리 바로 술집가서 너가 먼저 취해서 쓰러졌을 때 왔었거든."
"설마 나 이상한 거 한 건 아니지?"
씁쓸하게 웃은 민윤기가 턱을 긁으며 내 일 아니란 듯 가볍게 털었다. 제발. 술 먹으면 진짜 이상해지는데. 그것도 자고 있었는데 깨운 거 아냐?
"김태형 일 년 반을 마음고생해서 반죽은 채로 지냈어. 사람들 눈 피해서 제일 먼 술집에가서 정호석이랑 술만 마시고 넉다운했는데. 걔 되게 술 쎈데. 참 취할려고 애쓰더라. 안쓰러워서 최근에 네 얼굴만 보고 가라고 했거든. 김태형, 걔 정호석한테 억지로 소환당해서 네 옆에 앉았었는데 말야. 넌 기억도 못하지?"
안타깝게도 난 그 때 일이 전혀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 민윤기가 말하는 이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내가 김태형에게 키스했다는 걸. 사고를 쳤구나. 내 자신이 너무 확고하게 싫어져서 마른 세수를 했다. 어쩌자고 김태형을 불렀어. 민윤기를 탓할 수도 없고 내가 제일 잘못이 컸잖아. 이제 알았으면 김태형에게 돌아가자며 손을 잡고 끄는 민윤기에 발꿈치로 브레이크를 걸었다.
"왜 그래? 뭐가 문젠데."
"내가 문제야. 김태형이랑 어울리지 않아. 내가 너무 잘못한 게 많아서, 미안한 게 셀 수 없어서 내 자신이 참을 수가 없는데. 나 원래 여성스러운 거 하나도 없기도 하고 남자같고, 네 말처럼 선머슴이야. 난 결코 김태형이랑 어울릴 수 없어."
"그건 만고의 네 생각이잖아."
"그래. 내가 김태형이랑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고 해도 계속 생각날거야. 죄책감으로 두고두고 남을 거야. 적당히 싫어했으면 기사회생이라도 하겠지."
입술을 깨물고 민윤기 손을 꼬옥 잡았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아서 눈에 힘을 줬다. 아른 거리는 김태형의 모습이 하얗게, 하얗게 구름처럼 뭉게뭉게 흩어졌다. 내가 너무 못나고 못돼서 못가. 짧지만 잠시나마라도 행복했다. 슬프게 행복했다. 가슴 떨릴 정도로 달달했고 한 남정네같이 무뚝뚝했던 나를 빙하녹이듯 녹였다. 어쩌면 1년 반동안 겹쳐졌을 지도 모르는 짧은 추억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있던 공간에 네가 같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김태형을 좋아한단 사실을 김태형이 알게 되면 분명히 날 놓치지 않기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고 사고를 칠 거다. 제일 최악인 상황은 김태형이 여자들 연락을 다 끊어버리고 별이 있는 위치에서 추락하는 거다. 그럼 인맥도 잃고 신용도 잃게 될거야. 네 유명세는 한 순간에 잃고 말거야. 그렇게까지 나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럴 가치가 없었다. 그렁그렁거리는 눈으로 민윤기를 올려다 봤다.
"내가 준비가 되면 먼저 김태형 만나러 갈게. 나 너무 몰아붙이지 마…."
사람들이 적은 거리에 서서 얼굴을 적실 정도로 눈물을 흘렸다. 말없이 쳐다보는 민윤기는 턱에 고인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안아주는 민윤기의 품이 정말 오빠처럼 포근했다. 애달래듯 등을 쓰다듬어주던 민윤기가 나즈막하게 말했다. 너 선머슴아니야. 예뻐. 놀려서 미안. 마음에 아닌 척하면서 담아뒀던게 터져서 서러웠고 끄윽끄윽 거리며 울었다. 흉할 정도로. 그리고 김태형에게 갈 수 없는 나는 곯아떨어졌다.
내 벽은 거의 부숴졌는데 담을 넘지 못하는 김태형이 너무 안쓰러웠다.
나는 끝까지 파렴치한이었고 김태형을 피했다.
