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요? 왜?"
"혹시 그 컴공과 이름이...정재현이야?"
"아, 이름을 안 알려드렸네요. 맞아요, 정재현 선배."
오마이갓...진짜 이게 뭐지?
하루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서
지금 내 머리로는 그 어떤 것도 감당 불가다.
그래도 연락이 왔는데...답장은 해야지...
만나서 해결(?)도 해야하고...
그 정재현이라는 후배와 연락아닌 연락을 주고 받고 있는데,
교수님이 갑자기 휴강이라며 급히 강의실을 나가셨다.
덕분에(?)
좀 더 빨리 그 후배를 만날 수 있게 됐다.
*
"네, 제가 정재현이에요.
아 여기 앉으세요."
"네..."
역시 맞았다. (내 직감은 적중률 97%에 달한다. 음하하)
일단 앉아야 뭘 이야기를 할 것 같아서
앉으라는 그 정재현 후배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어제...술자리에서...제가 이상형이라고 그러셨다면서요."
하...
내 입으로 꺼내기 참으로 민망한 이야기였다.
내가 내 입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이야.
"네. 혹시 기분 나쁘셨으면 죄송해요.
제가 이상형 이야기 하자마자 정우가 선배님 아니냐고 하길래,
제가 번호 드렸었거든요.
선배님도 저한테 번호 주셨구요."
역시 이 모든 일의 원흉은 김정우였다.
외롭다고 노래를 불러대는 나를 김도영과 함께 지켜본 사람이긴 한데...
설마 그래서 일부러...?
그것도 그거지만 내가 저 후배한테 번호를 줬다는 게
더 믿을 수 없었다.
"기분이 나쁘진 않았구요...그냥 좀 놀란 거 뿐이에요.
근데, 제가...후배님한테 번호를요...? 언제...?"
"어...네.
제가 번호 드리고 나서 저한테 번호 받아가라고 하셨어요."
"그랬구나...하..."
김정우도 웬수고 술도 웬수였다.
나는 어제 내 앞에 있는 게 김도영인지를 구분하는 것도 한참 봐야 가능했기 때문에
제대로된 정신을 갖고 있었을 리가 만무했다.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말씀 편하게 하세요.
이름은 알고 계시니까 편하게 부르시면 되고요."
저 후배는 뭐가 그리 웃긴 건지 웃으면서 말을 편하게 해달라고 한다.
우리가 앞으로 자주 볼 사이인지도 모르는데...
말을 놓아달라니...약간 김정우랑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그럴까.
저기 너두...말 편하게 해줘. 선배님은 너무 불편하다...나도."
사실 아까부터 선배님, 선배님 하는 게 그리 듣기 좋지는 않았다.
김정우와 나재민은 나를 누나라고 부르고,
이동혁은 선배라고 부르기 때문에
선배님이라는 호칭은 상당히 불편했다.
"뭐라고 불러드리는 게 편할까요?"
인기가 많다더니, 그건 비단 잘생긴 얼굴 때문은 아닌가보다.
보통 이 상황에서는 자기가 부르고 싶은 걸 말하는데
후배님...이 아니라 정재현? 재현이는? 아무튼 얘는
내 의사를 먼저 물어왔다.
배려심이 넘치다 못해 흘러서 줄줄줄 새고 있었다.
"그냥...누나라고 해주라.
그게 편해서..."
미친 나 뭐래?
동생이 있어서 누나라는 소리를 듣는 게 편하긴 한데...
약간 어제 번호준 거랑 같은 급의 실수(?)를 한 것 같다.
아니면 나의 잠재된 본심...뭐 이런 건가?
"누나, 그럼 이렇게 부를게요.
괜찮아요?"
"응? 으응...괜찮아."
"그럼 저도 재현이라고 불러주세요.
저도 그게 편해서요."
얘한테 점점 말려드는 것 같지 왜?
그리고 뭔가...엄청 대단한 놈이랑 엮여버린 것 같다.
*
"저기, 누나."
"응."
"괜히 에타랑 대전에 누나 이름 거론되게 한 거 미안해서 그러는데요.
밥...한 끼 같이 안 먹을래요?"
"누나.
영화표 생겼는데 같이 안 볼래요?"
