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 안녕 6(完)
written by. 키마
「조금만…더!!!」
손만 뻗으면 입구가 닿을 지점까지 기었다. 560번째 시도 끝에 이뤄낸 탈출기. 두 눈 가득 눈물이 찰 정도로 감격스런 순간이었다.
내, 이 일을 책으로 남겨 대대손손 길이길이 물려주고 말리라.
덜컹.
문에 달린 작은 손잡이(김종인 이런 치밀한 자식. 이런 건 또 어디서 구했다니.)를 힘주어 잡아당기자, 환한 빛이 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마치, 영화 속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한쪽팔로 눈가를 가리며 얼굴을 찌푸려주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살았다!」
…그래.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오직 한 가지.
김종인 생포해오기.
훗, 기다려라 종인아.
一
경수와, 작은 종인이와 함께 장을 보러 마트에 나왔다. 경수의 옷 속에서 얼굴만 빼꼼히 내밀고 있는 종인이는 처음 보는 이곳이 신기했던지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구경하기 바쁘다. 그런 반면에, 혹시나 종인이를 들킬까 경수는 자꾸만 옷 속에서 빠져나오려는 종인이를 숨기기에 바빴다.
그러길래 마트에는 애완동물 못 데리고 간다고 내가 그렇게 말렸건만, 말 좀 듣지.
지지리도 말 안 듣는 도경수는 나의 잔소리에 굴하지 않고 기어이 종인이를 옷 속에 숨기고 왔다가 이 고생을 하고 있다.
「그러게, 내 말 듣지. 왜 데려와서는…」
“시끄러.”
웬만해선, 사람들 많은 곳에선 경수에게 말을 걸지 않으려 노력하는 나였지만 종인이 녀석 때문에 끙끙거리는 도경수를 보고 있자니 내가 도와줄 수도 없는 게 답답해져 결국엔 잔소리를 늘어놓고 말았다.
「내 말 들어서 나쁠 거 하나 없어. 생각을 해봐, 생각을.」
“아, 좀 닥쳐.”
그래봤자 비참하게 무시당하는 쪽은 나였지만….
종인이 요 녀석은, 우리 경수 지켜주라고 보냈더니만 오히려 못살게 구는 것 같아서 괜히 얄밉다.
「야, 경수야아-」
“징그럽게 왜이래?”
「경수야아-」
“미쳤어?”
「종인이 사물함에 넣고 와라. 응?」
얄미워, 얄미워. 작은 종인이 얄미워.
「애완동물 데려오면 안 된다니까?」
반은 작은 종인이에 대한 얄미움으로, 반은 도경수에 대한 걱정으로 꺼낸 말에 경수는 갑자기 정색을 하며 나를 바라본다.
“…애완동물 아니야.”
「…어?」
“종인이, 애완동물 아니라고.”
금세 눈시울이 붉어져서는, 품속에서 나오려 버둥거리는 종인이의 머리를 꾹꾹 누르는 경수의 모습에 나는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단어 선택이 잘못 되었던 모양이다. 상처주려고 했던 말 아닌데,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고 말았다.
미안한 마음에, 사과도 하지 못하고 바닥만 내려다보는 나를 지나쳐버린다. 왠지 모르게 작아 보이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그 뒤를 따랐다.
결국, 우리는 카트가 가득 찰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一
양 손 가득 마트의 로고가 새겨진 새하얀 봉지를 들고 있는 경수의 뒤에서 짐만 노려본 채 내내 한숨만 내쉬었다. 짐이 너무 많아서 품속에 있던 종인이 마저 봉투에 넣고, 혹시나 종인이가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며 녀석만 바라보고 있는 경수의 모습에 가슴이 아파와 눈가가 시큰해졌다.
내가 살아있었다면, 녀석의 손에 쥐여진 짐들은 내 손에 있었을 테고 녀석은 종인이를 안은 채 장난치며 갈 수 있었을 텐데….
녀석의 손에 들린 봉투가, 무겁게 내 가슴을 짓눌렀다. 그래서 새삼스레 내가 죽어버린 것에 대해 후회를 했다.
