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만의 시간
제2부
14.
늦은 밤, 집 앞에서 김종인을 만났다.
“공부 많이 했어?”
백현이네서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 아이를 보니까 더 기분이 좋아지는 거다. 그래서 활짝 웃으며 그 애에게 다가갔다. 종인이가 내 물음에 대답 없이 나를 보며 그저 웃기만 한다. 대답은 안하고, 웃긴 왜 웃어. 근데 굳이 대답을 바라고 물은 말은 아니어서 그냥 넘겼다. 그러면서 주위를 한번 슥 둘러봤는데 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다. 이거 뭐, 대 놓고 연애하라고 그러나 환경이 날 도와주네.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무턱대고 종인이의 손을 잡았다. 손끝으로 닿아오는 온기에 또 기분이 좋다. 종인이가 내게 잡힌 손을 바라보다가 내 얼굴로 시선을 준다.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지만 얼굴이 빨개진 것 같기도 해. 귀엽다.
“백현이 만났어?”
잡은 손을 다른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종인이가 묻는다. 부끄러워 할 땐 언제고, 또 내 손가지고 장난쳐. 이상한 애야.
“백현이?”
“응.”
“응, 만났지.”
뭐랄까, 분명 내가 먼저 잡았는데 그 애의 손위에서 노는 내 작은 손을 보자 괜히 마음이 막 간지러운 거다. 그렇다고 잡기 싫거나, 손을 빼고 싶은 건 아니고, 그냥 좀 간질간질? 강아지풀로 콧잔등을 간질이는 그런 느낌이랄까. 암튼, 그걸 계속 보고 있자니 너무 간지러워서 시선을 그 아이의 얼굴로 돌렸다. 잡은 손을 바라보던 나를 보고 있었는지 입 꼬리를 올려 살짝 웃는다. 그래서 나도 따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얘기 했어?”
김종인이 자꾸 간지럽게 구는 바람에 잊을 뻔 했다. 얼른 종인이한테 가서 자랑해야지 이런 마음으로 버스를 타놓고서. 아, 바보. 백현이의 이름을 담자마자 진지한 눈빛으로 바뀌는 그 애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다.
“백현이랑 잘 풀었어!”
“…어떻게?”
종인이가 조금 놀란 눈으로 나를 본다. 만약 거울에 비춰본다면, 내가 해결을 했다고. 그러니까 잘했다고 칭찬을 해달라는 표정으로 그 아이를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다.
“음…. 말하자면 좀 긴데, 내 능력껏 잘 풀었다고 해야 되나? 흐흐.”
말하는 와중에도 내가 너무 기특한 거다. 아, 기특한 도경수. 얼마나 예쁠까? 이렇게 예쁜 짓만 하는데. 아, 예쁘면 안 되는데. 멋있어야 하는데?! 혼자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종인이를 바라보았다. 조금은, 멍한 눈으로 나를 가만히 보고 있다.
“그냥. 백현이가 이해해주길 바랐어.”
“…….”
“솔직하게 말하면 될 거라고 생각하고 무작정 집에 찾아갔지.”
“…….”
“진심은 꼭 전해지는 법이니까.”
그리고 사과도 했다? 물론, 우리가 서로 좋아하는 부분에 대해서 사과를 한 건 아니야. 왜냐면, 그게 잘못된 건 아니니까. 근데, 음…. 솔직히 백현이한테 비밀로 한 건 사과하고 넘어가야 될 것 같아서 그랬어. 변백현이 말 하더라. 조금 섭섭했다고. 아니, 그냥 한 대 치라고 할 때는 죽어도 안치던 놈이 말로 찰싹찰싹 때리는 거야. 진짜 맞은 것도 아닌데 좀 아프더라. 그래도 뭐, 그 정돈 맞아줘야지…. 아, 그리고 또! 백현이가 여전히 우리를 이해하진 못하겠대. 걔가 그 말을 하는데 막 울컥하는 거야. 지금껏 내가 얼마나 솔직하게 말했는데, 그게 다 소용이 없어진 건가 싶기도 하고….