"야 재현나...나 요기..."
- 쿤쿤타죠? 누나 친구 김도영 선배랑, 정우랑.
대단한 놈이랑 엮인 게 맞았다.
그날 카페에서의 만남 이후로 하루가 멀다하고 만나서 밥을 먹거나,
내가 술자리에 가면 재현이가 데리러 오거나...
약 한 달 사이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났는데,
나도 내가 이렇게 적응을 빨리 할 줄은 몰랐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선배 요즘...정재현 선배랑 뭐 있죠?
그날 이후로 둘이 너무 자주 붙어다니던데."
"뭐가 있긴 뭐가 있니.
처음 사귄 정상적인 후배야."
"헐...그럼 저랑 재민이랑 정우형은 정상적이지 않다는 거예요?"
"말해 뭐하니. 당연하지."
내가 요즘 재현이랑 같이 다니는 날이 늘어나서,
자연스럽게 동혁이랑 정우, 김도영이랑 다니는 날은 줄어들었다.
이에 의문을 가진 동혁이는
나와 재현이의 사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나랑 재현이 사이가...그렇게 의심받을 만한 사이인가...
"근데 에타랑 대전이 왜이렇게 조용하죠?
정재현 선배랑 선배가 같이 다니는 거 본 사람 한 둘이 아닐텐데."
"아 그거...재현이가 자기 관련 글 웬만하면 제보 받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대."
"와 벌써 재현이 됐다. 대박. 언제 그렇게까지 친해진 거예요?"
"몰라...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재현이랑 내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기 시작했을 때,
재현이는 대전에 자기 이야기를 쓰지 말아달라고 직접 관리자에게 부탁했다.
에타에도 그게 소문이 나서 조용했던 거고.
그날 내 이야기가 에타와 대전에 올라갔던 게 많이 미안했다면서.
그리고 재현이랑 친해진 건 진짜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
나는 그 자리에 해결(?)을 하러 간 것 뿐이지
이렇게 친해질 줄은 몰랐다.
[재현이]
"움...슨브...증즈흔 슨브흔트 즌흐으으."
(선배...정재현 선배한테 전화와요.)
정말 잠시잠깐 생각에 잠겨있었는데,
내가 가져온 케이크를 움냠냠 먹던 이동혁이 전화가 왔다며 알려줬다.
무음이어서 이동혁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거다.
"어...여보세요? 재현아 왜?"
- 누나 오늘 종강파티 한다 그랬죠?
"어...맞다. 그게 오늘이었네."
- 컴공은 어제 종강해서 저 오늘 시간 남거든요.
그러니까 술 마시고 꼭 저한테 전화하세요. 데려다 줄게요.
"엉...그랭. 나중에 연락할게."
세상에...
우리과가 오늘 종강파티 하는 걸 나는 모르고
재현이는 알고 있었다니.
나는 왜 주변 사람들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이렇게 많은 건지...
"선배..."
"왜."
"정재현 선배랑 썸타요?
이건 아무리 봐도...그냥 선후배가 아닌 것 같은데..."
그냥 선후배 사이가 아니면 뭐지...
정말 그이상도 그이하도 아닌데.
그리고 재현이가 나한테만 이렇게 다정한 것도 아닐 테고.
이동혁의 말 한 마디에 생각이 갑자기 많아진다.
이럴 때 김도영이 있으면 좋은데
요즘 얼마나 바쁜지 보이지가 않는다.
**
종강파티에 온 걸 엄청나게 후회 중이다.
나는 본의 아니게 인싸가 되어 김정우 테이블에 끼게 됐고
정재현에 관한 질문세례를 받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에타랑 대전이 조용했던 건 애들이 참고 있었던 거구나.
"얘들아...
나랑 재현이 정말 아무 사이 아니고,
안 사귀고,
정말 정말 친한 선후배 사이일 뿐이야.
그러니까 나 이제 그만 보내줄래...집에 가고 싶다."
"재현이라고 하는 것 부터가 심상치 않은데요????"
"그래 시민아. 너 진짜 재현이랑 아무 사이 아니야?"
"네가 정재현 좋아하는 건 아니고?"
"정재현은 너 어디가 좋은거래?"
"야야 숨기지 마 김시민. 다 티나."