그 강의 시간이후 아무데서나 누가 툭 걸면 눈에서 물이 흘렀다. 약해진 마음 추스린다고 애먹었다. 남 교수 다음 강의실. 문을 열고 나타난 왕자는 아예 고개를 내린 내 옆으로 걸어와 섰다. 빈 옆자리가 있었지만…. 김태형은 그 자리에 멈춰서 나만 내려다 봤다.
김태형 옆이 허전했다. 막 붙어다니던 여자들은 떨어져나가있었고 맨날 울리던 휴대폰도 잠잠했다. 밥사달라니 같이 피시방가자니 걸치적거리던 남자들도 제자리에 앉아서 자기들끼리 놀고 있었다. 설마 싶었지만 아마 그럴거다. 김태형은 내게 오기위해 정리했다. 내가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도록. 그 강의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네 이미지는 추락하고 보통의 존재가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누구에게나 빛나보이던 김태형은 아래로 내려와도 반짝거렸다. 참으로 멋있고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눈 앞에 있어도 잡지 않았다. 그게 너에게 나을 선택일거라 굳게 믿는다. 나중에 바보같은 선택이었다고 후회해도. 결국 김태형은 묵묵히 침묵을 유지하고 내 옆자리가 아닌 내 뒷자리로 자릴 옮겼다. 1년 반 네가 했던 것처럼. 나를 뒤에서만 바라본게 익숙한 듯이. 김태형모르게 수업 도중에 조용히 오열했다. 옆자리의 민윤기는 모른척해줬다. 날 믿겠다고 한 민윤기는 아무런 조치를 해주지 않았다. 밑으로 휴지를 조용히 건내준 것 빼고. 수업이 끝날 쯤 나는 멀쩡한 척을 하고 민윤기보다 먼저 자리를 나갔다. 그러자 빠르게 쫓아온 김태형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수척한 김태형. 무표정을 유지하고 김태형을 마주봤다. 입가가 진 김태형은 집에서 봤듯이 아슬아슬,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나에겐 2주지만 김태형에게 거의 2년과 같은 세월. 지친 걸까. 나라면 지쳤을거다. 우리를 지나치는 사람들이 수근수근 거렸다.
-김태형이 좋아하는 사람이 쟤 였어?
-아 뭐야, 별 거 없네. 존나 나는 무슨 연예인인줄. 김태형 왜 저래?
-나 김태형 많이 좋아했는데 김석진 선배로 갈아타야겠다.
-이해 안 된다. 왜 남자같은 애를 좋아한대? 내가 그렇게 대쉬했는데 철벽쳤으면서.
-그 2년동안 좋아했다는 애?
-내가 훨씬 낫네.
귀를 파고 들어 비수를 꽂는 말. 쏙쏙 귀에 나쁜 말만 잘 들렸다.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을까. 과대와 민윤기는 서성거리다 사람들에 묻혀 나갔다. 여자들의 비아냥과 꼴도 보기 싫다면서 나가는 말. 그렇게 우리 주위는 휑해졌다. 무서웠다. 오늘 무슨 일이 있는데 훨씬 적게 출석한 여자들. 만석이라면 나를 매장됐을지도 몰라. 나를 우습게 보고 김태형을 뺏어가려는 일도 많을 거다. 그리고 내가 나쁜 년이라서 혹시라도 내가 김태형 정말 매일 험담할 만큼 싫어했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김태형도 나도 쉽게 몸과 마음이 상할 거다. 김태형은 깊숙이 가지고 있던 말을 드디어 꺼냈다.
"내가 싫어진거야?"
"아니."
"…나 많이 포기했어. 너만 있으면 돼."
"……."
"여자들 연락들 다 끊었어. 필요없는 가지들은 다 잘라냈는데, 너 하나 남았어."
"미안해."
"…그러지마. 너도 나 이제 안 싫어하잖아."
"…정말 미안해."
"나 이제 너 손끝이라도 닿아봤는데…. 이제서야… 마주보고 얘기할 수도 있게 됐는데."
"내가 다 미안해."