“근데, 백현이가 노력해보겠대.”
“…….”
“우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해본다 그랬어.”
말을 마치고 종인이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칭찬을 바라는 어린아이의 얼굴을 하고서. 말을 하는 내내 아무런 대답도 없이 진지하게 내 말을 들어주었다. 끝나고 나면, 기쁜 얼굴을 하고 내 머리를 쓰다듬거나, 안아주거나, 잘했다고 칭찬해줄 줄 알았는데 그 아이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저 빤히 나를 바라보기만 한다.
“되게 멋있지?”
“…….”
“나 잘했지?”
그래서 칭찬을 해달라고 머리를 들이밀며 씩 웃어도 아무런 말도, 행동도 없었다. 조금 민망해져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눈을 깜빡이며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눈동자를 마주하자 그 아이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까만 눈동자에 담긴 수많은 감정이 읽혔다. 기특함과 고마움. 그리고 미안함….
“…….”
“…….”
맞잡은 손이 뜨겁다. 종인이가 까만 눈을 하고서 나를 바라본다. 그 눈을 마주하며 자연스레 걸음을 멈췄다.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우리는 마주보고 서 있었다.
“좋아.”
“…….”
“좋아해.”
그 아이의 시선이 온전히 내게 머물러 있는 게 좋았다. 그 눈빛이 나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 좋았다. 아, 그런데 말 해놓고 나니 부끄러워…. 오늘 나 용기 있는 도경수 컨셉인가. 하루 종일 패기 넘친다. 민망해져서 혀만 날름거리며 그 얼굴만 빤히 쳐다봤다. 아니, 내가 표현을 했으면 뭐라고 대답이라도 해줘야 되는 거 아닌 가….
뜬금없는 내 고백에 종인이의 표정이 잠시 멍해졌다. 그 애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맞잡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저 시선만 닿았을 뿐인데 손이 다 화끈거린다. 잠시 머물렀던 그 시선이 다시 내 눈을 찾아왔다. 눈이 마주쳤다. 그 애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어둑한 골목으로 나를 이끌었다.
“…좁아.”
얜 이사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인적이 드문 이 좁은 골목은 또 어떻게 알았는지. 아무런 불빛도 없는 그 좁은 골목길 사이로 몸을 숨기며 조금 툴툴거렸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 아이는 대답이 없다. 도대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궁금하다. 좁은 틈 사이로 들어서자 그 아이가 잡았던 손을 놓아준다. 그리고 마주보고 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란히 걷다가 마주보고 있자니 느낌이 색다른 거다. 옆얼굴만 계속해서 바라보다가 정면을 보자 그 특유의 진한 시선 때문에 잠깐 숨이 턱 막혔다. 그런데 뭐랄까, 그 표정. 나를 볼 때만 나오는 그 표정이 너무 좋았다. 참지 못하고, 좋다고 말을 할 정도였던 그 얼굴과 마주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웃는 얼굴로 그 아이를 조금 올려다보았다. 원래는 이 정도로 웃으면 나를 내려다보며 같이 웃곤 했는데 오늘은 조금 이상해.
“…종인아.”
약 먹은 사람 같다.
“…….”
아니면, 꼭 뭐에 홀린 사람처럼.
“…….”
그렇게 계속 나를 봐.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 동안에도 끝없이 내 얼굴로 향한 그 진득한 시선에 쑥스러워서 잠시 고개를 내렸다가, 다시 올렸다. 다시 두 눈이 마주하자 종인이가 그대로 내 목을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입술에 닿아왔던 그 아이의 입술이 잠시 머물다 떨어졌다. 이젠 간단한 입맞춤에 익숙해졌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 애의 분위기 때문인지, 아니면 밤이라 그런 건지 가슴이 마구 뛰었다. 밤이라 그런 건가? 김종인도, 나도 감정 과잉상태다. 감정이 뚝뚝 흘러넘칠 것 같다. 멍하니 그냥 눈을 깜빡였다. 모든 게 꿈같아서. 방금 뭐가 지나갔는지도 잘 모르겠다. 너무 순식간이라.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내 앞에 있는 그 애만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 있으면, 다시 그 애가 목을 감고 있는 손을 끌어당겨 바로 코앞에 내 얼굴을 가져다놓는다.