바보 같은 내가, 지켜주지도 못할 거였으면서 왜 너를….
「병신.」
“…….”
「바보, 멍청이, 쪼다새끼.」
나를 질책하는 원망 섞인 녀석의 말에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신호등만을 주시했다. 답지 않게 소심해진 나를 원망한 네 말이었을 테지만 내게는 무거운 짐으로만 다가와서 그어떤 말이라도 꺼내기가 힘들었다. 아무런 대답이 없는 나를 쳐다보며 입술을 살짝 깨물던 녀석은 결국 고개를 푹 숙여버렸고, 그때 쯤 신호가 바뀌었다. 그와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곁을 스쳐지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자리에서 한발자국도 떼지 않은 채 숙인 고개를 들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너는 그렇게 혼자 울었다.
그 모습이 보기가 싫어, 나는 두 주먹을 꽉 쥔 채 너를 뒤로하고 먼저 걸어 가버렸고, 그 순간….
“종인아!!!”
봉투 안에서 나오려 몇 번이나 낑낑대던 종인이가, 앞서 걷고 있는 나를 향해 달려왔다.
…신호는, 빨간색이었다.
一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땅굴에서 탈출에 성공한 나는, 상부의 눈을 피해 김종인을 잡으려 재빨리 이승으로 내려왔다.(지만 과연 들키지 않을 수 있을까 걱정된다.)
그래, 여기까진 좋았다.
그런데, 이 넓은 땅 덩어리에서 김종인을 무슨 수로 찾느뇨?!
아이씨! 이거 완전 사기야. 무슨 사신이 발로 뛰냐, 발로 뛰길!!
「킁킁…, 으으으!!」
어디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 했더니, 내 몸에서 나는 냄새였다. 휴우. 안되겠다. 어서 빨리 김종인을 잡아가야겠다.
…아, 이럴 줄 알았음 씻고 오는 건데.
一
경수는 숨 넘어 가기 직전까지 오열했다. 하마터면 작은 종인이 마저 잃을 뻔 했던 녀석은 그렇게 종인이를 붙잡고 내내 울기만 했다.
「그만 울어.」
“어어엉…나는…진짜……죽는 줄 알았어….”
「….」
“종인이랑, 너랑…죽는 줄 알았어…….”
나는 이미 죽었는데, 죽는 줄 알았다며 엉엉 운다. 저, 바보가.
“나는…정말….”
많이 놀랐을 테다. 신호에 개의치 않고 횡단보도를 지나쳐 걸어 가버리는 내게 놀라고, 나를 쫓아오는 겁 없는 종인이에게도 놀랐을 것이다. 육체가 없는 영혼이라서, 교통사고 따윈 당할 일이 없는데도 경수는 자동차 사이를 지나는 나 때문에 덜컥 겁이 났을 것이다.
내가 이미 죽었다는 건 까맣게 잊고서.
「종인이가,」
“…….”
「나한테 그러더라,」
“…….”
「너 지켜준다고. 나한테…그러더라.」
그저 작고 귀여운 강아지일 뿐인 고 녀석이, 쫄래쫄래 내 뒤를 쫓아와서 내 발을 핥더라.
울지 말라고, 나를 위로하더라.
「종인이.」
“…흐윽.”
「지켜줘야지, 경수야.」
그래서 마음이 놓였다. 아아, 이제는 정말 경수를 두고 가도 되겠구나. 안심이 되었다.
「종인이는, 나처럼 먼저 보내지 말아야지….」
예쁜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닦아주고 싶은데, 닿질 않는다.
더 이상은 안 돼.
여기에 더 머물렀다가는 경수가, 견디질 못할 것 같다.
이젠, 떠나야겠다.
…심장이 멈춰버린 건 이미 오래전인데, 가슴이 너무 아프다.
一
「찾았다!!!」
수소문 끝에 김종인이 있는 곳을 알아냈다.
어어?
근데, 여기 분위기가 왜 이렇게 무겁냐….