"미안하다고 하지마. 끝내란 소리로 들리잖아…? 나 너 많이 좋아해. 솔직히 너도 나 좋아하잖아. 그럴거면 왜 나랑 같이 있어줬는데?! 싫다고 하지. 억지로 나랑 지낼 필요 없었잖아."
"……그만하자."
너무 답답하다는 한숨을 쉬는 김태형의 눈꼬리가 축축해졌다. 마른 세수를 하는 김태형은 한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처음보는 김태형의 부서질듯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슬픈 표정을 지을 뻔 했다. 그렇게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눈 가가 붉어진 김태형은 손을 떼어내고 내 손을 잡았다. 나 좋아해주면 안 돼? 그리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러면 나도 흔들리잖아. 마음은 정 반대지만 우리 둘 다 편하기 위해. 하지만 나보다 널 위해서. 내가 처음부터 나쁜 년이었으니까 끝까지 할게. 부러 정떨어진다는 듯 나는 네 손을 뿌리치고 다시 천천히 갈 길을 갔다. 뚜벅뚜벅 걷는 내 뒤에서 너는 어두커니 서있었다. 그리고 멀어져 가는 나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네 입 가는 감정을 참지 못해 요동쳤다. 일그러지는 눈망울에서 가지말라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한참을 걸었다. 네가 날 볼 수 없을 만큼 먼 거리에 와서야부터 눈물을 훔쳤다. 하나둘 씩 뚝뚝 떨어지는 걸 마구 비비며 발걸음을 서서히 멈췄다. 여기가 어딘지 앞만 보고 걸은 나는 뒤를 돌아봤고 보이지 않는 모습에 쭈구려 앉아 엉엉 울었다. 인적 드문 곳에서 길을 잃은 아이처럼 펑펑. 이럴거면 처음부터 나도 김태형 색안경쓰고 보지 말걸. 민윤기 말대로 사람 너무 미워하지 말걸. 눈을 비비다 얼굴에 손톱으로 생채기를 내도 마음이 쓰려서 더 서럽게 울었다.
김태형. …태형아 미안해. 네가 희망을 가지게 해서 미안해. 사실 내가 너를 욕한 이유는 내게도 통했다. 다른 사람에게 널 좋아할 여지를 주고 선을 긋는 행위. 나로 인해 주위사람이 힘들게 되는 행위. 앞과 다르게 뒤에선 부뚜막에 올라간 고양이처럼 놀은 것. 너를 만나고 내가 충분히 그랬다. 사람이 그럴 수도 있는건데 너에게만은 더 매정했다. 더 단호하고 험하게 굴었다. 이럴거면 좀 더 잘해줄 걸. 티내지 말걸. 내 업때문에 나도 너도 평온치 못하게 됐다. 수분이 다 빠져나가라 울은 후 멍하게 하늘을 올려다 봤다.
서서히 가을이 왔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고 말이 살찌는 계절이 왔다.
둘러본 주위는 어느 아파트의 공원. 몇십 분을 정체없이 걸어왔는지 컴퍼스를 벗어났고 어쩌다 이곳이었다. 삐그덕 거리는 벤치에 앉아 다시 하늘을 무게감없이 올려다 봤다.
그리고 쓸쓸한 마음을 접어 비행기로 날렸다. 다시 그 비행기가 종착지로 되돌아 올 줄도 모르고.
다시 코끝이 찡해지자 눈을 감고 벤치에 기댔다. 지지직거리는 소리를 낸 옆 가로등에 약하게 불빛이 들어왔다.
4. Credit.
새내기에서 3년이 지난, 겨울. 4년제 대학 생활을 마쳤다. 졸업식. 학과모를 쓰고 학부모처럼 사진을 찍어대는 정호석에 민윤기는 할 수 없다는 듯 모델 포즈를 지었다. 나는 그걸보고 피식 웃고 최대한 활짝 웃어 브이를 보였다.