“…경수야.”
이 장면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응….”
가까이 닿아오는 그 아이의 숨결이라든지, 맞닿은 코라든지….
“좋아해.”
“…….”
“내가 훨씬 더 많이.”
“…….”
“좋아해….”
그 아이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울려펴졌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질끈 눈을 감고야 말았다. 눈빛, 그리고 목소리로 전해지는 진심 때문에. 나도 좋아한다고, 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이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말 하려다가 입술을 꾹 닫았다. 다시 눈을 떠서 내 앞의 너를 바라보면, 너는 내 마음을 다 안다는 듯 나를 보고 씩 웃고 있다. 아, 졌다. 김종인한테 두 손,두 발 다 들었어. 코앞의 종인이가 더 가까이 다가왔다. 자연스레 눈을 감으면 입술이 닿아온다. 조금 전의 뽀뽀와는 다르다. 사이로 파고들어온 말캉한 것이 내 혀를 찾아들었다. 조금 더 깊이 닿기를 원했다. 입안을 농락하는 그 애의 혀 때문에 아득해져서 주먹을 꽉 쥐고 있으면, 두 손 위로 따뜻한 손이 내 손을 감싸온다. 그에, 바짝 얼어있던 어깨에 힘이 풀렸다. 그 손이 주먹을 쥔 내 손을 풀어 깍지를 껴온다. 그 애의 입술이 오래, 아주 오래 머물렀다.
아, 어떡하지. 시간이 지날수록 김종인이 점점 더 좋아진다. 그 애를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더 좋아. 좋아한다고 생각했을 때보다 더 많이. 내가, 그 애를 좋아한다.
一
아, 키스란 게 바로 이런 거구나…. 책상에 턱을 괴고 앉아서 눈을 끔뻑이며 입술을 만져보았다.
“엄마야….”
평소에 느껴지는 그 부피가 아니야. 이건 무게가 더 나갈 것 같단 말이야. 퉁퉁 부었어. 안 그래도 내 입술 뚱뚱한데 더 뚱뚱해졌다고. 김종인 때문에. 내 앞엔 그 애도 없는데 조금 전의 키…스…가 생각이 나서 화끈거리는 얼굴을 두 손으로 얼른 가렸다. 아, 진짜 부끄러워. 뽀뽀도 부끄럽고, 키…스도 부끄럽고, 또 무엇보다 그 아이의 시선이 너무 부끄러웠다. 좋아죽겠다는 눈으로 나를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면…, 나는 어떡하라고.
입술에 느껴지던 그 감촉. 입안을 마구 휘젓고 다니던 그 아이의 혀. 그리고, 꽉 잡은 두 손까지. 눈을 감아도 모든 게 생생했다. 방금전일이라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너무 생생하다고. 얼굴을 가렸던 손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마구 웃었다. 너무 좋아서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一
“수학 공부해.”
어젯밤일이 꿈처럼 느껴진다. 아침부터 전화로 나를 깨웠다. 들들볶았다? 암튼, 이른 새벽부터 모닝콜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날 깨우더니 기어이 독서실에 날 데려다놓았다. 울상을 하며 언어 문제집을 펼치자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은 김종인이 귓속말로 속닥거린다. 아, 귀찮아…. 멍한 얼굴로 그 아이를 쳐다보면, 김종인이 뻔뻔하게 나를 돌아보며 다시 한 번 똑같이 말한다. 수학 공부해, 하면서.
“싫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김종인이 짐짓 엄한 얼굴로 나를 돌아본다. 헹, 그러면 누가 겁먹을 줄 알고?
“경수야.”
“왜, 왜, 뭐….”