"야 그럼 무슨 사이야? 한 달 넘도록 그러고 다니는 게
그냥 선후배 사이면...좀...많이 애매한 사이 아닌가?"
"야 그만해.
애 곤란해 하는 거 안 보여? 아니라는데 왜 꼬치꼬치 캐묻고 난리야."
"김도영...!"
"김시민 너는 집에 얼른 가. 도착하면 연락하고.
너넨 진짜 사람 몰아세우는 것 좀 고쳐.
그 정신으로 누굴 가르친다는 거야.
그리고 김정우, 너는 나 따라나와."
질문에 충분히 답을 했는데 동기들은 멈출 줄을 몰랐다.
에타랑 대전에 글을 못 올리는 답답함을 오늘 다 풀 작정인지,
집에 가려는 나를 놓아주지 않고 계속 붙잡아 두고 질문세례가 또 시작됐다.
진짜...집에 가고 싶다.........
고 생각하고 있는데,
김도영이 화가 난 얼굴로 애들을 처리 해줘서 집에는 갈 수 있게 됐다.
근데 김도영 진짜 엄청 화난 것 같은데...김정우 괜찮을까?
"어...재현아. 나 방금 나왔어. 어디야?"
- 벌써 끝났어요?
저 지금 스타벅스에 있는데, 5분이면 가요. 조금만 기다려요, 누나.
"...빨리 와주면 안 돼?
기다리기 힘들어서..."
- 어...진짜 금방 가요.
빨리 갈게요. 진짜 잠깐만 기다려요.
종강파티에서 기가 다 빨렸는지
가게를 빠져나오자 마자 다리에 힘이 풀리려고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재현이한테 투정을 부렸다.
뭔가...평소랑 다른 감정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애들 말처럼 한 달 넘도록 이러고 있는데,
이게 무슨 사이인 건지 나도 재현이도 모르고.
애매하기만 한 사이였다, 나랑 재현이 사이는.
"시민 누나.
아픈 거예요? 안색이..."
"으응, 아니...술 기운이 이제 좀 도나봐.
빨리 왔네?"
"누나 목소리가 아픈 것 같아서...정말 괜찮은 거죠?"
술 먹은 김에...저질러 볼까.
"재현아."
내 감정에 좀 더
"우리...무슨 사이야?"
솔직해져도 되지 않을까.
"우리 사이...누나는 어떻게 생각하는데요?"
내가 용기내서 건넨 질문의 끝에 돌아온 것은 답이 아니라 또다른 질문이었다.
"우리 사이...내가 먼저 물어봤어.
그리고 재현이 너...나한테만 이러는 거 아니잖아.
나 솔직히, 헷갈려..."
내가...이렇게 솔직했던 적이 있었나...
"...시민 누나, 잘 들어요."
"응, 으응..."
"나 누나한테만 이러는 거고요,
누나가 이렇게 먼저 물어봐주고 솔직하게 이야기 해줘서 너무 고마워요.
나, 누나 좋아해요.
이제 애매한 사이 안 하고 사귀는 사이 하고 싶어요."
"재현아...으흥....ㅜㅜㅜㅜㅜㅜ"
"누나는요?
나 어때요?"
말해뭐해.
"너무 좋아. 나도 재현이 너 좋아해."
당연히 좋지.
알딸딸- 하게 딱 기분좋게 올라오는 술기운,
살랑살랑 부는 바람,
나를 끌어안는 재현이까지.
완벽하게 조화로웠다.
그리고 2n 년 간 고수해온 연상이라는 취향은,
정재현에 의해 완벽히 깨져버렸다.
"..."
누군가에겐 오늘밤이 따뜻한 밤이었지만,
딱 한 사람에겐 아니었다.
-
호다닥 써서 달려왔숨니다...
오늘 하루죙일 쓰고 지우고 하느라
약간 뒤죽박죽 일 수도 있는데...
모쪼록 잘 읽어주시구욧,,,
오늘도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저 오늘 빨래 넌다고 잠깐 마당에 나갔는데도
너무 춥더라구요ㅜㅜ
꼭 따숩게 전기장판에서 읽어주시구요
나가게 되신다면 꼭 마스크 착용하시고
따땃하게 입고 나가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