정호석을 만나고 조금 시끄러워진 민윤기는 학과 사람들이랑 조금 친해졌다. 그래도 나랑 다니는 건 관두지 않았다. 셋이서 온 카페에서 나는 코코아를 마신다. 네 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에서 민윤기는 내 옆이 당연하다는 듯 앉았고 정호석은 민윤기 앞에 앉았다. 시끌시끌한 남자 두 명을 관람했다. 점점 날이 어두워지는 이 시점에 술 타령을 하던 정호석은 민윤기에게 누구를 만나러 가자며 졸라댔다. 얄밉게 까불거리던 민윤기는 그 이름을 듣고 잠시 표정이 굳었다. 조그맣게 이름을 말했던 정호석은 눈치껏 알아들은 나를 보고 입을 턱 틀어막았다. 코코아를 마시던 내 얼굴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그 일 이후 김태형은 전과했다. 갑자기 학과 애들이 태도가 달라져 김태형을 가지말라고 붙잡았지만 아무의 말도 듣지 않고 바로 신청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볼 수가 없었다. 만날 수도 없었고. 좁지도 넓지도 않은 컴퍼스에서 우린 마주칠 수 없었다. 아니면 네가 1년 반동안 내 뒤에만 있었던 것처럼 숨은 걸지도. 내가 끊은 인연이 아쉽게 느껴졌다. 김태형 손을 잡아줄걸. 저질렀다면 네가 내 옆에 있었을까?
추운 겨울에 네가 없어서 더 추웠다. 고요해진 두 남자의 입. 나는 내 눈치 보지 말고 가라고 했다. 아마 정호석과 민윤기는 나 몰래 김태형을 많이 만났나보다.
많이 닳은 까만 목도리를 칭칭 매고, 날씨도 날씨지만 하얀 니트 원피스에 검은 타이즈를 신었다. 회갈색 코트를 덧 입은 나는 코코아를 천천히 마셨다. 나도 많이 변했다. 얼굴엔 연한 화장을 할 수 있게 허락한 민윤기는 정작 자기가 더 관심을 가졌고. 내 볼에 분홍색 블러셔를 칠한 게 곱다면서 아버지처럼 좋아했다. 그래서 오늘은 분홍색 립글로즈와 볼터치를 하고 곱게 앉아있을 수 있었다. 어물쩡거리는 두 남자는 나중에 연락할게라며 시끄럽게 카페를 나갔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옆 유리 창틀 밖을 봤다.
눈이 살랑살랑 내려온다.
3년 전, 눈이 폭수처럼 많이 내리던 날 소품가게 앞에서 엉덩방아를 찍은 게 생각나 풋하고 웃었다. 뒤에서 누군가 아!란 안절부절하는 소리를 냈다. 누군진 모르겠지만 좀 도와주지. 책도 다 엎어져 지나가던 사람들이 치고 밟았다. 머리에 눈이 쌓이는 것도 모르고 저 멀리 날아간 우산. 어디서 나타난 민윤기가 달려와서 나를 걱정했다.우산과 책들을 주워주고 나를 도와줬다. 그러자 뒤에서 후- 숨을 내쉬고 안심하던 소리. 뒤를 돌아보자 빽빽한 사람들 사이에 푸른 우산 하나가 보였다. 누가 든 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끈질기게 따라붙은 눈은 먹구름같이 검은 회색 긴 코트를 입은 사람의 뒷모습 밖에 볼 수 없었다.
소품가게에서 미세하게 잔잔한 노래가 새어나왔었다.
기억에 남았던 추억을 회상하며 혼자 카페에 남아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에 퍼지는 따스한 코코아의 기운에 마음이 노곤노곤. 카페 유리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어 누나!
갑자기 나타난 전정국이 내 앞자리에 털썩 앉았다.
"누나 졸업 축하해요. 별로 좋진 않지만."
"그래. 많이 컸네 정국이."
"그러게요. 누나도 많이 예뻐졌네요. 단발로 잘랐더니 되게 많이 길었네."
"2년 전 일 잘 기억하네. 역시 내 빠돌이 아니랄까봐."
"누나 빠돌이가 무슨…! 그래요. 전 누나의 그 거친 입도 사랑한답니다. 상여자…!"
"아 뭐래. 헛소리 할 거면 가라."