나 절대 겁먹어서 말 더듬은 거 아니거든? 그러니까 그런 눈빛 저리 치우시지? 큰 눈을 부릅뜨고 그 아이를 쳐다봤다. 김종인이 나를 보며 작게 한숨을 쉰다. 그러면서 내 눈빛은 무시한 채 책상위에 펼쳐진 언어 문제집을 탁 소리 나게 덮는다. 어? 이게 뭐하는 짓이지?
“나랑 있을 때만이라도 이거 해.”
그러면서 책상 저 구석에 꽁꽁 숨겨두었던 수학책을 잡아 펼쳐놓는다. 그 모든 과정을 멍하니 지켜보기만 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안 나왔다.
“싫어.”
눈앞에 위대한 한글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꼬부랑꼬부랑 보기 싫은 숫자와 기호만 가득한 책이 보기 싫어서 눈살을 찌푸렸다. 으, 완전 토 나와. 김종인이 내 표정을 보고선 좀 전의 그 엄한 표정을 풀지 않고 내 손에 샤프를 쥐어주며 말한다.
“못한다고 피하면 어떡해. 싫어도 계속 봐야지.”
“…….”
“일단은 수능 칠 때까진 봐야 될 거 아니야.”
“…….”
“너 수능 안 볼 거 아니라며.”
“…….”
잔소리를 읊는데, 그게 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라 뭐라 대꾸도 못하겠고. 뚱한 얼굴로 손에 쥐어진 샤프만 꼭 잡고서 그 애를 쳐다봤다. 그래, 네 말 다 맞아. 네 말이 다 맞은데 싫은 건 변하지 않아. 그러니까, 일단 시작은 언어부터 하면 안 될까? 수학은 나중에 할게. 뭐 이런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 말씀이야. 큰 눈을 깜빡이자 그 애가 단호하게 말한다.
“뽀뽀.”
“응?”
뽀뽀? 여기서 뽀뽀하라고? 아, 수줍게…. 놀란 눈으로 휙휙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피다가 그 애에게 다가갔다. 내 얼굴이 가까이 오자 그 애가 심각한 얼굴로 다가오는 내 입술을 손을 들어 막아버린다. 어? 막아? 네가 나를 막다니!
“너 수학 안하면, 뽀뽀 안해.”
“…….”
헐….
뒤따라 나오는 그 말에 기절할 뻔했다. 아니, 이게 나만 좋자고 하는 거야? 어제는 그렇게 물고 빨고 난리를 치더니 이게 무슨…. 억울한 표정으로 그 애를 바라보면, 김종인이 여전히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씨,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요. 샤프를 쥔 손을 억지로 수학책 위에 올려두었다. 아, 진짜 하기 싫다. 난 수학이 싫어요. 엉엉. 김종인이랑 뽀뽀하려고 이러는 거 아니야. 수학공부 안하면 김종인이 뽀뽀 안 해준대서 이러는 거 아니라고. 그냥, 수학 공부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그럼, 그럼. 암 그렇고말고. 나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암시? 뭐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있는데, 큰 손이 내 머리를 헝클이고 지나간다.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고.”
“…….”
“힘내!”
내가 수학공부를 할 거라고 확신을 했는지, 이제야 웃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인상을 딱 쓰고서 나를 보던 김종인이. 어젯밤에 그 김종인은 어디 간 거야? 눈빛으로 날 뚫어버릴 것 같던 그 김종인은 어딜 갔느냐 이 말이야.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는 넌 누구세요? 댁은 누구시죠? 어제의 종인이를 돌려달라! 흑흑.
그 얼굴에 하는 수 없이 알겠다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한숨이 나온다.
***
헐 망햇어... 완전 똥이야..TT
미안해요... 똥을 줬어... 개강했더니 바쁜 것 같으면서도 안 바쁘고 그르네요.
정정기간이라 그런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래도, 방학때처럼 매일매일은 못 올것 같아요 흐극흐극
대신 꽉꽉 채워서 오겠습니당.
이번 똥글은 눈감아주세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근데 좋겠다...얘드라..
나에게도 연애세포를 달라TT...엉엉
담주에 만나요
오늘도 감사합니당^8^