천장에서 고개만 쑥 내밀고 있는 내가 부끄러워질 만큼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였다. 괜히 뻘줌해서 머리를 긁적이며 머리를 빼고 김종인 곁에 섰더니, 이 녀석은 눈이 시뻘개져선 눈물을 애써 참고 있고, 그…경수라는 아이는 이미 많이 울었던 건지 눈이 퉁퉁 부어있는데도 계속 눈물을 줄기차게 뽑아내고 있었다.
…이런.
나, 사람 눈물에 약하다니까.
一
눈물이 나오려는 걸 애써 참았다. 비록, 경수가 흘린 눈물을 닦아 줄 수는 없지만, 나마저 울어버리면 안될 것 같아서 그럴 수 없었다.
아아, 나란 놈은 자꾸 너를 힘들게만 해.
늘 웃게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나는 널 울리기만 했어.
“종인아.”
「…응.」
속 깊은 우리 경수는 찢어지는 내 마음을 아는지, 어른스럽게 울음을 그쳤다. 이제 떠나려는 내 마음 또한 눈치 챘는지 작은 종인이를 쓰다듬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사실,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었어.”
「…뭘?」
“네가, 많이 아프다는 거.”
이런, 숨긴다고 악착같이 애썼는데 결국엔 들키고 말았네….
“네가 여행 간다고 했을 때,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못 하겠구나…. 하고 생각했었어."
「….」
“그래도 나는, 널…놓을 수가 없더라.”
울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네가, 돌아오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기다릴 수밖에 없더라.”
결국엔, 녀석이 나를 울리고야 말았다.
「…경수야.」
“그래도, 너는 이렇게라도 다시 와줬잖아.”
「…흐윽…흐으윽.」
경수는 웃었고, 나는 울었다.
이 꼴이 되어 나타난 내 모습마저, 감사하다고 너는 말했다. 이런 너를 두고, 나는….
“종인아.”
「…응.」
“이번에는, 네가 나…기다려 줄 수 있겠어?”
끄덕끄덕. 어린아이처럼 새 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게 나를 잊으라는 말은 백번, 아니 천 번을 해도 결국엔 무용지물이 되고 말거란 걸 나는 이제야 알았다. 잊으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 대신 착하게 너를 기다리고 있을게. 먼저 가서, 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제발, 나를 잊지 말아줘.
“…사랑해.”
네가 내게 꼭 해주고 싶었던 말.
닿지 않는다는 걸, 닿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네게 다가갔고, 너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점점 가까워져가는 네 입술에,
…내 입술이 닿았다.
「나도 사랑해….」
一
「…흐흑……아씨…흐으윽.」
「그만 좀 울지?」
「와씨…완전 슬펐어…김종인….」
나는 이제 더 이상 책을 통해서 너의 모습을 보지 않는다. 돌아온 날 이후로 2년 동안 줄기차게 다녔던 도서관으로는 가지 않지만, 내 책은 여전히 너를 비추고 있을 거라는 걸 안다. 지켜보지 않아도 한걸음씩 내게 걸어올 너를,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는 중이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내 옆으로 올 너를 반갑게 맞아주기 위해. 우리의, 보금자리를 위해.
나는 오늘도, 너를…기다린다.
…경수야, 사랑해.
fin.
***
드디어 끝이에요TT
마지막까지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 전하고 싶습니당.. 내 마음을 받아요♥
일초 천국 파리채 똥주 감동그자체,도경수 말레이시아준수 얌냠냠 오디오 뾰쫑뾰쫑 응어
아이엠벱 코코눈 까꿍 링세 긍긍 찌롱 펫또 슈엔 띠드케잌 공작새 천도여 복숭아 바니바니 브이님
그동안 정말정말 감사했어요TT 제 맘 아시죠? 핱트핱트!!!!!!!
혹시나 텍파 원하시는 분.... 없으시겠져?TT.... 네...
그래도 혹시나 어쩌면 만~약에 만약에~텍파 원하시면 손 들어주세여..흐헣....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