깔깔 웃는 전정국은 박수를 치더니 카페라떼를 시켰다. 좀 앉았다 갈 요량인가보지. 코코아 컵에 묻은 분홍 아랫입술 모양. 김태형이 좋아하는 원피스치마도 입었는데. 아직 남은 놈의 흔적에 씁쓸하게 웃었다. 과잠을 입은 정국이는 여자 알바생한테 씨익 웃어주며 "고마워요" 머그컵을 받아들었다. 부끄러운지 얼굴이 발개진 여자는 앞머릴 정리하며 카운터로 돌아갔다. 어린게 끼부리긴. 정국이는 이제 3학년인가? 라떼를 마시는 정국이가 손가락으로 '3'을 보여주고 주머니에 쏙 넣었다. 벌써 그렇네. 나 2학년때 여름까지 나 좋다고 따라다녔다가 어느 순간 발길이 뜸해졌었다. 컵을 꽉 붙잡았다가 놓는 짓을 쓸 데 없이 했다. 정국이는 뭔가가 생각났는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누나 그거 알아요? 김태형 선배요."
"…어?"
"재작년 여름이었나…. 저 누나 놀릴려고 소개팅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짠- 하고 나타나서 카페라도 같이 가게. 근데, 그 형이 갑자기 와서 저한테 이상한 소릴 한거에요."
김태형. 김태형 오랜 만에 듣는 이름. 가슴에 뭔가 조각조각, 일부러 굳힌 부분이 깨지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 뜸하게 관심을 보이자 전정국이 흠… 고민을 하며 말했다.
"저 누나의 영원한 친구, 윤기 선배가 누나 동생처럼 여기는 거 알고 있었단 말이에요. 근데 윤기형이랑 누나랑 사귄다고 말하는 거에요? 그게 말이에요? 완전 안 어울려. 이럴수가. 완전 청천병력같은 소리라서 멍해졌잖아요, 나. 완전 초면에 소문으로만 들었지 갑자기 나타나서 그런 말을 할 줄은. 윤기 형한테 달려가서 그대로 말하니까 등짝맞았잖아요. 조용히 하라면서. 혼자만 알고 있으라던데요."
"자세하게 말해봐."
"그 형 되게 유명했는데. 학과 바꿨다고 들었거든요. 힘든 루트로 가던데 취업하셨더라고요. 벌써 취업이라니. 역시 능력은 쩔어. 스펙도 얼굴도 완벽하더라구요. 청년 실업자가 넘쳐나는 시대에 독보적이라서 원. 이길 수도 없고. 뭐 어쩔 수가 있겠습니까. 앞에선 만인의 연인이더니 뒤에선 절절한 사랑꾼이던데. 보는 제가 눈물나더라고요. 그래서 누나 놔 줬죠. 그럴 사람이 아닌데 나는. 그래도 심통나서 괴롭혔어요. 적당히 했어야 됐는데 참 지금 생각하니까 죄송하네요."
반응이 시시각각이라 제가 그 형 놀리는데 재미들려서 많이 애먹였거든요. 누나 좋아한다는거 알면서. 저때문에 안 하던 사람이 욕도 하더라구요. 와우.
아 맞다, 그 무용과 누나. 완전 썩을 년이더라구요. 궁둥이 완전 가볍다고 소문나서 결국 휴학냈잖아요.
삼켜왔던, 종이 비행기로 날렸던 감정이 종착역을 찾아 돌아왔는지 마음 안 쪽에서 몽글몽글한게 피어났다. 물 한 방울도 주지 않은 아스팔트 위 들꽃이 나 여기 있다고 흔들렸다. 따뜻한 눈밭 속에서 다시 피어난 민들레가 반가웠다. 형용할 수 없는 마음에 눈물을 한 방울 흘리더니 투두두둑. 계속 떨어졌다. 깜짝 놀란 전정국이 일어나 휴지를 건내주자 나는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어나갔다.
"누나 어디가요?! 탄소 누나!"
정신없이 뛰어간 나는 김태형을 찾았다. 졸업식이 끝나고 몇 시간 지났지만 여기 주위에 남아있을거다. 대학로 주변 너는 내 뒤에서 보고 있을게 틀림없었다. 마음을 정리했을거라 생각했지만 너도 나같을거다. 복잡하고 바쁜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다니고 어느 술집이나 카페를 다 뒤졌지만 네 갈색 동그스름한 머리는 볼 수 없었다. 온갖 김태형이 있을 만한 술자리를 후비고 다녔지만 없었다. 자책을 하며 마구 미친 사람처럼 찾아다녔다. 많이 보고 싶다. 지금 안 보면 못 볼 너를 보고 싶었다. 허탈하게 거리를 다니다 사람들에게 치여 미끄러졌고 치마를 입은 꼴로 넘어졌다. 미끄러운 눈발판에 넘어진 나는 어린 아이처럼 막 울었다. 너를 위한답시고 억지로 끊어낸 끈이 한스러웠고 다시 묶고 싶었다. 내가 너무 미안해. 빨리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아무 것도 모르고 욕해서 미안해. 사람들은 나를 신경쓰지 않고 바닥을 짚은 내 손을 아무렇게나 밟고 지나갔다. 그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검은 무광의 플렛 힐에 굽도 부러진지도 모르고 달려왔는데. 별을 지킬 용기가 없어서 놔버린 나는 너무 한심했다. 지금이라도 잡을 수 있을까 뻗어본 허공에,
어떤 남자가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아주었다. 검은 목폴라티에 먹구름같이 어두운 회색의 긴 코트를 입은 갈색 머리.
눈이 심하게 쏟아지던 날, 투명 우산을 쓴 네가 조심조심 길을 걸어갔었다. 아기자기한 소품을 파는 가게에서 노란 조명이 새어나왔고 그 가게 앞에서. 사람들이 많이 걸어다녀 반들반들해진 눈발판을 밟아 넘어졌었는데 사람들이 엎어진 너를 치고 모른 채 지나갔었다. 빨갛게 얼어붙은 손을 마구잡이로 밟고 지나갔다. 책들이 품에서 쏟아져서 물에 젖고 우산은 부숴졌었다. 마침 반대편에서 오던 민윤기가 사람들 사이를 치고 달려와 도와준 게 다행이었다. 웃는 얼굴로 머리에 눈이 쌓이는 것도 모르고 책을 줍던 너는 또 뒤로 넘어졌다. 잘못하면 뇌진탕일 수도 있는데 가까이 갈 수 없었던 나는 애꿎은 손만 피날 듯이 꽉 쥐었다. 그 때 뒤에서 몰래 따라가 지켜보다 손을 뻗어 일으켜주지 못한 게 마음에 깊이 남았었다.
이제 내 한은 풀었네.
김태형. 내가 넘어진 곳은 폭설이 내리던 이 맘때 재작년. 넘어졌던 곳 앞의 캔들을 팔던 소품가게. 문에 달린 종이 딸랑거리고 그곳에서 나온 김태형은 나를 잡아 일으켜줬다. 울음을 삼키며 김태형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목을 둘러쌓고 안았다.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김태형은 귀에 희귀했던 그 목소리로 속삭였다.
"친구라도 좋아. 가끔씩 영화도 보고 여름엔 같이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면서 편하게."
난 괜찮아. 미안해하지마. 네 잘못이 아니야.
못잡아줘서 미안해. 도망쳐서 미안해. 빨리 결정 못해서 미안해. 가까이 가기 힘들어서 뒤에서 지켜보느라 시간 허비를 많이 했어.
마음 정리하느라 제대로 못말했네. 그게 너한테 좋은 편이잖아.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갈게.
예쁘다. 마음같애선 지금 바로 긴 바지 입히고 싶은데 원피스 너무 예쁘네.
진리를 깨뜨릴려고 노력해봤는데 원래 첫사랑은 못 이뤄진다더라.
많이 좋아했,
말을 끊고 그 입을 다물게 했다. 네 커지는 동공. 떨리는 입술에 립글로즈를 바른 입술이 닿았다. 못 이뤄진다는 거 없어. 기다려줘서 고마워. 난 너만의 파렴치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마음이 정리가 돼서야 늦은 시간에 너를 직접 찾아가고.
그리고 네게 술김이 아닌 맨정신으로 키스를 할 수 있었다.
놀란 듯 하지만 익숙하게 받아주는 김태형은 내 허릴 감싸 눈물이 고인 눈꼬리를 닦아줬다. 사람들이 우리의 공간을 비켜가고 여긴 우리밖에 없는 것 같았다. 머리에 눈이 쌓이는 줄도 모르고. 주위에 차들이 빵빵 거리는 크락션 소리와 바람부는 소리가 얽히고 섞였다. 그 마저 좋았다. 저 멀리서 민윤기와 정호석은 놀란 듯 서로를 쳐대다 아저씨들처럼 사진을 찍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가.
편한 친구 사이 하지 말자.
평범하게 가끔씩 영화 보고 손 잡고 놀러도 가면서 여름엔 내가 좋아하는 스크류 바를 같이 먹을 수 있는,
네가 바라고 나도 바란,
침대서 말고도 평상시에도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사이.
별이 스스로 유성이 되어 하늘에 떨어져줘서 감사하다. 제 발로 찾아와줘서 고마워. 아껴줄게. 뺏기지 않도록.
credit 완료.
출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stardust
망붕
너를위해
오하요곰방와
탄소1
마틸다
보솜이
윤기모찌
부랑이
레모나
태태뿡뿡
태쁘
윤기융털
곰탱♥
목단
잼잼
아쿠아
닭키우는순명
버블방탄
죠리뿅
다고쳐
버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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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낑깡긹
레몬사탕
핑콩이
긴 시간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movie, moving and screw bar. 번외 (완료)
수능 보신 분들 먼저 파이팅 하고 사담 진행합니다.
전세계 고 3분들 대박나시길 바랍니다. (제가 이제 고 3이군요 촤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핳((미침)
안녕하세요.
저번주에 안 왔는데 수능치기 몇 일 전에 오면 왠지 부담일 것 같아서 당일날 왔습니다.
저도 이제 시험... 시험기간 (울컥) 또 잠수타다 12월달 초부터 투하츠 정말 열심히 달립니다. 커피 한 박스 준비 중... 한 20화 까지 쓸 수 있지 않을까...싶네요.
이거 쓰다가 몇번 울었는지 모르겠 (후다닥)(쪽팔림)
저 위에 초록색 브금... 크레딧까지 들어주셨는가요? 제일 잘 맞는 브금인데 독자님들이 일본 싫어 ㅠㅠㅠㅠ하실까봐 다른 브금도 생각해봤는데 영...
저거 들으시면서 이거 보셨다면 제대로 보셨을검다.
영화식처럼 쓸까해서 한 번 해봤다가 쵸큼 망한 느낌?
역시 저는 단편은... 아닌 거 같아요. 분량 너무 많아...쇠가 빠져버렷!
그래놓고 또 크리스마스에 단편 가져온다는 작가는 모순덩어리 랼랼랼
정말 단편가지고 메일링하기 싫었는데... 삭제된다고 하니 어쩔 수가 없군여.
이 단편이 투하츠 제본 뒤에 실릴 거였는데 세상에 이렇게 ... 외부로 나아갈 줄이야. 투하츠 뒷편에 실릴 내용이였어서 포인트 세게 올렸습니다. 어쩔 수 없이 투하츠 제본딸릴다른 단편을 새로 써야 하나봐요...
투하츠 1부~ 2부 13화까지 텍스트 파일은 추첨된 독자님은 -전에 올린 공지에서 확인- 12월 크리스마스까지 기다려주셔야 합니다 ㅠㅠㅠㅠ아마 20화까지 2부 추가돼서 드리지 않을까 싶네요. 단편과 번외는 이번 주 중에 드립니다.
투하츠 텍스트 파일과 제본은 추가 추첨중이니 낙담은 아니됨다.
지금 단편 본편과 단편을 받으실 분은 단편 movie, moving and screw bar에서 암호닉 신청하신 분들입니다.
계피/감귤쓰/인연/너구리/빵야빵야/현/플랑크톤회장/돌하르방/우리사이고멘나사이/플라맹고/토마토마/민트초코칩/♥오렌지♥/생강쿠키/물마크/뚱이/오레오/내손종/이만총총/소다/도화/꾸꾸야/꾸귕/어썸태태/메뉴/정쿠키/흥녀/97꾸/바나나/정류장/그린티/♡♡♡♡♡/정국진국/빈글/핫초코/김태태/능동적/채꾸/샤샤/날봐태태/SAY/피짜/빙봉/꿀설탕/도토리/꾸꾸야/차차/지팔/슈팅가드/행복/낑깡긹/레몬사탕/핑콩이
이 분들은 투하츠 연재 부터 암호닉이 삭제되니 유의해주세요. 처음부터 투하츠를 미는 작가라 단편 암호닉은 잘 받지 않습니다 ㅜㅜ.
투하츠를 연재하는 작가와 달리고 싶으신 분들은 다시 암호닉 신청해주시길 바랍니다.
메일링의 텍스트파일.
[ ] 암호닉 쓰시고 (전혀 오차의 오류없이. 오타 내시면 안 돼요. 아니신걸로 간주하고 넘깁니다.) 이메일 올려주세요.
투하츠 암호닉 분들은 당연히 드리니 댓글 쓰신 분들만 드리겠습니다. 다만 조건은 투하츠 암호닉 분들이거나 단편의 본편 분들만 드린다는 것입니다.
아니면
기차 오는 법좀 가르쳐주세요 ㅠㅠㅠㅠ엉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ㅇ 알려주신다면 이 글 보신분들 다 받을 수 있게 될거에요 ㅠㅠㅠㅠㅠ
기차하면 이 글 구독료 500포인트로 변환되니 잘 생각해주시옵소서. 정말 아는 분들만 드릴 소듕한 단편입니다. 암호닉 분들만요.
와 근데 포인트 심해서 바꿨어요... 어서 아무 댓글써서 반환해가세요 아까 200이었는데 하하ㅏ하하카하카카 나 왜그랬니 어짜피 망한건데
그리고 지금 1일 끝나서 바꿨죠.
대신 배포는 금지, 수정도 금지입니다!
메일링하려는데 이백명이 넘어서 좌절...
기차 가르쳐주시면 오늘 밤에 수정 알림보내고 띄워드리겠습니다. 한 15분 펑으로...?
암호닉 분들 댓글 일일히 써주지 못해 너무 슬픔다. 세상에 댓글 쓸 시간만 있다면 ㅠㅠㅠ근데 저 너무 좋아해주시는 거 아니에요?! (핵당당)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대로 된 11개월 작별인사는 12월 24일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저 글 삭제 안 해요. 설마... 홈 아니면 블로그를 파던가 해야지. 삭제 하면 너무 슬프잖아요 어헝헝. 사실 1년 전에 만들었고 진행했던 블로그 있는데 잠금 시켰어요. 풀까요? 아 풀면 1년 뒤에 풀어야 되는뎈ㅋㅋㅋ컹 수능 준비 때문에...
불맠은 이제 여기다 못쓰니 블로그에서 해야 되나 싶군요 ㅜㅜ
연재 방식과 이 외 부분이 궁금하신 분은 공지를 보시길 바랍니다.
이상 그루잠입니다.
암호닉은 위에 있으니까 생략ㅎ...하 나태해져부러
이번 번외에 대한 암호닉은 신청 받지 않습니다. 투하츠에 대해 신청하시는 분은 암호닉 신청해주세요.
cf)
아니 이게 뭔가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참 많이 웃었슴다.
고마워요. 정말 귀엽네요 ㅠㅠㅠㅠㅠㅠ 아이고 ㅠㅠㅠㅠ귀여브라
저 이제 스크류바 잘 먹어요. 허허헣ㅎ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의 조각글. 정말 아무 생각 없었던 게 함정... 거기다 또 변형됨.
http://instiz.net/name_enter/27869481
http://instiz.net/name_enter/27875862
불맠 따로 써달라고 하신 독자분들, 탄소들 감자합니다...
^^ 덕분에 긴 단편도 해보고 좋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